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프로의 ‘흥행 메이커’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돌아왔다!

예능프로의 ‘흥행 메이커’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돌아왔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프로그램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야죠”


‘쌀집 아저씨’가 예능프로 PD로 현업에 복귀한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방송계가 들썩이고 있다. 예능프로에서 ‘공익과 재미’를 시청자들에게 선사하는 유일한 PD로, 새롭게 들고 나올 프로에 대한 기대감이 무척 크다. 예능국장을 그만두고 1년 5개월 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증을 풀기로 했다.


Issue Maker 40대 국장
“좀더 준비기간이 있었으면 더 잘했을 것 같은데…”
“외모가 많이 바뀌었네요!” 기자의 말에 “안경을 벗고 사진을 찍는 건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잘 찍어줘야 됩니다”라며 트레이드마크인 너털웃음을 날린다. 검은 뿔테 안경, 청바지에 점퍼, 모자는 예전 김영희(47) PD의 유일한 코디법이었다.

예능프로의 ‘흥행 메이커’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돌아왔다!

예능프로의 ‘흥행 메이커’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돌아왔다!

하지만 김영희 PD의 모습은 화사하게 바뀌었다. 점퍼 대신 양복이나 재킷을 걸치고, 모자는 벗어던졌다. 검정 뿔테 안경도 이제는 쓰지 않으려 한다. 1년 5개월 만에 현장으로 돌아오는 김PD는 화사한 모습으로 기자 앞에 나타났다.
그는 얼마 전까지 ‘국장님’이었다. 방송국에서는 그를 예능국장에 임명하기 위해 ‘인사규정’까지 고쳤다. 차장에서 국장까지 올라가는데 걸린 시간이 단 15일이었다. 그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최연소 예능국장에 임명됐다. 예상치 못한 승진과 발탁이었고, 흥행메이커 PD가 예능국장으로는 어떤 성과를 낼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단 7개월뿐이었다. 예능국장에서 PD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2005년 10월 방송국 인사이동으로 김영희 예능국장은 김영희 PD라는 원래 이름을 찾았다. 하지만 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예능국장으로 많은 일들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만 했고, 그는 순순히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저는 현장 체질인 것 같습니다.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라며 국장자리에서 물러났다.

“국장자리를 맡을 때 나이는 문제가 안 됐어요. 다만 준비기간이 좀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누구나 그런 자리에 올라가면 열심히 할 수 있으니까요. 예능국장으로서 여러 가지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프로그램도 많이 바꾸고 싶었고, 새로운 트렌드도 만들고 싶었는데…. 정작 사고 수습으로 3개월 이상을 써버렸어요.”
7개월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22차례에 걸쳐 프로그램 코너에 변화를 줄 만큼 열정적으로 일했다.

장애인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신동엽의 D-Day’ 코너 MC로 출연했고, 탈북 여대생이 ‘!느낌표’의 ‘남북 청소년 알아맞히기 경연 코너 ’ MC로 나서기도 했다.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독특하고 의미 있는 시도였다. 신동엽, 유재석, 김용만, 김제동 등 스타 MC들도 그의 부름에 응했다. 당시 “MBC가 스타 MC를 모두 싹쓸이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후배 PD들의 뒤치다꺼리(?)도 해가면서 예능국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2005년 7월과 10월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방송국은 난리가 났다. 바로 ‘성기노출’ 사건과 ‘상주참사’였다. 7월에는 한 인디밴드가 ‘음악캠프’에 출연해 옷을 벗고 성기를 노출했다. 이 사건으로 노출사건을 일으킨 밴드의 멤버는 구속됐다. 그리고 그해 10월에는 경북 상주에서 공개방송을 관람하기 위해 입장하던 11명의 시민이 압사당한 ‘상주참사’가 터졌다. 김영희 예능국장은 사건이 터졌을 때 상주에 내려가서 사건 수습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40대 최연소 예능국장은 예기치 못한 사건의 여파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11명이나 사고를 당한 사건이었는데, 당연히 책임을 져야죠. 저와 제작국장이 물러났어요. 국장 역할도 PD만큼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지만, 물러나면서 정말 홀가분했어요. 다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죠. 국장 역할보다 PD가 훨씬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생각지도 못한 공백기가 생긴 것이다. 1년 5개월의 기간은 원 없이 마음대로 살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음에 맞는 작가들과 함께 프로그램 회의를 했고, 지난해 11월에는 40일간 히말라야에 다녀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히말라야에 가고 싶었다. 기껏해야 북한산이나 오르던 김영희 PD에게 5,000m 이상을 올라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고민 없이 히말라야로 날아갔다.

“그냥 가고 싶었어요. 시간이 생기면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거든요. 2004년에는 ‘!느낌표’를 하면서 아프리카로 떠났죠. 강도를 만나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사하라 사막에서 길을 잃어버려서 노숙도 했어요. 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거의 죽는데, 정말 운이 좋아 살아서 돌아왔죠. 그러고나니 히말라야에 가보고 싶었어요. 육체적으로 힘이 들면 인간의 본질을 느낄 수 있거든요.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고. 마누라도 위험하다고 못 가게 했는데, 가고 싶은 걸 어떻게 해요. 이런 경험을 한 번씩 하면 제 자신을 스스로 단속할 수 있는 계기가 돼요.”

지난해 11월, 김영희 PD는 40일간 에베레스트 5,000m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높은 산은 처음이었는데도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올라간 것이 자신도 놀라운 일이라고 한다.

지난해 11월, 김영희 PD는 40일간 에베레스트 5,000m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높은 산은 처음이었는데도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올라간 것이 자신도 놀라운 일이라고 한다.

김영희 PD는 에베레스트산 5,000m 고지에 있는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갔다. 고산병으로 앓아 누워도 다음날이면 그냥 올라갔다. 올라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기에 완주에 성공했다. 짐을 지고 올라가는 세르파와 낙천적인 네팔인 그리고 거대한 자연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경험은 봄 개편 때 빛을 발하게 될 듯하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데 시간은 충분했어요(웃음). ‘!느낌표’ ‘칭찬합시다’ ‘이경규가 간다’ 등 제가 만들었던 프로그램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죠. 이번에도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싶어요. 저의 새로운 경험들이 많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빨리 선을 보이고 싶어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프로그램이 될 것입니다. 아직은 어떤 프로그램인지 말할 수 없어요(웃음).”

그의 여유 있는 웃음 속에서 프로그램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만들면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잠이 안 온다’는 김영희 PD처럼 시청자들도 그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Fun&Emotion’ Maker 쌀집 아저씨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 밑바탕에 깔고 재미 추구해야죠”

“저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페미니스트였어요(웃음). 중·고등학교 시절 책 많이 읽는 친구들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그리고 친구 누나가 서울대에 들어갔는데, 저를 볼 때마다 ‘약한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 ‘사회를 제대로 봐야 한다’ ‘여성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등의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지금 말하면 그 누나가 골수 운동권이었던 거죠.

제가 79학번인데, 얼마 후에 광주항쟁이 터졌어요. 도서관에서 광주항쟁 관련 전단을 뿌리다가 붙잡혀서 구속되기도 했어요. 탈춤반 활동이 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지요.”

그는 방송에 대한 철학적인 깊이가 없으면 ‘딴따라’로 끝나거나 ‘다큐멘터리’로 끝나버린다고 했다. “딴따라 PD가 이런 말 하면 참 쑥스러운데, 간단하게 말하면 방송은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여성, 노인, 청소년, 장애인, 어린이 등 약자에게 애정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이런 약자들을 고민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너무 복잡해요. 그래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만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방송은 즐거워야 한다는 게 저의 철학입니다.”

예능프로의 ‘흥행 메이커’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돌아왔다!

예능프로의 ‘흥행 메이커’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돌아왔다!

김영희 PD는 한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전 재산이라곤 29만원밖에 없다”고 발언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을 때였다. 한 방송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 앞에 방송국 차량을 세워놓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초인종을 계속 누르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과거 행적을 자료 화면으로 사용하면서 비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김PD는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신도 ‘29만원 발언’에 대해서는 울분을 느꼈지만, 방송에서 그런 방법으로 개인을 압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방송의 본질은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 집에 가서 그런 방송을 하려면 차라리 약자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더 나아요. 아무리 명분이 좋다 해도 사람에 대한 배려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영희 PD는 ‘재미와 공익’을 함께 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울면서도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것이 그의 힘이다. 그가 받은 상 리스트만 봐도 얼마나 자신의 철학대로 노력하는 PD인지 느낄 수 있다. 대통령상과 서울시장상, PD의 최고 영예인 한국방송대상, PD연합회상, 백상예술대상 등 PD로서 받을 수 있는 상은 거의 다 받았다고 봐야 할 정도다. 하지만 시청자가 그에게 보내는 ‘무한한 애정’이 가장 값진 상일 것이다.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MBC에 입사할 당시에는 PD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방송이 21세기의 꽃이다”라는 친구의 말만 믿고 방송국 시험에 응시했다. 천성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성격이었기에, 예능국 PD로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1996)를 시작으로 ‘칭찬합시다’(1999) ‘전파견문록’(2001) ‘!느낌표’를 연달아서 히트시켰다. 특히 ‘!느낌표’를 통해서 방송된 ‘하자하자’ ‘길거리 특강’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눈을 떠요’ 등은 공익과 재미를 동시에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김영희 PD가 만든 프로그램은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오곤 했다. ‘정지선을 지킵시다’ 1회 방송에서 장애인 운전자가 보여준 행동은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그 이후로 누가 보건 말건 정지선을 지키는 운전자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책 한 권 편안하게 읽을 공간이 없었던 아이들에게 ‘기적의 도서관’을 지어준 것도 프로그램의 힘이었다.

북한에 대한 선입견을 줄여준 프로그램도 있었고, 아침밥을 못 먹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보고 아침 자율학습을 폐지하자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아시아 아시아’를 통해 동남아에서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여줘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김영희 PD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다만 차분하고 재미있게 약자와 소수자의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본 시청자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김영희 PD의 힘은 시청자의 자발적인 참여에서 나온 것이다.

“저는 후배들에게 ‘법을 바꾸려고 하지 마라’ 말해요. 너는 프로그램을 잘 만들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법을 바꿀 수 있게 하면 된다고 그래요. 저도 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80%는 웃게 만들고, 20%는 감동을 줄 수 있게 만들 뿐이에요. 나머지는 시청자의 몫이죠.”


Happy House Maker
“애들이 엄마보다 저를 더 잘 따라요”
김영희 PD는 고 3 딸 현진양과 고 1 아들 정환군을 둔 아버지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집에서 자는 횟수보다 회사에서 잘 때가 훨씬 많다. 보통의 경우라면 ‘빵점짜리’ 아빠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아이들은 엄마(박희경씨)보다 아빠를 더 좋아한다.

“집에 있을 때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해요. 보통 애들이 커가면서 대화가 줄어드는데, 저희 집은 그렇지 않아요. 저는 항상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하려고 노력해요. 가수 이야기나, 연예인 이야기 등을 하면서 계속 대화하죠. 대신에 ‘공부해라’ ‘뭐 해라’는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아요. 저는 아이들이 현명하고 행복하게 자랐으면 하거든요. 그것 때문에 아내와 말싸움을 할 때도 있지만, 저는 아이들을 믿어요.”

아이들도 엄마보다 아빠와 이야기할 때 더 재미를 느낀다. 아내는 “당신은 좋겠다. 애들이 잘 따라서”라고 말할 정도다. 친구들과 가족 모임을 할 때도 아이들은 군말 없이 따라나선다. 그는 가족행사에 아이들을 꼭 참석시킨다. 가정적이면서도 가장으로서 위엄도 지켜 나가는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좋아요. 지난 1월 1일에는 아이들과 생전 처음으로 산에 올라갔어요. 보통 때는 특별 프로그램 만드느라 집에 들어가지 못했거든요. 애들한테 산에 가자니까 싫어해서 ‘우린 가족이잖아’라면서 같이 올라갔죠. 애들도 처음에는 힘들어하다가 정상에 올라가니까 좋아하더군요. 정상에 올라가서 서로 올해의 소원을 적어서 비밀의 장소에 넣어두고 왔어요. 대소사는 아내가 거의 맡고 있으니까, 저는 이런 이벤트를 마련하죠.”

경복궁 경회루에서 가족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경복궁 경회루에서 가족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그는 1988년 3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아내는 바로 옆집에 살았는데, 과외 가르치러 갔다가 우연히 만났다. 그가 가르치던 아이들의 누나였던 것. 동생들을 너무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모습에 반해서 연애를 시작했다. 프러포즈는 장모님에게 했다. “매달 5천만원씩 벌 테니까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결혼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요즘 김영희 PD와 가족들은 산타기에 푹 빠져 있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토요산악회’를 조직해 매주 토요일마다 산에 오른다. 멤버는 20여 명 정도 되는데, 사업가, 판사,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고 자랑이다.

“이건 꼭 써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인터뷰하는데, 토요산악회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멤버들이 삐치거든요(웃음). 멤버들이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참 재미있어요. 요즘 토요산악회 활동하는 것이 가장 즐겁고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가 만든 프로그램처럼 김영희 PD는 재미있고 솔직했다. 무엇보다 사람과 세상에 대해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이 진하게 느껴진다. 1년 5개월 만에 시청자 앞에 서게 된 김영희 PD. 이번에는 어떤 재미와 감동을 줄지 기대된다.


Tip 못다한 이야기


* 가장 행복했던 때는? 수없이 많다. 그래도 ‘칭찬합시다’ 할 때 가장 행복했다. 우리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이 사연을 보내면서 1천원, 2천원… 뭐 이렇게 돈을 함께 보내줬다. 1년에도 2천만원 정도 모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돈으로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김)용만이가 10개의 사회시설을 돌면서 1백만원씩 주고 오는 것이었다. 아무런 기별도 없이 사회시설에 가서 돈을 주고 나오면 사람들이 그렇게 놀라면서 울더라. 겨울에 난방비 걱정을 덜었다면서. 그러면 용만이도 울고. 내가 ARS로 기금을 모금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데, 그 방송을 할 때 딱 한 번 해봤다. 2시간 동안 그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7억원 가까이 모아주더라. 그 돈으로 다시 사회시설을 돌면서 기금을 주는데, 정말 행복했다.

* 가장 힘들었던 때는? 내가 만든 프로그램은 거의 성공했는데, 딱 한 번 실패했다. ‘TV파크’(1995)라는 프로그램인데, 욕도 많이 먹었고 시청률도 저조했다. 토요일 저녁에 방송됐는데, 시청률이 너무 안 나와서 다시는 연출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화면에 자막을 넣었는데, 엄청 두드려 맞았다. 나중에는 다른 방송국에서 자막을 따라서 넣기 시작했지만, 처음 시도해서 그런지 관계자와 시청자에게 정말 욕만 실컷 얻어먹고 6개월 만에 접었다.

* 평양에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지 못했는데? 이건 내가 평생 후회할 일이다. 당시에는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 때 시청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뜻밖에 반대 의견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갤럽을 통해서 조사를 했는데, 찬성이 52% 반대가 48%였다. 이런 결과에 대해서 갤럽에 분석을 요구했는데, 거기에서 ‘긍정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때 정말 고민 많이 했다. 당시에는 여론의 힘을 가지고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포기했다. 나중에 다시 여론을 모아서 만들 생각으로. 하지만 그 코너가 끝나면서 다시는 해볼 수가 없게 됐다. 그때 그냥 밀어붙여서 평양에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었어야 했다. 북쪽의 어린이는 얼마나 약자냐! 현실적인 어려움을 떠나서 그때 지었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안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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