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는 예보가 무색하리만치 화창한 금요일 오후. 오랜만의 인터뷰를 앞두고 심진화는 사고 후 처음으로 하이힐을 꺼내 신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그날도 세 명의 친구는 설레는 마음으로, 예쁘게 단장하고 길을 나섰을 것이다.
“형은이가 내 인생에 이렇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줄 몰랐어요. 형은이와의 약속 꼭 지킬 거예요”
이젠 슬프지 않아, 언제나 함께하니까
“형은이가 이렇게 내 속에 깊이 들어와 있을 줄 몰랐어요. 시간이 흐르면 잊혀진다고 하잖아요. 전 그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이 싫어요. 앞으로도 형은이와의 약속은 꼭 지킬 거예요.”
지난 12월 16일 교통 사고 직후 김형은과 장경희의 상태에 놀란 심진화는 무릎에 금이 간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뛰었다.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머릿속이 하얬지만 불길한 예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병원으로 이송되는 구급차 안에서 김형은은 산소호흡기 때문에 말은 하지 못했지만 눈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정신이 또렷했기 때문이다. 얘기가 들리면 눈을 두 번 깜빡이라고 하자 김형은은 재깍 눈을 두 번 깜빡였다. “네 눈이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여”라는 농담에 유난히 속눈썹 짙은 눈을 꾹꾹 누르듯 크게 깜빡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몇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겨냈기에 툭툭 털고 일어날 거라고 굳게 믿었거든요. 그러던 중 12월 31일 새벽 매니저 오빠의 전화를 받았어요. 형은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그날 본 형은이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가끔 생각이 나면 눈물이 나긴 하지만 형은이가 좋은 곳에 갔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지금은 슬퍼하지 않아요.”
무릎 골절이라는 중상임에도 심진화는 멤버 중 부상 정도가 가장 약하다는 게 내내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가까운 누군가는 취중에 “좀 나눠서 골고루 다치지 그랬느냐”며 한탄했다. 심진화라고 왜 그런 생각을 안 했을까. 속상한 마음에 공연히 “제일 덜 다쳐서 다행”이라며 위로하는 엄마에게 분풀이를 해대기도 했다.
지난 1월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된 뒤 심진화는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연예계를 떠날 작정이었다. 무서우리만치 열심히 살았던 김형은이 그렇게 어이없이 세상을 등지는 것을 지켜보고 나니 도저히 다시 활동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병실에 누워 있는 동안 유니의 자살 소식까지 접한 뒤로는 몹쓸 생각까지 들곤 했다. 퇴원 후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심진화의 심리 상태는 위태로웠다.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지금까지 달려온 그녀에게 이번 사고의 여파는 엄청난 것이었다.
장래희망이 탤런트라고 했다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했던 경북 청송의 어린 여자아이는 고등학교 때 무려 14시간이나 걸려 서울에 올라와 연기를 배워 가야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마냥 연극의 낭만에 빠지기에는 그녀의 삶이 영 팍팍했다. 정말이지 안 해본 게 없을 만큼 아르바이트해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한달에 1백10만원이라는 거금을 벌수 있다는 이유로 갓 스무 살을 넘긴 나이에 모텔 객실 청소까지 했다. 바닥을 훔치다 보면 어느새 걸레가 눈물에 축축히 젖어 있는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은퇴 결심한 여행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다
한 번 부러졌던 뼈가 더 공고히 붙듯이 한 차례 시련으로 심진화는 더욱 단단해졌다. 활동 재개 후 날아들 억측에도 맞설 준비가 돼 있다.
“동정심을 이용해 유명세를 치르려고 한다는 얘기가 있을 수 있다는 거 알아요. 가슴 아프지만 그래서 더 용기 내서 활동하려고요. 제 입지가 확고해야 앞으로 형은이가 잊혀지지 않도록 더 챙기게 되지 않겠어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잖아요.”
어렵게 재기를 결심한 속내에는 12년째 투병 중인 아버지를 향한 애틋함도 묻어 있다. 한때 심진화는 간경화가 심해지면서 식도 파열을 일으켜 정기적으로 수혈을 받아야 하는 아버지와 같은 환자를 돕기 위해 ‘미녀삼총사’ 멤버들과 헌혈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잦은 부부싸움과 차압 딱지로 기억되는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한 아버지지만 지금 부녀 사이에는 존경과 사랑만이 남았다.
“세상 일이라는 게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병원에서 10년을 내다본 아버지가 지금껏 견디고 계시지만 머지않아 가시는 걸 받아들여야 할 날이 오겠죠? 아버지를 향한 원망은 사라진 지 오래예요. 내 주변에 소중한 인연이 이렇게나 많은데 불평불만하면서 살면 안 되죠.”
심진화는 요즘 두 가지 컨셉트의 개그 코너를 기획해 연습에 한창이다. 빠르면 올여름이 가기 전에 ‘웃찾사’에서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심진화의 시선은 먼 미래를 향하고 있다. 슬퍼할 겨를이 없다. 대학 시절 무대에서 단련한 연기를 고두심, 김해숙과 같은 곰삭은 연기로 키워내기 위해 끊임없이 담금질을 할 각오에 오히려 마음이 바쁘다. 이건 자기 자신 그리고 또 누군가와의 약속이기에.
■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성원 ■장소협찬 / 카페 샴(02-326-2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