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 이젠 지우고 싶어요”
빨간 립스틱이 잘 어울리는 배우를 꼽으라면 한고은이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화려한 여배우 역할을 소화해냈던 그녀가 드라마 ‘경성스캔들’을 위해 또다시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이번에는 경성의 남자들을 손안에서 주무르는 1930년대 기생 역할이다.
기모노 입으니 한복이 정말 편한 옷이라 느껴져
“1960년대가 배경인 ‘사랑과 야망’을 하면서 정말 현대극을 하고 싶었어요. 연기하는 1년 동안 꼬박 머리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고, 손톱도 기르지 못했고, 유행하는 예쁜 옷들도 입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보다 30년이나 뒤로 갔네요. 이러다 조선시대로 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의상도 의상이지만 ‘미자’에서 벗어난 뒤 좀 더 편한 역할을 맡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기생에, 게다가 비밀 독립투사 역할이라니.
“시대는 그렇지만 극은 그리 무겁지 않아요. 시대극이라기보다는 퓨전 코미디예요. ‘차송주’가 단순히 꽃 같은 역할이었다면 흥미를 느끼지 못했겠죠. 마냥 여성적이고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라 대장부처럼 통 크고 털털한 면이 많은,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예전에 ‘보디가드’에서 다소 강하고 남성적인 캐릭터를 하면서 즐거웠거든요. 그래서 시대극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도전하게 되었어요.”
‘사랑과 야망’이 끝나고부터 고이 기른 손톱을 다시 잘라야 했지만, 이를 충분히 보상받을 만큼 그녀의 의상은 화려하다. 극중 ‘조선의 마지막 여자’라 불리는 한지민이 까만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등장하는 데 비해 한고은은 가장 화려한 색깔과 화려한 액세서리로 당대 패션리더를 표현한다. 한고은이 기모노를 입은 모습은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부터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화려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이 사진 속 기모노 중에는 한 벌에 4천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기모노 이야기를 꺼내니 그녀의 고생담이 펼쳐졌다.
“요즘 한복도 개량되어 많이 나오잖아요. 기모노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제가 입은 기모노는 전통 그대로를 재현한 것이어서 입는 데만 꼬박 1시간이 걸려요. 게다가 옷의 무게가 10㎏ 정도로 굉장히 무겁고, 온몸을 코르셋처럼 조이기 때문에 혼자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예요. 영화에서 보면 기모노 입은 일본 여자들의 목소리가 가늘잖아요. 그 이유를 절로 알겠더라고요. 옷이 너무 조이기 때문에 힘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촬영이 끝나고 옷을 벗고 나니 허리가 아플 정도였으니까요.”
기모노를 입고 한고은이 깨달은 건 ‘한복이 정말 편한 옷’이라는 점이라고. 그동안 복잡한 한복도 입어보고 가채도 올려봤지만, 불편한 면에서는 기모노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경성스캔들’이 촬영되는 장소는 바로 ‘서울 1945’가 촬영되었던 합천 세트장을 중심으로 부천, 평택, 수원 등이다. 드라마 제작기간이 길지 않은 국내 여건상 짧은 시간 내에 장거리를 오가는 힘든 여정을 반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건강 관리가 가장 중요할 터.
1. 골고루 먹기
“일이 힘드니까 다이어트가 자연히 되더군요. 요즘에는 ‘몸매 관리’라기 보다는 ‘건강 관리’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한 해, 두 해 갈수록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에요. 식단은 건강해요. 육류를 좋아하지 않고, 해물을 좋아해요. 그리고 식탁에 초록색, 흰색, 빨간색, 노란색 등 다섯 가지 이상의 색깔이 오르지 않으면 식사를 하지 않죠. 일단 그것이 영양학적으로 골고루 먹는 비결이고, 무엇보다 색깔이 예쁘면 먹고 싶잖아요. 저는 절대 반찬 두어 가지에 밥, 그렇게는 먹지 않아요. 그게 건강의 비법인 것 같아요.”
반드시 식탁에 오르는 먹을거리로는 ‘채소’를 꼽는다. 코스 요리로 샐러드와 스테이크가 따로 나오는 경우에도 꼭 함께 달라고 한다고. 촬영할 때와 같이 상황이 좋지 못할 때는 꼭 홍삼 달인 물을 챙겨 먹는다고 덧붙였다.
2. 목욕
“‘목욕순이’라고 불릴 만큼 목욕을 좋아해요. 그냥 목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욕물에 웬만한 건 다 넣어봐요. 주로 쑥, 허브, 녹차 등을 많이 쓰지만, 가장 좋은 건 정종이에요. 정종을 넣은 물에 목욕을 하면 피로도 풀리고 땀이 나면서 몸이 나른해지고, 잠도 잘 오죠. 잠을 잘 자면 자연히 피부가 좋아지더군요. 정종을 박스째 사 놓고 쓰는데, 이 때문에 ‘술을 왜 그렇게 많이 먹느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죠.”
한고은은 “마사지는 게을러서 자주 못 받는 편인데, 촬영을 할 때는 큰 도움이 된다”면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붙이는 팩은 도움이 되지 않아 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3. 운동_ 스윙
요즘 한고은은 한참 스윙에 빠져 있다. 극중 사교계의 여왕으로 스윙을 추는 장면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극중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잘 못해요. 그런데 춤은 즐거워요. 드라마 시작하기 전 정식으로 수업을 받았죠. 배울 시간은 많지 않지만 재미있어요. 보통 영화에서 남자가 여자한테 춤을 청하면 여자는 ‘춤 못 춰요’하고, 남자는 ‘저만 믿어요’ 하잖아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더군요. 남자가 춤의 80%를 이끌거든요. 아마 상대역인 강지환씨가 많이 힘들 거예요. 스윙의 매력에 푹 빠져서 드라마 끝나고도 스윙은 계속 배우고 싶어요. 쉽고, 운동도 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종목이에요.”
솔직 담백, 거침없는 한고은
인터뷰 내내 솔직하고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어느 정도 내숭을 떨어도 좋으련만 한고은, 이 여자에게는 내숭이나 가식이 없다. 얼굴에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꼽아달라고 하니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은 많지만,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를 감추기 위해 주로 화장발을 세운다”고 유머러스하게 받아친다. 그리곤 계속 이어지는 거침없는 이야기.
“평소에는 화장을 잘 안 해요. 화장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저를 못 알아 볼 거라고 착각하는 거죠. 그래도 알아보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일단 입을 열면 다들 아시던걸요. 목소리나 말투가 특이하니까요. 심지어 114에 근무하시는 분들도 알던데요? 제가 전화번호를 물었더니, ‘혹시 한고은씨 맞으시죠?’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저도 ‘네, 맞습니다. 사랑합니다’ 해드렸죠. 언제 어디서든 잘못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악성 댓글(악플)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털털해 보이는 그녀도 악플에서는 자유롭지 않았다.
연기에 대해서는 악플러들도 달라진 것 같다. ‘사랑과 야망’ 이후 연기력이 좋아졌다는 댓글이 더 많으니 말이다.
“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감사해요. 그래도 연기가 발전했다고 생각하면 오만인 것 같아요. 예전보다 조금 편해진 건, 대사 외우는 것이 쉬워졌다는 거죠. 만날 긴 대사만 외우다가 짧은 대사를 외우려니 무척 편해요.”
이제 데뷔 10년 차에 접어든 한고은. 그녀는 한결같이 우리에게 인상 깊은 캐릭터를 선보였다. 주로 맡은 캐릭터는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 그러나 그것이 한계를 의미하는 것인가.
“저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이미지예요. 오랜 기간 연기를 해왔지만, 그동안 그 색깔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죠.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이 정말 많아요. 해본 것이 별로 없으니까요. 제가 발전해 나가면서 키워가야 할 부분이겠죠. 그런데 기존의 ‘한고은’이라는 틀을 벗어나는 역할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도, 좋은 시놉시스가 있으면 그냥 하게 되더군요.”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그녀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캐릭터를 맡고 싶은지 물으니 “빨간 립스틱 안 바르고, 파마 안 해도 되는 역할을 맡고 싶다”며 빨갛게 칠한 입술로 ‘호호호’ 웃는다. 그렇다면 산골 분교 선생님은 어떨까. 언뜻 상상이 가지 않지만, 분명한 건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울 거라는 기대감이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박형주·KBS 홍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