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빛나는 조연이었던 그가, 첫 주연 작품으로 월드 배우가 됐다
인터뷰 하루 전, 그는 이메일로 질문지를 요청했다. “아무래도 여성지는 사생활이 노출되기 쉬우니까요.” 인터뷰 당일, 우리는 내내 연기와 연극 얘기만 했다. 사실, 배우 박광정과 연기 얘기 말고 무슨 얘기를 하겠나.
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그의 첫 주연작이다. 연기 생활 15년 만에 처음이다. 그동안 박광정(45)은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의 대명사였다. 첫 TV 출연작이었던 ‘사랑을 그대 품안에’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화 ‘넘버3’의 ‘랭보’도 마찬가지다. 그가 맡은 개성 있는 배역들은 오래도록 관객의 인상에 남았다.
“아, 조연보다는 주연이 살아야 하는데… 저는 불만 없어요. 주연들이 기분 나쁠 수는 있겠죠. 조연이 더 빛났다고 하니까. 하하.”
연기를 하는 데 굳이 주연과 조연을 나눌 필요는 없다. 연극배우와 영화배우, 혹은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기자를 구획 지을 일도 아니다. 배우라면 어떤 장르든 잘할 수 있어야 한다.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연극배우가 영화에 출연한다고 해서, 혹은 TV 드라마에 등장한다고 해서 손가락질 할 필요는 없다.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 처음 출연할 때만 해도 그런 시선들이 있었어요. 연극판에서는 ‘몸 팔러 드라마로 간다’고 했죠. 이후 3~4년 정도는 그런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그러던 것이 불과 10년 사이에 많이 변했죠.”
첫 주연을 맡을 때의 자세도 다를 것이 없었다. ‘15년 만의 첫 주연 감동’이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예전과 변함이 없었다. 배역에 충실한 연기를 할 뿐이었다. 영화는 국내외에서 호평받았고, 박광정의 연기에 대한 칭찬도 자자했다. 아내와 바람난 택시기사(정보석 분)와 동행하는 내내 소심한 소시민 남성의 내면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역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은 아쉬웠다.
“개봉 당시 전국 8개관에서 상영했어요. 서울에서는 서너 곳에서만 개봉됐죠. 소위 ‘아트 영화’만 상영하는 곳이었어요. 지금은 부산에서 상영 중이라고 들었어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저예산 영화다. 세트를 지을 여력도 없었다. 그래서 실제로 장소를 섭외하고 촬영했다. 술집에서 촬영하는 장면이 있다면, 영업을 마치는 새벽 4시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영화를 찍었다. 2005년 6월 중순부터 9월까지 촬영한 영화, 한창 더울 때였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동이 트면 창문 틈으로 햇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을 틀어막아야 했다.
“공기 통하는 곳을 다 막아놓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스태프도 기존 영화의 3분의 2 정도였어요.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한 명이 두 명 몫을 했어요.”
영화의 기자 시사가 있던 날, 박광정은 ‘영화가 잘돼서 감독님이 빚을 좀 갚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렵게 찍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던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과연?
“하하, 빚은 아직 못 갚으셨을걸요? 하지만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계시니까, 그 계기가 됐다는 것이 의미가 있죠. 독촉에만 시달리지 않는다면 빚은 차근차근 갚으면 되잖아요.”
영화인에게 상은 명예롭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위안이다. 또 다른 작품에 착수할 수 있다는 것은 감독의 기쁨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리메이크한다는 소식도 반갑다(이 부분에서 박광정의 눈빛이 빛났다, 반짝).
배우 박광정의 이미지
그가 지금까지 맡은 역할을 보면, 비겁하거나, 비열한 경우가 많았다. 혹은 그렇게 보이거나. 흔히 “쌈마이(3류)”라고 할 수 있는 역할도 자주 맡았다. 불만은 없었을까.
“배우를 두 종류로 나눈다면, 화면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와 배우의 실생활이 비슷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아마 그렇지 않은 쪽이 훨씬 많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소위 ‘니마이(2류)’와 ‘쌈마이(3류)’를 말한다면, ‘연기는 쌈마이라도 사람은 니마이가 되자’고 생각해요. 인간은 쌈마이인데 연기가 니마이인 것처럼 추잡한 건 없죠.”
“저는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다고 생각해요. 아마 시청률에 따라서 제 이미지도 정해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본 드라마의 역할들이 오래 기억에 남으니까요.”
박광정이 맡은 역할이 인상적인 이유 중에는 그의 ‘얼굴’도 한몫 한다. 마른 체구에 큰 눈과 오똑하게 솟은 코, 그리고 자연스럽게 진 주름은 캐릭터에 따라 명민하게 반응한다.
“제가 지금은 머리도 빠지고, 말라 보여서 이런 얼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잘생긴 얼굴이에요. 하하. 옛날에는 ‘광주 3대 미남’이었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두고 ‘미남’이라고 말하는 그의 미소는 뻔뻔스럽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박광정 자신만이 아니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김태식 감독도 박광정의 얼굴을 두고 ‘가까이에서 보면 굉장히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말했다. 영화에 유난히 클로즈업 신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다. 섬세한 주름과 표정은 캐릭터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대학로와 연극, 박광정의 고향
인터뷰 장소는 대학로에 있는 그의 극단 ‘파크’ 연습실이었다. 대학로 연습실에서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에 떠오른 그림은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룻바닥과 전신거울이 벽을 감싸고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건물 지하에 자리한 그의 연습실은 넓지 않은 공간에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 간단한 소품들이 전부였다. 마룻바닥과 전신거울이 있는 상상 속의 깔끔한 그림이, 갑자기 호사스럽게 느껴졌다.
“연극계가 어려운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제가 처음 연극을 할 때부터 그랬죠.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공통적이에요.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은 미국이나 영국, 일본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어려운 현실이죠.”
최근의 뮤지컬 붐은 연극계로 하여금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질투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연극은 어렵다’거나 ‘골치가 아프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관객으로 하여금 삶에 대한 고민과 진지한 화두를 던지는 연극이 시대의 분위기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도 연극계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있는’ 사람들의 코드와 대형 뮤지컬이 맞아떨어지면서 소비적인 성향이 짙어진 것도 사실이에요. 세계적으로 이렇게 빠르게 뮤지컬 붐이 일어난 나라는 우리나라뿐일 겁니다.”
지금은 공연을 보면서 삶과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싶은 사람이 거의 없다. 여가 활동의 일환으로서 두세 시간 재미있게 보내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공연장에 가서 ‘문화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긴다.
“연출 데뷔가 1992년, 창단 공연은 2002년에 했어요. 예전에는 연극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뭔가를 얻어가려고 하고, 고민하는 성향이 강했죠. 지금은 그보다 공연 자체를 여흥으로 즐기고 싶은 분위기예요. 심각한 주제를 전달하려고 해도, 전에 비해 쉽지가 않죠.”
뮤지컬 붐과 마찬가지로, 대학로 연극판도 양적으로 팽창했다. 70~80여 개에 이르는 극장에서는 그만큼 다양한 공연이 상연되고 있다. 장르도 다양하고, 선택의 가능성도 풍부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연극은 순수예술 중에서도 배고픈 장르라는 편견 역시 지배적이다.
“순수 예술은 다 마찬가지죠. 물감이 없어서 그림 못 그리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래도 우리 극단은 일 년에 두세 편씩 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 때문에 꾸준히 하고 있어요.”
“연극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요. 다른 취미도 없고. 저는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연극이 생활의 일부가 된 거죠. 다른 촬영이 없으면 집과 연습실이 제 생활의 전부입니다. 게을러서 그렇죠 뭐, 하하.”
연극을 통해 배운 연기가 ‘제대로’라는 편견에 대해서도 그는 그럴듯한 이유를 설명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각자 자기 분량이 있죠. 드라마의 경우는 식사 시간에도 각자 먹는 시스템이에요. 그런데 연극은 죄다 몰려다니죠. 연습하러 모일 때부터 저녁 술자리까지. 배우들이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연출자가 지적하는 것을 고쳐나가는 과정 자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같이 있으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듣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더 큰 훈련이 됩니다.”
연극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배우 겸 연출가 박광정에게, 대학로는 편한 고향집이다. 분당에 살던 그가 3년 전 대학로로 이사한 것도, 그에게 대학로만큼 편한 곳은 없기 때문이다.
호기심 많은 B형 남자, 박광정의 고민
“가장 큰 고민은 두 가지예요. 7월에 올라갈 작품 ‘진짜, 하운드 경위’와 대통령 선거죠. 하하. 저는 큰 고민은 하지 않아요. B형이거든요.”
기분 상하는 일이 있으면 ‘욱’ 하는 성격이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금방 잊어버린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제 멋대로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푹 빠졌다가 금세 질린다. 전형적인 B형이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오락도 재미를 느끼면 일주일 동안 밤을 새요. 그리고 질리죠. 남자 배우들이 유난히 B형이 많아요. 본의 아니게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죠.”
송강호, 설경구처럼 연극을 거쳐 영화에서 큰 성공을 거둔 후배들을 봐도 부럽지 않다. 박광정에게는 그만의 몫이 있기 때문이다.
“다 후배들인데요, 잘되면 좋죠. (송)강호, (설)경구가 대학로에 오면 술값 다 계산하거든요. 하하. 옛날에는 내가 많이 샀으니까, 갚는 거죠 뭐.”
B형 남자 박광정은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지금까지, 노력한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정도에 만족합니다. 하고 싶은 작품이 있고, 배우로서의 쓰임새가 있으니까. 그리고 극단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더 큰 욕심은 없어요.”
박광정은 ‘몸’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연기가 아니면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었을지 생각하면 막막하다.
“연극을 하고, 또 본다는 것의 의미는 ‘직접 경험’에 있어요. 연극은 원시적인 장르죠. 소극장 공연은 자리도 불편하고, ‘연극은 고문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인간과 인간이 부딪치는 장르라는 점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B형 남자인 그가 가볍게 말한 고민은 대선과 곧 무대에 올릴 연극이었다. 하지만 연극 자체에 대한 고민도 놓지 않는다.
“관객들이 와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대중은 이미 가벼운 코드에 길들여져 있다. 진지한 고민의 산물인 연극을 그들과 공감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이 필요하다. 관객이 없는 무대만큼 공허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화두를 던지고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연출가 박광정의 고민이다. 연극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말하면서, 그는 기운차게 웃었다.
“세상이 디지털화될수록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어지잖아요. 이런 세태가 극한까지 가면 사람이 그리워서라도 대중이 다시 연극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기대라도 있어야지, 없으면 연극 못합니다. 하하하.”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박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