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혜림과 욘사마를 가르치는 여자 보컬디렉터   화인

진혜림과 욘사마를 가르치는 여자 보컬디렉터 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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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선수가 골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듯이 가수도 트레이닝을 해야 합니다”

여성스럽고 분위기 있는 외모와 달리 가수들 사이에서 화인은 ‘저승사자’로 통한다. 그녀는 “잘한다, 예쁘다, 멋있다”는 칭찬에 익숙한 가수들에게 “노래 못한다”는 ‘막말’을 대놓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보컬 테크니션 겸 보컬 디렉터인 화인. 신인 가수는 물론이고 중견 가수들도 그녀의 날카로운 지적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기 일쑤다. “방송 출연하랴, CF 찍으랴 오빠들이 얼마나 바쁜데. 라이브 연습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라고 항변하는 아이돌 스타의 팬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곧장 안티 프로젝트를 가동할지도 모르지만, 화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나마 애정이 있거나, 지시를 잘 받아들이는 가수에게나 그런 얘기를 한다”며 일침을 가한다. 대체 보컬 트레이너는 어떤 존재이기에 그들의 말 한마디에 가수들이 울고 웃는 걸까.

가수를 가르치는 노래 선생님
새 음반 녹음을 앞두면 그녀에게 두 가지가 전달된다. 반주와 노랫말. 이제부터 노래의 맛을 살리고 가수의 색깔을 찾을 수 있는 전문적인 코칭을 해주는 것이 바로 화인의 몫이다.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녀는 “액션 영화로 치면 무술감독 역할”이라고 짚어준다.

“머라이어 캐리나 마이클 볼튼 같은 톱스타들도 새 앨범을 내기 전에는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요. 그들이 노래를 못해서 배우는 게 아니거든요. 세계적인 골퍼 박세리 선수가 골프 선생님으로부터 계속 트레이닝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죠.”

올해 서른한 살, 11년 차 음악인 화인(본명 배연희)의 데뷔는 1996년 MBC 강변가요제. 딸의 전공(미술)이 탐탁지 않던 어머니는 노래까지 한다고 하자 가요제 본선 당일 ‘제발 탈락하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효험은 없었는지 화인은 ‘소중한 너에게’로 대상을 수상했다. 그때 인연으로 가요계에 입성해 1998년 한스밴드의 1집 앨범에 ‘보컬 테크니션’으로 이름을 올린 이후 이정현, 채정안, 유승준, 소냐, 디바, 베이비복스, 성시경, 조성모 등 쟁쟁한 가수들의 앨범 작업에 보컬 디렉터로 참여했다.

“가수보다는 스태프가 적성에 맞는 것 같아서 우연찮게 이 길로 들어섰는데 지금은 너무 만족합니다. 어떻게 노래를 부르면 좋을 거라는 제 생각이 실제 가수를 통해 실현되고, 또 신보를 낼 때마다 가수의 노래 실력이 나아지는 걸 볼 때, 보컬 트레이너이자 음반 디렉터로서 보람을 느껴요.”

‘귀로’를 부른 가수 박선주, 노영주, 김연우 등과 함께 ‘잘 나가는’ 보컬 트레이너로 주목받는 그녀가 꼽은 ‘모범생’ 가수는 엠시 더 맥스(M.C. The Max)의 이수와 박용하. 특히 박용하와는 데뷔 1년 전부터 보컬 트레이닝을 시작해 첫 앨범 전곡을 디렉팅하고 일본 프로모션부터 쇼케이스, 최근에 나온 싱글과 정규 앨범 작업까지 함께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아 우애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탤런트 박용하가 노래를 배우겠다는 얘기를 듣고는 솔직히 ‘연기자가 무슨 노래?’라며 마뜩찮아 했어요. 하지만 기성 가수들보다도 열의를 다해서 배웠고, 첫 앨범 작업 때 말한 지시사항을 지금껏 잊지 않고 따르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최근에 녹음한 신보를 들으면 깜짝 놀라실걸요! 일본 콘서트에서 스물일곱 곡을 쉬지 않고 라이브로 소화해내는 걸 보고는 제가 고마워할 정도였으니까요.”

노래 하면 역시 이미자, 패티김
화인의 각별한 제자로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바로 진혜림이다. 국내에는 ‘라벤더’ ‘냉정과 열정 사이’ ‘무간도’ 등에 출연한 영화배우로 알려졌지만 중화권에서는 가수로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빅스타다. 둘의 인연은 진혜림이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김형석에게 곡을 받고 싶다고 먼저 제의를 해왔고, 같은 팀원인 화인이 앨범 디렉터 역할로 홍콩으로 ‘파견’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외국인과 하는 첫 작업이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에도 문제가 많아서 생각만큼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웠어요. 고심 끝에 통역원의 도움을 받아 말도 안 되는 광둥어로 녹음한 가이드 데모(CD)를 만들어줬는데, 그걸 받더니 홍콩에서 발매되는 다른 앨범 작업도 함께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어요.”

그 이후부터 짧게는 한 달에 한 번, 보통 두 달에 한 번 꼴로 홍콩과 대만을 방문해 진혜림과 파트너십을 이뤘다. 한국 트레이너로부터 배우는 것을 비밀로 하지 않을까 생각한 우려와 달리 그녀는 현지 언론에 기사화할 만큼 화인과의 작업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녀에게 커피를 타주고 과자도 챙겨줄 뿐만 아니라 앨범 활동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꼽을 정도. 심지어 매니저를 통하지 않고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의 콘서트에 초청하기도 했다. 거기엔 화인이 디렉팅한 앨범이 현지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영향도 컸을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보컬 트레이너가 생소한 직업이었는데 요즘은 지망생이 많아요. 굳이 자격요건을 따진다면 일단 노래 실력이 웬만해야 하고, 전체적인 음악에 대한 이해력이 있어야 하며, 곡을 들었을 때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가를 파악하는 판단 능력이 필요하겠죠.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건은 인성이에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다 보니 성격이 모나면 안 되겠더라고요(웃음).”

2년 반 전에 결혼한 남편이자 음악적 동지인 재즈 보컬리스트 오한승(동아 방송대 교수), 보컬 트레이너 박경훈 등과 함께 ‘보이스랩 티칭팀’을 구성한 그녀는 최근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순이 삼촌’의 음악 감독을 맡으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음성학에도 관심이 남달라 영화 ‘스캔들 - 남녀상열지사’의 촬영을 앞둔 배용준의 연기 발성을 지도하기도 했다. 워낙 발성이 좋은데다 궁금한 것도 많아 질문이 많은 ‘욘사마’와의 작업은 수월치는 않았지만, ‘겨울 연가’때보다 한결 선명하고 시원해진 목소리를 들으면서 뿌듯함을 느꼈다고.

인터뷰 말미에 그녀에게 우문이 될 각오를 하고, 내내 궁금하던 질문을 던졌다.

“노래 잘하는 가수요? 글쎄요(웃음). 예전에는 몰랐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왜 어른들이 이미자, 패티김, 조용필씨를 최고로 꼽는지 알겠더라고요. 대중의 귀는 정말 정확해요.”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주석·화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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