지킬의 ‘엠마’에서 사비타 ‘유미리’까지 뮤지컬배우 김소현

지킬의 ‘엠마’에서 사비타 ‘유미리’까지 뮤지컬배우 김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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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뮤지컬은 운명이었어요”

그녀는 5년 전만 해도 서울대 성악과를 거쳐 동대 대학원에서 클래식의 엘리트 코스를 밟던 학생이었고 졸업 후엔 미국으로 유학을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참가한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은 그녀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다. ‘그리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아가씨와 건달들’ ‘지킬앤하이드’ 등 성공한 작품에는 늘 뮤지컬 배우 김소현이 있었다. 그녀의 운명과 같은 뮤지컬, 그리고 무대 밖 프라이빗 인터뷰.

뮤지컬 초짜에서 섭외 1순위 배우 되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애절하게 ‘Once upon a dream’을 부르던 고상한 엠마의 모습은 어디로 간 걸까? 뮤지컬 배우 김소현(31)의 첫인상은 생기발랄을 넘어 엽기발랄이다. 살짝 올라간 입 꼬리에서 장난기 가득한 소년의 이미지도 보인다. 불규칙적으로 ‘으흐흐흐’하고 터지는 독특한 웃음은 바이러스처럼 옆 사람도 웃게 만든다.

“사비타(사랑은 비를 타고) 공연을 하는 중이라 평소에도 유미리처럼 들떠 있어요. 어떤 작품을 하느냐에 따라 평상시 기분도 달라져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할 때는 공연이 끝나고 다른 배우들과 인생을 논하며 울쩍울쩍 울곤 했어요. 얼마나 우울했는지 몰라요.”

사실 그녀는 준비된 뮤지컬 배우가 아니라 10년 넘게 바이올린을 전공하며 성악으로 대학에 입학한 클래식 전공자였다. 그런 그녀가 뮤지컬의 매력에 빠진 건 한순간이었다.

“대학원에 일본과 이탈리아를 연수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일본에 있다가 이탈리아로 건너가기 위해 짐을 챙기려고 잠깐 한국에 들렀는데 그 일주일 사이에 지인으로부터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이 있는데 한번 보라는 연락이 왔어요. 접수 마감일 하루 전에 부랴부랴 가서 노래를 불렀지요.”

그녀는 운이 좋았다. 완벽하게 준비 못한 것이 오히려 심사위원들에게 꾸밈없는 순수한 모습으로 비쳤다. ‘하얀 도화지 위에 무한한 가능성’이란 연출가의 호평을 듣고 주인공 ‘크리스틴’을 따냈다. 그녀는 그것을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고 했다.

물론 초짜 뮤지컬 배우는 큰 무대가 무섭고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면 오를수록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우리나라 뮤지컬계에서 ‘김소현’이라는 보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현재 명실공히 뮤지컬 섭외 1순위 배우가 되었다. 클래식 공부를 고집하던 교수 아버지와 성악을 전공하신 어머니도 이제 그녀의 공연 기사를 스크랩해주는 든든한 팬이 됐다.

뮤지컬 오디션에서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다?
“아니에요. 많아요, 아주 많아요. 불과 6개월 전에도 떨어져 울고불고한 걸요(웃음). 저는 종전의 고정된 이미지 때문인지 좀 튀는 배역이면 캐스팅되기 힘들어요. 그래서 변신하려고 이렇게 노력하잖아요. 항상 드레스만 입다가 ‘사비타’에서 짧은 치마도 입고 ‘브룩클린’에서는 록도 불러요.”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은 바로 춤?
“그건 맞아요. 제가 많이 부족해서 그동안 어떤 작품에서도 춤을 추지 않았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춤을 추는데 연습하면서도 너무 쑥스러웠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만 보고 제 실제 성격이 조용한 줄 아시더라구요. 한번은 공연을 본 남자 팬이 오셔서 ‘너무 망가지는 거 아니세요?’ 하고 항의성 질문을 한 적도 있어요.”

그녀는 부르는 게 값! 최고 개런티 배우가 됐다?
“뮤지컬 배우는 그 누구도 돈 벌 생각으로 공연을 하진 않을 거예요. 우선 일이 좋아서 하는 거죠. 잘되는 공연 기획사도 있지만 어려운 곳도 많거든요. 개런티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공연에서는 많이 받아요. 그러나 공연계는 아직 순수하고 의리가 있는 곳이에요. ‘내 개런티는 이거니까 이 정도는 받아야 돼’라고 우기지는 않아요.”

김소현은 연예계 진출 초읽기에 들어갔다?
“제 나이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은 아주 많아요(웃음). 예전에 연예계 진출을 위해 연예기획사에 들어간 적도 있어요. 현재는 나온 상태지만 좋은 기회가 되면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주연이 아니더라도 좋아요. 연기도 하고 OST도 불러보고 싶어요. 근데 제가 뮤지컬이 아닌 다른 분야에 진출하는 걸 제 팬들이 너무 싫어해서 걱정이에요.”

그녀는 지금 결혼 적령기?
“음… 결혼은 하고 싶은데 나이 먹을수록 의심만 많아지네요. 남자가 다가와도 ‘분명히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야’하면서 의심부터 해요. 그리고 제 주변에는 남자라곤 끼가 많은 배우들밖에 없어요. 옆에서 그들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봐서 그런지 남자가 더 싫어졌어요(웃음).”

뮤지컬계의 수많은 배우 커플들, 그녀도 혹시?
“특히 뮤지컬 배우들 중에는 공식, 비공식적으로 커플이 많죠. 같은 일을 하는 사람과 교제하는 건 장점도 있지만 제겐 단점이 더 크게 느껴져요. 바깥세상과 차단되는 느낌이랄까요? 배우들끼리 모이면 늘 공연 얘기밖에 안 하거든요. 새로운 연기를 위해서라도 다른 분야 사람을 만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제 길에서도 알아보는 유명인이 되었다?
“TV 출연하고 일주일간은 정말 많이 알아보셨죠(웃음). 재밌는 일도 있었어요. 가족들끼리 리조트에 가서 아버지와 둘이 서 있는데 여자 두 분이 다가오시는 거예요. ‘날 알아보는구나! 하고 의식했죠. 절 보며 ‘혹시? 혹시?’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네 맞아요’ 하고 지레 대답했어요. 근데 그분들이 어리둥절하세요. 알고 보니 아빠가 계시는 대학 직원이셨어요. 아빠를 알아보고 오신 거였죠. 저 그때 정말 민망했어요.”

같은 연기로 무대에 계속 오르면 지겹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에요. ‘매일 똑같은 거 하다 보면 지루하지 않냐?’고. 절대 아니에요. 같은 무대라도 늘 새로워요. 선배들 말대로 관객의 박수는 마약과 같아서 중독되죠. 일 없이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 오히려 힘들고 우울해져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마디
“저는 너무 준비 없이 시작해서 기본기에 대한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우선 공연 관람을 많이 하세요. 요즘 우리나라 공연장에도 좋은 작품이 쏟아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수많은 오디션을 보고 떨어져봐야 해요. 1백 번 떨어지면 1백 개 얻는 게 있답니다. 그러니 도중에 꿈을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이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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