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하 자녀 셋 중 둘이 ‘가슴으로 낳은 애들’! 피 한 방울 섞이고 안 섞이는 게 중요한가요?”
개그맨 엄용수의 몰래한 선행이 ‘가정의 달’ 5월 뜻 깊은 감동을 안기고 있다. 엄용수는 20여 년 전 부모 잃은 아이 둘을 양자, 양녀로 입양해 남몰래 친자식처럼 돌봐왔다. 게다가 그렇게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이 오는 6월 시집을 간다. 그렇다고 엄용수에게 친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슴으로 낳은 남매에 친자식까지, 세 아이를 사랑으로 키워낸 ‘싱글대디’ 엄용수의 아주 특별한 가족 이야기.
시골집 찾아온 예전 ‘한지붕 가족’, 보듬어 살아온 게 20년
입양한 아들은 일찌감치 제 짝을 찾아 분가를 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도 6월 말 결혼한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만난 엄용수는 대뜸 처음부터 자식 자랑에 열을 올렸다.
“우리집 애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능력이 좋은지요. 서른 살 먹은 큰아들은 스물세 살 때 결혼해서 아들, 딸 골고루 낳고 살죠, 우리 딸이 골라온 사윗감은 또 얼마나 번듯하고 성실하다구요. 애비는 서른여덟에 처음 결혼해 두 번이나 실패를 했는데 말이죠. 그런 점은 적어도 아버지 안 닮아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엄용수가 자녀를 입양한 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예전 시골집에서 세를 살던 집의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보육시설에 맡겨졌는데 적응을 못해 예전에 살던 집이라고 어머니를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아이들 사정이 여간 딱한 게 아니었어요.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유명을 달리하셨고, 아버지도 아내를 잃은 슬픔에 화병으로 시력을 잃고 결국 세상을 떴다 하더군요. 그래도 한때는 한 지붕 아래 살던 사람들이니 남달랐죠.”
엄용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모른 척 뿌리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린애들이 안됐잖아요. 마음 붙일 곳 없어 찾아온 애들을 어떻게 또다시 시설로 돌려보내요. 그냥 아저씨랑 같이 살자 하면서 가족이 됐어요.”
당시만 해도 결혼도 안 한 노총각이었을 때다. 아무리 어머니의 청이 있었다고는 해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에는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엄용수는 “개와 고양이도 한울타리에서 살면 친구가 되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의 인연이야 더욱 소중한 것 아니겠냐”며 “하늘이 내려준 인연으로 알고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입양 당시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또 “애 키우는 사람은 원래 계산을 않게 되는 법인가 보다”라는 말로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엄용수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아이들에게 특별한 시선을 갖지 말아달라고 여러 번 당부했다. “내 자식, 남의 자식 구분지어 생각해본 적도 없을 뿐더러, 그런 선입견으로 인해 아이들이 혹여 상처라도 받을까 걱정이 앞선다”는 게 이유였다.
“전 입양이라는 단어도 가급적 안 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피 한 방울 섞이고, 안 섞이는 게 가족 되는 데 뭐 그리 중요해서요. 부부도 처음에는 다 ‘우연’으로 시작되는 거 아닌가요? 우연이 인연 되고, 인연이 결실을 맺으면 가족이 되듯 우리 아들, 딸과의 만남도 그러했네요.”
“내 자식, 남의 자식 차별 없이 사랑하나 매일 스스로 되물어”
엄용수는 입양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래도 좀 더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 가정에서 한 명씩만 맡아줘도 이 세상에 부모 없이 고생하는 아이는 없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부모가 능력이 좀 없을 수도 있고, 몸이 아프거나 혹은 불구자일 수도 있어요. 자식도 마찬가지로 남보다 부족할 수도, 또 넘칠 수도 있는 게 당연하네요. 내 부모가 못났다고 부모가 아닌 게 되나요? 내 자식이 다른 집 자식들보다 좀 떨어진다고 자식이 아닌 건가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후에 아이가 받을 상처를 운운하며 하리수씨의 입양을 반대하는데 만약에 진짜 아이가 커서 그렇게 된다면 그건 그 아이의 인성이, 그리고 교육이 잘못된 겁니다. 이 세상에 부모의 이혼으로 시설에 맡겨지는 아이들도 얼마나 많아요. 제 자식도 뻔뻔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세상인데 남의 아이 사랑으로 키우겠다면 칭찬까진 아니어도 욕할 건 절대 못된다고 봐요.”
그렇다고 엄용수가 또 무조건적으로 입양을 찬성하고 드는 것만도 아니다. 입양을 하기에 앞서 단지 필요에 의해 가족이 되려 하는 건 아닌지 수백 번 생각해보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확실한 다짐을 받으라고 그는 조언했다. 사랑 없이 맺어진 가족 관계는 사소한 마찰에도 깨어지기 쉽고, 그럴 경우엔 오히려 처음부터 가족이 안 되는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엄용수 자신 또한 아이들을 키우며 얼마나 많은 자책과 반문을 거듭해야 했었는지 모른다.
“내 자식도 키우다 보면 힘에 부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도 있구요. 매일매일 제 자신에게 되물어야 했어요. 과연 내가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차별 없이 대하고, 차별 없이 사랑하는가 하고 말이죠.”
결혼을 한 이후에는 오히려 관계가 더욱 복잡해졌다. 결혼 당시엔 엄용수의 아내도 선뜻 남편의 뜻에 동의하며 온전한 가족을 이뤘다. 하지만 부부관계가 틀어지고 나니 가족 구성원 전체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용수는 자신의 실패담을 예로 들며 “이제 막 아이를 입양했거나 혹은 입양을 고려 중인 사람이라면 부부 관계가 안 좋을 때일수록 특히 더 아이에게 신경을 쓰라”고 귀띔했다.
엄용수는 “하나뿐인 외동딸을 시집보내려 하니 좋기도 한 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수시로 허해지기도 한다”며 적적해했다. 이제 딸까지 결혼 후 분가를 하고 나면 집에 있는 사람이라곤 엄용수 자신과 올해 고3 된 친아들 딸랑 둘뿐이다. 엄용수는 그 허전함을 무엇으로 다 채울 수 있을까 벌써부터 고민이 된다고 했다.
젊어서부터 유독 아이들을 예뻐하던 그였다. 엄용수는 “결혼을 후회해본 적은 있어도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 일만큼은 지난 20여 년간 단 한순간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두 번의 이혼으로 아내가 있었던 순간보다 혼자인 때가 더욱 많았던 그다. 남자 혼자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런 아이들이 있었기에 자신의 생활이 외롭지 않고 더욱 풍요로울 수 있었다고 그는 믿는다.
“아이들이 어느덧 성장해 며느리에 사위까지 보게 되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는 개그맨 엄용수. 그는 “자식은 역시 많고 볼 일”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글 / 최은영(이데일리 SPN 기자) ■사진 / 이데일리 SPN 제공·김정욱(이데일리 SP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