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될 거란 생각은 안 해요. 예나 지금이나 ‘무대뽀’ 정신으로 살고 있죠”.
「광수생각」으로 유명한 만화가 박광수가 연기자로 데뷔한다. 오는 7월에 방송될 예정인 SBS-TV 수목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가제)’에서다. 박광수는 극중에서 의처증에 걸린 남자 역을 맡았다. 만화 그리기를 그만둔 뒤 시나리오를 쓰던 중 우연찮게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는 그를 만나봤다.
「광수생각」의 박광수(38)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우리 동네에는내 손톱 닮은 초승달이 뜬다’라니. 이 유별난 상호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광수생각」의 박광수가 운영하고 있는 소주집 이름이다. 역시 ‘광수(의) 생각’답다. 상호가 너무 어렵다고 말하자 그는 사람들이 줄여서 ‘우동초’ ‘초승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웃었다.
박광수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웃으면 작아지는 눈매 하며, 넉넉한 체격, 편안한 말투까지. 그동안의 안부를 묻자 “만화 연재를 하지 않는 것 빼고는 똑같다”고 말했다. 그가 만화 연재를 그만둔 지도 벌써 4년이 흘렀다.
“만화 연재하는 데 많이 지쳤어요. 무슨 일을 할 때는 일단 즐거워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만화 연재하는 게 즐겁지 않았다는 건 아니에요. 즐거운 면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스트레스가 더 컸죠. 사람 만나서 놀고 술 마시는 거 좋아하는데, 날마다 한 편씩 마감을 해야 하니…. 그게 아주 힘들었어요. 이런 말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만화 안 그리는 요즘 참 행복해요.”
만화 그리는 걸 그만두고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그 사이 책을 두 권 냈고, 영화 트리트먼트(시나리오와 시놉시스의 중간 단계)를 썼다. 트리트먼트는 사랑 이야기와 코미디를 포함해 네 편이나 됐다. 그가 쓴 트리트먼트에 전문 작가가 붙어서 시나리오를 완성하려 할 무렵, 영화사 제작부장이 돈을 갖고 행방을 감췄다 한다. 그의 3년 반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나 그의 영화 트리트먼트에 관심을 보이는 곳이 있어 좌절하지는 않았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본인이 쓴 시나리오로 연출하는 것.
“영화 연출을 준비하던 중 영화사 일이 그렇게 되는 바람에 막막했어요. 영화 조감독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받아주질 않더라고요. 영화 제작 현장에 가서 지켜보면 뭘 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판에서 제3자로 보는 거랑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보는 거랑 많이 다를 거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현장 분위기도 익힐 겸 해서 드라마 출연을 하게 된 거예요.”
지금 운영하고 있는 소주집 역시 ‘무대뽀’ 정신으로 오픈했다. 친하게 지내는 형, 친구들과 술을 먹는 자리에서 얘기가 나왔고, 3일 만에 그 멤버가 동업하기로 결정했다. 워낙 소주를 좋아해 소주집을 하나 갖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이 실현된 것이다. 그는 “워낙 경기가 안 좋아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우리만의 아지트’가 생겨서 좋다”고 말했다.
의처증에 아내를 때리기까지 하는 남편
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20부작 미니시리즈다. 전직 제비와 대기업 후계자, 변호사와 주책 맞은 여비서가 주인공이다. 드라마는 이 남녀 주인공을 통해 현대 여성들이 앓고 있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그려내려 한다. 김승우와 배두나가 주인공이고 손현주, 김성령, 안선영 등이 등장한다. 박광수는 안선영의 남편 역을 맡았다.
“의처증에 걸린 남자예요. 드라마는 한 회사의 사택을 배경으로 하는데, 우리 부부는 아내의 첫사랑인 남자, 김승우씨와 같은 공간에 살고 있죠. 안선영씨를 포함해 사택에 사는 모든 여자들(아이부터 노인까지)이 김승우씨를 좋아해요. 남편이 아내를 의심할 만한 상황이 곳곳에 나타나요. 이 남자는 아내를 때리기도 해요. 친한 연기자들 말에 따르면 때리는 연기를 하는 게 정말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실감 나는 연기를 위해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60~70%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안선영씨랑 소주 한잔하면서 얘기해봐야겠어요(웃음).”
비록 드라마 속에서는 의처증에 폭력까지 휘두르는 형편없는 남편이지만 현실의 박광수는 전혀 다르다. 아내에게 사랑의 편지 쓰는 건 기본이요, 맛있는 햄버거를 먹으면 햄버거를 좋아하는 아내 생각에 퀵 서비스로 배달시키기도 한다. 야구팀 후배들을 동원, 초로 하트를 만들어 아내를 감동시킨 일도 있다.
“요즘은 가게 일로 너무 바빠서 가족들을 잘 못 챙겨요. 특히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더 크죠. 그래도 항상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예나 지금이나 나의 ‘보물 1호’는 ‘가족’이에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단역인 줄로만 알았는데 6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출연하게 됐다는 박광수. 부담이 클 것 같았다. 그는 “부담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면서 “정말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만든 야구팀 멤버로 있는 탤런트 정보석도 “평소대로만 하면 충분히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줬다고 한다. 대본 리딩을 함께 해주겠다는 연기자도 여럿 있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오는 6월 초, 박광수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발을 내딛는다. 이번 드라마 촬영이 먼 훗날 자신의 시나리오로 영화 연출까지 하고 싶다는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