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로 모든 어려움 딛고 일어섰습니다”
이경규가 또다시 ‘일(?)’을 냈다. 영화 ‘복면달호’의 제작자로 나선 것이다. 1992년 자신이 직접 제작·감독·주연한 영화 ‘복수혈전’ 이후 14년 만의 일이다. 영화 ‘복수혈전’이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던지라 그의 재기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오로지 작품으로 승부하겠다는 그의 각오가 대단하다.
그토록 오랫동안 영화 만들기를 꿈꿔왔던 이경규(47)의 바람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그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 ‘복면달호(감독 김상찬, 제작 스튜디오 2.0·인앤인처스)’가 설을 앞두고 개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14년 만의 영화계 복귀’라는 타이틀이 무겁긴 한가 보다. 제작보고회장에 나타난 그는 평소와 달리 긴장한 모습이었다.
“14년 만에 영화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14년 전에는 제작·감독·주연 모두 제가 했죠. 이번에는 좋은 감독과 배우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멍석만 마련해주고, 저는 뒤로 빠졌습니다. 그런데 빠지기를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제가 빠지고 나니 영화의 완성도가 높아졌습니다.”
5년여 동안 철저히 준비해 영화 ‘복면달호’를 만들어낸 이경규. 그는 그 기간 동안 자신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 때문에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전작 ‘복수혈전’의 실패와 코미디언으로서의 영화 제작이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일부 영화 관련자들은 이경규의 영화 제작은 아직 불안요소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현실에서 영화를 만드는 이경규의 심적 부담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영화제작자로 서기 위해 지난 5년을 버텼다고 말하는 그는 분명 긴장하고 있었다.
이경규는 대학 시절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다. 개그맨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1992년, 혼자서 영화 ‘복수혈전’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흥행에서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했고, ‘개그맨이 만든 영화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그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의 ‘복수혈전’은 개그의 소재로 사용되어왔다.
사람들의 입에서 ‘복수’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는 ‘복수혈전’의 실패로 인한 수모를 겪어야 했던 것. 그럴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을 이경규는 지난 14년 내내 마음속으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을 것이다. 한없이 인내하고, 한없이 노력한 결과가 바로 영화 ‘복면달호’ 아닐까?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로 모든 것을 딛고 일어섰다는 그의 말이 애절하게 다가왔다.
영화 ‘복면달호’는 록가수를 꿈꿨지만 기획사를 잘못 만나 신비주의 트로트 가수로 풀려버린 청년, 봉달호의 가수 도전기를 그린 작품이다. ‘사무라이 픽션’으로 유명한 사이토 히로시의 「엔카의 꽃길」을 원작으로 했다. 이경규는 시나리오만 해도 2년이 넘게 걸렸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그는 영화의 재미를 더할 에피소드 구상을 위해 트로트 가수 장윤정에게 많은 조언을 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영화 ‘복면달호’는 임채무·차태현·이소연이라는 세 주인공으로도 관심을 끈다. 영화 속에서 트로트 전문 기획사 ‘큰소리 기획’의 대표로 변신한 임채무는 가요계를 휩쓸 새로운 인재를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봉달호를 발견하고, 그를 최고의 가수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스스로 ‘트로트광’이라 밝힌 임채무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영화 속에서 이렇게 음반 관련 역할을 하게 돼 좋다”고 말했다. 사실 임채무는 그동안 신곡 앨범을 4장 발표했고, 리메이크 앨범은 13개나 냈을 정도로 트로트를 사랑한 실력파 가수(?)였다.
봉달호는 차태현의 영화 속 이름이다. 차태현은 “이경규 대표가 감독을 한다고 했으면 그러지 말라며, 과감히 뿌리쳤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영화 관련자들은 이경규 대표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갖고 있더라고요. 이 대표는 영화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이번 영화가 잘돼서 이경규 대표의 영화가 더 이상 개그의 소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이경규에 대한 차태현의 마음 씀씀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차태현은 ‘가수 데뷔’라는 말에 무작정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그날 이후, 트로트 가수로 인생이 180도 바뀌어버린 봉달호를 연기한다. 록가수가 되기를 고대하던 그에게 트로트 가수를 하라니,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허나 이런 봉달호의 마음을 바꾸게 만든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차서연이다. 차서연 역은 이소연이 맡았다. 그녀는 “차서연은 트로트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넘치나 실력이 따라주지 않는, 얼굴과 몸매만 예쁜 여자”라며 자신의 역을 소개했다.
‘웃음’ 하나로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이경규. “좋은 영화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웃게 만든다”는 그의 말이 실현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사람 하나 살려주시기 바란다는 그의 호소가 오랫동안 맴도는 걸 보니, 아무래도 다가오는 설에는 영화관을 찾을 것 같다. 14년 만의 복귀작, 이경규의 ‘복면달호’의 흥행을 기원해본다.
■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