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앨범 내고 컴백한 혜은이의 기쁜 날들

11년 만에 앨범 내고 컴백한 혜은이의 기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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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사업 실패와 우울증 극복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청순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의 가수 혜은이가 11년 만에 앨범을 내고 돌아왔다. 팬들이 쌈짓돈을 모아 곡을 받아서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다. 남편의 사업 실패, 친정어머니의 죽음과 자궁 적출 수술로 인한 우울증까지 이겨내고 돌아온 혜은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토록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Happy Time 1 팬들이 마련해준 앨범
“팬들이 정기모임에 오면 깜짝 선물이 준비되어 있다고…”

11년 만에 앨범 내고 컴백한 혜은이의 기쁜 날들

11년 만에 앨범 내고 컴백한 혜은이의 기쁜 날들

‘1976년 데뷔해 96년까지 20년의 가수 생활 동안 23장의 앨범에 15곡의 1위곡, 20곡의 톱10곡을 가진 가수. 당시 3개 TV의 통합가수왕, 통합최고인기가요상을 석권. 영화와 TV 드라마는 물론 라디오 DJ, 예능 프로 MC, CF 등에서 활동. 한국가요를 해외에 알리는 국내외 국제가요제에서 대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은 독보적인 가수. 97년 이후 방송 활동은 뜸하지만, 데뷔 30주년 기념앨범을 제작하고 있으며, 인간성 좋기로 소문난 가수.’

한 팬이 인터넷에 남긴 그녀의 짧은 프로필이다. 이 프로필에서 데뷔는 1976년이 아니라 75년이고, 리메이크 앨범과 기념음반 그리고 정규앨범까지 합하면 23장이 아니라 52장이라고 고쳐야 한다. 하지만 이 짧은 프로필에는 그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듬뿍 묻어 있다. 특히 ‘인간성 좋기로 소문난 가수’라는 글을 쓸 정도면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봐왔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그녀의 팬들은 누가 보든 말든, 그녀가 활동을 활발하게 하든 안 하든 그녀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당신은 모르실 거야’의 혜은이(50·본명 김승주)다.

그녀가 97년 활동을 그만둔 뒤 11년 만에 싱글앨범을 들고 컴백했다. 혜은이는 예전에도 앨범을 내기 위해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개인 사정상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 앨범을 낼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은 쌈짓돈을 모아서 곡을 제공한 팬들이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열정’이라는 팬카페 식구들과 정모(정기모임)를 가졌어요. 그런데 지난 정모에 팬들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고 꼭 나오라고 했는데, 그 선물이 바로 노래였습니다. 팬들이 작곡가에게 노래를 사서 선물로 저에게 준 거예요.”

팬들은 혜은이에게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냐’고 물었고, 혜은이는 ‘리키마틴처럼 라틴 장르도 도전하고 싶고, 요즘 작곡가들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곧바로 팬들은 요즘 잘나가는 작곡가 홍진영과 추가열을 찾았고, ‘여전히’와 ‘난 네가 좋아’ 그리고 ‘강해야 돼’라는 노래를 받아왔다. 타이틀곡 ‘강해야 돼’는 혜은이의 바람대로 라틴 댄스곡이다.

“그 전에도 몇 번 앨범을 내려고 작곡가들을 만났어요. 하지만 정말 자신이 없더라구요. 이번에도 앨범에 10곡을 넣을 자신이 없어서 우선 싱글앨범부터 내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제3한강교’를 다시 넣었어요. 79년 발표 당시 가사가 ‘퇴폐적’이라고 개사를 해서 불렀거든요. 그래서 원래 가사를 살려서 싱글앨범에 넣었어요. 랩도 들어가는데, 편곡이 잘돼 마음에 들어요.”

팬들의 도움으로 11년만에 나온 싱글앨범

팬들의 도움으로 11년만에 나온 싱글앨범

혜은이가 팬들과 만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노래는 하고 싶은데, 마땅히 노래 부를 곳이 없어서 생각한 것이 라이브 카페를 여는 것이었다. 2002년 미사리에 라이브 카페를 오픈했고, 그 소식이 아침방송에 소개되자 방송을 보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미사리 카페로 찾아왔다.

“전 그때까지도 팬카페가 있는 줄 몰랐는데, 방송을 보고 팬들이 직접 라이브 카페를 찾아온 거예요.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원래는 개인이 제 팬카페를 운영했는데, 한두 사람 모이면서 팬카페가 된 거죠. 매년 두 번씩 정모를 하는데, 제 생일과 남편 생일도 챙겨줘요.”

심지어 혜은이의 결혼기념일까지 챙겨줄 정도로 카페 제목처럼 팬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정모 때는 혜은이에 관한 애장품을 가지고 나오는데, 혜은이도 그런 물건을 볼 때마다 놀랄 수밖에 없다고. 혜은이가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팬들의 꾸준한 사랑과 격려 덕분이었다.

Happy Time 2 영원한 동반자 남편
“우울증에 걸렸을 때도 남편은 항상 나를 이해해줬어요”

75년 ‘당신은 모르실 거야’라는 노래로 데뷔한 이후 80년대 초반까지 가요계는 그녀의 히트곡으로 채워졌다. ‘제3한강교’ ‘파란 나라’ ‘감수광’ ‘열정’ ‘뛰뛰빵빵’ ‘그대와 둘이서’ 등 수많은 노래를 히트시켰고, 후배 가수들이 그녀의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불렀다. 그녀의 인기는 난공불락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최고의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줬다. 그리고 90년 첫 결혼의 실패를 이겨내고 연기자 김동현씨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됐다.

“남편을 처음 만난 건 MBC 드라마를 통해서 였어요. 남편이 데뷔할 때 저와 함께 촬영을 했고, 친구처럼 잘 지냈어요. 남편은 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고 하더라구요. 남편이 저보다 방송 후배였는데,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결혼하게 된 거예요.”

남편은 결혼과 함께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사업을 시작했다. 영화제작이었다. 연기자로서 오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혜은이는 당연히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영화제작에는 연기자로서의 경력보다는 사업가의 마인드가 필요했다. 남편은 처음부터 큰 규모의 영화제작에 도전했다. 제작자로서 준비가 미흡했지만 영화 2편의 제작을 한꺼번에 시작했고, 그중 한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에서 촬영했다.

“아이가 두 살이 됐을 때 남편이 영화제작을 시작했어요. 일본에서 모든 촬영을 했으니 제작비가 두 배로 들어갔죠. 영화제작이 남편 생각대로 잘되지 않았어요.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부도가 난 거죠. 그때 사업하느라 쓴 현금만 30억원 정도 될 거예요. 당시에 그 정도 현금을 썼으니 남는 건 하나도 없었죠. 가지고 있던 땅이랑 임야랑 모두 사라져버렸어요.”

두 사람이 가수와 연기자로 활동하면서 모아놨던 재산이 남편의 사업 실패로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때 혜은이는 인생의 또 다른 면을 맛보았다. 지인의 가게에서 외상으로 술을 먹을 때도 있었고, 소주가 그렇게 싼 술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심지어 아들 저금통에서 돈을 꺼내 생활비로 사용하기도 했다. 만일 남편에 대한 신뢰감이 없었다면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11년 만에 앨범 내고 컴백한 혜은이의 기쁜 날들

11년 만에 앨범 내고 컴백한 혜은이의 기쁜 날들

“일 때문에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기름이 바닥난 거예요. 수중에 돈은 없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들 돼지저금통이었죠. 집에 사람들이 올 때마다 아이에게 준 돈을 돼지저금통에 모아뒀거든요. 그 돈을 꺼내서 기름을 넣기도 하고, 생활용품을 사기도 하고 그랬어요. 다시 채워놓으면 되겠지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돈이 필요해서 돼지저금통을 보니까 그렇게 많던 돈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애한테 너무 미안하고, 제 처지도 슬프고. 그날 펑펑 울었어요.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파요.”

당연히 남편에게 짜증을 많이 부리고 화도 많이 냈다. 하지만 남편은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고, 아내에게 성질 한번 부리지 않았다. 남편은 어려운 살림을 일으켜 세우느라 잠시 쉬었던 연기자의 길로 다시 돌아갔다. 두 사람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고,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민석이가 지금 열여섯 살이에요. 불행 중 다행은 집안이 어려웠을 때 애가 아주 어렸다는 거죠. 만일 애가 사춘기 때 그런 일을 겪었으면 더 비참했을 거예요. 그래도 남편이 다시 사업을 한다면 말리지 않을 거예요. 그때는 정말 경험이 없었으니까 실수를 한 거라 생각해요.”

좋지 않은 일은 한꺼번에 닥쳐오는 것일까? 남편의 사업 실패 이후 2년 만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96년 앨범 제작자와 심한 마찰을 겪은 후 방송을 그만두게 된 것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충격으로 혜은이는 자의반 타의반 가수 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1977년 열렸던 ‘제1회 서울국제가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후 앵콜곡을 부르고 있는 혜은이와 길옥윤의 모습.

1977년 열렸던 ‘제1회 서울국제가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후 앵콜곡을 부르고 있는 혜은이와 길옥윤의 모습.

하지만 노래에 대한 아쉬움을 접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라이브 카페를 열었다. 카페 운영도 하고 맘껏 노래도 부를 수 있어서 처음엔 좋았지만, 매일 카페에 출근하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카페를 연 지 1년 만에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정말 곱게 자라신 분이에요. 사업하는 아버지께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도 못하신 분이었죠. 아버지는 제가 인기 가수일 때 돌아가셔서 어머니처럼 고생은 안하셨어요. 어머니는 사위의 사업 실패로 효도도 받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파요. 그리고 몇 개월 후 저는 자궁에 물혹이 생겨서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았죠. 그때부터 우울증이 생겼는데, 남편과 아들이 없었으면 이겨내지 못했을 거예요.”

그녀의 우울증은 꽤 심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울기도 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졌다. 자살 충동도 몇 번이나 느꼈고, 집이 환한 것이 싫어서 불을 끄고 생활하기도 했다. 그래도 가족이 버팀목이었다. 아들은 울고 있는 엄마의 등을 토닥거려줬고, 남편은 아내가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해도 묵묵히 받아주고 참아줬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울증은 사라졌지만, 미사리 카페는 문을 닫고 말았다.

2004년 12월 혜은이와 김동현씨는 서울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15주년을 맞이해 다시 올린 결혼식. 두 사람은 싱가포르 빈탄으로 제2의 신혼여행을 다녀올 만큼 여전히 신혼부부처럼 살고 있다. 현재 김동현씨는 KBS-TV 드라마 ‘대조영’에서 좋은 연기를 펼치고 있다.


Happy Time 3 인기 가수 혜은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장 노릇을 하느라 노래를 시작했어요”
혜은이의 등장은 당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때는 포크송이나 전통가요풍의 노래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혜은이의 목소리는 색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누구도 성공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혜은이는 낭랑하고 예쁜 목소리의 가수였다. 혜은이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만든 사람은 작곡가 길옥윤이었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라는 노래는 혜은이의 음색에 꼭 맞는 노래였다.

11년 만에 앨범 내고 컴백한 혜은이의 기쁜 날들

11년 만에 앨범 내고 컴백한 혜은이의 기쁜 날들

그녀의 정식 데뷔는 1975년이지만, 실제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몇 해 전이었다. 혜은이의 꿈은 가수가 아니라 발레리나였다. 하지만 극장 공연단장을 하고 있던 아버지가 후배의 사기사건에 휘말리면서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워졌다. 아버지의 친구는 이런 사연을 알게 됐고, 다섯 살부터 여섯 살까지 어린이 합창단에서 노래를 했던 혜은이에게 “노래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그는 당시 아버지의 친구가 운영하던 서울 무교동의 극장식 맥주홀에서 가수로서 데뷔 아닌 데뷔를 했다.

“그곳에서 한 2~3년 정도 일했을 거예요. 그러다 길옥윤 선생님을 만났고, 75년에 ‘당신은 모르실 거야’라는 노래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이 노래가 1년이 지난 후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제가 76년도에 데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죠.”

가장 노릇을 하기 위해서 시작한 가수 생활. ‘당신은 모르실 거야’가 히트를 하면서 바빠지기 시작했다. 혜은이의 20대는 정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로 채워졌다. 수많은 무대에 서게 되고, 히트곡도 많아지면서 실수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생방송으로 진행된 10대가수가요제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춤을 추다가 넘어진 것이다. 그때만큼 가수로 생활하면서 창피했던 적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방송국 AD가 노래 가사가 적힌 종이를 반대로 들고 있어서 가사를 틀린 적도 있다. 하지만 방송 실수가 있어도, 힘들었던 집안 경제를 일으켜 세우게 된 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었다.

“가수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제 뜻대로 살았던 때가 별로 없어서 아쉬워요. 힘들어도 안 힘든 척, 지겨워도 재미있는 척해야 하는게 가장 힘들었죠. 그래도 가족을 생각하면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 제가 그런 끼가 있었으니까 버틸 수 있었던 거죠.”

원래는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무대에만 올라가면 생기가 도는 자신을 보면서 ‘천직’이라 생각하게 됐다. 지금처럼 콘서트나 디너쇼가 많이 열리는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공연을 자주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다.

그래서 11년 만에 싱글앨범을 내면서 목표로 전국투어를 생각한 배경도 과거의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공백기간 때문인지, 요즘 자주 꿈을 꾼다. 노래 가사를 잊어버리거나, 무대에 나가야 하는데 구두가 없어지는 꿈을 꿀 정도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매우 크다.

“막상 새롭게 시작하려니까 욕심이 많이 생기네요. 좀더 일찍 도전해볼걸 하는 아쉬움도 많아요. 무엇보다 인생의 황금기인 40대를 아무런 도전 없이 보낸 것이 너무나 후회스러워요. 40대의 공백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두 배로 열심히 뛰려구요.”

11년 만에 가요계로 돌아온 혜은이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만큼 새 앨범을 내고 가수로 활동한다는 것이 그녀에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 수 있다. 데뷔 때의 풋풋한 소녀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그녀의 맑은 목소리와 웃는 모습은 데뷔 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도전하는 길이 행복한 풍경으로 가득하기를 바란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이성원·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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