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카미유 클로델 그리고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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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을 건 셀린의 Song HyeKyo 백은 바이어들로부터 폭발적 호응을 얻고 있고, ‘황진이’로 변신해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나는 송혜교. 파리에서 토리노까지 10시간의 드라이브 중에 쓴 패션 칼럼니스트 심우찬이 지척에서 지켜본 황진이의 여배우, 송혜교 이야기


황진이, 카미유 클로델 그리고 송혜교

황진이, 카미유 클로델 그리고 송혜교

샤를르 드 골 공항에서 일주일 뒤에 서울에서 보자며 송혜교와 작별했다. 일주일 내내 붙어지내던 송혜교와 스태프들이 귀국한 직후, 정확히 내게 남은 시간은 6일… 주말에 브르타뉴 지방에 가야 하는 스케줄을 감안하면 결국 내게 주어진 시간은 3일이다. 3일 동안 뭐 하지? 긴 망설임이 필요 없었다. 그래 가자! 이 썰물이 빠져나간 휑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때처럼 또 한 번 알프스의 하얀 눈산에 걸리는 석양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나는 푸조 승용차 핸들을 잡고 있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나는 송혜교의 화보집 제작에 참여했고 이외의 수많은 화보 촬영, 셀린의 Song HyeKyo 백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리고 한국 배우 최초로 송혜교가 등장한 「Vogue」 한국판 촬영의 진행을 담당했다.

현존하는 세계 3대 포토그래퍼라는 파울로 로베르시, 피터 린드버그와 촬영을 했고 세계의 유행을 만드는 줄리앙 디스라든가 스테판 마레, 오딜 질베르 스타일리스트 마리 아멜리 소베, 이자벨 페뤼, 셀린의 디자이너 이바나 오마직, 포토그래퍼로 변신한 왕년의 슈퍼 모델 헬레나 크리스텐센…. 이렇게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패션계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 그들도 나처럼 송혜교를 만나본 뒤에는 이구동성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걸려버렸다.

바로 송혜교 바이러스다. 왜냐하면 송혜교는 그들과의 작업에서 어떤 순간에도 최선을 다했고 솔직했으며 항상 상대방을 진심으로 배려했고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리를 벗어나 2시간이 채 안 돼 지나간 도시가 샤블리(Chablis). 생굴을 좋아하는 송혜교와 촬영이 끝나고 회식을 하며 화이트와인을 마셨는데 그 와인의 산지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차창 밖에는 끝없는 지평선의 평야가 펼쳐지는가 하면 언덕과 낮은 구릉지대로 이루어진 숲이 펼쳐진다.

황진이, 카미유 클로델 그리고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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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얼굴의 송혜교
분명 내가 아는 송혜교는 두 명이다.
한 명은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고 생맥주를 마시는 스물여섯 살 여자의 평범한 모습이며 때로는 세심한 마음 씀씀이로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하며 가끔은 신경질 많은 여동생 같기도 한 그런 모습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의 송혜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데뷔 이래 10년 동안 스스로 정상으로 올라선 여배우이자 인생의 신산을 모두 초월한 듯한 베티 데이비스 할머니의 눈동자보다 더 깊은 눈을 가진… 여배우 송혜교다.

대중에게 송혜교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모습인 투명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송승헌에게 애절한 대사를 하던 ‘가을동화’ 은서의 모습이나 다시 태어나도 사랑을 지킬 것 같았던 지고지순의 대명사 ‘올인’의 수연, 비(정지훈)에게 풋풋한 사랑을 내비치던 ‘풀하우스’의 지은은 송혜교가 연기한 드라마 속의 모습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는 송혜교가 바로 은서이기도 하고 수연이며 지은이다.

그래서 모두 촉수를 세우고 그녀가 누구와 사귀는지, 이상형은 누구인지가 궁금하고 혹시 상대 배우와 드라마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온 국민이 다 아는 그런 사랑을 한 적도 있고 그것 때문에 스타로서 송혜교는 더욱 부각됐지만 10년 동안 한걸음씩 성장해온 여배우 송혜교는 사람들의 호기심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황진이, 카미유 클로델 그리고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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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와 송혜교
그래서 어쩌면 송혜교는 황진이라는 역할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송혜교가 황진이에 캐스팅됐다는 뉴스가 나오자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니 대한민국 남자들의 로망이자, 현대적 청순가련의 대표적 여배우 송혜교가 남성들의 지배 구조가 당연시 여겨지던 조선시대에 자신의 가무를 팔아 최고의 기생으로 불리며 또 그 이름 때문에 예술가로서 공정하게 평가받지 못했던 황진이라니? 분명 미스 캐스팅일 것이라 했다.

대중이 기대하던 송혜교라면 보다 트렌디하고 그녀의 머리칼 휘날리는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사랑 이야기가 더 좋지 않았을까? 더욱이 이미 TV로 방영되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하지원이 혼신을 다한 작품이었음에도 오히려 스승, 백무로 나온 김영애가 더욱 부각된 드라마는 실존 인물이자 만인이 다 아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과거 김지미, 장미희가 주연한 영화라는 점 때문이라도 송혜교에게는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름만으로도 여배우 그 자체였던 당시,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이자벨 아자니가 전혀 부럽지 않을 대여배우들과 나란히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텐데 그녀는 황진이에게 애착을 가졌다. 오히려 송혜교는 분명 자신을 위한 이 역할이 행여 다른 여배우에게 돌아갈까 애를 태울 만큼 의욕과 오기가 생겼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지던 평야가 사라지고 낯익은 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알프스 근처에 도착한 것이다. 사실 이 자동차 여행의 백미는 몽블랑을 지나 이탈리아로 향하는 산길에 있지 않은가 ? 서서히 차창 밖의 경치와 비례해 가슴이 두근거리는 감동의 강도가 세진다.-


‘황진이’의 개봉일을 기다리는 오늘까지 송혜교는 분명 70점짜리 배우다. 이는 송혜교가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스타로 나타난 존재가 아니란 뜻이다. 데뷔 이래, 그녀는 방송국 분장실 분위기부터 연예인들에게 쏟아지는 악플을 대처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했으며, 스타로서 자신만을 쳐다보는 상대편 사람들을 상대하고 판단해야 했으며 항상 새로운 모습과 대중의 기대치와 근접한 자신을 보여주어야 했다. 드라마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그녀의 대사가 어색하다는 사람들의 평가에는 연습과 연습을 반복하는 훈련을 통해 대사 전달력을 높였고 어느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오기를 품게 됐다.

스스로 모든 일을 다 해나가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목표까지 오를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이미 ‘순풍 산부인과’나 ‘가을동화’ 시절부터 송혜교는 자신이 드라마 몇 편에 얼굴을 내밀고 CF 퀸으로 편안하게 살 수 없는 배우의 운명을 타고났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졌을 때, 벌떼처럼 달려들던 언론과 대중의 변덕스런 호기심도 꿋꿋이 이겨낼 스타의 운명을 타고났음을 이미 간파했을 것이다.

남미 대륙, 최남단의 빙산 앞에서 촬영을 할 때, 방금 전까지 비 맞은 새처럼 떨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카메라 앞에만 서면 놀랄 만한 흡인력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바로 여배우 송혜교였다.

황진이, 카미유 클로델 그리고 송혜교

황진이, 카미유 클로델 그리고 송혜교

영화 촬영 중에도 방금 전까지 유지태와 농담을 주고받던 그녀는 감독의 컷소리가 나면 3초도 걸리지 않고 바로 눈물을 쏟아냈다.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 ‘셀린’과 Song HyeKyo 백 작업을 할 때도 그녀는 안감 고리 장식, 어깨끈 같은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도 일일이 체크하고 수정했다. 그저 이름만 빌려주고 여배우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는 그런 백은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보그」의 한국판 표지를 찍으면서도 그녀는 기생이라는 직업을 그저 일본의 게이샤 정도로만 생각하는 프랑스 패션의 대가들을 상대로 왜 16세기에 살았던 21세기의 여인 황진이가 기생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를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촬영을 하면서도 내내 긴장감을 놓지 않고 혼신의 힘을 발휘하는 그녀를 보며 패션 사진의 거장 파울로 로베르시는 분명 송혜교의 황진이는 카미유 클로델이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여자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송혜교의 그 치열한 완벽함 때문에 마음 아프다. 송혜교에게는 18세도 20세도 그리고 지금의 26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여배우의 나이만이 있을 뿐이다. 마치 기녀 황진이가 금강산에 올라 세상의 권세와 영광, 사랑과 미움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산 아래의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어쩌면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도 그렇지 않을까? 가끔씩 세상 일을 바라보는 그녀의 깊은 시선에서 나는 그런 느낌을 놓치지 않는다. 파리의 로댕 박물관에서 송혜교는 스승 로댕보다 더 섬세한 터치와 인간적인 면을 표현하고 있다는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 앞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카미유 클로델 역시 여성이었기 때문에 예술가로서 자신을 불사르지 못한 천재였기 때문에 6개월 황진이로 살던 송혜교의 감동은 남달랐을 것이다.


-내 차는 어느새 시속 70km로 몽블랑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 터널만 넘어서면 바로 이탈리아인 것이다. 묘한 터널의 공명음이 울리며 10시간에 걸친 나의 긴 여행은 막을 내릴 것이다.-

황진이, 카미유 클로델 그리고 송혜교

황진이, 카미유 클로델 그리고 송혜교

나는 영화 ‘황진이’의 개봉이 기다려진다. 지금까지 스타로서만 그녀를 바라보던 대중이 여배우 송혜교에게 어떤 점수를 줄지 몹시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90점 100점짜리 여배우로 도약할 무한한 가능성을, 송혜교의 행보를 지켜보는 재미에 빠져 있을 것이다.

글 / 심우찬(패션 칼럼니스트, DS Company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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