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유세윤이 ‘사랑의 카운슬러’로 또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운이 좋았다’란 말로 지금의 인기를 설명하지만,
데뷔 3년 만에 여느 중견 개그맨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남자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KBS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사랑의 카운슬러’로 인기몰이 중인 개그맨 유세윤(26). 데뷔 1년 만에 ‘복학생’으로 이름을 알린 그가 지금까지 히트시킨 코너는 ‘장난하냐’ ‘착한 사람’ ‘B.O.A’ 등이다. 데뷔 10년 만에 겨우 빛을 본 여느 개그맨들의 무명 설움과 견주면 그의 이런 성공은 가히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뷔하고 나서 친구들이 만들어준 팬 카페에 ‘못 웃기더라도 3년 동안은 열심히 배우겠습니다’란 말을 썼어요. 적어도 3년 정도는 무명으로 지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했던 목표치를 훨씬 뛰어넘은 것 같아요.”
아직 만 3년이 안 됐는데, 그의 인기는 여느 중견 개그맨 못지않다. 이 젊은 개그맨에게 가파른 인기 상승 곡선의 비결을 묻자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개그맨은 아이디어가 중요한데, 저는 그런 면에서는 많이 부족한 편이에요. 지금까지 제가 아이디어를 내서 무대에 올린 코너들은 대부분 일찍 막을 내렸거든요. ‘사랑의 카운슬러’도 유미가 낸 아이디어였어요.”
“운이 좋았다”는 말로 자신을 정의한 유세운은 “개성이 없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개그 코너의 평균 생명이 6개월 정도예요. 시청자들의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크면 클수록 개그 변화의 속도도 빨라요. 그런 면에서 개성이 없는 저는 캐릭터가 바뀌어도 크게 거부감 없이 변화가 가능해요. 개성이 없다는 게 오히려 장점이 된 셈이죠.”
희극 배우가 꿈인 개그맨
TV 속 모습만 보면 유세윤은 어떤 자리에서나 누구와도 허물없이 어울릴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무대가 아닌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한다. 때문에 토크쇼 등에는 거의 출연을 하지 않는다고.

이런 성격 때문에 그는 개그맨으로 데뷔하고 나서 한동안 고민이 많았다. 편한 친구들이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웃겨봐’와 같은 농담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줄어드는 개인적인 공간 때문에 힘들어했다.
사실 유세윤의 본래 꿈은 배우였다. 대학 때부터 그는 연극 동아리 ‘창작과 무대’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공개 오디션장을 쫓아다니는 열성 배우지망생은 아니었다. 그냥 막연히 배우의 꿈을 키울 뿐이었다. 그러다 장동민·유상무와 ‘옹달샘’이라는 팀을 이뤄 2004년 KBS 개그맨 공채에 합격하면서 개그맨의 길로 들어셨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대학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따라 개그맨 시험을 본 게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됐죠. 저는 개그맨이 ‘웃기는 사람’이라면 희극 배우는 ‘웃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개그맨이 됐으니까 이제는 웃기는 연기를 하는 희극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2의 ‘유머1번지’를 꿈꾸다
많은 개그맨들이 무대에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즉흥적인 애드리브로 청중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그리고 때로는 준비하지 않은 애드리브가 더 많은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세윤은 다르다. 즉흥적인 애드리브를 날리기보다는 준비한 연기에 몰입한다. 일단 무대에 서면 방청객의 웃음소리나 박수 소리보다는 상대 개그맨의 연기에 더 집중한다. 그리고 방청객이 얼마나 웃었는가가 아닌 자신이 오늘 얼마나 연기에 몰입했나로 만족을 느낀다.
“보통 개그맨들은 관객들의 눈을 보면서 흐름을 타는데 저는 무대에 서면 연습한 것만 그대로 보여줘요. 복학생을 연기할 때는 내가 직접 복학생이라고 생각하고 무대에 서죠. 장단점이 있는데, 관객과 호흡을 하다 보면 반응이 시원치 않을 때 당황하게 되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예요. 준비한 개그에 대한 반응이 썰렁할 때보다 준비한 개그를 100% 다 못 보여줬을 때 더 실망하는 편이에요.”
가벼운 말장난보다 묵은 장맛 같은 웃음을 주고 싶다는 유세윤. 요즘 그의 바람은 세트 코미디의 부활이다. 과거 큰 인기를 얻었던 ‘유머1번지’와 ‘테마게임’ 같은 프로그램이 다시 부활해서 개그맨들만이 할 수 있는 연기와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싶다고.
“지금은 ‘말’을 통해 웃음을 주는 개그가 주류를 이루고 있잖아요. 저는 말보다는 모습, 대사보다는 그림을 통해 웃음을 주고 싶어요. 제가 개그맨이란 직업을 얻고 보니까 심형래 선배님이 했던 개그가 ‘정말 대단한 것이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웃음을 유발하는 타이밍과 구도를 만든다는 건 정말 아무나 흉내 낼 수 없거든요. 내공으로 치면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유세윤은 과거 선배 개그맨들이 엎어지고 맞아가며 보여줬던 개그가 절대 유치한 게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개그가 자신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진짜 개그라고 말했다. 언젠가는 자신만의 ‘느린’ 개그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는 개그맨 유세윤. 그의 바람처럼 유머·풍자·기지가 넘치는 촌극이 다시 부활하길 기대해본다.
■글 / 김성욱 기자 ■ 사진 / 이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