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랜드대 초빙 연구원으로 유학 떠나는 오유경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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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에 생명력을 주는 진행자라는 말이 가장 큰 칭찬 같아요”


꿈을 향해 가는 이의 설렘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뭉클한 에너지가 전이된다. 14년 방송국 생활 중 13년간 데일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완벽한 방송 체질로 맞춰진 오유경 아나운서가 1년의 쉼표를 찍는다. 이름 석자보다, 얼굴보다 프로그램을 빛나게 하는 진행자였던 그녀의 빈자리가 제법 크게 느껴질 것 같다.


메릴랜드대 초빙 연구원으로 유학 떠나는 오유경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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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순간에는 그녀가 있었다
엊그제 ‘시사 투나잇’을 보다가 부쩍 수척해진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 빨간 옷 입은 날요? 몸살이 왔는데 그날이 가장 심한 날이었어요.” 연례행사로 찾아오던 감기가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건 후임 진행자가 막 정해지고 나서였을 거다. 13년간 데일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편성표 맞춤 체질이 되어버린 오유경(37)일지라도 믿음직한 후배에게 마이크를 넘겼으니 이만 하면 됐다고 안도하는 순간 수년간 팽팽하게 잡아온 고삐를 슬쩍 놓아버렸는지 모르겠다.

KBS1-TV ‘생로병사의 비밀’, KBS2-TV ‘생방송 시사 투나잇(이하 시투)’을 맡아온 아나운서 오유경이 6월 말 유학길에 오른다. 저널리즘 철학과 실무 분야를 균형 있게 다루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메릴랜드대 필립메릴저널리즘대의 초빙 연구원 자격으로 1년간 개인 연구실을 제공받는 데다가 강의 요청까지 받았다고 하니 듣는 사람이 다 뿌듯해진다.

“오래 일했으니 충전의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꾀를 부릴까 싶었는데(웃음), 학교 측으로부터 강의 요청까지 받고 보니 보다 열성적으로 해야겠더군요. 얻어만 갈 것이 아니라 제 경험을 나누라는 의미이니 부실하게 준비를 해가면 안 되겠다 싶어서 무리했더니 감기몸살이 왔어요.”

1994년 KBS 공채 20기로 입사한 오유경 아나운서는 교양 프로그램에서 활약해왔다. ‘국악한마당’을 진행할 땐 그게 가장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들었고, ‘6시 내 고향’ 시절엔 이보다 더 적역일 수 없다고들 했다. 1회 때부터 맡은 ‘생로병사의 비밀’은 햇수로 5년째 이끌고 있다. 오유경이 주는 신뢰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담당하는 프로그램은 실패한 법이 없다며 KBS의 한 PD는 프로그램에 생명력을 주는 진행자라고도 했다. 2년 전 한국방송대상 수상 역시 그 점을 높이 평가했을 줄로 안다.

2년 전 오유경은 ‘시사 투나잇’과 함께 방송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열었다. 농촌 어르신과 두런두런 미담을 나누던 ‘논두렁밭두렁 MC’가 과연 시사를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없었을리 없다. 방송이 시작된 뒤, 며느리 삼았으면 딱 좋겠다 싶었던 후덕한 미소의 그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톡톡 입바른 소리를 하는 진행자가 브라운관을 장악했다. ‘어디서 갑자기 독한 여자가 나타났느냐’는 시청자의 반응은 오히려 즐거운 활력소였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경력기술서를 쓰다 보니 제가 굉장히 중요한 일을 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방송은 한번 쏟아내면 날아가버리는 매체라 제가 지내온 시간에 대해 곰곰이 돌아볼 여유가 없었거든요. 옛날 흔적을 들춰보니 나름 의미 있고 영향력 있는 방송을 해왔더군요.”

그러고 보니 대통령 탄핵 사건 이후 2회에 걸쳐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 4시간 생방송을 이끈 것도 오유경이었다. 반신욕 붐을 이끌고 건강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창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생로병사의 비밀’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년간 국내 모든 이슈를 다룬 ‘시투’는 최초로 여성 진행자가 왼쪽에 앉아 메인이 된 프로그램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또 죽은 시간대였던 방송 3사의 마감뉴스 경쟁을 뜨겁게 한 것도 ‘시투’다.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매국노 5적이 되기도
메릴랜드대 초빙 연구원으로 유학 떠나는 오유경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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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오유경 개인에게 평일 자정 방송은 참 많은 걸 포기하게 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가족을 챙기는 역할은 물론 저녁 약속의 여유를 앗아갔고, 카메라에 예쁘게 잡히고 싶은 욕심도 잊게 만들었다. 새벽 2시에 퇴근해 4시에 잠드는 일상에 적응하는 데 6개월 이상 걸렸다. 방송에서 그녀가 오죽 피곤해 보였으면, 한 신문사 기자가 멋진 재즈카페를 소개하는 칼럼을 쓰면서 ‘늦은 밤 카리스마 넘치게 방송을 진행하는 오유경 아나운서가 그곳에 와서 여유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글을 썼을까.

‘시청자로 하여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아닌 무난하게 생각하는 진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선배 아나운서의 가르침을 지론으로 삼아온 오유경은 ‘시투’를 만나고 방향키를 돌렸다. 기계적인 객관성을 버리고 가치 중립을 지향하는 프로그램 성격 때문이었다.

미군 기지 이전 문제로 불거진 평택 대추리 사건 때에는 시위 진압을 앞두고 지휘관이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전경들을 독려하는 장면을 방송에 내보냈다가 친북반미 아나운서라는 비난을 받았다. 황우석 사건을 정면으로 다뤘을 때에는 ‘시투’의 홈페이지에 수백 페이지가 넘는 네티즌의 글이 올라왔고 이메일에는 항의 글이 빗발쳤다. 혹자는 매국노 5적에 그녀의 이름을 올렸고, 급기야 오랫동안 이어온 사모임 멤버로부터도 원망의 화살을 받았다.

“주로 공격받았던 사건이 기억에 남네요. 황우석 박사님은 당시 우리 국민에게 자랑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에 그 권위를 훼손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저희가 황 박사님이나 지지자들에게 뼈아픈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부 네티즌들이 제기한 음모가 있어서가 절대 아니었어요. 참 마음이 아픈 일이었지만 해외 엄격한 기준에 따르면 진실이 아닌데 우리만 자위하고 있는 거 같았기 때문에 많은 고민 끝에 방송을 했죠.”

방송을 잘 안다는 사람들도 간혹 물어온다. “앵커 코멘트는 오유경씨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냐”고. 그럼 자신의 충분한 의견과 팀의 취재 결과를 종합해 공통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지금껏 방송에서 자신의 의지와 반대되는 생각을 밝힌 적은 없다.

“‘시투’는 안티가 많지만, 그건 시청자 스스로 판단을 한다는 의미거든요. 우리 팀의 취지가 100%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여지를 제공하려 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제가 ‘시투’를 높이 사는 건 종전 뉴스에서 선택받지 못한 이슈를 다뤘다는 점이에요. 이주민 노동자 사례, 사회적으로 정말 크지만 눈감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장애인 문제 등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의 이야기가 ‘시투’에서는 메인이 됐죠.”


메릴랜드대 초빙 연구원으로 유학 떠나는 오유경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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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메이트 남편, 속 깊은 딸
오유경의 이번 유학이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는 건 초빙 연구원이라는 좋은 조건뿐만 아니다. 가족이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라면 차마 짐 쌀 엄두가 나지 않았을 텐데 마침 남편 천종식 교수(서울대 생명공학부)가 안식년을 얻어 교환교수로 함께 갈 수 있게 됐다.

남편과의 인연에 대해 묻자 주변 사람들의 뜨거운 성원 덕분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첫 번째 공신은 입사 동기인 ‘세상의 모든 아침’의 이형걸 아나운서. 고등학교 동창인 지금의 남편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가 묵살(?)당한지 몇 년 후 동일 인물을 소개해주는 불굴의 의지를 발휘해 두 사람의 인연을 이어줬다. 두 번째 공신은 지금은 KBS를 떠난 선배 공정민 아나운서. 매번 모임 때마다 ‘내 이상형’이라며 천 교수와의 만남을 독려했고 심지어 정신과 의사인 남편을 가세시켜 ‘천 교수는 정신적으로도 아주 건강한 사람’이라며 단단히 밀어붙였다.

“남편이 프러포즈를 했는데 제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바람에 합의하에 한 달간 유예 기간을 둔 적이 있어요. 그때 난데없이 제 가장 친한 친구 정화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신이 내 친구가 만난 남자 중 최고니까 꼭 유경이와 결혼하라’고 했다더군요. 그 전화를 받은 남편은 한달음에 제가 출장 가 있던 강원도 용평으로 달려왔어요. 둘 다 저지르는 성격이 못 되는데… 주변의 도움 덕을 봤죠.”

“지금도 너를 사랑하지만, 10년 뒤에 더 사랑할 거야”라는 절절한 고백으로 일단 마음을 사로잡은 남편은 “솔메이트가 되어주겠느냐?”는 로맨틱한 프러포즈로 쐐기를 박았다. 지금에야 TV 시트콤이나 책 제목으로 흔하디흔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8년 전만 해도 ‘솔메이트’는 ‘희소성’이 있었더랬다. 인생의 동반자, 반려자, 친구를 구하는 듯한 그의 손을 덥석 잡아버린 이유다.

“남편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성을 찾는다고 했어요. 그런 남편의 마음가짐과 배려 덕분에 방송 일에 매진할 수 있었겠죠.”

스스로 ‘불량주부’ ‘불량엄마’를 지칭하는 것도 다 가족의 지지를 받는 주부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일 것이다. 새벽 4시나 되어야 잠자리에 드는 탓에 평일 아침에는 어린이집 가는 딸아이를 한 번 안아주는 것 말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예방접종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지난주 주사 두 대를 한꺼번에 맞히고는 마음깨나 아팠었나 보다.

“진이를 봐주는 할머니와 같이 아이를 챙기지만 어쩌다 둘 중 한 사람이 깜빡하는 날엔 꼭 일이 터져요. 어린이집 졸업사진 찍는 날, 다른 아이들은 졸업식 옷을 입었는데 진이 혼자서 공주 드레스를 입고 갔더라고요. 또 수료식날 진이네 반은 졸업생이 아니니까 어머니들 오지 말라는 선생님의 당부를 듣고 안 갔더니, 다른 엄마들은 다 갔더라고요. 별거 아닌 일 같아도 가슴에 맺히는 건 어떻게 말로 할 수가 없어요. 상처는 받지 않았나 걱정도 되고. 50점도 안 되는 엄마라는 게 참….”


완급을 아는 진행자, 1년 뒤를 기대하며
차라리 투정을 부리면 좋으련만 애어른 같은 진이는 엄마 속을 더 아리게 한다. 미국으로 가면 자기를 돌봐주는 할머니는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는가 하면, “할머니,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중요하지요?”라며 행여라도 섭섭할세라 할머니 속을 헤아리려 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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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러운 건 작년 말 어린이집에서 받은 테스트에서 진이는 정서가 안정되고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나온 거예요. 다른 평가보다 사랑을 많이 받아서 정서적으로 평화롭다는 결과에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제 인생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어떻게 보면 딸에게 부족할 수 있는데 그렇게 잘 커줬다는 게 고맙고 또 고마웠어요.”

진이가 ‘협조적인 딸’이 된 건 엄마의 직장을 자주 보여준 힘이 크다. 얼마 전에는 딸의 친한 언니가 아나운서가 꿈이라며 박지윤 아나운서와 만나고 싶다고 하기에 그러마 했더니만 진이도 ‘나도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라고 하더란다. 매일 바뀌는 장래희망이긴 하지만, 엄마가 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아는 거 같아서 내심 흐뭇했다고.

“심야 방송을 맡고서 회사 근처로 집을 옮긴 뒤 가끔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거든요. 며칠 만에 엄마를 만나면 진이는 조금만 더 놀다 가라고 붙잡아요. 그냥 떼놓고 나오기가 뭐 해서 ‘엄마는 진이 보고 싶어서 몰래 도망 나왔기 때문에 몰래 들어가야 해. 진이가 뽀뽀해주면 엄마는 투명인간이 돼서 사람들이 못 알아볼 거야’라고 했더니 이마, 손, 엉덩이까지 아이가 뽀뽀를 하는 거예요. 한참을 그렇게 속는 거 같더니 한번은 그러더라고요. ‘나는 회사에서 몰래 도망 나오는 아나운서는 싫어’라고요(웃음).”

엄마와 함께 미국에 가야 한다고 하자 “한국에 너무 오래 살았으니 미국에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라고 말하는 진이 덕분에 오유경은 모처럼 맘껏 웃었다. 진이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떠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출국 날짜가 다가오면서 마음이 무거워오는 건 벌써부터 1년 후를 내다보기 때문이다.

작년 KBS를 시작으로 부쩍 신설되기 시작한 시사 전문 프로그램은 최근 방송 3사에서 고루 빛을 발하고 있다. 편집의 힘이 중시되는 ‘VJ특공대’류의 다큐 붐이 잦아들면서 서서히 진행자의 역량이 요구되는 시사 프로그램이 부각되고 있다. 유학 발표 직전 시사 프로그램의 꽃이라 불리는 KBS 제1라디오의 진행자 제안을 받았던 오유경은 다소 마음이 급해 보였다. 아니 기대에 차 보였다는 게 옳을 것이다.

“시사 프로그램을 일컬어 맛은 없지만 영양가는 높은 시금치에 비유합니다. 1년 뒤 기회가 주어진다면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한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을 통해 성숙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1년이라는 기간이 짧다면 짧은데, 제 각오가 너무 거창하지 않나 모르겠네요(웃음).”

시청자의 권력을 등에 업었다고 생각하니 대통령이나 VIP를 인터뷰할 때 더 힘이 나더라는 오유경. 교양 프로그램의 안정감과 시사 프로그램의 팽팽함을 두루 거치며 완급의 미학을 익힌 그녀의 방송 인생 제2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니 어쩌면 좋은가.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민영주 장소 협찬 / 카페 정원(02-733-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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