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소녀로 우리 곁에 머물 것만 같았던 가수 별(25). 그녀가 어느새 훌쩍 자라 성숙미가 물씬 풍기는 여인이 되어 돌아왔다. 벌써 데뷔 5년 차, 4집 앨범을 발표한 별을 만나 ‘첫사랑 이야기’ ‘4집 앨범’ ‘병상의 아버지’ 이야기까지 솔직 담백한 인터뷰를 가졌다.
“섹시하다고요? 에이~ 안 어울려요!”
4집 앨범 「Her Story」를 내놓고 한층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별. ‘점점 여자가 되어간다’는 주위의 반응에 그녀는 “저 원래 여자였거든요?”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올해 나이 벌써 스물다섯인데, 아직도 소녀로 불리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이제는 소녀로 보이고 싶어도 그게 오히려 어색해요(웃음).”
사실 데뷔 이후 별은 늘 ‘소녀’로서 청순하고 여린 이미지가 부각되어왔기 때문에 조금만 모습이 변해도 팬들이 ‘흠칫’ 놀라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조금 더 과감해지기로 했다.
뮤직비디오 촬영과 앨범 재킷 촬영 때는 허리와 등이 시원하게 파인 U라인 드레스를 입어 ‘섹시함’과 ‘성숙미’를 한껏 드러낸 것. 이런 별의 U라인 패션은 순식간에 인터넷을 달구며,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여러 가지 옷을 봤는데, U라인 드레스가 눈에 띄었어요. 당시 스태프들은 제가 그 옷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나봐요. 막상 입으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고요. 제가 진짜 여자가 된 느낌이었죠(웃음).”
하지만 섹시하다는 반응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친다. “저는 한 번도 섹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섹시 컨셉트를 해본 적도 없는데 사람들이 섹시하다고 말하면 정말 어쩔 줄 모르겠어요. ‘섹시’라는 의미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몸매나 눈빛이 아니라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섹시함이 좋아요. 김혜수씨나 엄정화씨처럼요.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죠 뭐(웃음).”
4집 앨범 「Her Story」의 수록곡 역시 20대 중반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데뷔 5년 차에 4개의 앨범을 내놓고, 어려 보이는 얼굴 덕에 아직도 ‘소녀’ 이미지가 강한 그녀. 이제는 당당한 ‘여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의 앨범이 시적이고 동화 같은 느낌의 곡들이었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좀 더 현실적인 노래를 하고 싶었던 바람 때문이다.
“매번 앨범 나올 때마다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제가 전달하려는 느낌은 잘 전해진 것 같아요. ‘여자의 느낌’이오. 왁스나 이소라씨처럼 여자의 목소리나 감성을 노래하고 싶었거든요.”
사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인 ‘미워도 좋아’는 별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함께 애절한 사랑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이 단순히 그녀가 의도했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과거 그녀의 아프고 저린 첫사랑의 기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별은 노래의 가사처럼 좋아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좋아하는데 떠나보낸 사랑… 저도 해봤죠.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얄밉고 야속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정리가 안 되기도 했어요. 첫사랑이 얼마나 야속하게 떠났는지….”
이어 별은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첫사랑과 헤어진 건 2005년 2월. 1년 6개월 정도 사귄 일반인 남자친구. ‘안부’의 노래가사(이번엔 진짠가요. 몇 번을 헤어졌지만 결국엔 다시 또 돌아왔잖아요. 이번엔 진짠가요…)가 모두 별의 첫사랑에 얽힌 이야기다.
“처음이라 제가 사랑을 잘 몰랐어요. 조금만 서운해도 툭하면 ‘헤어지자’라는 말을 했거든요.”
그래서 별은 남자친구와 헤어지다 만나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헤어질 때마다 남자친구가 달래줘서 다시 만났다. 하지만 마지막에 별이 헤어지자고 했을 때는 ‘정 힘들면 그만하자’는 답변이 왔다는 것. 그래도 별은 늘 다시 돌아왔으니까 연락이 올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미련을 갖고 살았던 세월이 8개월.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진짜 이별이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세상 남자가 다 변해도 그 사람은 안 변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까 변하더군요. 남자친구한테 다른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는데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것도 제가 잘 아는 언니와요. 너무 밉고 힘들었어요. 그래도 첫사랑이고 좋아했던 감정 때문에 욕도 못하겠더라고요.”
첫사랑이어서 결혼까지 해야 하는 줄 알았다는 그. 사랑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사랑을 해봤지만, 그녀가 경험한 사랑은 여러 사람을 만난 것처럼 힘들고 어려웠다.
사람 많은 쇼 프로그램에 ‘울렁증’ 있어
그렇게 힘든 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지만, 녹음을 위해 마이크 앞에 섰을 때는 감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 시간 길러왔던 머리도 과감히 잘랐다.
“감정을 끌어내려면, 과거의 경험을 끄집어내서 아픈 감정을 다시 건드려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화가 나서 머리를 짧게 잘랐죠. 홧김에 잘랐는데, 오히려 더 괜찮더라고요. 원래 청순한 스타일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머리를 자르니까 쿨해 보이고 심플해서 좋았어요.”
머리도 자르고, 훨씬 강하고 당당하면서 성숙해진 그녀. 하지만 연기나 쇼 프로그램 활동 등에 대해서는 그리 욕심이 없다. 왜일까.
“저는 사람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에 ‘울렁증’이 있어요. 전 연예인 기질이 없나봐요.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서는 욕심이 전혀 없어요. 다만, 무대 위에 있는 그 ‘3분’만큼은 정말 무척 행복하죠(웃음).”
이소라, 이은미, 박미경을 좋아한다는 그녀.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에게 공감 가는 노래를 하고 싶단다. 그리고 4집 활동이 끝날 무렵에는 꼭 ‘단독 콘서트’도 열 계획이다.
“2003년에 콘서트 하고 못했으니까 벌써 4년째 못하고 있어요. 제 사비를 들여서라도 꼭 콘서트를 하고 싶어요.”
최근 별이 4집 앨범 발매 이외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그녀의 ‘아버지.’ 4년 전 의료사고로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아버지를 향한 그녀의 마음 때문.
별의 아버지는 그녀가 1집 앨범을 내고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사고를 당했다.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내시경이 몸을 잘못 건드려 세균에 감염된 것. 이후 수술을 하러 안산의 큰 병원으로 갔는데, 수술하고 난 뒤 고열에 시달리다가 쇼크로 뇌사 판정을 받았다.
“아빠가 쓰러지신 날 방송하다 말고 서산에 내려갔어요. 1집을 내고 한창 활동하고 있을 때였는데…(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별은 눈물을 머금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이후 별이 사실상 소녀 가장 역할을 하면서 데뷔 이후 수입을 모두 병상의 아버지와 가족들, 의료소송 비용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위에 귀감이 되고 있다. 간병 비용만 한 달에 2백만원, 가족들 부양비용, 의료 소송 비용까지, 별이 벌어들이고 있는 수입이 모두 들어간다고.
하지만 별은 ‘효녀’라는 주위의 반응이 오히려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저보고 효녀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부담스러워요. 제가 경제적으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주위에서 대견하게 생각하시는데, 제가 돈 벌어서 어디에 쓰겠어요. 그동안 부모님이 저에게 주신 사랑이 얼마나 큰데요.”
그의 부모님. 어릴 때부터 가수를 하겠다는 그에게 무용, 악기, 운동 등 안 가르친 게 없다. 하고 싶은 가수를 해보라고, 묵묵히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셨던 것. 당시 별은 나중에 잘돼서 꼭 갚으리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을 보답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리고 별이 진짜로 생각하는 효도는 경제적인 부분이 아니다.
“저는 효도를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님 옆에서 어깨도 주물러드리고, 청소나 설거지도 해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서산에 계시니까, 멀어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너무 속상해요.”
사고가 난 지 4년째. 힘들었던 일이야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다. 그래도 가장 힘든 건 바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일이었다.
“아빠를 보고 있으면, 화나고 속상해서 죽을 것 같았어요. 사람이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도 의사들이 과실을 인정하지 않아서 너무 화가 나죠. 1백억원, 1천억원을 보상받는다고 한들, 아빠의 목숨 그리고 남은 인생과 바꿀 수는 없잖아요. 어디 아픈 곳도 없이 멀쩡했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이렇게 만든 의사들이 너무 미웠어요.”
데뷔 이후 수입 모두 ‘가족과 의료소송’ 비용으로
이런 울분과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어 병원을 상대로 의료 소송을 진행해온 그녀의 가족들. 1차 승소를 했는데도, 병원 측은 여전히 결과를 승복하지 않고 항소를 한 상태.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래야 다른 의료 소송자들에게 판례를 남길 수 있기 때문. “보상을 받아야 얼마나 받겠어요. 억울하니까 과실 여부라도 확실히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딸이 TV에 나오는 모습을 알아보시냐고 물었다. “엄마가 보여드리기는 해요. 화면을 보시면서 눈도 깜빡이시고, 가끔 울기도 하신데요…. 말씀을 못하시니까 답답하고 안타깝죠.”
이후 별은 아버지를 곁에서 보살피고 계시는 어머니와 오빠 생각에 한 번 더 눈시울을 붉혔다.
“엄마가 정말 미인이시거든요? 저보다 훨씬 예쁘세요. 그렇게 곱고 예쁘던 엄마가 4년째 아버지 병수발을 하시면서 너무 많이 늙으셨어요. 정말 착하고 천사 같으신 분인데, 너무 가슴이 아파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더니, 잠시 머뭇거린다. 가족들 이야기를 ‘이미지’에 이용한다는 일부 사람들의 오해가 싫어서다. 그런 인터넷 악플을 볼 때면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단다. 하지만 방송이 아닌, 글이니까 그녀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본다.
“아빠… 가끔 저한테 미안해하시는 눈빛을 읽어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빠가 옆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해요. 빨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된다고 해도 괜찮아요. 지금처럼 평생을 누워 계신다고 해도 상관없으니까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계셨으면 좋겠어요.”
“엄마… 요즘 고생이 많으시죠. 몇 년 사이에 곱고 예쁘던 엄마가 많이 늙은 거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두고두고 효도할게요. 요즘엔 건강이 최고인 것 같아요. 엄마가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녀와 같이 힘들게 의료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응원과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의료 소송은 사실 이기는 게 너무 힘들대요. 의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는데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에 의사들의 과실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해요. 여러분이 저에게 보내주신 응원의 글이 정말 많은 힘이 돼요. 우리 모두 지치지 말고, 같이 싸워서 꼭 승리했으면 좋겠어요. 파이팅!”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