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법정 소송, 집안 부도 등 유서쓰며 견뎌낸 지난 5년간 고백”
진주가 5년 만에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 선다. 기나긴 전 소속사와의 분쟁에서 승소하고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그녀의 지난 5년은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든 나날이었다. 그녀가 벼랑 끝에서 발견한 삶의 가치, 행복을 이야기한다.
아이스크림을 한 입 떠 넣은 진주가 말한다. “먹는 게 이렇게 행복한지 몰랐어요.”특별할 게 없는 메뉴였기에 순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행복한 얼굴 뒤에 스치는 옅은 그림자. 지난 5년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5년간 전 소속사와 분쟁으로 잃은 모든 것
“행사에 서려고 해도 전 소속사가 주최 측에 ‘진주가 회사 돈을 횡령했습니다’라는 공문을 보냈어요. 제가 가려는 모든 곳에 공문을 보냈으니 누가 저와 일을 하겠어요. 게다가 저뿐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까지 소송에 걸렸기 때문에 우리 세 가족은 모두 경찰서를 오가야 했죠. 셋이 앉아서 조사를 받고 있을 때면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피해는 거기까지가 아니었다. 당시 어머니는 한정식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소송에 신경을 쓰다 보니 자연히 가게 운영에 소홀해졌고, 이로 인해 부도를 맞게 되었다.
“가게가 부도를 맞으니 ‘모든 일이 나로 인해 벌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죠. 실어증에 걸렸고, 머리가 빠져서 터번을 쓰고 있어야 했어요.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고, 새벽에 일어나서는 혼자 술을 마셨죠. 거식증에 걸려서 물만 먹어도 토하고, 몸무게가 37㎏까지 빠졌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8년은 늙어 보였어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자 등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고,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보니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이끌 수 없었다. 삶의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렸던 그에게, 죽음의 유혹이 다가왔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유서를 써놓고 차를 몰고 나갔어요.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쭉 달리기 시작했죠. 그렇게 달리다가 바로 앞차에 단란한 가족이 타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사고가 나면 나 죽는 건 괜찮지만, 가족이 무슨 죄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장 차를 갓길에 세우고는 펑펑 울었죠.”
죽기를 포기하고 돌아오면서 진주는 하늘의 별을 보았다.
바닥 저 아래 보이지 않은 곳으로의 추락을 경험한 진주는 그곳에서 희망을 찾았다. 그리고 새 삶을 시작했다.
우유 배달로 시작한 새 삶
마음을 추스른 진주는 ‘가수고 뭐고 일단 먹고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무작정 시작한 일이 우유 배달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살고 싶었어요. 고생을 통해 값지게 돈을 벌고 싶었죠. 그래서 우유 배달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정말 힘들었어요. 신문이야 지나면서 던지면 그만이지만 우유는 던지면 터지잖아요. 일일이 가서 넣어야 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세대 주택이나 빌라는 걸어서 올라가야 했어요. 우유를 싣고 다니는 삼륜차가 불안정해서 넘어지면 우윳값을 다 물어야 했고, 어쩌다 초코우유와 딸기우유를 혼동해서 넣으면 어김없이 항의가 들어왔죠.”
힘들었던 우유 배달.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5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아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다니면서까지 했던 일이었다. 이 일을 통해 진주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더 힘든 일이 얼마든 있다는 것, 그리고 고통을 참고 견디는 법을 배운 것이다.
“삶이란 배움의 연속인 것 같아요. 누군가의 도움은 한계가 있죠. 예전에는 조금만 안 좋아도 비관적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안 좋은 일이 생겨도 ‘하나님이 뭔가 다른 뜻이 있겠지’, ‘다른 일을 하라고 하시나 보다.’ 생각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삶에 변화가 오고, 밝아지고, 모든 상황이 달라지더군요.”
마음을 편안히 먹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니 정말 좋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발표한 디지털 싱글 앨범은 반응이 무척 좋았다. 그 여세를 몰아 발매한 CD는 특별한 홍보 없이도 첫회 찍은 분량이 모두 동이 났다.
“음반 발매를 앞두고 쇼케이스를 준비했어요. 강의식으로 진행하려고 대본도 마련했죠. 그런데 소속사 대표께서 ‘시간이 다 되었는데 아무도 안 왔다’고 하시더군요. 정말 눈앞이 캄캄했어요. 그런데 쇼케이스 예정 시간보다 5분쯤 늦게 도착했는데 많은 분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계셨어요. 게릴라 콘서트 하는 기분이 그런 걸까요? 눈물이 났어요. 그동안 너무 당연하다 싶었던 것들, 그러니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 무대가 있다는 것,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를 위해 애써주는 스태프들이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했죠.”
올해 초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연예인 자살. 우연의 일치인지 정다빈, 유니 모두 진주와 같은 또래였다.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여자 연예인들이 남자 연예인에 비해 우울증이 더 심한 것 같아요. 남자들은 동호회도 많이 하잖아요. 축구나 야구, 테니스… 여자들은 정적인 분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아직까지는 여자들이 밤 늦게 다니면서 술 한잔 하는 걸 좋게 보지 않아요. 어쩌다 그런 모습이 노출되면 반감도 사고요. 그래서 더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고 집에만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경험담을 담은 ‘시련은 시작을 만든다’ 펴내
“학생들하고 친구처럼 지내요. 싸이월드 도토리도 나누고, 방송 나갈 때 학생들에게 문자를 보내 꼭 보라고 하죠. 학생들도 제 기사가 인터넷에 뜨면 댓글도 달고 방송에 나가면 문자도 보내줘요. 가끔 ‘진주 파이팅~ 교수님, 저 학점 잘 주실 거죠?’라는 경우도 있지만요. 하하하.”
진주는 그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 또 오랫동안 가수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책으로 펴낸다. 제목은 「시련은 시작을 만든다」.
“음악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 음악인들,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음악에 가까이 와 있는 분들에게… 이렇게 챕터를 나누어 음악을 하면서 느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썼어요. 저는 가수가 되고 나서 음악인이 되는 것과 가수라는 직업이 연예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둘 사이의 괴리감에 힘들었거든요. 음악을 하려는 예비 음악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음악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결코 딱딱한 책은 아니다. 부모님 이야기, 가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등 재미있게 읽을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이 중 바나나가 매우 고가였던 어린 시절, 딸이 혹여 바나나를 보고 사달라고 떼를 쓸까봐 딸을 업고 달렸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 찡하다. 이 책은 5년 만에 공중파 첫 음악 방송에 나가게 되는 날, 공개될 예정이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명헌 ■헤어&메이크업 / 이경자(Kangnam Park) ■장소협찬 / 커피지인(02-546-6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