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자 쇄도로 서버 다운이요? ‘죄송하다’는 말만 수백 번 했어요.”
MBC-TV ‘섹션 TV 연예통신’에서 유쾌한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었던 리포터 이지희가 인터넷 쇼핑몰 사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 아들을 출산한 뒤, 언니 이승희씨의 제안으로 시작한 쇼핑몰은 방송에 공개되면서 갑자기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이렇게 빨리 유명해지면 곤란하다’며 함박웃음을 짓는 이지희(36)·이승희(40) 자매와의 유쾌한 토크.
“우리는 구멍가게를 표방해요”
7월 14일,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지희·이승희 자매. 그들은 인터넷에 왜 그런 기사가 떴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며 본인들 스스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저는 KBS-2TV ‘감성매거진 행복한 오후’에 출연해서 2분 동안 잠깐 쇼핑몰 이야기를 한 것뿐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제가 검색어 순위 1위를 달리며, ‘이지희 쇼핑몰 대박’이라는 기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나가더라고요. 정말 당황스러웠죠(웃음).”
하지만 이런 기사들이 쏟아지고 난 뒤, 쇼핑몰은 정작 주문이 하나도 안 들어왔다고 한다. “정말 서버가 다운돼, 고객들이 주문을 할 수 없었어요. 이리저리 전화가 쏟아져서 ‘짜증이 정말 대박’이었죠. 하하하.”
특히, 그날은 평소 인기가 좋았던 티셔츠에 프린트가 잘못나오는 착오가 발생, 다시 주문 제작에 들어갔다. 그 물건을 주문한 사람들은 결국 티셔츠를 받아보기까지 10일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10일 동안 사람들에게 먹은 욕으로도 백 살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하. 사람들이 ‘이제 좀 ‘떳다’고 배송이 이렇게 느려질 수가 있느냐’ ‘이래도 되느냐’는 등 항의를 해서 ‘죄송하다’는 말만 수백 번도 더 한 것 같아요. 아휴…어찌나 진땀을 뺐는지 몰라요. 호호호.”
‘하하하’ ‘호호호’.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이지희·이승희 자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하긴 단숨에 주병진이나 이혜영과 같은 급의 연예인 CEO로 평가받고 있느니, 오죽할까 싶다. 급기야 이날 ‘주병진, 이혜영, 토니안, 이지희의 공통점은 사업으로 대박’이라는 기사까지 나왔던 것. 하지만 이들은 ‘대박이라니…말도 안 되는 억측’이라면서 기사가 그렇게 나와서 그렇지 실상은 ‘조그마한 구멍가게’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구멍가게를 표방해요. 사람 냄새 나고 감성이 넘치는 쇼핑몰이고 싶어요. 그래서 쇼핑몰 홈페이지도 친근해 보이는 연보라 색깔을 바탕으로 하고 손으로 그린 듯한 아이콘들을 장식해 넣었어요. 사람들이 받아보는 박스에도 직원들이 직접 매직으로 그림도 그리고 예쁜 시구 같은 것도 적어 넣어요. 이제는 우리의 ‘행복 메시지’가 있는 박스까지 기다리는 고객도 있는걸요?(웃음)”
이승희씨는 이 같은 심정을 “마치 갓 시집온 새색시가 집들이에 온 몇십 명의 손님 때문에 부엌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새벽시장 가서 울면서 왔어요”
이들 자매가 쇼핑몰 ‘브리즈 나인’을 창업하게 된 것은 언니 이승희씨 때문이다. 광고심의 쪽 일을 20여 년간 해온 이승희씨는 평소 옷 입는 것을 너무 좋아해 ‘옷가게 사장’이 오랜 꿈이었다.
“이승희 저는 진짜 옷 장사 하고 싶었어요. 물론, 한 직장을 거의 20년 가까이 다니면서 일에 대해 권태기가 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진짜 옷을 좋아해서 아프고 힘들어도 누가 ‘쇼핑하러 가자’하면 벌떡 일어났을 정도예요(웃음). 그동안은 부모님이 많이 말렸어요. 그런데 이번에 ‘마흔이 되기 전에 하고 싶은 거 못해 보면 후회할 것 같다’면서 부모님 말을 듣지 않았죠.”
그리고 언니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다. 마침 이지희 역시 아이를 낳고, 집에서 쉬고 있었기 때문에 자매가 한번 ‘사고를 쳐보자’며 의기투합하게 된 것.
인터넷 쇼핑몰은 자본이 적게 들어가는 장점 때문에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일을 시작하고 보니 ‘부업’이나 ‘취미’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우선 동대문 새벽시장 가는 게 첫 번째 관문이었다. 나름 지방에서 올라온 것처럼 사투리까지 써가면서 “이거 얼마예요?”라고 물어보면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소매 안 해요!”라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왔다는 것.
장사꾼인 척하려면 그들만이 쓰는 용어도 알아야 했다. “색깔별로 주세요”라는 것을 장사꾼들은 그냥 “깔별로 주세요”라고 말한다고. 이렇게 열심히 사전에 연습을 했건만, 정작 실전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이승희 처음에는 시장에 가서 울면서 왔어요. 장사꾼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빨강 치마에 빨강 가방을 메고 갔는데 얼마나 어설펐겠어요. 가는 곳마다 ‘소매 접근 금지’라고 써 붙여놓고, 말이라도 시키려고 하면 ‘안 팔아요!’라며 냉정하게 대했어요. 너무 무서워서 한동안 동대문을 못 갔다니까요. 호호호.”
하지만 이제 이들도 동대문 새벽시장에서는 어엿한 장사꾼으로 통한다. 초창기 이들에게 ‘소매는 안 판다’며 말도 못 붙이게 했던 장사치들이 지금은 주 거래처가 됐다.
“저보다 언니가 입은 옷들이 더 인기가 많아요”
어렵게 새벽시장을 뚫은 다음 단계는 바로 ‘사진’이었다. ‘예쁜 옷을 사다가 쉬엄쉬엄 찍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한 게 큰 오산이었다.
예쁜 카페나 공원 등에서 이지희와 이승희씨가 모델로 사진을 찍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굴이 조금 알려진 덕에 모델을 해준다고 나섰던 이지희. 하지만 그녀가 입은 옷보다 일반인인 언니 ‘이승희’씨가 입은 옷이 사람들에게 더 반응이 좋았다. 옷을 좋아한 덕분에 아무거나 입어도 척척 잘 어울렸기 때문.
“이상하게 언니가 입고 찍은 옷이 더 반응이 좋아요. 아마 언니가 초등학생 아이들을 둔 아줌마라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요즘 10~20대 중심의 인터넷 쇼핑몰은 많은데, 아줌마들을 위한 쇼핑몰은 없잖아요.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면서 ‘이 옷 입은 사람도 우리처럼 마흔 살 아줌마라던데…’라는 안도감을 갖는 것 같아요(웃음).”
아줌마 고객들이 많기 때문인지 쇼핑 아이템도 ‘임산부 레깅스’ 등 임산부를 위한 옷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사진’과 ‘모델’ 작업이 끝나면, 이제 일일이 상품 손질에 나선다. 원단이 뜯기지 않았나, 실올이 풀려 있지는 않은가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야 하는 것.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 18시간도 모자랄 정도다.
“이승희 저는 이렇게 일이 많을 줄 정말 몰랐어요. 생각했던 것의 10배는 되는 것 같아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데도 화장실 가는 것도 벅차요.”
‘이지희’라는 이름을 걸고 시작한 일이기에 이에 따르는 어려운 점도 있다. 물건을 구입한 뒤 얼마 되지 않은 상품들은 흔쾌히 반품을 받는다. 하지만 구입한 지 10일이 지난 뒤에도 반품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정말 난감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여기저기 입었던 흔적이라도 남아 있다면 다시 팔 수도 없는 일이다.
내가 할 일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1997년 MBC 라디오 미스 DJ 선발대회 대상을 받고, 리포터로 데뷔한 이지희. 당시 그녀 나이는 26세로 꽤 많은 나이에 속했다. 오죽하면 라디오국으로 인사를 하러 갔는데, 라디오 국장의 첫마디가 ‘프로필 나이 고쳐라’였다는 것. 그래서 데뷔 초에는 두 살이나 어리게 방송에 나가야 했다.
어릴 때부터 거울 보면서 혼자 놀기를 좋아했던 그녀. 언니들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말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말이 없어 늘 조용했던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라디오 듣는 것. 그런데 중학교 때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이런 성격은 조금씩 달라졌다. 방송을 할 때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 그래서 이제는 ‘방송을 못 놓겠다’고 한다.
“방송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역할이요. 그렇게 그냥 평범한 옆집 아줌마, 동생, 친구 같은 방송인이 되고 싶어요.”
지금 이지희의 꿈은 ‘지금처럼만 사는 것’이다. 이제 15개월 된 아들 원준이가 착하게 잘 자라주고 있고, 마흔 살 언니와 아기자기하지만 웃음이 끊이질 않는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으며, 어릴 때 그토록 하고 싶었던 ‘방송’도 하고 있다.
“지금 상태에서 욕심이라면… 이 상태를 쭉~유지하는 거예요. 어차피 돈을 버는 것도 자기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잖아요. 제 인생의 기본적인 마인드는 ‘행복’이에요. 행복을 위해 안달하면서 쫓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제 삶 안에서 최대한 노력해서 제 것으로 만드는 게 행복인 것 같아요(웃음).”
인터뷰와 사진 촬영 내내, ‘까르르~’ 행복한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이지희·이승희 자매. 누구나 간절히 원하는 ‘행복’의 의미를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