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가 돌아왔다. ‘타짜’에서 보여줬던 인상깊은 연기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영화 ‘바람피기 좋은날’로 대중과 만난다. 항상 솔직하고 건강한 이미지의 그녀를 영화 제작발표회장에서 만났다
지난 1월 18일, 강남구 삼성동. 장문일 감독의 새 영화 ‘바람피기 좋은날’의 제작발표회장. 자유로운 클럽 분위기에서 흐르는 경쾌한 힙합. 무대 위에 세팅된 여러 장의 대형 포스터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김혜수의 단독 컷이었다.
“강력한 허리케인: 내 사전에 두려움 따윈 없다.”
이 도발적인 카피가 김혜수만큼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김혜수는 이번 영화에서 ‘이슬’이라는 의뭉스러운(?) 대화명을 가진 유부녀로 출연, 20대 대학생과 발칙한 로맨스를 선보인다.
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영상 공개로 시작됐다. 재미있고 발랄한 장면으로 가득했던 영상은 영화의 분위기를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무겁고 도덕적으로 다룬 기존 영화와는 다르다. 유쾌하고 상쾌하다. 그래서 ‘바람’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다가온다. 김혜수가 말하는 ‘바람피기 좋은날’은 어떤 영화일까.
“영화는 산뜻하고 유쾌하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을 담고 있어요. 단지 바람이 아니라,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본질을 건드리는 영화죠.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영화예요.”
가벼움 속에 진지함을 엿볼 수 있는 영화. 그런 점은 배우 김혜수와도 많이 닮아있다.
김혜수의 미니홈피를 한 번이라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매체를 통해서 공개되는 그녀와는 조금 다른 그녀의 진지한 내면을 말이다. 워낙에 개인적인 공간이기는 하지만 유난히 그녀의 공간에서는 벽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자연스럽고 솔직하다.
제작발표회장의 김혜수도 다르지 않았다. 청록색의 짧은 미니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그녀는 건강하고 자연스러웠다.
언론은 “추위에도 아랑곳 않는 김혜수의 노출패션”으로 오늘의 그녀를 소개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우리가 김혜수에게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녀의 노출 정도가 아니라 당당한 삶의 태도라는 것을.
10대에 데뷔, 이후 20여 년 동안 변함없는 패션 아이콘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혜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매력을 더해가는 비결은 바로 거기에 있다.
캐릭터에 깊이 공감, 노출신 여부는 작품 결정과 관계없어
‘타짜’를 본 사람이라면 김혜수의 나신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개봉 전부터 화제였다. 남성들은 물론이고 오히려 여성들이 더 큰 매력을 느꼈다는 후문이 자자했다. 이번 영화도 ‘바람’을 소재로 하고 있는 만큼 김혜수의 노출이 어느 정도인지에 몰리는 관심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연이어 노출이 있는 영화에 출연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김혜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노출신 여부로 작품을 결정하지는 않아요. ‘타짜’에서의 노출 신은 연출자와 배우가 상의해서 내린 최상의 결정이었고, 이 영화에서는 소재의 특성상 로맨스가 소개될 수밖에 없죠. 수위는 영화를 보면 아실 겁니다.”
새 영화를 고르면서 ‘타짜’의 노출 신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이슬과 작은새, 두 여자의 캐릭터에 깊이 공감했다. 여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감이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사랑에 대한 설렘, 애정을 나누고 싶은 욕구, 가벼운 일탈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잖아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게 흔히 말하는 ‘바람’의 정의다. 누구나 꿈꾸지만 감히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혹 실천에 옮기더라도 가까스로 ‘로맨스’로 합리화하고 싶은 것.
“항상 우리 곁에 있고 또 순간적인 것. 바람은 같은 속도로, 지속적으로 불지 않잖아요. 한 순간 지나칠 수도 있고 그 바람에 상쾌한 활력이 생길 수도 있고… 가볍지만 때로는 생의 활력을 주는 그런 거죠.”
짜릿한 생의 기쁨을 위해서 일탈은 필수요소다. 김혜수가 말하는 ‘바람’은 이렇게 유쾌하다.
영화에서 김혜수의 상대역으로 열연을 펼친 이민기는 제작발표회 내내 솔직하고 독특한 언변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그의 솔직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김혜수와의 연기가 어땠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겪은 누나는 벽이 없어요. 연기를 했다기보다는 누나 옆에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상대역이 된 거죠. 앞으로도 계속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까이 가지 않아도 좋은 향기가 날 것 같은 사람이 있다. 김혜수가 그렇다.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주위에 퍼진다. 이민기도 같은 느낌이었을까.
“영화는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끝나고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길 때는 가슴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영화를 찍었습니다.”
감독은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한 번쯤 바람을 피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누가 알까. 영화가 끝나고 가슴에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이 일탈에의 욕망일지, 삶에 대한 애정일지, 아니면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들일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직접 느껴보는 수밖에. 2월, ‘강력한 허리케인’ 김혜수가 몰고 올 또 다른 바람이 기대된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