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카운슬러가 장가는 왜 안 가냐고? 머릿속이 복잡한 연애보다는 달콤한 토요일 낮잠이 인생에 더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
‘007’의 제임스 본드는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다. 다만 그걸 입 밖에 냈다가는 손가락질 받기 때문에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 건 양주 반 병이면 다 드러난다.
처음에는 “얼마나 절박했으면 평생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까?”라며 신기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친구들이 정말 좋아졌다.
장난처럼 시작한 방송 생활
말투가 재미있다.
말투가 몇 개 된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지금은?
인터뷰 톤이다. 방송이랑 많이 다른가? 방송에서의 말투는 재미를 위해서 다분히 입체파처럼 강조된 것이다.
어쩌다 이 길에 들어섰나?
모르겠다. 왜 이쪽으로 풀렸는지. 음반회사에 다니다 보니까 직업적으로 방송국 PD나 작가들과 친했다. ‘돌아온 선수 클리닉’을 맡게 된 것도 윤선원 PD랑 술 마시며 농담하다 픽업이 됐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이렇게 될 줄 몰랐다. 회사원으로 평생 살아갈 생각은 없었지만 직장 생활을 9년 정도 하다 보니 한동안 그렇게 살 줄 알았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시작한 일이 이제와 본업이 됐다. 팝칼럼니스트로서 DJ나 방송 활동 하는 건 잘 맞나?
재미있다. 그리고 돈도 좀 된다. 팝칼럼니스트만 해서는 먹고살기 힘들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뮤지션을 꿈꾼다. 나는 고등학교 때 뮤지션으로서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다. 칼럼니스트는 실패한 뮤지션이 오는 곳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DJ밖에 없는데, 잘 맞는다.
DJ 김태훈이 존경하는 DJ는?
나는 김창환, 배철수 선배를 존경하는데, 요즘은 하하다. 하하는 진솔하고 자기 방식대로 이야기를 잘 끌고 나간다.
라디오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2005년에는 「내일도 나를 사랑할 건가요?」란 책도 펴냈다. 인터뷰 때문에 사서 읽었는데 재밌더라. 많이 팔렸을 것 같은데?
고맙다. 덕분에 내 통장에 또 8백원 들어오겠다. 아까 캔커피 샀으니 그걸로 ‘퉁’치자. 아무튼, 나도 놀랐다. 생각보다 꽤 많이 팔렸다. 책 팔아 번 돈은 술 마시고 아웃도어 장비 사는 데 거의 다 썼다. 덕분에 방 안에 이것저것 장비가 많다.
쉬는 날, 낮잠 자거나 바둑TV 본다. 남자들끼리 승부가 걸리면 경쟁심이 강해진다. 할아버지들 장기 두면서 싸움 나듯 나도 바둑을 두면 쫀쫀해진다. 처음에 친목이라고 시작했다가 지면 억울하고 이기면 아이처럼 기쁘다. 나는 승부욕 때문에 인생이 많이 피곤했다. 서른 중반이 되면서부터 운동도 그렇고 혼자 할 수 있는 게 좋더라. 바둑도 이제는 TV 보고 혼자 복귀하는 ‘보는 바둑’으로 바꿨다.
고장난 TV로 낚은 팬들
청춘스타도 아닌데 팬들이 많다.
그러게 말이다. 왜 날 좋아하는 걸까? 아마도 그동안의 연애 상담이 ‘예쁜 사랑 키워가세요’처럼 좀 도식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상담전화는 주로 여자가 많이 하는데 대부분 ‘어떻게든 이 망가진 텔레비전을 고쳐서 쓸 수 없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차라리 미련 없이 버리고 새 TV를 사세요. 고쳐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브라보마이라이프 ‘돌아온 선수 클리닉’에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카운슬링했다면 SBS 러브FM ‘잠 못 드는 밤, 김태훈입니다’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카운슬링을 했다. 성인들과 달리 청소년들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얼마나 절박했으면 평생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까?”라며 신기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친구들이 정말 좋아졌다. 나 역시 그랬고. 우리 앞 세대도 그랬던 것처럼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 봤을 때는 뻔한 고민이지만 그 속에서 어린 친구들은 힘들어한다.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야~ 임마, 나도 그랬어. 괜찮아. 다 그런 거야~”라고 말하며 친구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장남이다. 힘들 때 좋은 형이나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고민 상담 한 번에 인생이 바뀔 수는 없다. 힘든 순간은 언제고 찾아올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사랑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말한다면?
누굴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을 권력으로 남용하면 안 된다.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닌데 남편, 마누라 행세하는 건 좀 웃기지 않나. 최근에 가장 놀란 게 연인끼리 이메일 비밀번호 공유하고, 휴대폰 친구 찾기로 어디 있는지 다 알아야 하고. 휴대폰 문자 체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연애에 있어 제일 중요한 건 애정인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신뢰다. 신뢰라는 것은 믿을 짓을 했기 때문에 믿는 것도 있겠지만 그냥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믿는 것이다. 문자를 확인하고 이메일을 본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뭔가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해서 얻어지는 믿음은 더 큰 의혹을 낳는다.
어디서 무엇이든 배운다
많이 읽는 편은 아니고 일주일에 두 권 정도 본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책 읽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또 꼭 생일 선물로 책을 선물하셨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책 읽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내가 책 고르는 기준은 하나다. 재미있을 것 같으면 무조건 산다.
여러 책 중 불문학에 심취했나 보다.
불문과는 여자들이 예쁘다고 해서 갔다.
그럼 음악은 언제 공부했나?
중학교 때부터 라디오 끼고 살았다. 그러다가 대학 가서 책도 보고 영화도 보면서 독학했다.
방송에서 아버지 말씀을 많이 인용한다. 지금처럼 말을 잘하는 비결이 아버지 덕분은 아닌가?
사실 아버지는 말이 별로 없으셨다. 대신 고비 때마다 유머가 있으셨다. 싸움질하고 경찰서 끌려가 앉아 있는 아들에게 꾸짖는 대신 “경찰서 출입도 하시고~ 이제 독립하셔야겠네~”라는 식이었다.
‘경찰서 출입도 하시고’ 학교 다닐 때 문제가 많았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때 쌈질도 좀 하고, 술도 좀 마셨다. 지금 입술 옆에 있는 상처가 석천호수 근처에서 술 먹고 영문도 모르고 맞아서 생긴 거다.
맞기만 했나?
그날은 맞기만 했다. 아무튼, 누구나 그렇지만 나 역시 학창 시절은 질풍노도였다. 불만이 많았다. 아버지 사업이 기울고 학교에서도 공부를 못한다고 맞았다. 그때 선생님한테 “우리가 여기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당신들이 원하는 것은 서울대 가는 1%인데, 그 애들만으로는 학교 운영이 안 되니까 등록금 부대로 여기 있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가 정말 죽도록 맞았다.
학창 시절 한창 방황할 때, 아버지가 “세상에 두 가지 바보가 있는데, 하나는 한 번도 못해본 바보와 두 번씩 하는 바보”라며 “시간을 때운다고 생각하지 마라. 지금 위치에서 뭔가 배우지 못한다면 어디서도 뭔가 배우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날 이후 어디서 무엇이든 배우려고 애쓴다. 군대에서 운전병이었는데, 정비를 배웠다. 그렇다고 내가 자격증을 딸 만큼 훌륭한 실력은 아니고 최소한 카센터에서 사기는 안 당할 정도는 된다.
김태훈 그가 밝히는 진짜 연애담
그나저나 연애 카운슬러가 장가는 안 가나?
별로 생각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생각이 없어진다.
자유연애주의자인가?
자유연애주의자는 아니다. 일부일처제를 신봉한다. 방송에서 그런 부분에 대해 솔직한 편이라 피해 본 적이 많은데 나는 그냥 나다. 내가 결혼한 사람도 아니다. 영화 ‘007’의 제임스 본드는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다. 그걸 왜 나쁘게만 보나? 다만 그걸 입 밖에 냈다가는 손가락질 받기 때문에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 건 양주 반 병이면 다 드러난다.
지금까지 정식으로 사귄 사람은?
스치듯 만난 사람은 무수히 많다. 정말 사랑했던 사람은 8명이다.
그중에 결혼할 뻔한 여자도 있었겠다.
물론 있었다. 서른다섯쯤에 만난 분을 참 사랑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여자들 중에 제일 사랑했고 결혼하고 싶다고 느꼈던 첫 여자였다. 그런데 결혼이란 게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더라.
지난 사랑에 대한 미련은 누구나 남게 마련이다. 서른다섯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결혼은 타이밍이다.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와 유지태가 처음 만났을 때, 이영애가 “늦으셨네요”라고 한다. 극중 이영애는 한 번 결혼을 했던, 사랑의 감정을 믿지 않는 여자다. 그에 반해 유지태는 순수한 열정으로 사랑에 빠진다. 결론적으로 유지태는 이미 사랑에 대해 순수성을 잃은 여자에게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과연 지금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너무 늦었다. 나도 변하고 그 사람도 변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남자들이 으레 하는 실수가 늦은 밤 옛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늦은 밤 혼자 있는 날, 그런 충동이 들 때 나는 바둑 둔다. 물론 외롭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 받아들인다. 술은 한잔 마시고 싶은데 친구는 없고, 그럴 때 아무나 붙들고 술 한잔 하자고 전화를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받아들이는 게 최고다. 그게 책일 수도 있고 영화, 음악이 될 수도 있다.
기자가 “어떤 여자를 만나면 결혼할 마음이 생기겠냐”고 묻자 김태훈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여자가 좋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연락이 안 될 때 “바빴구나”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좋다고 말이다. “그런 여자가 있겠냐”고 되묻자 그는 “이 나이쯤 되면 있어”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줬다.
“예전에 4년 동안 사귀었던 아가씨랑 헤어지고 주말에 낮잠을 자는데, 너무 행복했다. 그러고 보니 4년 동안 한 번도 주말에 집에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머릿속 복잡한 연애보다는 달콤한 토요일 낮잠이 내 인생에 더 필요할 때도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의 좌우명 평화, 평화롭고 싶다.”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박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