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벌판에 혼자 선 기분입니다. 하지만 스포츠 중계만큼은 자신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어렵게 내린 결정입니다”
지난 3월 6일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아나운서 김성주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아나운서로 일하던 MBC를 떠나 ‘프리랜서 방송인’으로서 새 출발을 알리는 자리였다.
김성주가 사표를 제출한 것은 지난 2월 28일. 사표는 지난 3월 2일 최종 수리됐다. 그리고 신동엽, 유재석, 강호동, 김제동 등 특급 연예 MC들이 포진하고 있는 팬텀 엔터테인먼트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가 MBC에 입사한 것은 지난 2000년이다. 세 번의 실패와 우여곡절 끝에 입사한 방송사다. 공중파 입사 전에 일하던 스포츠 케이블 방송국은 1년도 안 돼 문을 닫았다. MBC 입사 후에는 ‘생방송 화제집중’ ‘사과나무’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꾸준히 인지도를 높여왔으며 푸근한 인상과 반듯한 이미지, 편안한 진행으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를 본격적으로 ‘스타 아나운서’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2006년 월드컵 중계였다. 차범근, 차두리 부자와 함께 했던 중계방송은 매번 화제였다. 시합이 잘 풀리면 아이처럼 좋아했고, 부당한 판정으로 국가대표팀이 불이익을 받을 때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캐스터로서 중립을 지키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대중은 그의 솔직하고 인간미 넘치는 중계를 사랑했다. 이후에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MBC ‘황금어장’과 ‘경제야 놀자’ 등의 프로그램에서 그는 개그맨처럼 웃길 줄 알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진행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아나운서로서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아나운서 신분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여러 가지로 체계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능 MC는 연예인의 분위기를 맞춰갑니다. 구구절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아나운서로서 버텨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나운서로서 예능 MC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달려든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체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그는 전문 예능 MC들을 모니터했다. 유재석, 김용만, 신동엽의 진행을 보고 배웠다. 성대모사 등을 연구해서 함께 출연하는 연예인들 앞에서 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나운서의 전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뉴스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이미지는 예능 분야로 굳어갔다.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다 보니 라디오 뉴스를 진행하다가도 장난기가 발동했다. 뉴스 멘트를 성대모사로 전달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했다.
“아나운서는 전문 분야가 다 다릅니다.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가 있고 스포츠를 중계하는 캐스터가 있죠. 라디오 DJ, 예능·교양 MC 등 다양합니다. 하지만 다 똑같은 잣대로 일정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의 방송사 풍토는 편중되어 있다. 아나운서라면 뉴스 앵커나 교양 MC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포츠 중계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예능 MC로서 인지도를 쌓아가던 그에게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MBC를 나온 것을 후회합니다. 하지만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안정된 MBC를 포기했습니다.”
김성주의 프리랜서 선언이 보도되자 언론은 그가 받을 구체적인 대우에 대한 궁금증을 감추지 않았다. 10억원의 계약금에 아우디 승용차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성주는 자신이 받게 될 대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꺼렸다.
“10억을 받는다는 소문에 저도 시달렸습니다. 기분은 좋았습니다. 팬텀이라는 회사가 저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월급쟁이였잖아요. 매월 27일에 들어오는 월급을 받던 사람이기 때문에 월급을 달라고 했습니다. 익월 5일에 정확히 입금해주시기로 했어요.”
그가 새 회사의 이사가 될 거라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사급’ 대우를 받는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어떤 직책을 맡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새 회사에서는 김성주에게 다른 연예인과는 다르게 접근했다. 김성주는 ‘월급에 준하는 금액이 섭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학 기회와 발전에 필요한 부대비용도 포함돼 있다. 그가 진행하던 MBC 프로그램을 모두 하차한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솔직한 의견을 밝혔다.
“심정만으로는, (MBC) 사장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저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MBC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크니까요. 하지만 아나운서국 선후배 동료에게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프리 선언하면서 ‘아나운서들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내가 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기자회견장의 그는 시종 긴장한 모습이었다. 사회를 보던 입장에서 회견의 주인공이 된 것에 대한 어색함도 숨기지 않았다. 회견 서두에는 아나운서 직함을 버리자 ‘빈 벌판에 혼자 선 기분’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 스포츠 MC로서의 포부를 말할 때는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방송인’ 김성주의 자신감
“내로라하는 MC들 사이에서 궁극적인 저의 필살기는 스포츠 중계입니다. 누구랑 붙어도 자신 있어요. MC 하기 전에 3년 동안 배운 것이 그것뿐입니다. 잘할 수 있어요.”
스포츠 중계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지원이 필수다. 경기를 많이 봐야 하고 경기가 벌어지는 현지에도 자주 나가야 한다. 세계적인 흐름을 발 빠르게 쫓아야 한다.
새 회사는 체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기회도 약속받았다. 전문 스포츠 MC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지원도 받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김성주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인 이유다.
그러나 월드컵, 올림픽 등의 큰 경기는 중계권이 있어야 방송이 가능하다. 김성주는 공중파 방송국이 연합해 중계권을 확보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개인이 중계권을 사서 방송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2010년 월드컵 중계권은 SBS가 가지고 있다.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중계권을 다시 팔아 다른 방송사도 기회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국에서 중계를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실력이다. 체계적인 지원을 받아 능력을 키우면 기회는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 회사(팬텀 엔터테인먼트)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MC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들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유재석, 강호동, 김제동. 그들보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스포츠 중계입니다. 그것만은 정말 제가 잘할 수 있습니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선수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뛴단다. 그 중에 하나라도 직접 중계하고 싶다. 영국 현지에 가서 그들을 만나고 독일에서는 차두리 선수를 다시 만나고 싶다. 풍부한 경험은 실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안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