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가요계 복귀한 유미리의 속 깊은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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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젊음의 노트’ 대신 댄스곡 ‘넌 내꺼’ 부를래요. 새로운 도전 많이 응원해주세요”


‘젊음의 노트’로 사랑받던 그녀가 돌아왔다. 1986년 당시 MBC 강변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가 홀연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가수 유미리. 16년 만에 ‘뉴미리’라는 타이틀의 디지털 싱글 앨범으로 가수 인생의 2막을 시작하려 한다.


갑작스레 찾아온 새 인생과 우울증
16년 만에 가요계 복귀한 유미리의 속 깊은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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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1년 차 ‘중견가수’지만 요즘 유미리는 어느 때보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9일 발매한 디지털 싱글 ‘뉴(New)미리’를 선보이기 위한 댄스 연습과 인터뷰 등으로 대중에게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밝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우울증까지 앓은 유미리는 다시 씩씩한 모습으로 그를 잊지 않은 팬들에게 타이틀곡 제목인 ‘넌 내꺼’를 외친다.

태생이 씩씩하고 활발한 전형적인 ‘O형’인 그에게 급작스레 찾아온 우울증은 2주 만에 자살을 생각하게 할 정도였다고. 처음 우울증을 인식한 날짜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완전히 딴 사람이 되더군요. 기운도 없고 그저 누워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지냈어요. 이성적으로 사고하려 해도 ‘죽으면 편해질 거야’란 생각만 들더라고요. 아파트 16층에서 뛰어내리는 상상, 지나가는 차에 뛰어드는 상상을 계속했어요. 그건 정말 겪어본 사람 아니면 모르는 거죠.”

그를 만나기 전 짐작했던 우울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였다. 남편과의 불화를 비롯한 애정 전선의 문제, 오랜 기간 가수 활동을 하지 못한 불안, 오랜 타지 생활로 인한 외로움과 향수병 등등. 그러나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었다. 짐작과 달리 유미리는 아직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미스’이기도 했고, 천성이 밝고 긍정적이어서 스트레스를 쌓아두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밝고 명랑해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가둔 것은 아닐까. 오랜 세월 억눌러온 감정들이 힘든 시기에 우울증으로 표출됐다고 이해하면 될 듯. ‘누구나 힘들고 외로우면 우울할 수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는 데 유미리도 공감을 표시한다.

“잇단 연예인들의 자살 등으로 인식은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 우울증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해요. 다 죽어가던 와중에 모 대학병원에 죽고 싶다고 전화하니 ‘예약이 다 찼으니 나중에 오라’며 사무적으로 대하더군요. ‘미친 사람’으로 호들갑 떠는 것도, 냉담하게 대하는 것도 곤란해요.”

결국은 가까운 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점차 증세가 호전되어 예전의 밝고 씩씩한 유미리로 돌아왔다. 현재는 거의 완치되어 가벼운 약물 치료만 받고 있는 상태라고.

거침없던 그에게 현재 가장 무서운 것은 우울증, 그리고 새 음반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다. 마지막 음반을 내고 활동을 접은 1992년 이후 길고 긴 16년의 세월 동안 어쩌면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6년 동안의 여러 일들을 되짚어보며 스스로도 세월의 흐름을 절감한다고.

늦깎이 신인처럼 다시 서기까지, 긴 여정 지나
유미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한인 1.5세대다. 타고난 언어 감각 때문인지 현지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그를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사교적인 아이였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대학교 때까지 학창 시절은 거의 미국에서 보냈죠. 늘 밝은 편이어서 외국 아이들을 휘잡고 다닐 정도로 잘 어울렸어요. 워낙 잘 놀고 노래 잘하고 목소리 크기로 유명했죠. 날 모르면 간첩이었으니까요(웃음). 보스턴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때도 룸메이트들하고 무척 재밌게 지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가수가 될 발판을 마련한 1985년은 인생의 전환기였다. 전 미주 교포학생 가요제에서 1등을 수상한 뒤 친척뻘 되던 어른의 권유로 이듬해 강변가요제까지 출전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대상을 수상하며 고국에서 가수로 데뷔하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1986년 유미리는 버클리 음악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인 꿈 많은 소녀였다. ‘젊음의 노트’란 명곡으로 강변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하던 시절,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두려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미국영주권을 갖고 가수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많았고 갑작스런 인기에 시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6년 만에 가요계 복귀한 유미리의 속 깊은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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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타지 생활을 하는 그를 주변에서 도와줘 1987년 첫 음반 「첫인상」을 내고 활발히 활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못다 한 학업에 대한 미련으로 이듬해 다시 미국으로 향했고 간간이 한국에서 음반을 내며 학업을 병행했다. 요즘 많이 등장한 유학파 가수의 선구자인 셈. 그러나 1992년 드디어 학교를 졸업하고 귀국길에 올랐을 때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서태지의 등장과 함께 격변을 겪고 있었다. 그해 김범룡이 작곡한 4집 음반 「하이 하이 하이」를 발표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식 활동을 중단한 채 가족들이 있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세월을 보냈다.

“한마디로 망한 거죠(웃음). 지금에야 웃지만 당시엔 정말 난감했어요. 제가 아무리 팝뮤직을 전공했다지만 원래 스타일이 있는데 갑자기 막 랩을 하고 그러긴 힘들잖아요. 한국에 돌아와보니 80년대 가수들도 다 명맥이 끊겼더라고요. 저라고 뭐 달랐겠어요. 음반을 내고 싶었지만 솔직히 용기가 안 났어요.”

미국의 부모님에게 신세를 지면서 세월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한순간도 가수의 꿈을 접은 적은 없었다. 밤무대에서 노래하고 강사들에게 영어교수법을 가르치면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내가 한때는 정말 잘나갔는데’ 그런 자격지심은 없었어요, 전혀. 돈이야 원래 있다가도 없고 그렇잖아요. 원체 긍정적이다 보니 이제껏 버텨올 수도 있었겠죠. 음반 내기 전에 우울증을 호되게 앓긴 했지만, 이렇게 다시 활동하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가수왕 되는 꿈도 꾸고 그랬거든요.”

이토록 긴 세월을 건너 신인의 마음으로 다시 출발대에 섰으니, 말이 많은 게 당연하다. 새 음반 얘기를 하는 그의 눈빛은 호기심 많은 소녀의 그것이었다.


늘 새로운 ‘뉴미리’ 선보이기 위해 피나는 댄스 연습
워낙 호방한 평소 성격 탓인지 새로 음반을 준비하면서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은 음반을 프로듀싱한 최지윤씨. 백지영, 핑클 등의 앨범에 DJ 등으로 참여해온 신예 작곡가다. 유미리가 다시 음반을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최지윤이 작곡한 ‘넌 내꺼’를 듣고서였다.

“작년 12월이었어요. 가이드 보컬이 녹음한 노래를 들었는데, 딱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동안 계속 망설였는데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기던걸요. 그래서 하겠다고 했어요. 다시 해보자고요. 세월이 흘렀지만 제 목소리, 가창력은 여전하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디지털 싱글 음반 ‘뉴미리’가 빛을 보게 되었다. 타이틀곡인 ‘넌 내꺼’는 후배가수 김현정을 연상시키는 힘 있는 댄스곡으로 유미리 특유의 가창력이 빛을 발하는 단순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노래다. 그 밖에 펑키 스타일의 댄스곡 ‘콕 찍어’, R&B풍의 가슴 시린 발라드곡 ‘눈물꽃’ 등이 담겼다.

16년 만에 컴백하는 중견가수가 댄스곡을 부르고, 또 춤까지 직접 춘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용기다. 음반 준비에 앞서 트로트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유미리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트로트 물론 저도 부를 수 있어요. 하지만 원래 트로트를 부르지 않았는데 긴 공백 끝에 트로트를 하면 사람들이 나이 먹었다고 할 거 같았어요. 이왕 다시 할 거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죠.”

첫 방송을 앞두고 요즘은 하루 4시간씩, 댄스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나이가 드니 춤이 너무 힘들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막상 그 모습에서는 나이를 실감하기 힘들다. 노래할 때 리듬을 잘 타던데 엄살이 아니냐고 했더니 “진짜로 앓아누웠어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치켜뜬다.

작은 체구에 깜찍했던 예전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섹시하고 과감한 의상도 준비했다. 그동안 갑갑했었는데 이제는 입고 싶던 의상을 맘껏 입을 수 있어 16년의 세월에 도리어 감사한다는 그다.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기에 노출 의상도 거리낌 없이 소화해내기 때문이다.

“제가 20대 때는 이미지 관리 때문에 말도 제대로 못했어요. 제가 워낙 활발했잖아요. 튄다고 욕도 많이 먹었고요. 방송 출연 규정도 엄격해서, 배꼽티도 못 입고 제약이 심했죠. 요즘 가수들은 맘대로 연출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해요. ‘섹시’도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니 먹히는 것 아닌가요.”

똑 부러지게 말하다가도 “누드 제의요? 들어오면 진짜 고맙죠” 하며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모습이 친근하기 그지없다. 격의 없이 말하기 때문인지 ‘선생님’의 무게감보다는 ‘언니 혹은 누나’의 살가움이 느껴진다. 본인도 ‘선생님’이 아닌 ‘언니’라고 불러주는 게 좋단다. 좋아하는 후배가수로는 이효리와 싸이를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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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는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예뻐요. 싸이는 보기만 해도 괜히 입가에 미소가 맴돌아요. 버클리 음대 출신이면 제 한참 후배이기도 하고요. 잘생긴 건 아니지만 나름 매력 있고 내숭도 없어서 좋아요.”
유미리는 후배들을 칭찬하면서도 가수로서 기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가창력은 두말할 나위 없는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덧붙여 가수는 끊임없는 자기관리와 대중을 즐겁게 하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질도 갖춰야 한다고 얘기하는 모습이 천생 가수다.


가수 이전에 평범한 여자 “결혼할 거예요”
그러나 유미리는 무대에 섰을 때만 화려한 가수다. 가수이기 이전에 결혼과 가정을 꿈꾸는 평범한 ‘올드미스’이기도 하다. 화통한 성격에 연애도 화끈하게 할 타입인데 왜 여지껏 결혼을 안 했을까. 답은 간단했다. ‘아직 인연을 못 만나서’다.

“남자 없으면 안 되죠(웃음). 독신은 절대로 아니에요. 많이 만나봤는데도 아직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어요. 이상형은 ‘남자다운 남자’요. 잘생긴 거 말고 차분하고 우수에 젖은 외모, 그리고 어딘가 약간 부족해 보이는 사람 있잖아요. 왠지 내가 채워줄 부분이 있는 사람, 편안하게 해주고 대화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아요.”

가수로 데뷔할 당시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낸 걸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고국에서 가수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고 현해탄을 건너오면서 가족도 고향도 없는 셈 치자며 독하게 마음먹고 살아온 날들이었다. 이제는 다시 음반도 냈으니 인연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평범한 여자 유미리는 “아이도 낳고 싶죠. 근데 나이가 많아서 어떡하나 걱정이에요. 입양도 괜찮아요”라며 미소를 짓는다.

유미리는 털털한 성격 탓에 동네 주부들과 무지 친하다며 자랑한다. 관악산 근처 아파트에 사는데 음반 준비로 바쁘기 전까지는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고스톱을 치곤 했다고.

“동네 아주머니들이랑 화투도 치고 그랬죠. 이건 비밀인데, 몇 백원 천원 내기도 하고요. 예전엔 밤새 놀아도 안 피곤했는데, 이젠 정말 나이 들었나봐요. 밤새 치면 다리가 저려서(웃음)… 요즘 왜 안 오느냐고 전화도 하시고 그러세요.”

그러면 평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지 물었더니 다른 여자들과 다르지 않은 답이 돌아온다. ‘맛난 거 먹고, 예쁜 옷 발견했을 때’가 바로 그 때다. 오랜 한국 생활로 식성도 한국식이어서 장어 빼곤 가리는 음식도 없이 다 잘 먹는단다.

“배고프면 짜증나고, 맛난 거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그리고 쇼핑 가서 예쁜 옷 봤는데 딱 맞을 때도요.” 운동으로 가꾼 탄탄한 몸매를 칭찬했더니 나잇살은 어쩔 수 없다며 또 엄살이다.

“제 배 보여주면 다들 인정해요.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다는 걸요. 힘 주고 다녀서 안 나온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웃음). 백화점 가면 점원이 글쎄 제일 작은 사이즈 들고 온다니까요. 근데 44가 맞을 리가 있나요? 기가 막혀서.”
스케줄이 빌 때는 영어소설을 보거나 게임을 즐긴다고. 온라인 게임의 일종인 ‘카트라이더’가 그렇게 재미있단다. 지방에 공연을 가서도 PC방에서 게임을 즐길 정도면 꽤나 잘한다는 얘긴데, 아니나 다를까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였다.

“취미로 하는 거죠. 카트라이더 무지 재밌거든요. 게이머들도 등급이 있잖아요. ‘무지개반장갑’이 최고 단계고 그 아래가 ‘반장갑’ 단계인데 제가 반장갑이에요. 캐릭터가 무척 귀여워서 좋아요. 나이답지 않다고들 하지만, 매일 게임만 하는 건 아니고 책도 읽어요. 어렸을 땐 안 읽었는데(웃음). 영어로 된 소설을 주로 읽죠.”

친화력은 그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다. 연예인이라고 마냥 예쁜 척, 고상한 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왜 놀고 싶고, 예쁘게 보이고 싶지 않겠는가. 어린 시절부터 가수 생활을 하면서 인기와 돈의 무상함을 깨달은 그이기에 더더욱 평범함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직업인 만큼 아무래도 곤란할 때도 많은 것이 당연지사. 유미리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후배들을 위한 당부도 빼놓지 않는다. 가수 유니가 자살했을 때 막 우울증에서 벗어나던 무렵이라 충격이 상당히 컸다.

“많이 안타까웠죠. 우울증인 거 미리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도울 수 있었을 텐데.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어요. 우울증 때문에 고민이면 언제든 전화하세요. 차에 태워서 병원도 데리고 갈게요. 순간의 감정으로 죽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세요.”

16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한 가창력을 지닌 가수지만, 이제 오랜 세월을 앞서 살아온 선배로서 지혜까지 묻어난다. 유미리가 가요계의 ‘큰언니’로 다시 자리매김해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절 다시 기억해주고 관심의 말 한마디 해주면 참 고마울 때가 많아요. 후배들이 저를 보고 ‘용감하다’ ‘과감하다’ ‘멋있다’며 박수를 보내주면 힘이 솟지요. 젊은 애들 하는 거 다 해낼 테니 지켜봐주시고 응원 부탁드려요.”

글 / 위성은(자유기고가)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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