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중화권 스타 임지령, 오건호씨와 드라마도 찍어요!”
한국보다 대만에서 더 유명해진 여배우가 있다. 우연한 계기로 대만 영화의 주역을 따낸 신예 유하나다. 영화뿐 아니라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고 모델로도 활약 중인 그녀는 중화권에선 ‘스타 탄생’이란 말이 아깝지 않다. 이번에 홍콩, 대만 등 중화권 대표 영화제인 금마장 영화제에 초청됐고, 내년 상반기 중화 최대 방송국 CCTV에서 방영될 주말 드라마의 주역 자리도 따냈다. 그녀의 특별한 대만 진출기를 따라가 보자.
그녀의 드라마틱한 대만 진출기
“‘6호출구’라는 대만 영화에서 한국 톱스타를 섭외하고 있었어요. 소속사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한혜진 선배를 추천했죠. 선배님 프로필과 함께 같은 소속사 연예인들을 소개할 겸 제 사진도 보낸 모양이에요.”
뜻밖에도 영화 관계자는 유하나에게 러브 콜을 보냈다. 당장 오디션을 보러 대만으로 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어리둥절했고, 무엇보다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오디션을 보러 해외까지 간다는 것에 처음엔 망설였다.
“예쁘게 봐주신 것 하나 의지하고 대만까지 갔어요. 절 본 감독님의 첫마디가 ‘정말 하고 싶어요, 같이!’였어요. 그 말에 무척 감동받았어요. 대만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구요.”
그녀는 오디션에서 ‘6호출구’의 프로듀스를 맡은 왕가위 감독도 만났다. 그는 대뜸 노래를 불러보라고 주문했다. 평소 잘 부르던 가요부터 ‘첨밀밀’의 주제곡까지 불렀다. 이어 왕 감독은 춤을 춰보라고 주문했다. 그녀는 중화권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 ‘풀하우스’를 생각해내고 율동과 함께 ‘곰 세 마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디션 보시는 분들이 재밌어하시더라구요(웃음). ‘꾸밈없이 밝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왕 감독님으로부터 나중에 함께 일해보자는 얘기도 들었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감격스런 일 아니겠어요?”
합격 통지를 받은 그녀는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처음에는 무작정 중국어 대본을 들고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마음속에 점점 욕심과 의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만에서 시작? 끝도 대만에서!
혈혈단신, 타지에서의 영화 촬영이 시작됐다. 어릴 적부터 욕심이 많아 부모님들이 둘째 갖기를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그녀. 단어를 조금 알아듣게 되니 ‘왜 저걸 못 알아듣는 거지?’하고 욕심이 나기 시작했단다.
“가장 어려운 게 언어였어요. 역할이 피아노를 전공한 대만 여학생이라 억양이나 표현이 원어민 수준이 돼야 했죠. 근데 처음 촬영 분과 두 달 후 촬영 분을 보면 제 억양이 너무 달라져 있는 거예요. 결국 처음 건 다시 더빙을 해야 했어요. 그나마 말이 별로 없는 역할이라 다행이었죠(웃음).”
“한 달간 벽을 보고 얘기했어요. 화장실에 거울이 있으면 그거 보고 혼잣말을 했죠. 지나가는 강아지, 길가의 꽃들이 다 제 친구였어요. 그래도 한 달쯤 지나니 대만 친구들이랑 친해져 그때부터는 마음이 가벼워지더군요.”
어려움을 이겨낸 강한 그녀에게 달콤한 행운은 멈추지 않았다. 우연히 영화 촬영장에 들른 중화권의 톱가수 주걸륜이 그녀에게 뮤직비디오 출연을 제의한 것. 그와 함께 찍은 뮤직비디오가 방송을 타면서 현지에 얼굴도 알리게 됐다.
“대만 번화가를 걸으면 사람들이 ‘한국에서 온…’이라고 속삭이며 많이 알아보세요. 정말 신기한 일이죠? 정작 한국에서는 제가 길을 걷다 넘어져도 그저 웃고 지나갈 텐데 말이죠.”
그녀는 안양예고를 거쳐 현재 중앙대 연극영화과 휴학 중이다. 어릴 적부터 연기자가 꿈이었을 뿐 대만에서 중국어로 연기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 만큼 한국에서의 활동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한국에서 활동하면 좋겠죠. 그렇지만 지금은 또 다른 욕심이 생겼어요. 대만에서 시작했으니 ‘대만의 유하나’가 되는 게 지금의 목표예요. 모국에서보다 두세 배 더 힘들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가야지요. 갖고 싶은 걸 가지려면 감당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이번 영화로 중화권을 대표하는 금마장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연말부터는 내년 상반기부터 CCTV에서 방송될 주말 드라마를 찍을 예정이다. 벌써 후속 드라마 의뢰도 들어온 상태.
“이미 함께 출연할 배우들을 만났어요. 임지령씨가 제 상대역이에요. 전 잘 몰랐는데 옛날에 한국에서도 꽤 유명한 스타였다면서요?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고 알았어요(웃음). 그리고 한국에서 ‘강타 앤 바네사’로 활동하던 오건호씨도 함께 연기할 것 같아요.”
아시아 스타? 아직은 꿈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 대만에서 쌓은 경험과 여유는 한국 활동을 할 때도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는 품고 있다.
“외국어로 연기한다는 건 머릿속에서 한 번 생각하고 몸으로 나오는 과정을 거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중에 한국어로 연기할 때는 더 여유가 생길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그녀는 여유를 강조한다. ‘빨리 인기를 얻어야겠다, ‘빨리 한국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멀리 보고 여유롭게 현재를 배워나갈 것이다. ‘인기’보다는 ‘연기’를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고 꿈은 그걸로 족하단다.
“가끔 갑자기 눈물이 날 때가 있어요. 제가 연기자가 된 게 감격스러워서요. 연기자만큼 매력적인 직업이 또 있을까요?”
유하나만큼 매력적인 스무 살도 없을 것 같다. 어려움을 이기고 주어진 일은 해내고 마는 그녀처럼 말이다.
■의상 / 셀바폰테·레니본·Jina Kim ■장소 협찬 / Cafe de LaPaix(02-517-6178) ■ 글 / 이유진 기자 ■ 사진 / 박원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