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주시고, 또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배우 장혁이 돌아온다. ‘군대’라는 한국 사회의 가장 힘든 통과의례를 마치고서 말이다. 2년이란 시간은 배우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그를 성숙하게 했다. 그의 컴백작 ‘고맙습니다’의 제작발표회가 있던 날. 장혁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지난날을 고해성사하듯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더 이상 아이돌 스타가 아니었다. 30대에 접어든 한 배우로 그는 또다시 출발 선상에 서 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기적과 따뜻함 담아내고파
그러나 대한민국 남자 연예인이라면 누구에게나 가장 무거운 짐인 병역 문제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지난 2004년 강원도 102보충대로 송승헌과 함께 입대했고 지난해 말 무사히 제대했다. 장혁과 송승헌은 군 생활 중에도 계속 비교됐는데,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친 이후 복귀의 신호탄을 먼저 쏘아 올린 것은 그간 잠잠하던 장혁이었다.
3월 14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진행된 MBC-TV 새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제작발표회 현장은 장혁의 제대 후 첫 공식 활동이자 5년 만의 드라마 복귀를 알리는 자리여서 시선이 집중됐다. 그를 브라운관으로 돌아오게 만든 작품 ‘고맙습니다’는 KBS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와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유명세를 치른 이경희 작가와 일요로맨스극장 ‘단팥빵’의 이재동 감독의 만남으로도 기대를 모으는 작품. 내용과 기획 의도 면에서도 충분히 기대를 모을 만하다.
최고의 의사로 각광받던 민기서(장혁 분)는 환자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실패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다 의사를 그만두고 찾은 외딴 섬에서 에이즈에 걸린 딸과 함께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미혼모 영신(공효진 분)을 만나게 되면서 차츰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사랑하던 지민(최강희 분)의 죽음과 에이즈, 미혼모 등의 극단적인 설정임에도 자극적이지 않은 담담한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이재동 감독의 말처럼, 장혁의 현재 주된 관심사 또한 ‘사람’이라고 한다.
장혁은 이번 작품이 메디컬 드라마는 아니지만 의사로 출연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인간적인 따뜻함을 잘 담아내고 싶다며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언급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건 희망과 기적에 대한 바람이라고 생각해요. 이 드라마도 희망과 기적에 대한 이야기예요. 에이즈라는 혹독한 병으로 고통받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런 따뜻한 드라마를 만들겠습니다.”
혹한기 훈련 마치고 다시 연기하게 돼 감사해
그러나 병역 문제에 대한 질문과 함께 현장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장혁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군대에서 보낸 시간들이 성숙의 계기가 됐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제는 연기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어찌 됐든 군 복무로 대가를 치렀으니 이제는 배우로서 시청자 앞에 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친다. 그런 만큼 복귀 무대를 마주한 지금은 데뷔 시절의 초조함과 목마름의 설레는 긴장감을 안고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군대는 제게 앞만 보고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해준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군 생활할 때 거의 1년은 텔레비전을 못 봤어요. 옛날 생각이 많이 나서…. 며칠 전 의정부 촬영을 마치고 나오는데 혹한기 훈련을 하는 군인들을 봤습니다.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또한 혹한기 훈련을 했고 그런 과정을 다 거치고 이제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소중함 때문에 이 자리가 더 기쁩니다.”
잘나가던 청춘 스타로서 나이를 강조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 드라마를 통해서 30대 배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는 그의 말에서 변화를 찾을 수 있다. 복귀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아직은 긴장되고 떨리는 나날이지만, 그래서 장혁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진지한 자세로 촬영에 임하고 있다. 전역하기 전부터 연기에 대한 부담으로 절권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고. 5년 만의 드라마인 데다 이중적인 인물을 그려내야 하는 만큼 캐릭터 분석에도 열심이다.
“다큐멘터리인 ‘닥터스’와 최근 종영한 ‘하얀 거탑’을 보면서 제가 그려야 할 인물상을 떠올려보곤 했어요. ‘허준’처럼 냉철하지만 본연의 따뜻함을 간직한 인물을 그려내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이번 드라마에서 모성애는 핵심 축의 하나지요. 대본을 읽으면서 공효진이 느낄 마음에 공감했습니다. 나이 서른에 휴가를 나와 들은 어머니의 말씀은 제게 큰 울림을 주곤 했거든요. 저도 이제부터는 공감을 이끌어낼 줄 아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전남 신안의 증도에서 촬영을 하다 보니 “이제는 섬사람이 다 됐다”며 육지에 오면 육류만 먹게 된다는 장혁. 제작발표회가 있던 날도 그는 고기 먹고 힘내 다시 증도로 돌아가 촬영에 임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떴다. 이제는 신선한 해산물처럼 담백한 맛을 풍기는 배우가 되는 일이 남아 있다. 지난 일 훌훌 털고 새 드라마에서 진정한 연기자로, 멋진 모습으로 시청자 앞에 다시 서길 기대한다.
■글 / 위성은(자유기고가) ■사진 / 박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