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무혐의 판결이후, 행복한 결혼으로 새출발 권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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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운명의 짝이라는 걸 직감했어요”


지난해 11월 24일은 개그맨 겸 사업가 권영찬(38)이 다시 태어난 날이다. 1년 6개월 전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그가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몸과 마음이 온전히 고통의 시간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권영찬이 무죄판결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올린 얼굴은 바로 힘든 시간을 같이 견뎌준 ‘여자친구’였다.

성폭행 무혐의 판결이후, 행복한 결혼으로 새출발 권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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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 24일은 그런 그가 웨딩마치를 울리는 날. 그의 피앙세는 모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 중인 김영심씨다. 최근 결혼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들을 만나 ‘하나 아닌 둘이어서 더욱 행복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봤다.


피 말리던 1년 6개월, 악몽의 나날들
지난 2월 6일, 권영찬(38)이 기자와 만나기로 약속한 청담동의 한 한복집에 문을 열고 들어섰다. 대법원 판결 이후 마음의 부담을 덜어서인지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뒤이어 들어오는 권영찬의 피앙세 김영심(00)씨. 청바지에 노란색 자켓을 입고 나타난 그녀가 기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갸름한 얼굴에 커다란 눈을 가진, 선하고 단아한 인상이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은 권영찬과 김씨는 눈이 마주치자 서로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다. 아무리 결혼을 앞두고 있다지만 그렇게 좋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내 ‘어려운 일을 겪고 난 뒤라 지금의 행복이 더욱 달콤하겠구나’ 싶은 생각에 그들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그들은 마음껏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1년 6개월. 이들이 이처럼 편안한 웃음을 짓기 위해 참고 견딘 시간이었다. 두 사람에게 ‘성폭행 혐의’ 사건을 어떻게 견디어 냈는지 물었다.

“1년 6개월… 정말 피가 마르는 시간이었어요.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거에요.”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깨끗하게 마무리된 사건이었지만,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부신부에게 불쾌했을 당시의 사건에 대해 캐묻는 것이 실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예비신부 김씨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씩씩하게 사건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빠는 휴대폰이 꺼져 있을 때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해외에 나갔다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오빠와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는 와중에 (권영찬의) 형수님에게 전화가 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어요. 진짜 너무 떨리고 두려웠어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했죠. 오빠가 죽었거나, 식물인간이 됐다고 말이에요.”

이어 김씨는 불안한 마음에 권영찬의 형수에게 “오빠가 죽은 것은 아니죠?”라고 되물었고, 결국 전화상으로 “죽지는 않았다”는 형수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 있기만 하면 됐던 것이다. 그날 저녁 김씨는 권영찬의 친형을 만나 자세한 사건의 정황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오빠의 큰형에게 자세한 내막을 듣고, 혼자 집에 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누구랑 의논하고 하소연할 곳도 없고, 막막하더라고요. 진짜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었어요.”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대성통곡
성폭행 무혐의 판결이후, 행복한 결혼으로 새출발 권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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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권영찬은 용산경찰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였다. 권영찬은 형을 통해 김씨에게 면회를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차마 김씨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권영찬은 평소 김씨를 한참 어린 동생으로 생각하며, 이끌고 가르쳐오던 입장이었다. 김씨의 친구들까지 권영찬을 ‘큰언니’처럼 따르며 어려운 일을 상담할 정도였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권영찬은 김씨를 끌어들이면 안 되겠다고 판단, 이별을 결심했던 것.

“저는 처음에 24시간 조사만 받으면 끝일 줄 알았어요. 하지만 마약검사를 하고, 조사가 길어지면서 상황이 만만치 않겠구나 느꼈죠. 그래서 이 사건에 여자친구를 끌어들이지 않는 게 제가 이 친구를 보호해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면회도 오지 말고, 그냥 헤어지자고 했어요.”

하지만 김씨는 권씨의 어머니, 작은형과 함께 권영찬을 만나러 용산경찰서로 향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권영찬과 김씨.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오빠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 (여기) 올 줄 알았지?’라고 말하며 그냥 웃었죠. 하지만 오빠는 제 얼굴을 보자마자 막 울더라고요.”

두 사람은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전도연과 황정민이 그랬던 것처럼,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많이도 울었다고 한다.

이후 김씨는 권씨가 무죄임을 믿고, 그를 빼내기 위한 방법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고소인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했다. 당시 권씨를 고소한 여성은 권씨에게 가명을 썼기 때문에 권씨는 실제 이름도 여자친구를 통해 처음 알았다고 했다. 여자친구 권씨는 씩씩했다. 남자친구 권영찬의 무죄를 확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구치소 안에서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여자친구가 대신해서 고소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아봐 주더라고요. 결국 싸이월드에 들어가서 몇 백 명을 찾아본 끝에 해당 여성의 미니홈피를 찾아, 무죄를 증명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기도 했어요(권영찬).”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요. 친구들, 엄마, 남동생 등 주변에서 오히려 더 제 눈치를 봤어요. 제가 너무 밝게 지내니까 그게 다들 이상했나 봐요(김영심).”


김씨 아버지, 오히려 “빨리 결혼해서 해결하라” 권유
김씨는 권씨가 보석으로 석방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무죄를 증명할 만한 단서를 찾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녔다. 하지만 처음에는 보석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권씨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을 쏟아냈기 때문.

“처음에 보석도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때는 제가 너무 화가 나서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돈을 다 주고 해결하자고도 했죠. 오빠가 계속 그(구치소) 안에 있는 게 너무나 싫었거든요. 나와서 해결을 하자는 거였죠. 하지만 오빠가 계속 말렸죠(김영심).”

성폭행 무혐의 판결이후, 행복한 결혼으로 새출발 권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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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도 없는데, 왜 돈을 줍니까. 혹시 누명이 안 벗겨지더라도 그렇게는 안 한다고 했어요.”(권영찬)
하지만 권영찬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씨는 이때를 회상하며 “유죄 판결이 나왔을 때는 진짜 막막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이때 권씨에게 힘이 되어 준 것은 김씨의 부모님이었다. 평소 권영찬을 좋게 봐왔던 김씨의 아버지는 예정대로 2005년 11월에 결혼식을 올리라고 권했다는 것. 결혼해서 사건을 해결하라는 게 그 이유였다.

“당시 아버님의 말씀이 너무 감사하고 힘이 됐습니다. 저를 자식같이 생각해 주셔서 너무 좋았죠. 만약 아버님이 ‘헤어져라’고 해도 저는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고등법원에서까지 유죄가 나오면, 저는 법정구속이 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이대로는 결혼을 할 수가 없다고 했죠. 그래서 무죄가 결정되면 그때 당당히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때마침 인터뷰 장소에는 김씨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웨딩드레스를 보러 가기 위해 도착해 있었다. 김씨의 어머니는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딸의 목소리가 너무 밝아서 오히려 놀랐다”면서 “반대로 딸이 별일 아니라고 우리를 위로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씨의 아버지는 “우리는 영찬이의 성격을 잘 안다. 평소 너무 착하고 성실해서 이번에도 잘 극복해 나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밝혔다. 김씨뿐만 아니라 김씨의 부모님들까지도 권영찬이 무죄임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

권씨는 아무리 죄가 없다고는 하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람들 앞에 나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때 옆에서 힘이 되어준 사람도 역시 그의 여자친구 김씨였다.

성폭행 무혐의 판결이후, 행복한 결혼으로 새출발 권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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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는 인생의 패배감을 많이 느꼈어요. 내가 이렇게 작아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죠. 그렇게 제가 집에만 있으니까 영심이가 저를 대형 마트에 데리고 나가더라고요. 그냥 철없이 어린 줄만 알았던 이 친구가 제 손을 잡고 ‘세상으로 나가자. 뭐가 두렵냐’고 하더군요. 이후에도 꼭 제 손을 잡고 돌아다녔어요. 그런 사랑 처음 받아봤어요.”
김씨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을까. 결국 법원이 권영찬의 손을 들어 주면서 이들의 오랜 마음고생도 끝이 났다.

만약 내 남자친구가 성폭행 혐의를 받고 조사대상이 된다. 보통 여자들 같았으면 1년 6개월을 기다리기는커녕,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등을 돌려버렸을 게다. 하지만 가녀리게만 보이던 김씨는 오히려 당당하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강인하게 연인의 옆자리를 지켜냈다.


그렇다면 권영찬은 김씨에게 어떤 프러포즈를 했을까.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기 전에 아버님과 영심이가 같이 저희 집에 왔어요. 솔직히 힘든 일 겪고, 쇠창살 사이로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가서 진실이 밝혀지면, 이 친구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했었죠. 웬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고는 그 시간 동안 제 옆에 있기 힘들죠. 그래서 아버님께 ‘하루를 살더라도 이 여자랑 살고 싶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죠. 그게 제 프러포즈였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이 여자와 살 것
사실 권씨가 김씨와 결혼을 결심한 것은 이 사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미 권씨는 지난 2002년 11월 우연히 김씨를 처음 본 순간, 결혼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당시 권씨와 김씨는 서로 다른 모임에 있다가 합석한 자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권씨는 김씨를 본 순간 첫눈에 반했고, 기회를 놓치면 안될 것 같아 용기를 내 그녀에게 여자친구를 소개시켜달라며 연락처를 받아냈다.

“후배를 소개시켜달라고 해서 연락처를 줬더니, 저한테 밥을 먹자고 하더라고요. 당시 오빠는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저한테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러 번 약속을 어겼죠. 후후(김영심).”

“두 번이나 바람맞고, 삼고초려 해서 겨우 만날 수 있었어요. 이 친구가 제가 연예인이라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더라고요.(권영찬)”

그 뒤 권영찬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편지쓰기. 만날 때마다 편지를 써서 김씨에게 전해준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 그 편지에 그리 크게 감동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고 한다. 편지를 여기저기 아무데나 둘 정도로 신경을 안 썼기 때문.

성폭행 무혐의 판결이후, 행복한 결혼으로 새출발 권영찬

성폭행 무혐의 판결이후, 행복한 결혼으로 새출발 권영찬

그래서 권씨는 편지를 건넬 때마다 한 장씩 복사를 해서 모아뒀다. 그리고 나중에 그걸 모아 책으로 제본을 해서 ‘영찬이의 마음’이라며 김씨에게 선물했다. 하지만 그 책을 받아든 김씨의 첫 마디는 “이런 걸 만들어주는 곳이 있어?!”였다고.

“저는 편지를 모아서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소홀히 대했거든요. 그런데 그 편지책이 나중에 우리 사이에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천천히 편지를 다시 봤거든요. ‘오빠가 나에게 이런 편지를 다 줬었구나’ 싶은 게 오빠의 진실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죠. 예전에는 미처 못 느꼈던 거예요. 오빠의 그 편지책, 진짜 가보 중의 가보로 남겨야 할 보물이에요(웃음).”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다. 살면서 절대 바람은 안 돼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한 것은 벌써 햇수로 6년째.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점이 많아 서로 놀랄 때가 많다고 한다.

“서로 양력 생일도 똑같고, 휴대폰에 그림 다운받는 취향도 똑같아요. 둘 다 낙천적이고 생각이 긍정적이며 밝죠.” 옆에서 듣고 있던 여자친구 김씨가 한마디 더 거든다. “보통 코드가 같다고 하죠(웃음).”

이들은 권씨가 살고 있는 잠원동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릴 계획이다. 사실 그동안 마음에 드는 살림이 있으면, 하나씩 미리 사다 놓았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는 ‘혼수’가 따로 필요없다.

신혼여행은 하와이로 가기로 결정했다. 승무원으로 일하는 김씨가 세계 각지를 돌며 ‘하와이’는 권영찬과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라고.

이제는 눈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을 정도가 됐지만, 그런 두 사람도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는 사소한 마찰을 피해갈 수 없었다. 3명을 낳고 싶다는 김씨에 비해, 딸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권씨, 여러 가지 드레스를 입어보고 결정하겠다는 김씨, 처음 본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는 권씨… 물론 살면서 이 정도 마찰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마는 말.

권영찬은 현재 연예인들의 의상, 헤어 등 스타일링을 도맡아서 관리해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을 아예 은퇴한 것은 아니다. 방송과 사업이 모두 적성에 잘 맞고 욕심이 난다는 것. 때문에 방송도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어려운 일을 겪은 뒤 새 출발을 다짐하는 권영찬, 김영심 커플.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결혼생활에 임하는 각오에 대해 물었다.

“그 일이 없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살면서 절대 바람은 안 피겠죠(웃음). 자기 일 열심히 하면서, 행복한 가정 꾸려가는 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거두지 않아 주신 부모님께 효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김영심)”

“이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한 번도 결혼 생각을 안 했는데, 이렇게 결혼하는 것을 보면 정말 인연인가 봐요. 그리고 사람이 힘들면 가족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어요. 요즘 같아서는 식구들 얼굴을 보면 한 번 더 웃게 되죠. 웃을 수 있는 그 마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요. 저는 혼자가 아니고 둘이니까요(웃음)(권영찬).”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주석 장소협찬 / 박술녀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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