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셋중 명절에 음식 장만 도와주는 건 수종이뿐이었어요”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탤런트 최수종의 어머니 이숙경씨가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드라마 촬영으로 빠듯한 시간을 쪼개 시상식에 참석한 최수종은 어머니에게 바치는 감사의 편지를 낭독해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숙경씨가 들려주는 국민배우 최수종의 어린 시절과 엄한 자녀 교육법이 흥미롭다.
만인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상
“갖은 고생하며, 고통을 이겨내면서 자식 키운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나서기가 참 부끄러워요. 만인의 어머니에게 죄스러울 정도예요. 이 상이야말로 그분들이 받아야 마땅한 상이지요.”
이숙경씨는 자신이 30대 중반이던 무렵, 박정희 대통령 당시 청와대에서 일하는 친정 아버지를 따라 청와대 드나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수시로 열리는 청와대 리셉션에 참석하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남편이 대령이었던 덕에 ‘사모님’이라고 불렸지만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맘이 편치 않았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숙경씨의 겸손함은 유별난 게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겸손함이었던 것이다.
이숙경씨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게 된 이유도 아들 덕으로 돌렸다. 탤런트 최수종의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받지 못했을 것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수종이가 항상 근면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철두철미하게 해왔기에 연기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근면·성실’이라는 가훈을 어려서부터 잘 따라주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지요.”
어린 시절 최수종은 잔병치레가 많았던 누나, 동생에 비해 무척 건강했다. 새벽녘 남산에 올라가 축구하는 것을 즐겼을 정도. 어떤 날엔 새벽 5시에 일어나 “학교에 가야 하니까 밥해주세요”라며 어머니를 깨우기도 했단다. 이숙경씨는 최수종을 두고 어린애치고는 참 부지런한 편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부지런함이 지금의 최수종을 있게 한 바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오직 한 분, 나의 어머니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시상식 당일, 최수종은 시상식장에서 어머니에게 바치는 감사의 편지를 낭독했다. KBS-1TV 대하드라마 ‘대조영’ 촬영 일정이 빡빡한데도 짬을 내 시상식장을 찾은 최수종은 촬영 현장인 수원에서 시상식장인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으로 오는 차 안에서 편지를 썼다고 한다. 이숙경씨는 아들의 편지에 무척이나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최수종이 쓴 편지의 모든 구절을 가슴속에 깊이 새졌다.
시상식 현장에서 최수종은 자신의 어머니가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한 데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는 걸 잊지 않았다.
“어머니가 항상 아끼고 절제하고 봉사할 줄 아는 모습을 가르쳐주셨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남을 도와주라고 말씀하셨어요. 결혼 전에는 몰랐는데 부모가 되니 어머니의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앞으로 가정에 더욱 충실하고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수종·하희라 부부는 연예계의 소문난 잉꼬부부다. 결혼한 지 1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랑한다’ ‘보고 싶다’와 같은 닭살 멘트를 날릴 정도로 금슬이 좋다.
“아들과 며느리 사이가 참 좋아요. 물론 둘 사이에 트러블도 있겠지요. 하지만 며느리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가 내려가기 때문에 싸움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요. 나도 부부 생활을 해봤지만 이런 맘으로 사는 부부는 많지 않거든요. 내 아들 며느리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항상 서로의 좋은 점만 바라보는 아들 며느리한테 배울 게 참 많아요.”
자식 교육에 엄했던 호랑이 엄마
국민배우 최수종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지금까지 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어린 시절의 최수종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란 상상을 해본다.
“난 자식들을 엄하게 키웠어요. 내가 부모에게 엄한 교육을 받고 자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자식들이 말을 잘 안 들으면 벌을 주기도 하고 매를 대기도 했지요. 요즘 보면 부모의 말을 거역하는 자식이 많잖아요.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그러질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점은 감사할 따름이에요.”
최수종은 중학교 1학년에 들어가면서부터 방과 후 교복 셔츠와 양말을 스스로 빨아야 했다. 주말에는 운동화도 직접 빨았다. 어머니 이숙경씨의 가르침이었다. 최수종의 누나와 남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수종이가 중학교에 다니던 무렵 우리 집이 언덕 위쪽에 있었어요. 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막내아들이 2층에 올라가서 망을 보고 있다가 내가 보이면 소리를 질러요. ‘엄마 오신다’고 말이에요. 그러면 아이들이 어질러진 것을 정돈하고, 자세를 똑바로 하고 그랬어요. 집까지 오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거든요. 나는 말 그대로 ‘호랑이 엄마’였어요(웃음).”
어머니 이숙경씨의 위엄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최수종이 스타가 된 뒤에도 꿰맨 신발을 신고 다닌 일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이숙경씨는 뒤축이 다 닳아 찢어진 아들의 신발을 꿰매준 일을 기억했다. 최수종이 그만큼 검소하게 살았기에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일 게다.
이숙경씨는 세 자식 중에서도 최수종에 대한 각별함을 드러냈다. 다른 두 아이들에게 매를 댄 적은 있으나 최수종에게 매를 댄 적은 없다. 최수종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바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했기 때문. 그에 비해 큰딸과 막내아들은 끝끝내 고집을 피워 맞기 일쑤였단다.
어려서부터 효자였던 최수종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이었어요. 학교에서 배웠는지, 어디서 배웠는지 하루는 중국어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중국어로 노래하면서 그것에 맞춰서 율동을 하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어요.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해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가 보다. 비단 그때뿐만이 아니다. 최수종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아들의 체구가 왜소했던지라 행여나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지는 않을까, 맞지는 않을까 걱정됐던 이숙경씨가 하루는 학교를 찾아갔다.
최수종의 교실 안에서는 이숙경씨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들이 반 아이들이 빙 둘러앉은 교실 한가운데서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어릴 적부터 최수종의 인기는 최고였던 것이다.
“수종이가 외국으로 신혼여행 갔을 때였어요. 전화로 ‘엄마, 주름살 펴지는 제품이 있는데 이거 사갖고 간다~!’라고 말하더니 그걸 진짜 사온 거예요. 아이라이너 지우는 제품을 선물한 적도 있어요. 참 세심한 아들이에요.”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바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아들, 명절에 엄마 혼자서 하면 힘들다며 음식 장만을 도와주는 아들, 엄마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으면 재롱을 부려 웃게 만드는 아들,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엄마의 주름살이 걱정돼 주름 제거 화장품을 선물하는 아들. 바로 최수종이다.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어디 있겠느냐’마는 이숙경씨에게 최수종은 아주 특별한 아들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숙경씨는 한 달 전부터 컴퓨터 학원에 다니고 있다. 자판 익히기와 인터넷 검색하는 법은 이미 배웠다. 요즘은 글을 써서 저장하는 법과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큰딸 가족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연기하느라 몸고생 마음고생이 심한 아들 최수종에게 위로의 글을 건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아들 최수종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본다는 이숙경씨. 그는 엊그제 드라마 ‘대조영’에서 최수종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두들겨 맞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금세 눈물을 글썽인다.
“아들이 시청자들에게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항상 눈물겨워요. 내 바람은 단 하나예요. 지금처럼 늘 노력하고,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지요. 그 이상 더 바랄 게 있나요.”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이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