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의 가수 김종진과 배우 이승신이 오는 11월 20일 서울 삼성동 더 베일리 하우스에서 웨딩마치를 울린다. 이들은 이미 한 차례 이혼의 아픔을 경험한 바 있는 돌싱(돌아온 싱글) 커플. 두 사람이 지난 10개월간의 희로애락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다시는 올 것 같지 않던 사랑,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던 선택.
만남에서 결혼까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엄마 아플 때 같이 있어주는 사람이 될게’라며 딸에게 프러포즈”
“엄마가 아프고 정말 힘이 들 때 같이 있어주는 사람이 될게.”
김종진(44)의 프러포즈는 그랬다. 연인 대신 그녀의 딸에게 행복한 미래를 다짐하는 것으로 새 출발의 의지를 다진 그. 남자의 이런 따뜻한 배려에 여자는 “사랑해”라며 그를 꼭 껴안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 또 한 번 그렇게 사랑을 확인했다. 이 세상 그 어떤 프러포즈가 이 보다 더 감동적일까.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녀를 만나기 전 그에게 세상은 온통 검정색 일색이었다. 하지만 요즘 그가 만나는 세상은 늘 맑게 갠 하늘처럼 맑고 푸르르기만 하다.
“둘 다 어려운 일을 겪은 건 매한가지인데 승신씨는 저와 다르게 무척 밝았어요. 승신씨를 만난 뒤 세상이 뽀얗게 바뀌었죠.”
예상 밖으로 그들은 당당했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재혼 커플이다”라며 먼저 혼인 이력을 밝히고 나서는 것부터가 그랬다. 이승신(37)은 1997년 방송사 PD와 결혼했으나 지난 2002년 이혼, 첫 번째 결혼에서 딸을 하나 두고 있다. 반대로 같은 처지의 김종진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두 사람은 “한 번의 아픔을 겪고 다시 만난 인연이기에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다”며 결혼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두 사람이 서로를 부를 때 사용하는 애칭은 ‘다정한 오빠’와 ‘내 사랑 덜렁이’. 이승신은 김종진의 부드럽고 섬세한 배려에 반했고, 김종진은 겉으로는 보이시한 느낌의 이승신을 천생 여자로 느끼며 솔직한 성격과 적극적인 자기 표현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지난 1월, KBS 라디오 ‘전영록의 뮤직토크’에 게스트로 함께 출연하면서부터다. 당시 방송에선 봄여름가을겨울의 ‘수지큐’라는 노래 가사 중 ‘나는 공격적인 여자가 좋더라’라는 부분에 맞는 여배우를 초대했는데, 담당 PD가 그 대표 격인 여자로 이승신을 초대하며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이루어졌다.
김종진의 눈에 비친 이승신은 빛 그 자체였다. 그는 “주위가 환해질 만큼 빛나 보였고, 내가 평생을 만나고 다녔던 부류의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감이 느껴질 정도로 강한 끌림을 받았다”며 그녀에 대한 첫인상을 밝혔다. 하지만 이승신에게 첫 만남은 상황적으로 그리 달가울 수 없었다 한다.
“사실은 좀 불쾌했어요. 전 그날의 화두를 전혀 모르고 초대에 응했거든요. 왜 난 매번 공격적인 이미지로 대변돼야 하는가를 상당히 민감하게 받아들였죠. 하지만 그날의 상황과 다르게 종진 오빠는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요. 뻥튀기를 손에 들고 분위기를 잡고 앉아 있는 모습이 제가 만난 종진 오빠의 첫 모습이었죠.“
같은 상처와 고민을 안고 살아가던 두 남녀의 만남
“종진 오빠는 이 세상 최고의 로맨티스트! 덕분에 그간 영화 많이 찍었네요”
첫 대면은 1월에 있었지만 본격적인 교제는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뒤인 지난 3월경부터 시작됐다. 첫 만남에서 방송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이승신은 “언제 한번 콘서트에 초대해달라”며 인사치레로 말을 건넸고, 그녀가 내심 마음에 있었던 김종진은 두 차례나 그녀를 콘서트에 초대했지만 응하지 않아 낙담해야 했다.
“종진 오빠가 절 초대한 날이 무슨 날이었는 줄 아세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와 3월 14일 화이트데이였어요. 물론 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죠. 그런데 그렇다고 공연장에 혼자 가긴 좀 뻘쭘하잖아요. 저도 나름 동행할 친구를 찾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다구요. 그런데 결혼한 애엄마들은 밥해야 한다죠, 싱글인 친구들은 남자친구와 데이트 있다며 안 된다고 하죠. 저도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요.”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감정 표현에 솔직한 이들이다. 하지만 만날 사람은 어떻게는 만나게 마련인가 보다. 두 사람 사이에 결정적 계기가 제공됐던 건 지난 3월 말. 레스토랑을 개업했다며 아는 선배가 저녁식사 자리에 김종진을 초대한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찬스가 됐다.
“선배가 오라기에 봄여름가을겨울의 정태관군과 함께 갔죠. 그런데 깜짝 놀라는 거예요. 와인에 분위기 잡고 식사 한번 하려는데 딸랑 남자 둘이 왔느냐면서요. 솔직히 말하면 구박에 가까웠죠. 그래서 딱히 생각나는 사람도 없고 해서 승신씨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마침 근처에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식사를 하게 됐는데 밤새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글쎄 창밖으로 동이 다 텄더라구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서로에게 심취해 있었던 거죠.”
사석에서 가진 첫 만남이었다. 이혼한 이야기부터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 등 공통사가 많았던 이들은 이야기 도중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고, 이는 두 사람 사이에 친밀감을 높이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 관계 급진전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후로 두 사람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데이트를 즐겼다.
이승신이 말하는 김종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남자’. 그의 여자를 향한 섬세한 배려는 첫 데이트가 있던 날부터 빛을 발했다. 두 사람이 첫 데이트 장소로 물색한 곳은 바로 여의도공원. 그날 김종진은 손수 준비한 밀크티를 보온병에 담아와 종이컵이 아닌 유리 찻잔에 따라 이승신에게 건네는 섬세함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엔 그 모습이 ‘로맨티스트’로 비춰지기보단 ‘선수 중의 선수’로 느껴졌다는 게 이승신의 솔직한 답변이다. 물론 거듭되는 그의 감동 만땅 러브 액션에 금세 그의 로맨틱함을 인정해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오빠가 차를 큰길 옆에 세우더니 저더러 내리라는 거예요. 차 안에선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죠. 오빠의 말대로 차에서 내렸더니 이번엔 갑자기 춤을 추자더군요. 백주대낮에 누가 볼까 두려웠지만 기분은 괜찮았어요.
이승신을 매료시킨 김종진 특유의 자상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김종진은 하루에 수백 통의 문자 메시지를 날리며 거듭 사랑을 확인시켰고, 일산에서 연인 이승신이 사는 분당으로 이사도 했으며, 1백 일 기념일에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노래 ‘사랑해’를 선곡해 들려주는 것으로 사랑을 속삭였다. 이승신은 “종진 오빠의 로맨틱함을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10시간을 이야기해도 모자랄지 모른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족들의 지지가 재혼 결심의 가장 큰 힘
“우린 공통점이 너무 많아요. 1백 일 선물도 같은 걸 준비했답니다”
결혼은 연애와 달라 1:1 만남이 될 수 없다. 가족과 가족이 만나 더 큰 한 가족을 이루는 게 결혼이다. 더욱이 이들은 처음부터가 혼자일 수가 없는 처지. 결혼에 이르기까기 위해 남들보다 두 배로 더 갈등하고 힘든 길을 걸었을 거란 건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엄마, 아빠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 쉽지 않았을 듯 보였다. 하지만 김종진은 “비교적 쉽게 아들에게 재혼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며 그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제 아들(고 2)이 현재 외국에서 유학 중인데, 아들 생일이 5월 5일이에요. 축하한다고 전화를 했죠.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그러는 거예요. ‘아빠, 요즘 많이 힘드세요? 목소리에 힘이 없어요. 지금까지 힘들게 살았는데 이젠 좋은 여자 만나 빨리 장가가세요.’ 그때가 마침 제가 일산에서 분당으로 막 이사를 하고 힘들게 짐을 정리하던 때였거든요.
속으로 얼씨구나 ‘이때다’ 했죠. ‘너 지금 한 말 잊으면 안 된다’ 얘기하곤 얼른 전화를 끊었어요. 그 후 몇 달 지나 방학을 맞아 아들이 한국에 들어왔고 그때 승신씨의 존재를 아들에게 알렸더니 그러라고 하더군요. 자기가 한 말도 있으니 어쩌겠어요.”
이승신도 재혼을 결심하고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둔 딸을 이해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승신이 취한 방법은 김종진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딸에게 자주 들려주며 목소리를 익히게 한 것. 그 후 길을 걷다 우연히 김종진이 차를 타고 지나가다 만나게 되는 설정을 치밀하게 준비하는 등 웃지 못할 사연도 많았다.
상대방의 아이와 일면식을 갖은 후엔 친해지는 것이 관건이었다. 김종진은 이승신의 딸 수진이의 생일 파티 전반에 걸친 사항을 진두지휘하며 직접 반 아이 전체에게 돌릴 생일카드를 만들어 선물하는 것으로 큰 점수를 땄고, 이승신은 패션에 관심이 많은 김종진의 아들과 옷 이야기를 주로 하며 친밀감을 높여갔다. 아이들 못지않게 양가 부모님의 절대적인 지지 또한 재혼 결정에 큰 힘이 됐다는 게 두 사람의 말이다.
사실 재혼을 결심했을 당시 이승신은 되도록이면 이 사실을 숨기고 조용히 결혼하고 싶었다 한다. 하지만 김종진이 이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두 사람의 결혼 사실은 보다 일찍, 떠들썩하게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고.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 다섯에 둘은 이혼남, 이혼녀예요. 한 번 아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 때문에 다시는 사랑을 못할 것이라는 고루한 생각을 하게 마련이죠. 저 또한 그랬구요.
그런 분들에게 그렇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제가 승신씨를 만나면서 그전의 힘들었던 과정을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한 전초전으로 느끼게 됐던 것처럼 누구나 다시 사랑하면 행복해질 수 있거든요. 행복하게 잘살아 꼭 재혼 가정의 희망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뜻 보기엔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다. 남자는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꼼꼼하고, 여자는 털털하고 솔직하며 또 당차다. 이런 서로의 차이점은 그들도 인정하는 바. 하지만 두 사람은 끊임없이 맞춰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우리 공통점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노란색을 좋아하는 것도 똑같고, 양가 어머니 소띠로 띠 동갑이시고, 아이들 생일도 아들이 5월 5일에 딸이 7월 5일로 날이 같아요. 그래서 저희 두 사람 비밀번호가 아이들 생일 조합해놓은 번호로 똑같잖아요. 1백 일 날 서로 준비한 선물도 같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서로 목걸이에 저는 볼펜을, 오빠는 만년필을 선물했답니다. 너무 억지스러운가요(웃음)?”
한 차례의 결혼 실패. 그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분명 상처였다. 하지만 그 상처는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오히려 이제 막 새로운 출발선상에 선 두 사람에게 과거의 상처는 약이 되고 있는 듯했다. 결혼 생활에 위기가 찾아오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효과 만점인 행복 비상약 말이다.
■ 글 / 최은영 기자 ■ 사진 / 원상희 ·김중만 스튜디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