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연극 맹연습 중인 제작자 겸 주연배우 유지태

세번째 연극 맹연습 중인 제작자 겸 주연배우 유지태

“무대에서 잘 노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무용수, 모델, 영화배우, 단편영화 감독, 연극배우, 연극과 영화제작자. 이 모든 것이 단 한 사람의 프로필에 공존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프로필의 주인공은 배우로 잘 알려진 유지태. 가장 상업적인 매체라 할 수 있는
대중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렸지만, 많은 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단편영화나 소극장에서 꾸준히 땀을 흘려온 유지태의 세 번째 연극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는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세번째 연극 맹연습 중인 제작자 겸 주연배우 유지태

세번째 연극 맹연습 중인 제작자 겸 주연배우 유지태

존경하는 어머니에게서 영감받아
외모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게 배우의 나이라지만, 유지태(31)의 경우는 선뜻 나이를 짐작하기가 더 힘들다. 이번에 함께 작업하게 된 연출가 이지나도 “평화로운 분위기 때문에 생각보다 나이가 어려서 깜짝 놀랐다”라고 말할 정도. 1976년생, 이제 서른 하고도 한두 해가 지났을 뿐인 이 배우에게선 예측하기 힘들 만큼 다채로운 캐릭터가 분출돼 나온다.

그러나 유지태는 영화 ‘올드보이’의 우진도, 오는 6월 개봉할 ‘황진이’의 첫 남자 놈이도 닮지 않은 듯하다. ‘봄날은 간다’의 상우와는 조금 닮았을지 모르지만. 진중하면서도 날카롭고, 우수에 차 있거나 유약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강하다. 어떤 때는 까칠해 보일 정도로 함께 작업하는 이들에 대한 신뢰나 마음 씀씀이가 큰 편이다.

‘올드보이’ 개봉 당시 신인이었던 강혜정에게 베드신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그가 화를 내면서까지 기자들을 제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3월 15일 제일화재 세실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랬다. 당연하게도 질문은 그에게만 집중됐고, 유지태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다른 배우들에게도 질문을 좀 해주세요’라며 동료들을 배려했다. 유지태는 그런 사람이다.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하는 제작자 겸 주연배우 유지태는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지만 어머니 얘기를 할 때는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이번 작품의 모티브는 바로 어머니에게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모성애’가 바로 극을 이끌어나가는 힘이다.

“제가 작품의 원안을 떠올린 것은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 만원 지하철을 탔는데 자리가 하나 났어요. 주변에 노약자도 많았는데, 저를 자리에 밀어 넣으셨어요. 눈치가 보여서 ‘날 왜 이렇게 못된 놈을 만들까’ 생각했었죠. 당시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사랑으로 인해 생겨나는 오해나 회한을 어떻게 풀어낼까, 이런 걸 극화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란 것으로 알려진 유지태는 병원에서 근무하며 힘들게 자신을 키워주신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거듭 내비쳤다.

“저희 어머니는 인간적으로 참 존경할 만한 분입니다. 30년 가까이 아침 5시면 일어나서 운동하고, 병원에서 7시까지 일하고 10시에 주무시곤 해요. 남도 도울 수 있으니 좋다는 생각으로 생활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워요. 힘들게 사셨지만 앞으로는 힘들지 않게 사시길 바라고 또 제가 잘 해야지요.”

모성애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사랑은 수많은 창작의 원동력이 되어왔지만, 나병에 걸린 딸을 치료하기 위해 자식을 낳아서 딸에게 먹인다는 작위적이면서 위악적인 이 연극은 좀 예상 밖이다.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연출 이지나·작가 박수진)는 2005년에 유지태가 설립한 유무비의 두 번째 창작연극이다. 사기꾼 퇴마사와 미모만 내세우는 평론가, 그리고 잘리기 직전의 방송국 PD가 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찾은 흉가에서 나병에 걸린 소녀와 그녀의 엄마, 그리고 인우를 만나면서 전개되는 알듯 모를 듯 아리송한 이야기.

배우로는 영화 ‘올드보이’ ‘시실리 2km’에 출연한 연극배우 박명신, 연극에 처음 도전하지만 유지태가 ‘연기 머신’이라고 격찬하는 뮤지컬 배우 김태한과 방진의가 함께 출연한다. 유지태의 원안으로 영화 ‘뚝방전설’의 박수진 작가가 극본을 썼고,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뮤지컬 ‘바람의 나라’로 감각을 인정받은 이지나가 연출을 맡았다.

출연진들의 모습. 왼쪽부터 김태한, 조슬기, 박명신, 유지태, 연출가 이지나, 방진의, 김대명.

출연진들의 모습. 왼쪽부터 김태한, 조슬기, 박명신, 유지태, 연출가 이지나, 방진의, 김대명.

‘지랄댄스’ 추려고 맹연습 중인 ‘신인 배우’
단편영화나 소극장 연극이나 소위 ‘돈이 안 되는’ 일이기는 매한가지다. 유지태가 직접 제작사까지 차려가면서 이 일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이번 연극의 수익금 5%는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수익금의 5%를 기부하는 거니까, 수익이 나지 않으면 당연히 기부 못 하죠(웃음). (작품이) 뜨거나 말거나 창작은 계속할 겁니다. 상업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지만 대안영화나 독립작품 쪽을 개발하는 것이 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요. 뜻 맞는 사람들과 계속 작업을 해나가다 보면 관객들과 맞닿는 지점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요즘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는 배우들의 나들이나 외유 장소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흔한 일이 돼버렸다. 일회성이 아니냐는 비판의 시각도 있지만 유지태는 더 넓은 시각에서 봐주길 바란다고 한다.

“저는 춤을 추다가 모델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지만 원래 연극영화 전공이에요. 무얼 했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도 나름의 계기가 있고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연극계가 소통의 장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준비 안 된 배우가 와서 망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배우로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 기회가 될 겁니다. 뉴욕에 가서 보니 메릴 스트립이 무료 연극공연을 하고 있더라고요. (연극계에) 많이들 와서 체험하면 좋겠습니다.”

소신이 뚜렷하다 보니 배우로서 장점도 단점도 많은 편이다. 자신의 표현처럼 ‘느린 배우’이기 때문에 생각이 많고 유연하게 연기하기 힘들다. 대본에 얽매이지 않고 그때그때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이번 작품을 연습하면서 ‘왜 이렇게밖에 못하는 걸까’ 하는 자기학대도 심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주문도, 자신의 바람도 무대에서 더 ‘잘 노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슬프고 무섭지만 한편으론 재밌고 판타지가 많이 가미된 이번 연극에서 유지태가 맡은 ‘인우’는 한을 풀어주는 해결사, 사람과 귀신의 매개 역할이다.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에서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는 그에게 남겨진 가장 큰 과제다.

“제가 밝고 쇼맨십이 강한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원래 제목이 ‘지랄댄스를 추다’였는데(웃음) 웃겨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많아서 큐시트도 잘 놓치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거북이 같은 배우지만 그래도 가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는 제 모습이 좋습니다.”

연습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일찍 나와서 연습한다는 유지태에게서 세 번째로 연극에 임하는 신인 배우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자기를 비우고 항상 날것이 되려 노력하는 한 유지태는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연습실에서 ‘뭉개지다’ 보니 서로 눈빛만 봐도 알 것 같다는 배우들이 보여줄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관객들 또한 이 배우들과 통할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적어도 지리멸렬하지는 않을 것 같다. 공연은 4월 10일부터 5월 27일까지, 시청역 인근의 제일화재 세실극장에서 볼 수 있다.

글 / 위성은(자유기고가) 사진 / 이성원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