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우먼 정재윤과 정지나 모녀의 특별한 외출

개그우먼 정재윤과 정지나 모녀의 특별한 외출

댓글 공유하기

“세계적인 배우들과 같은 무대에 서는 경험이 지나에게는 큰 자신감이 될 거라 믿어요”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살기에 누구보다 잘 안다고 여기지만, 어느 순간 내 가족이 맞는지 놀라는 때가 있다. 정재윤에게는 뮤지컬 오디션을 보는 딸 지나를 지켜봤을 때가 딱 그랬다. 심사위원 앞에서 주눅 들기는커녕 쩌렁쩌렁 목청을 돋워 노래하는 지나를 보던 정재윤은 ‘오디션장 보호자 출입금지’라는 원칙을 깨고 몰래 창문 틈으로 훔쳐본다는 사실도 잊은 채 “어머 재 왜 저래, 왜 저래”라고 외치고 말았다.


엄마 생각
“지나는 30년 전 저를 꼭 빼닮았어요”



개그우먼 정재윤과 정지나 모녀의 특별한 외출

개그우먼 정재윤과 정지나 모녀의 특별한 외출

나이도 어린 데다가 무대에 오른 경험이 없었기에 오디션 통과는 애당초 기대조차 않았다. 게다가 참가자 중 눈에 띄게 예쁜 동갑내기 혼혈 여자 아이를 본 뒤로는 깨끗이 욕심을 비웠다. 그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미스코리아 선’의 심경으로 속 편하게 집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다. 적어도 며칠 뒤 지나가 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는 5월 18일부터 국립극장 등지에서 공연되는 브로드웨이 오리지널팀 내한 뮤지컬 ‘킹앤아이’의 시암왕국 공주 역할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랑이 아니라, 연습을 많이 못했어요. 오디션 일주일 전에 지정곡과 자유곡 CD를 구해서 유치원 오가는 차 안에서 15분씩 들은 게 고작이거든요. 아이가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오디션 당일에도 입고 싶다는 옷 입혀서 들여보냈어요. 딴 건 몰라도 ‘자신 있게 재미있게 큰 소리로 하라’고 했더니 긴장하지 않고 호기롭게 노래했던 거 같아요.”

오디션을 통해 정재윤은 딸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승부사 기질을 읽었다. 기자가 쥐어준 펜을 집어들고 그림을 그리느라 인터뷰는 귓등으로 듣는 줄 알았던 지나가 그건 아니라며 발끈했다. 엄마의 얘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욕심이 많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잘해야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았다”고 바꿔 말하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그림에 집중했다. 요즘 일곱 살, 만만하게 볼 나이가 아니다.

고백건대 정재윤과 지나의 동반 촬영을 앞두고 내심 겁을 먹었다. 지나가 포즈 취하는 걸 어려워하면 어쩌나, 몇 컷 찍지도 않았는데 지루해하거나 혹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면 어쩌나. 어떤 거물과의 인터뷰 못지않게 졸아든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준 건 일곱 살배기 지나가 보여준 프로 근성이었다.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쳐다보며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셔터 소리에 맞춰 포즈를 바꾸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인터뷰를 앞두고 2박 3일 동안 전지훈련을 다녀왔다고 해도 깜빡 속을 법했다.

“제가 어렸을 때 지나랑 똑같았대요. 옛날에는 매달 나오는 초등학생용 학습지가 있었잖아요? 제가 표지모델을 했었어요. 하도 하고 싶다고 조르니까 아버지가 시켜주셨어요. 이런 걸 두고 피는 못 속인다고 하나요?(웃음)”

늘 품안의 아기인 줄만 알았던 지나의 이름으로 된 출연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기분이 참 묘하더랬다. 적지만 계약금까지 받으니 웃음까지 났다. 물론 진행비로 더 많은 비용을 쓰고 있지만, 아이가 이번 작품을 통해 얻는 자신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있기에 기꺼이 지나의 매니저 역할을 자청했다.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듣고 기쁜 건 잠시, 이틀 동안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공연이 밤 10시 반에 끝나면 아이는 12시가 다 되어야 잠자리에 들 텐데, 공연히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하지만 연습을 힘들어하지 않고 매일같이 뮤지컬 OST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걸 보니 잘 시켰다 싶어요.”


지나 생각
“생각해보니 노래는 엄마가 더 잘하는 거 같아요”

Q 뮤지컬 연습해보니 뭐가 가장 재미있었어?
A 다 재밌어요.

Q 공연 얼마 안 남았는데 떨리지 않아?
A 아뇨. 재밌어요.

Q 뮤지컬에서는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잖아. 그중 뭐가 제일 재밌어?
A 연기하는 거랑, 노래요.

Q 사진 찍을 때 포즈 잘 취하던데, 평소에 연습하는 거지? 그치?
A 아닌데. 그냥 TV에서 보고 따라 하는 거예요.

Q 지나는 눈물 연기 잘한다면서? 우는 연기 할 때는 무슨 생각하면서 우는 거야?
A 아무 생각도 안 해요. 그냥 마음속으로 나와라, 하면 나와요.

Q 노래는 엄마가 잘하는 거 같아, 지나가 잘하는 거 같아?
A 음, 엄마는 뮤지컬 노래 몰라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노래는 엄마가 더 잘해요.

Q 엄마가 유명한 사람이라는 게 지나는 어때?
A 근데, 이모! 왜 화장실에서 묻는 거예요?

Q 그게 말이지 …. 지나야, 이만 나가자.

개그우먼 정재윤과 정지나 모녀의 특별한 외출

개그우먼 정재윤과 정지나 모녀의 특별한 외출

저녁 라디오 생방송을 앞두고 정재윤이 늦은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지나를 데리고 화장실에 갔다. 까치발을 서서 수도꼭지를 돌린 뒤 손을 씻는 지나에게 질문을 퍼부었다가 한 방 먹었다. 엄마가 억지로 시킨다고 뭘 할만한 아이가 아니다, 역시나.

요즘 지나의 관심사는 피겨스케이팅이다. 두 팔을 활짝 펴고 한쪽 다리를 하늘로 향해 치켜든 포즈는 말할 것도 없고 도도한 표정 연기까지 시쳇말로 김연아 선수 뺨칠 정도다. 어느 어미가 그렇지 않겠는가마는, 지나의 재롱을 바라보는 정재윤의 눈에는 사랑이 한가득이다. 결혼 초 첫아이를 유산하고 불임 진단을 받을 정도로 몸이 상했던 정재윤은 이후 임신을 확인하자마자 일체의 방송 활동을 접고 태교에 집중했다. 노래를 들려주고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태교 덕을 지금 보는 듯하다고 했다. 지나가 워낙 말을 잘 듣는 덕분에 미운 네 살이니, 더 미운 일곱 살이란 걸 모르고 지낸다고.

“지나를 임신하면서 일체의 방송 활동을 접었죠. 근 4년 동안 매일같이 아이를 데리고 놀이 공부를 하러 다녔어요. 한때 몸이 좋지 않아서 도우미 아주머니를 부른 적이 있는데 그분이 저처럼 집 밖에 안 나가고 아이 옆에 붙어 있는 사람은 첨 봤다고 할 정도로 집과 아이밖에 모르고 살았어요. 그동안 제 역량을 잃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지나를 키웠다는 점에서 후회는 없어요.”

딸이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재윤은 CNN 앵커라고 답했다. 외국인 유치원에 입학한 지 서너 달 만에 영어를 무리 없이 구사하면서 각국 출신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내는 지나를 보면서 그 희망을 무리 없이 실현시킬 수 있겠다 싶었는데, 요즘은 어쩐지 브로드웨이 쪽으로 시선이 간다고.

정재윤의 가슴에는 10여 년 전 ‘아가씨와 건달들’의 여주인공 아들레이드 역을 맡아 무대에 올랐던 흥분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매주 수백 명 방청객 앞에서 개그를 하고,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공개방송 MC를 맡아도 떠는 법이 없었던 타고난 입담가 정재윤이 뮤지컬 공연 첫날에는 맥을 못 췄단다. 맨 앞줄에 앉은 지인들이 어찌나 신경 쓰이는지 피땀으로 공들인 기량의 50%도 발휘하지 못했다. 방송은 편집의 여지가 있고, 대사를 잊으면 애드리브로 넘길 재간이 있었지만 배우들의 동선과 역할이 퍼즐처럼 꽉 짜인 뮤지컬 무대 위에서는 내 작은 실수가 상대 배우에게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긴장은 마지막 공연의 막이 내려오는 순간, 수백 배의 뿌듯함으로 그녀의 가슴을 채웠다.

“그 힘든 여정을 마치고 나니 마치 득음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어요. 가장 힘들고 걱정되는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낸 뒤부터 살아가는 동안 겁나는 일이 없었어요. 비록 이번 공연에서 지나의 역할이 크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배우들과 같은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삶에 있어 큰 자신감이 될 거라 믿어요.”


지나 & 엄마 생각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지나는 큰 자신감 얻었으면”
지난해 10월 초부터 원음방송 ‘정재윤의 가요!가요!가요!’의 진행을 맡으며 정재윤은 본격적인 활동 재개를 선언했다. 다양한 직업과 성별, 직업군을 넘나드는 청취자와 나누는 교감에서 녹슬지 않은 순발력이 묻어난다. 덕분에 평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서울 시내 버스에서는 정재윤의 목소리만 들린다고 할 정도로 운전기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나 돋보이는 코너는 매일 청취자가 신청한 노래를 직접 불러주는 ‘한다, DJ 라이브.’ “어려서 꿈이 가수였다는 거 그거 하나로 버티고 있다”는 멘트는 지나친 겸손! 트로트부터 댄스, 발라드 등 장르를 초월하는 그녀의 노래 실력은 이미 SBS ‘도전 1000곡’ 우승을 통해 공인되지 않았나. 입담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정재윤, ‘아줌마’ 되고 제대로 탄력받았다. 최근에는 교포를 대상으로 하는 KBS 월드라디오 ‘정재윤의 생생코리아’의 진행을 맡은 그녀는 그 사이 영화 출연까지 했단다.

“옛날에 박세민 감독이 도와달라고 해서 출연한 ‘신사동 제비’ 이후 두 번째 작품이에요(웃음). 인간극장으로 방영된 사연을 발레리나의 스토리로 스크린에 담아낸 작품인데 아주 가슴 따뜻한 작품이에요. 후반 작업 중이니 곧 개봉할 거예요. 감독님 이름 들으면 깜짝 놀라실 걸요.”

개그우먼 정재윤과 정지나 모녀의 특별한 외출

개그우먼 정재윤과 정지나 모녀의 특별한 외출

개그맨 선배 임하룡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고 말하는 정재윤은 ‘여자 임하룡’이 되고 싶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국민을 웃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배우로서 감동을 주었던 그의 행보를 닮고 싶은 모양인데, 특이한 건 정재윤이 맡고 싶은 역할은 하나같이 직장 내에서 후배들을 못 살게 구는 히스테릭한 선배 역할이나 궁궐 내 세력들을 이간질하는 악독한 상궁이란다. 자신의 연기로 인해 시청자들 혈압이 좀 올랐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이라니 어쨌든 두고 볼 일이다.

“아직도 제가 이민 갔다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게다가 아이 키우느라 쉬었더니 그나마 간간이 걸려오던 섭외 전화마저 끊어졌지 뭐예요. 그런데 요즘은 지나와 함께 출연했으면 좋겠다는 섭외 전화가 얼마나 걸려오는지 몰라요(웃음).”

지난 1998년 11월 재미교포 2세 사업가 정철우씨와 결혼 후 정재윤은 남편의 사업 문제로 방송가에 고별 인사를 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국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다시 돌아오게 됐던 것. 남편 정씨는 지금도 일년에 절반은 미국에서 지낼 만큼 바쁘다. 연예 활동보다는 가정 생활에 전념하기를 바랐던 남편을 설득해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바쁜 스케줄도 한몫했단다.

“솔직히 평일 저녁 라디오 생방송이 주부에게는 버거운 시간대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지나의 유치원 등하교는 제가 직접 시켜주고 있어요. 도시락도 제 손으로 준비해서 보내고요.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스케줄을 몰아서 하면 가능하거든요. 그 시간이 아니면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죠.”

지난 어린이날 정재윤은 지나를 데리고 세 군데를 돌아다녔다. 일단 석빙고 체험을 위해 방이동에 갔다가, 삼청각에서 미니어처 솟대를 만들고 민요교실을 찾아서 장구를 배웠다. 주말마다 함께해주던 아빠의 빈자리를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주기 위해 미리 인터넷을 뒤져서 일정을 뽑아둔 덕분이다. 민요를 따라 부르라고 하니 영 내켜하지 않았던 지나가 집에 돌아와서 그날 배운 민요를 흥얼거리는 걸 보니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 싶더라고.

“직접 만든 솟대에 소원을 적어서 묶어서 가져왔거든요. 나중에 집에 와서 지나가 무슨 소원을 적었는지 궁금해서 몰래 펴봤더니 ‘엄마 절대 아프지 않기’라고 적었더라고요. 조그만 애가 벌써 그래요(웃음).”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장소협찬/ Space C(02-547-9177)
헤어 & 메이크업 / 라떼트(02-3444-2326) 메이크업 박지숙 원장·헤어 서은미 실장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