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수술 무사히 끝내고 돌아온 배우 정세희의 새로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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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가까이 있더라고요”


2005년 5월, 가수 데뷔를 며칠 앞두고 뇌종양으로 쓰러진 배우 정세희. 한국에서는 성공적인 수술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 몇 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워야 했다. 그러던 중 독일 매니지먼트사의 주선으로 독일 하이델베르크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그로부터 정확히 2년이 지나 정세희를 다시 만났다.


“수술이 끝나고 일반 병실로 와서 밥을 먹는데 딱딱한 빵에 두꺼운 치즈 한 조각과 소시지가 전부였어요. 빨리 회복하려면 이거라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먹었는데 역시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한국 음식이 그립더군요.”


무서웠던 뇌종양 수술, 성공리에 끝내
“다시 말을 할 수 있을지, 제 눈으로 볼 수 있을지 두려웠어요”

뇌종양 수술 무사히 끝내고 돌아온 배우 정세희의 새로운 인생

뇌종양 수술 무사히 끝내고 돌아온 배우 정세희의 새로운 인생

뇌종양으로 정세희가 겪은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혓바닥을 인두로 지지는 통증과 뺨을 칼로 도려내는 느낌, 거기다 머리를 도끼로 내려치는 고통까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말하는 중간 중간 얼굴이 어두워졌다.

“통증 때문에 3일 동안 잠을 못 잔 적도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제 신음 소리를 들을까봐 수건을 입에 물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방을 뒹굴었던 기억이 있어요. 제발 통증만 멈추게 해달라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몰라요.”
이렇게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자신 때문에 더 걱정할 부모님 생각에 아픈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을 만큼 정세희는 효녀다. 그리고 함부로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어요. 그러다 수술 당일 아침, 수술실에 들어가서면서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독일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독일 말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한국 같았으면 ‘마취합니다’ ‘수술 시작합니다’라는 의사들의 말에 그나마 위안을 받았을 텐데 거기서는 그렇지 못했어요. 전 웃음으로 모든 대화를 대신했습니다. 마취를 하는 순간에도 뭘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어요.”

독일 병원으로 가기 전 그녀는 한국 병원에서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해도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지 모른다는 판단을 받았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씩씩했던 그녀는 점점 걱정이 되면서 겁이 났다.

“다시 내 귀로 듣고, 말을 하고, 팔을 쓸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어요. 한국에서 진단을 내리기를 오른쪽 신경이 위험해 보는 거, 듣는 거, 움직이는 게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고 했거든요. 앞으로 제 입으로 말을 할 수 없고 볼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니….”

앞날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던 정세희는 수술을 받기 이틀 전, 부모님과 큰오빠, 작은오빠 앞으로 편지 한 통을 썼다. 어쩌면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부모님께 감사한 일, 죄송한 일을 눈물로 썼어요. 병이란 건 누구나 원하지도 않고 또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제 통장에 돈이 얼마 있는지 알리고 통장 비밀번호도 적었어요. 부모님이 생활하셔야 하니까.”
병마와 싸우는 중에도 가족들 생각에 마음 놓고 아플 수도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일이 자신의 병보다 먼저였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에도 두려움에 떨면서 부모님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 시간이 넘게 수술을 받는 동안 저를 기다릴 부모님이 너무 걱정됐어요. 저는 마취한 채 수술하면 되는데 부모님은 하염없이 저를 기다리셔야 하잖아요. 게다가 독일 말을 전혀 하실 줄 모르기 때문에 제가 없는 동안 밥이며 심지어 물은 어떻게 마실까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수술을 끝내고 나오니 정말 물 한 방울도 못 드시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먼 타국에서 느낀 따뜻한 사람의 정
“저, 독일에서 애국하고 왔어요”

씩씩하게 돌아오겠다며 떠났던 정세희가 약속 그대로 환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두 달이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말과 달리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뇌종양 수술 무사히 끝내고 돌아온 배우 정세희의 새로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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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방송으로 복귀하고 싶었지만 워낙 대수술을 받은 터라 그럴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타국에서 보내는 동안 독일 병원에 함께 있었던 부모님과 형제들 덕에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전혀 외롭지 않았다. 아픈 순간에 사람의 정이 가장 그리웠다는 정세희는 머나먼 타국에서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어 큰 위로가 됐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가 소개된 기사 때문에 좋은 일도 있어 병원에 있는 동안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기사를 통해 제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보셨나 봐요. 한국에서 제 인터뷰 기사를 보고 독일로 건너온 한국 분이 네 분이나 계시더라고요. 이 한국 사람이 병원에 왔다며 알려줘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무척 반갑게 맞이해주셨어요. 독일의 한인들로부터도 큰 사랑을 받았어요. 사골국이며 쌀밥, 김치까지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셔서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정세희는 살면서 원치 않는 기사, 감당하기 힘든 기사 때문에 참 많이 힘들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에 힘을 얻었다고 한다.

“수술이 끝나고 일반 병실로 와서 밥을 먹는데 딱딱한 빵에 두꺼운 치즈 한 조각과 소시지가 전부였어요. 빨리 회복하려면 이거라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먹었는데 역시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한국 음식이 그리워서 불고기며 김치 등을 배달해서 먹었어요. 병원에 냄새가 진동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간호사분들이 김치 향이 좋다며 한국 음식에 관심을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간호사들과 의사 선생님께 한국 도시락을 선물해드리기도 했어요. 저 애국 많이 하고 왔어요(웃음).”


강의를 비롯해 사업, 가수로 재도약
“한국영화배우협회 정회원이에요”

건강한 몸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속사는 부도가 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난 3년 동안 준비해온 음반은 발표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일을 잃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건강을 되찾고 돌아오니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남들이 봤을 때 제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타국에서 저 때문에 고생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우울증에 걸려 슬퍼할 시간이 없었어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세상 이치처럼 그녀는 건강을 되찾았지만 일을 잃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슬퍼하는 일이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금세 슬픔을 털고 일어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지인의 소개로 전남대학교 공대에서 특강을 했어요. 성인 영화뿐 아니라 케이블 MC, 책을 집필하기도 하고 신문사 칼럼도 썼던 경험을 높이 봐주시고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거죠. 제가 겪었던 삶의 시련과 다양한 대중문화 예술 활동 경험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줬습니다.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겪을 다양한 사람과 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고 왔어요.”

뇌종양 수술 무사히 끝내고 돌아온 배우 정세희의 새로운 인생

뇌종양 수술 무사히 끝내고 돌아온 배우 정세희의 새로운 인생

이런 강의를 통해 정세희는 학생들을 가르치러 온 게 아니라 그들의 열정적인 눈빛에서 에너지를 받아왔다. 현장에서 배우는 느낌이 더 커 오히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학생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답장을 써주기도 한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강의를 더 하고 싶다는 정세희는 예전에 준비했던 음반도 발매해 가수 활동을 시작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독일로 떠나기 전 준비했던 음반이 있어요. 이 음반을 다시 여러분에게 선보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인간애가 묻어나는 연기도 욕심납니다. 자그마한 역할이라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한국영화배우협회 정회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성인 영화 몇 편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저를 에로 배우로만 생각해요. 하지만 에로 배우가 나쁜 건 아니니까 좌절하지는 않아요. 에로 영화에 출연하지 않은 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제 마지막 영화가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였어요.”

최근에는 책 준비에 바쁘다. 정세희는 이미 2000년에 「난 이젠 당당하게 벗을 수 있다」를 쓴 경험이 있다. 표면적으로 옷을 벗겠다는 뜻이 강하지만 사회의 편견과 가십을 벗겠다는 의미를 담은 책이다.

“예전의 경험을 살려 다시 한번 책을 쓰고 있어요. 2000년 이후에 바티칸에서 촬영한 누드 이야기며 음반, 뇌종양으로 보낸 고통의 시간을 담은 책을 쓰는 중인데 언제쯤 나올지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열심히 쓰고 있으니 기대해주세요.”

요즘에도 정세희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면서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병원에 들를 때면 항상 찾는 곳이 있는데 바로 소아암 병동. 이곳을 지나칠 때면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안다는 말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또 이렇게 아이들을 보고 있으며 문득 또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제가 시집을 안 간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저 때문에 제 남편과 아이가 얼마나 안타까운 시선으로 저를 바라봤을까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미어져요. 부모님이 지켜보는 것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는데….”

건강을 다시 찾았으니 이제 결혼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솔직히 아직 자신이 없다’고 답하는 정세희. 결혼을 하고 싶지만 살아가면서 또다시 병마와 싸워야 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신마취를 하고 엄청난 수술을 해야 했던 경험이 혹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으로 인한 고통을 짐 지우고 싶지 않다는 것.

“요즘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행복합니다. 통증 없이 밥을 먹고 잠들고 그리고 제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기쁘게 바라보시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주변에 있는 감사한 사람들을 챙기면서 살고 있다는 그녀. 병마와 싸우는 동안 돈보다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무서운 병을 이겨내는 힘든 시간을 보낸 만큼 성숙한 그녀가 더 밝은 모습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글 / 이민경(자유기고가) 사진 / 이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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