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 미안해하시던 어머니의 영전에
우승의 영광 바치기 위해 다시 뜁니다”
이승엽이 뇌종양으로 5년간 병석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긴 숨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가족들 곁을 떠난 어머니는 마지막까지도 이승엽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어머니의 빈소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는 이승엽의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고생스럽고 힘들었던 기억만 가지고 떠나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정작 본인은 버스비가 아까워 5~6km 되는 거리를 걸어 다니던 어머니였다. 이승엽은 고운 꽃으로 둘러싸인 사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마주하고 땅을 치며 목 놓아 울었다. 행여 꿈은 아닐까 다시 한번 차가운 손을 잡아봤지만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시장에서 파는 작은 채소 하나도 더 싼 것을 찾아 발품을 파셨던 분이세요. 그러면서도 자식들에게는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 미안해하셨죠.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동점 홈런을 쳤을 때도, 56호 홈런을 쳤을 때도 아들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셨어요. 좋은 기억들은 놓아둔 채 고생스럽고 힘들었던 기억만 가지고 떠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빈소가 마련된 대구 파티마병원에는 각계 선·후배가 찾아와 이승엽을 위로했다. 프로야구 삼성의 선동열 감독을 비롯해 프로구단 감독들과 선수 대부분이 빈소를 찾았으며 요미우리 구단도 대표를 파견해 조의를 표했다.
이날 수술한 무릎 때문에 이승엽은 문상객들에게 절을 하지 못하고 목례로 대신했는데, 선동렬 감독은 그런 이승엽에게 “무릎을 보호하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날개 한 쪽을 잃어버린 가족
“아버지께 연락이 왔는데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순간 섬뜩했어요. 느낌이 이상해 서둘러 병원에 갔더니 마지막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시더군요.”
“더 이상 어머니를 붙잡는 건 제 욕심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께서 담당 의사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자 ‘아버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더군요. 어쩌면 어머니를 편하게 보내드리는 게 자식 된 도리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故 김미자씨는 5년이란 긴 시간 동안 병석에서 아들의 활약을 지켜봤다. 생전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던 이승엽은 잠시 동안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그의 눈에는 미처 닦지 못한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날 이승엽은 혼잣말로 ‘선물’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어머니를 좋아했어요. 그런데도 철이 늦게 들어 정작 살아계실 때 제대로 된 선물 한 번 해 드린 적이 없었어요. 이제 와서 그런 마음을 표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어머니는 벌써 떠나시고 없는데 ….”
이승엽은 어머니 못지않게 혼자 남겨진 아버지 이춘광씨에 대해서도 염려했다. 그동안 간병인이 있었지만 이춘광씨는 늘 아내 곁을 지켰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상심하는 아버지 얘기를 하며 이승엽은 다시 한번 가족의 건강을 챙겼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신 어머니를 위해
지난 2004년 일본에 진출한 이승엽은 야구공에 소망을 담아 담장 밖으로 넘겼다. 어머니가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버지 이춘광씨는 그런 아들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병상에 누워 있던 아내를 일으켜 TV를 보게 했다.
“홈런을 친 날은 꼭 어머니께 전화를 했어요. 제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응 그래”라고만 말씀하실 뿐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어요.”
홈런을 쳐서 기쁜 것도 잠시.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난 아들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같이 마음 아파했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홈런을 칠 때마다 “어머니가 빨리 나으시는 게 소원”이라며 “어머니에게 홈런을 바친다”고 말했다. 그리고 2005년 시즌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에서 한 자씩을 따 ‘미광’(美光)이라는 글자를 속옷과 모자에 새기고 뛰었다.
“일본에서 홈런을 칠 때마다 ‘언젠가 어머니가 나와 우리 은혁이를 알아보실 것’이라고 믿었어요. 은혁이를 보시면 본능적으로 손을 내미시긴 했지만 손자인 줄은 모르셨죠. 은혁이는 아직 어려서 할머니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중에 사진으로라도 “대단한 분이셨고, 훌륭한 분이었다”고 말해줄 거예요.”
홈런에 담은 소원이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그는 이제 ‘어머니의 이름’으로 다시 뛰고 있다.
“하늘나라가 진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께서 절 지켜보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많이 늦었지만 사람들이 왜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하라고 말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발인을 하고 바로 운동을 시작하려구요. 지금은 그것만이 어머니께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것 같아요. 비록 이제는 어머니가 곁에 안 계시지만 그 일로 인해 제가 좌절하고 슬럼프를 겪게 되면 그건 어머니가 원하는 게 아닐 거예요.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신 어머니에게 전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거예요.”
“올 시즌 우승을 해 어머니의 영전을 다시 찾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이승엽. 그가 올 시즌 흘리는 땀방울이 여느 때보다 더욱 큰 결실로 맺어지길 바란다.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