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만든 노래’가 들려주는 음악세계 가수 이적

‘나무로 만든 노래’가 들려주는 음악세계 가수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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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앨범 전체를 들어보세요. 불법 다운로드를 받아서라도. 그렇게라도 들려드리고 싶은 결과물입니다”


이적(33)은 겸손하지만 친근하지는 않다. 그의 행보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함께 뒹굴고 웃는 연예인의 그것과는 다르다. 막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이적을 생방송 10분 전까지
인터뷰했다.


‘나무로 만든 노래’가 들려주는 음악세계 가수 이적

‘나무로 만든 노래’가 들려주는 음악세계 가수 이적

나무로 만든 노래
95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이적은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고 대중을 자극하며 ‘이적’만의 공간을 연출해왔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패닉과 긱스, 카니발, 그리고 세 장의 솔로 앨범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소설 「지문사냥꾼」으로는 작가가 됐다. 자신에 대한 꾸준한 모색과 소통의 열정이 없다면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이적의 네 번째 독집 앨범 「나무로 만든 노래」는 언뜻, 지금까지 ‘이적의 음악’과는 다르게 들릴 수 있다. 패닉의 이적을 기억하는 다수의 대중이라면 이질감은 더하다. 이적의 음악을 떠올렸을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인 ‘직설적인 가사’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들어냈다. 하지만 이적은 여전히 이적이다. 전체적인 톤이 다르다고 해서 그가 변한 것은 아니다. 이번 앨범에도 변함없이, 패닉, 긱스 그리고 카니발의 이적이 묻어난다. 스스로 ‘가장 이적스러운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의 앨범 중 상위권의 만족도예요. 아주 괜찮은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이번 앨범이 ‘최고’가 될 것 같은데, 지금 제가 그렇게 얘기하면 팔불출 같잖아요(웃음).”

이적의 홈페이지 이적닷컴(leejuck.com)에는 앨범 구상 당시의 심정이 적혀 있다. ‘앨범 전체가 사랑 이야기로 꾸며질 것 같은데 이래도 괜찮을까요?’라며 자문했다. 과연 3집의 달라진 질감은 낯설었다. 고민의 흔적이 묻어났다. 이적은 숨 가쁘게 이어오던 단락을 가까스로 마무리하고, 다시 차분하게 새로운 단락을 쓰기 시작했다.

“4집을 들으면서 (저의) 예전 음악이 생각난다는 분들도 계시고,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오류인데, 듣는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거지요. 듣고 느끼는 사람이 중요하니까요. 저도 영화 보면 그렇거든요. 하하. 옛날 느낌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정확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방송 녹화 직전에 만나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이적의 말에는 여유가 묻어 있었다. 음악에 관해서만큼은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앨범의 완성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록된 12곡 중 어느 곡이 타이틀이라도 상관없었다.

타이틀곡은 김동률(33)의 추천으로 정해졌다. ‘다행이다’는 원래 1분 50초 정도의 짧은 곡이었다. 곡을 더 붙이고, 가사를 얹어 3분 30초의 곡으로 완성했다.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 있어서, 되지 않는 충고라도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사랑노래 ‘다행이다’는 초반, ‘그의 여자친구에게 바치는 곡’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언론에 알려졌다. 음악 자체로만 평가받고 사랑받고 싶은 뮤지션의 입장에서 불만은 없었을까.

‘나무로 만든 노래’가 들려주는 음악세계 가수 이적

‘나무로 만든 노래’가 들려주는 음악세계 가수 이적

“뭐, 자질구레한 불만이야 있지만 보도하는 입장도 이해하니까요. 그냥 ‘노래 참 좋더라’하면 기사가 안 되잖아요. 하지만 사연이 있는 노래라면 기사가 되니까.”

‘나무로 만든 노래’라는 주제에서 드러나듯, 12곡의 노래는 따뜻하고 자연스럽다. 금속보다는 나무,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다. 어쿠스틱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악기 편성을 절제하고, 심플하게 갔다. 한결 편안해진 그의 목소리는 일기장을 읽는 듯하다.

“앨범을 ‘앨범’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번 앨범은 특히 그래요. 불법 다운로드를 받아서라도 한 번 다 들어보는 것이 좋아요. 그렇게라도 해서 들려드리고 싶은 결과물입니다.”


2007년, 한국 음악계와 이적
90년대와 2007년, 한국 음악시장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음반은 여전히 발매되고 있지만 노래를 음반으로 소비하는 리스너는 현격하게 줄었다. 음악이 ‘감상’의 영역에서 ‘패션’ 혹은 ‘배경음악’의 영역으로 옮아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발매일을 기다려 시디를 구입하고, CD플레이어에 얹고 앨범 전체의 향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MP3 플레이어에 ‘다운’받은 노래를 저장해 길을 걸으며, 혹은 책을 읽으며 음악을 틀어놓는다. 통화 연결음으로 소비되거나, 미니홈피 디자인의 요소로 이용된다.

“이제 음악은 희구할 만한 대상이 아니에요. 궁금하고, 갖고 싶던 예전의 지위에서 벗어났죠. 어디를 가도 음악은 나오지만 ‘침묵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가장 소극적인 의미에서만 음악이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이 살아가는 이상 음악이 없어질 수는 없기 때문에, 음악을 소비하는 최소한의 시장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감상이나 예술로서 접근의 대상은 아니라는 뜻이다.

“저 같은 아이가 지금 태어났다면 천국이죠. 좋은 노래는 인터넷에 다 있잖아요. 구하기 어려운 노래도 조금만 돌아다니면 구할 수 있고. 아마 음악 좋아하는 사람은 하드에 수천 곡씩 저장돼 있을 거예요. 하지만 다 들을 시간도 없고, 새로운 노래를 받으면 원래 있던 노래는 지워버리기도 쉽죠.”

노래를 소비하는 성향만 바뀐 것이 아니다. 시디를 구입하고 음악을 감상하는 대중의 절대적인 수가 줄었다. 그나마도 새로운 음악을 소비하지는 않는다. 예전에 있던 음반들을 감상하는 것에 그친다.

“대중이 새로운 음악, 다음 세대의 음반을 계속해서 소비해야 하는데, 그 층이 그다지 두텁지 않아요,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든 것 같아요. 더 낮을 수도 있죠. 그것이 현실입니다.”

이적 자신도 아쉬운 마음이다. 진지한 소비자가 줄어든다면, 진지한 음악 역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패션’으로 소비되는 음악, 거기에 걸맞은 음악만 남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해진 것은 다행이다. 이적은 소설 「지문사냥꾼」으로도 대중을 만났다. 책은 13만 부 이상 팔렸다. 출판계 역시 불황인 현실에서, 「지문사냥꾼」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썼던 것들을 모아서 낸 책이에요. 음악으로 안 되는 것들, 가사로는 못 쓰는 이야기를 썼고, 그것들이 모여서 책이 됐죠. 설레기도 했고, 욕먹으면 어쩌나 걱정도 했고. 하지만 잘돼서 다행이죠.”

최근에는 「지문사냥꾼」의 대만판도 출간됐다. 다양한 만화가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맡아 새롭게 구성한 책 「몽상만화 지문사냥꾼」도 출간됐고, 애니메이션, 뮤지컬로 각색도 앞두고 있다.

“본업이 음악이라고 생각하니까, 마음 편하게 작업했어요. 제가 ‘이적’이라는 사실이 플러스 요인이기도 하지만 장벽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죠. 제 지명도와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결국 내용물이죠.”


데뷔 12년, 이적의 자세
대부분의 가수들이 조로하는 한국 가요판에서 이적은 10여 년을 살았다. 젊은 시절에는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음악을 했다. 노래는 그를 ‘숨 쉬게 했고’ ‘꿈꾸게’ 했다.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예전 노래들이 당시에 그가 지을 수 있었던 최상의 결과물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창작자의 입장에서, 과거의 결과물이 부끄러운 마음은 없을까.

“옛날 앨범을 들으면 ‘그때’라서 할 수 있었던 것들이 많이 들려요. 투박하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것에서 오는 매력이 있죠. 아쉬운 점도 있지만 재미있고 흥미로워요. 그냥 되는 대로 아아악~ 저지르고 보는 느낌.”
그간의 행보를 ‘성공’의 잣대로 평가하기에는 애매하다. 하지만 음악인으로서 밟아야 하는 길이라면 망가지지 않고 왔다고 생각한다.

‘나무로 만든 노래’가 들려주는 음악세계 가수 이적

‘나무로 만든 노래’가 들려주는 음악세계 가수 이적

“남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했고, 그러면서 조금씩 늘었던 적도 있어요. 나쁘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고 자평합니다. 엄청난 상업적 성공은 아니었지만, 또 쫄딱 망한 적도 없거든요. 하하. 선방했죠.”

이적은 자신이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든다. ‘어딘가 나 같은 대중이 있어서 내 노래를 들어주겠지’하는 생각으로 노래를 짓는다. 그가 여전히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은 이적의 세계를 사랑하는 팬들 또한 여전하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느낌과 생각을 가진 대중이 있다고 생각하고 만듭니다. 운이 좋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 지명도가 높아지고 앨범도 팔리겠죠. 만일 그런 대중이 적다면 또 그만큼일 테고요.”

상업적인 성공과 음악성은 별개다.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음악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음악성이 뛰어나다고 해서 잘 팔리리라는 보장도 없다. 좋은 음악이 ‘팔리지’ 않는 경우는 그 때문이다.
“음악성은 복잡한 문제예요. 기술의 숙련도나 완성도만으로 좋은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죠. 엄청난 속주를 할 줄 안다고 해서 좋은 음악가가 아닌 것처럼.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깊이와 개성이 조화를 이뤄야죠.”


세월을 살아가는 재미
이적을 자극하는 것은 동시대를 호흡하는 뮤지션들이다. 누군가 탁월한 음악을 만들었을 때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진지한 자세로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켰을 때, 음악적인 발전도 가능하다.

“동료들의 음악이 너무 좋으면, 당장 집에 가서 곡을 쓰고 싶어요. 바비킴, 루시드폴, 마이엔트 메리, 다이나믹 듀오 같은 친구들은 지금 물이 올랐어요. 양동근씨는 일면식도 없지만 그 랩이 너무 좋고.”

마찬가지로, 이번 앨범은 다른 뮤지션을 자극했다. 음악인들로부터 특히 많은 칭찬을 들었다. 그렇게 많은 음악인들이 칭찬을 해준 경우는 지금껏 없었다. 팬 중에 한 분이 해준 칭찬도 인상적이다. ‘최근작이 최고작이 되는, 현재진행형인 뮤지션 중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는 평가였다.

서른셋,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이적은 성숙했다. 하지만 모든 20대가 그렇듯, 20대 초반의 이적은 ‘조울 상태’였다. 마음속에는 불안과 화가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었고, 모르는 것이 많았다.

“지금 그때 생각을 해보면, 껍데기보다 속이 더 바뀌었겠다 싶어요. 양희은 선배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스무 살은 스물이라서 좋고, 마흔은 마흔이라 좋다.’ 20대에는 그 말이 ‘자기 최면’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양희은 선배님의 말이 100%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조바심은 없다. 해가 지날수록 새로운 것이 보이고, 내면이 안정된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재미가 있어요. 재미있어하면서 하고 있어요. 나이는 정말 모든 사람이 똑~ 같이 들어가잖아요. 1초의 차이도 없이. 억울할 것도 없죠. 하하.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서 노쇠해지기 시작한다면 좀 다르겠지만요.”

이적은 지금 「지문사냥꾼」보다 긴 호흡의 또 다른 책을 준비하고 있다. 창작 뮤지컬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재미있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뮤직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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