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성적인 성격인데 바람둥이 연기하려니 어렵네요”
탤런트 강지환이 새 드라마로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지난 6월 6일 첫 방송된 KBS-2TV 수목드라마 ‘경성스캔들’을 통해서다. 암울한 1930년대의 경쾌한 연애 이야기를 담은 이번 드라마에서 그는 경성 최고의 바람둥이 역으로 이미지 변신에 나섰다.
드라마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만난 강지환(28)은 완벽했다. ‘경성 최고의 바람둥이’라는 타이틀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었던 것. 그는 “의상이 멋있다”는 말에 “바람둥이 컨셉트에 맞춰 신경을 많이 썼다”고 받아친다. 마냥 착하고 순진한 줄 알았던 이 남자, 어째 능글능글한 게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해 보인다.오랜만에 본 강지환은 이전보다 약간 야위었다. 알고 보니 이번 드라마를 위해 3.5kg 정도 체중 감량을 한 결과란다. 아무래도 ‘바람둥이’ 역할을 소화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터. 그는 몸매 관리는 물론이고 피부 관리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MBC-TV 드라마 ‘90일, 사랑할 시간’을 마치고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강지환. ‘90일, 사랑할 시간’에서 보여준 그의 가슴 아픈 사랑 연기에 너무 익숙해서일까. 어느 날 갑자기 바람둥이로 브라운관을 찾아온 강지환의 모습이 무척 뜻밖이란 생각이 든다.
“전작에서는 만날 울기만 하고, 결국은 아파서 죽는 역할이었잖아요. ‘다음번에는 밝은 캐릭터를 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경성’이라고 하면 일제시대의 피맺힌 민족사가 떠오르잖아요. 하지만 이 드라마는 경쾌한 로맨스가 섞인 밝은 드라마여서 도전하게 됐어요. 전작에서 울기만 하다 바람둥이 연기를 하니 정말 재밌는 거 있죠.”
‘경성스캔들’은 1930년대 개화기의 경성을 배경으로 오렌지족과 독립투사 간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시대극이다. 시대극은 배우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강지환 역시 어느 정도의 부담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바람둥이’ 역할이 더 어렵다고 속내를 비친다.
“바람둥이는 유식해야 하고 말도 잘해야 하잖아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인 저로서는 많이 어렵네요. 드라마 촬영 초반에 캐릭터 방향을 잡을 때는 바람둥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연기하기가 힘들 정도였어요. 한 일주일 아니 열흘 정도 지나고 나니까 괜찮더라고요. 이제는 선우완 역에 완전히 빠져들었답니다.”
지금까지 TV에 비친 경성은 주로 암울한 일제시대를 투영하는 독립투쟁의 배경이었다. 그러나 ‘경성스캔들’에서는 좀 다르다. 그동안의 작품들에서 1930년대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했다면, ‘경성스캔들’은 밝고 따뜻한 부분을 그려냈다. ‘경성스캔들’이라는 제목처럼 1930년대 젊은이들의 연애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풀어낸 것.
극중에서 강지환이 맡은 역할은 총독부마저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막강한 세력을 지닌 명문가의 아들 선우완이다. 그는 경성에서 소문난 모던 보이 양아치 그룹의 우두머리다. 동경 유학까지 다녀왔건만 조국의 독립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그저 모던 걸들과의 자유연애에만 빠져 있는 한심한 인물. 강지환이 극중 자신의 배역에 대해 한 말, “지금의 ‘된장남’의 원조격이 아닐까요?”라는 말이 선우완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처음 시놉시스를 읽는 순간 시대극이지만 로맨스 라인의 감정선이 요즘 트렌드 형식이어서 좋았어요.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아서 말이에요. 함께 출연하는 한지민씨, 한고은씨, 류진씨와는 모두 처음 호흡을 맞추지만 촬영장 분위기가 매우 좋아요.”
‘경성스캔들’ 속의 주인공은 자유를 찾기 위해 자신을 조국에 희생하는 투사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이데올로기 앞에서 방황하는 젊은이 중 하나다.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강지환이기에 연기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물론 직접 경험하지 못한 걸 연기한다는 건 큰 어려움이에요. 하지만 그 시대에 관련된 책과 영화를 통해 그 시대 젊은이들의 인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끔 더욱더 노력할 거고요.”
‘경성스캔들’을 보고 있으면 1930년대의 경성 거리와 화려한 밤 문화를 비롯해 의상과 소품 등 눈에 띄는 신기한 볼거리가 많다. 강지환은 “1930년대를 처음 접하는 시청자들은 ‘저 시대에 저런 게 있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드라마 초반 강지환이 췄던 스윙댄스도 한동안 화제가 됐다.
좀 얄궂은 질문이기는 해도 시청률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경성스캔들’과 동시간대에 방영되는 타방송사의 드라마가 워낙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더욱 그랬다. 강지환 역시 시청률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배우는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데, 시청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힘든 게 없다”고 말했다.
강지환은 연기자로서 운이 좋은 편이다. 첫 드라마 데뷔작인 ‘굳세어라 금순아’를 통해 놀랄 만한 인기를 얻었고, 신인상과 우수상까지 거머쥐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뒤로는 크게 이렇다 할 만한 작품이 없는 게 사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는다. 그걸 계기로 좀 더 힘을 낼 뿐이다.
“‘굳세어라 금순아’ 이후 특별히 주목받은 작품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전작 ‘90일, 사랑할 시간’을 통해 연기가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요. 예전에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게 목표였는데, 이제는 제가 하는 드라마의 성적표까지 좋았으면 합니다. 기회가 되면 영화에도 출연하고 싶고요.”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이성원·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