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풍미한 음유시인 백영규가 들려준 신인의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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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노래는 이제 그만하고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하렵니다”


며칠 동안 이어졌던 좋은 날은 다 어디로 가고 그와 약속을 잡은 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비를 맞고 들어오는 그의 모습이 비와 무척 잘 어울린다. 4년 만에 심혈을 기울인 신보를 내놓은 백영규의 얼굴에서는 먹구름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


애잔한 발라드의 대명사 벗고 이제는 웃고 싶다
7080 풍미한 음유시인 백영규가 들려준 신인의 각오

7080 풍미한 음유시인 백영규가 들려준 신인의 각오

‘슬픈 계절에 만나요’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가수 백영규. 그의 곡이 히트할 당시를 비껴간 본인으로서는 그의 유명세를 모르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 슬픈 감성의 소유자라는 수식어만 달랑 가지고 그와 간 큰 인터뷰를 시작했고 이런 마음을 아는 양 백영규는 한마디 거들었다.

“이젠 인터뷰차 사람들을 만나면 두 장의 앨범을 준비해요. 하나는 인터뷰어에게 주고 남은 하나는 그들의 부모님 몫이죠.”

그도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백영규와의 만남을 뒤로한 채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 떠오른 인상적인 풍경은 그가 카메라 앞에서 쉽게 웃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 나이에 웃는 사람 별로 없는데…”라며 연신 멋쩍어했다.

아직은 변화가 머쓱한 듯 보였지만, 그는 이번 13번째 앨범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카메라 앞에서 웃어달라는 부탁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이런 것도 요구하는 건가. 나의 원래 모습은 슬픔 그 자체인데 말이지”라고 말하면서도 그 시도를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이제껏 그에게 슬픔에 대한 모든 수식어가 따라다녔다면 이번은 좀 색다른 외출이 시작됐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의 말마따나 13집 「As first」의 수록곡 ‘여정을 끝내고’는 ‘이젠 내가 웃었다’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달라진 마음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구절이다. “슬픈 노래는 원 없이 불렀다”는 그는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가수 인생 사상 최고 히트곡인 ‘슬픈 계절에 만나요’부터 시작돼 꾸준히 이어져온 그의 슬픈 이미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굳어졌다. 슬픔을 생각하면서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 순간 본인 스스로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 가수는 노래 따라간다는 속설처럼 그런 회로선상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내내 탈피를 결심했던 백영규. 이번 변신은 행복하고 좀 더 희망적으로 살고 싶은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70년대 말 우리 가요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백영규. 트로트 일색이던 당시 가요계에 간들간들 감성적인 바람을 몰고 온 그는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학창 시절 그의 감성을 먹고 자라난 이들은 이제 중년의 강을 건너고 있다. 그러나 그를 향한 환호와 애정은 여전하다. 백영규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머릿수로는 좀 딸릴지언정 그들의 끈끈한 정은 어디 내놔도 모자라지 않는다”고. 바로 ‘Meets Again 09love’라는 이름의 온라인 팬클럽 회원들 이야기다.


50대의 음악, 트로트가 다가 아냐
“우리 팬클럽 회원들이 모이면 백영규를 빙자해서 만났지만 정작 백영규를 왕따시킨다고 우스갯소리를 해요(웃음). 그만큼 형제자매처럼 사이가 좋다는 얘기죠.”

팬들은 백영규를 중심으로, 때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항상 똘똘 뭉치며 큰 힘이 돼주고 있다. 이런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는 걸까. 이번 앨범에서 그는 아예 팬클럽 주제가를 하나 만들었다. ‘처음 그날처럼’이 그것으로 제목 속 그날은 당시 중학생이던 팬들이 자신의 음악을 처음 만났던 그날을 일컫는다.

“노래를 들어본 팬들은 다 좋아해요. ‘사상 최고의 곡이다’라며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아서 제가 다 뿌듯합니다.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팬클럽 회원들이 모여서 수다 떠는 목소리가 고스란히 노래 속에 들어가 있거든요.”

팬을 향한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년에 한두 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것은 물론이요, 마음이 동할 때는 어떠한 명분이라도 내세워 ‘급만남’을 추진하기도 한다. 올 초에는 지방에서 있었던 한 팬클럽 회원의 결혼식에 총출동했으며, 지방 공연이 잦은 백영규가 한번 ‘떴다’ 하면 그 인근에 거주하는 팬들은 그야말로 일사분란하게 집합한다.

팬들이 이처럼 백영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비슷한 연배의 가수들에 비해 신선한 음악적 감각을 가졌다는 점과 꾸준한 활동이 답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트로트로 전업하는 가수들이 있지만, 백영규는 한결같이 자신의 음악을 고집한다. 가뜩이나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늘 그 자리에서 언제 들어도 마음이 편안한 음악을 전하는 그의 존재는 팬들에게 있어서는 사막의 오아시스 못지않은 휴식이 되어주는 듯하다.

이번 앨범을 내놓고 백영규는 소위 요즘 젊은 가수들이 하듯 쇼케이스도 열었다. 각종 매체의 취재진을 부른 뒤 노래 몇 곡 부르고 기자회견을 하는 홍보성 행사가 아닌, 직접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에서 지인과 팬들을 초대해 벌인 아주 조촐한 자리였다.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장장 3일간 앙코르가 끊이지 않는 아주 뜨거운 이벤트였다. 그 순간을 회상하는 그의 얼굴에 흐뭇함이 번졌다.

“아, 정말이지 그때는 최고였습니다. 팬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니 저도 무척 좋더라고요.”
그는 4년 전부터 인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라이브 카페 ‘백영규의 라디오시대’를 꾸려나가고 있다. 팬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연장 역할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민 이곳은 이제 백영규에게 있어 음악에 대한 더 큰 열정을 쏟게 해주는 안식처와 같다.

7080 풍미한 음유시인 백영규가 들려준 신인의 각오

7080 풍미한 음유시인 백영규가 들려준 신인의 각오

“음악을 하다 보니 늙고 고루한 생각을 할 틈이 없어요. 젊은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요즘 음악의 트렌드를 읽기 위해서 노력하고 팝음악에도 귀를 기울입니다. 우연히 SG워너비의 ‘아리랑’을 들었는데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가요에 민요를 접목하는 시도가 예전에도 있었지만 이 곡이 가장 절묘한 거 같아요.”


아들이 같은 길을 간다면 뒷받침해줄 생각
전체적인 음악 시스템, 특히나 편곡 노하우가 굉장히 발달했기에 장기적으로는 분명 우리 음반시장이 희망적이리라고 말하던 그는 자신의 아들을 빗대어 일부 젊은 가수들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요즘 친구들은 목소리만 좋으면 가수가 될 수 있는 줄 알아요.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믿음 하나로 은근히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데 그럴수록 더욱 엄격하게 가르칩니다. 제대로 된 가수가 되려면 악기를 잘 다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하기에 틈틈이 그런 조언을 들려줍니다.”

목소리에만 의존했다가는 생명력이 긴 가수가 될 수 없다는 것. 대중의 인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직업이 또 가수이기에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다가 내려온 다음을 미리 내다봐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오랫동안 한길을 걸어온 내공을 가진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구절이다.

“솔직히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활동하는 연예인 2세를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아들이 곧 입대할 예정인데 그 녀석이 제대를 하고 나서도 가수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본격적으로 뒷받침해줄 의향이 있어요. 아들은 요즘 세대고 저는 옛날 사람이지만 음악 얘기를 하다 보면 통하는 구석이 많거든요.”

그에게는 음악적 동지가 또 있다. 바로 이번 앨범을 함께 준비한 ‘공포의 외인구단’이라 불리는 동료들이다. 편곡을 맡은 최경식과 기타리스트 최훈에게 그는 이번 앨범의 공로를 돌렸다. 평소에는 사람 좋기로 소문난 백영규지만 녹음실에만 들어가면 깐깐한 완벽주의자가 된다. 그런데 최경식과 최훈은 더하다며 그는 혀를 내둘렀다. 오죽하면 ‘지독한 시어머니’라는 별명을 지어줬겠느냐고 말이다.

편곡자로 이름을 꽤 알렸던 최경식은 솔직히 백영규의 곡 작업을 제안받았을 때 성인가수의 곡이니 보름 정도면 끝내겠구나 싶었다가 단단히 엮인(?) 인물. 막상 곡 작업에 들어가보니 결코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작업이었던 데다가 편곡자의 욕심을 자극하는 음악이었기 때문이라고. 결과적으로는 한 곡당 한 달가량이 걸렸을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백영규는 최경식이야말로 이번 앨범의 주춧돌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 한 명의 외인구단 멤버는 기타리스트 최훈.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소재가 됐던 그를 백영규는 음악을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사다난한 세월을 살아온 사내라고 말한다. 최훈은 최고의 곡을 만들기 위해 간주 하나에 6시간을 녹음한 적이 있을 정도로 힘든 과정을 오히려 즐겁게 받아들였다.

프로 의식으로 똘똘 뭉친 두 동반자의 도움 덕분에 4년 만에 내놓은 백영규의 13집 앨범은 성공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지난 과정을 듣노라니 이번 앨범에 대한 그의 애착이 얼마나 큰지 새삼 이해될 듯했다.


내 노래 인생에 한계란 없다
고뇌의 시간을 견뎌낸 따끈한 앨범 「As First」에는 데뷔 시절 품었던 순수한 감성을 담은 여덟 곡이 담겨 있다. 그중 팬들 사이에서 타이틀곡으로 적합한 노래 1위로 뽑힌 ‘감춰진 고독’은 스스로가 몇 번 들어도 마음이 흐뭇한 곡이다. 아름다운 코러스와 원초적인 북소리가 듣는 재미를 더한다.

“내 노래인데도 몇 번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을 살다 보면 겪는 극한적인 고독을 벗어나보려는 내 나름의 설정을 그려낸 곡이에요.”

사회의식을 담은 곡도 있다. ‘세상은 혼자가 아니야’가 바로 그것으로 몇 년 전부터 내내 벼르다가 이번에 세상에 내놓은 의미심장한 노래다.

“몇 년 전부터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에 대한 곡을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세상은 혼자가 아닌데 혼자서 생각하거나 판단해버리지 말고 옆을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담았죠. 하필 올해 들어서 그런 일들이 많이 터지는 바람에 얼마나 안타깝던지요. 언젠가 TV 대담 프로그램을 보는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소설가 공지영씨가 (자살 문제에 대해) 굉장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썼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저 역시 책임의식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어야겠다 싶었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제 곡을 들으면 공감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모처럼의 활동 재개 소식에 TV에서도 그를 자주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자신의 의도와 맞지 않는 출연 섭외는 칼같이 자른다고 했다. 음악은 지금 지킬 수 있는 자신의 자존심과도 같기에 다른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자존심이자 의지. 대신 소도시를 중심으로 공연 계획을 열심히 짜고 있다. 중견 가수들의 입지가 약해지고 활동 영역이 점차 좁아지지만 이것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의무이자 다짐이라고 여긴단다.

“통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50세를 넘으면 의지를 접기 시작해요. 주변에서는 저에게 ‘이번 앨범이 거의 마지막일 텐데 열심히 해’라는 말을 하는데, 전 이 말이 참 싫습니다.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죠. 다른 이들이 하는 대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지금은 아직 과정일 뿐이에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78년 혼성 듀오 ‘물레방아’로 데뷔한 그에게 2007년은 가수로서 30주년을 맞는 해다. 30주년을 기념하는 거창한 이벤트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나 싶었는데, 정작 그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 석자를 새긴 앨범 한 장을 제작하는 과정과 결실에 의의를 뒀다. 그는 새 앨범 활동 외에도 계속해서 해오던 곡 쓰는 일을 쉬지 않을 예정이다. 주변에서 자신의 곡을 원하는 이들도 있고 자신도 원하는 바이기에 고통스러운 창작 과정을 흔쾌히 즐기는 길을 택했다.

항상 그랬듯 뒤돌아볼 기회가 있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이 직업의 특색이 큰 힘이 되어 어느덧 30주년을 맞이하는 백영규의 모습에서 묵직한 여유가 묻어난다. 항상 그래왔듯 그만의 길을 고집하는 열정이 있기에 우리는 앞으로도 꾸준히 그의 음악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글 / 박주선(자유기고가)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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