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후 첫 작품, 뮤지컬 ‘해어화’로 돌아온 배우 홍경인

전역후 첫 작품, 뮤지컬 ‘해어화’로 돌아온 배우 홍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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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얼굴, 익숙한 이름이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배우 홍경인의 연기 스펙트럼을 단숨에 가늠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도전하고, 변화를 꿈꾸는 ‘연기자’다.


“제 이름을 알리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요. 배역으로 관객의 기억에 남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뮤지컬 ‘해어화’와 홍경인
홍경인은 서른 한 살 남자다. 아역 배우로 데뷔, 오랫동안 연기자의 모습으로 대중 곁을 지켜온 그에게 서른하나라는 나이는 새삼스럽다. 데뷔는 1988년 MBC-TV 베스트셀러 극장 ‘강’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전태일’ 등 개성 있는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남자 셋 여자 셋’에서의 코믹한 이미지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2006년 11월 29일 제대 이후 첫 작품으로 뮤지컬 ‘해어화’를 선택했다.

전역후 첫 작품, 뮤지컬 ‘해어화’로 돌아온 배우 홍경인

전역후 첫 작품, 뮤지컬 ‘해어화’로 돌아온 배우 홍경인

“매력적인 인물이에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세상에 불만을 품은 혁명가죠. ‘사랑을 찾아 혁명을 꿈꾸는 인물’이랄까요.”

홍경인이 생각하는 ‘해어화’의 큰 주제는 사랑이다. 신분의 격차로 이루어질 수 없는 젊은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킨다. 거기에 더해지는 혁명의 줄거리는 역동적이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사랑을, 그리고 우정을 녹여냈다.

“관객들이 그들의 슬픈 사랑을 보면서 함께 슬퍼했으면 해요. 눈물도 흘렸으면 좋겠고요. 제가 작품 속 ‘산하’를 연기하면서도 가슴이 아팠거든요.”

입대 전 그는 코믹하고 가벼운 연기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전역 이후 임하는 첫 작품에서는 ‘전태일’을 연기했던 예전의 진지한 모습을 찾고자 했다. 노래, 춤, 연기, 미술 등 종합 예술인 뮤지컬을 첫 작품으로 택한 것도 이유가 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 속에서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코믹하고 친숙한 느낌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너무 가볍게 여겨지는 것 같았어요.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볍게 대하는 느낌이랄까요. 나쁘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연기했던 느낌을 되찾고 싶었어요. 지금의 저에게는 그게 맞습니다.”

‘해어화’의 연출자는 배우 허준호(43)다. 기회는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경인아 너 나랑 뮤지컬 하나 같이 하자’는 허준호씨의 말에 ‘네~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했던 것이 전부다. 언제 연습에 들어가는지, 무슨 작품을 말하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은 대본을 보여주며 ‘뭐 하고 싶은 거 찾아봐’라고 하기에 ‘산하’를 골랐다. 허준호씨는 ‘그래 알았다’라고 대답했다.

“지금까지 쌓여온 믿음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95년 ‘젊은이의 양지’에서 처음 만난 이후 여러 작품을 같이했어요. 서로 믿기 때문에 준호형도 저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이고, 저도 형을 따라갈 수 있는 거죠.”

최근 장혁, 윤계상 등의 연기자들이 전역 이후 보여준 성숙한 모습과 긍정적인 평가에 부담을 느낄 법도 하지만 홍경인은 의연하다.

“그 친구들이 잘되는 것은 참 좋아요. 하지만 군대에서의 경험이 큰 계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원래 열심히, 잘하는 친구들이었고. 이번 작품은 저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고, 중요한 시기예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동심이 가르친 연기
지금까지 연기했던 수많은 인물 중,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행복했던 인물로 그는 ‘전태일’을 꼽았다.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나는 작품이 좋아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기억에 남네요. 어릴 때 제 연기에 대한 평가를 보고 한동안은 ‘내가 연기를 잘하는구나’하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세간의 평가와 언론의 부추김이 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 장면에서 다른 배우와 같이 연기를 하는 경우, 상대 배우의 기운에 밀린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을 정도다. 한 컷에 두 명의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경우 상대가 빛나도록 도와야 하는 경우가 있고, 자신이 빛나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건 에너지의 문제죠. 어느 정도는 계산을 하고 연기를 해요. 제가 상대의 에너지에 눌린다고 생각했던 적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그도 철저하게 깨졌던 작품이 있다. 드라마 ‘일곱 개의 숟가락’에서였다. 작품에서 그는 소년 가장이었다. 할아버지가 있었지만 경제력이 없는 데다 밑에는 4명의 동생까지 있었다. 홍경인을 깨뜨린 것은 동생 역을 맡았던 아역 배우들이었다.

전역후 첫 작품, 뮤지컬 ‘해어화’로 돌아온 배우 홍경인

전역후 첫 작품, 뮤지컬 ‘해어화’로 돌아온 배우 홍경인

“예를 들어 슬픈 연기를 한다면, 성인 연기자들은 어느 정도 기술을 알아요. 어떻게 연기해야 더 슬픈지 기술로 알고 있는 거죠. 그런데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믿음이거든요. 아이들은 기술을 몰라요. 연기가 아니라 정말 그 상황 자체에 녹아드는 모습을 봤죠. 그건 아무리 계산을 해도 이길 수가 없어요.”

‘일곱 개의 숟가락’ 이후 자신이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언제부턴가 거짓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아이들의 연기를 보면서 ‘저런 마음을 가지고 연기를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순수하게 100% 상황에 녹아드는 아이들만큼은 아니더라도, 항상 그 이상을 생각하게 됐다.

“연기자는 참 좋은 직업이에요. 연기를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둥 연기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제가 연기를 했을 때 보는 사람이 어떤 감정을 함께 느껴주면 고맙죠. 그게 가장 기분 좋아요.”

연기를 통해서 홍경인 자신을 알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배역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배우가 연기 아닌 제작, 연출, 투자 등의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연기 아닌 다른 것에는 휘둘리고 싶지 않다. 무대 위에 있는 저 배우가 홍경인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몰라도 괜찮다. 캐릭터를, 그리고 연기 자체를 기억해줬으면 한다. 이번 뮤지컬을 통해서도 다른 색깔을 내는 배우가 되고 싶다.

“관객의 입장에서 뮤지컬의 몰입도는 영화나 드라마의 그것과는 달라요. TV는 다른 것을 하면서도 볼 수 있고, 영화는 여러 곳에서 하지만 뮤지컬은 딱 한 곳에서 하잖아요. 그리고 조명을 비추는 무대에 관객의 시선과 감정이 집중되니까. 비싼 표를 사서 힘들게 보러 오시는 관객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더 큰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요.”


서른하나, 사랑과 도전
‘서른’이라는 나이는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큰 의미가 되곤 한다. 해질 녘에는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또 하루가 멀어져’가는 느낌이 심난하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는 느낌도 가슴을 친다.

홍경인에게 서른은 그냥 ‘서른’이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명제는 진부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그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프로’들과 함께 연기해온 그가 일찍부터 성숙한 고민을 시작한 탓이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과 일하다 보니, 저는 애잖아요, 그런데 애 취급을 안 하는 거예요. 제 생각에는 30대 정도에 경험해야 할 것들을 중학교 때 경험한 것 같아요. ‘내가 왜 지금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하는 게 당시의 고민이었어요(웃음).”

나이가 들면 고민거리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물이 되고 대학생이 돼도 차이는 없었다. 마흔이 넘은 형들과 만나서 얘기를 해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어른일 뿐이지, 생각하는 것은 비슷해요. 저도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변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나이 개념이 없어요(웃음).”

흔히 군 생활은 남자들에게 큰 전환점이 되곤 하지만, 홍경인에게는 또 하나의 경험일 뿐이었다. 예비군까지 마친 친구들은 ‘군대 가면 이렇게 해야 한다’며 조언을 했지만 생각보다 편했다.

“가끔 나이 어린 고참들이 저한테 인생을 가르치려고 할 때 들어줘야 한다는 것 말고는 뭐, 괜찮았어요(웃음). 연예계 생활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만나는 사람들이 한정되게 마련인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좋았죠.”
홍경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두 사람이 함께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굳이 숨기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벌써 5년쯤 됐어요. 압구정 근처에서 잘 껴안고 다녀요(웃음). 연기를 1년 내내 할 수는 없으니까,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나태해지지 않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여자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죠.”
여자친구가 힘들게 일하는 것을 좋아할 남자친구는 없다. 홍경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가끔씩 여자친구에게 투정 부리듯 말할 때가 있다.

“‘안 해도 먹고사는데 꼭 그렇게 해야 하냐’고 말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전역하고 나서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서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라고.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하고. 그래서 잘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세 번째 뮤지컬, 전역 후 첫 번째 무대. 여자친구의 배려와 동료들의 믿음으로 선택한 ‘해어화’에 대한 그의 자신감은 크다.

“열심히 하고 있고, 느낌이 좋아요. 어떤 작품은 연습하면서도 자신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작품은 걸릴 것이 없어요. 음악도 잘 나왔고, 음악적으로 성숙하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이기도 합니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이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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