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프레젠터 아나운서 안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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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평창과 함께했는데…제게 평창은 특별한 도시가 됐죠


생각지도 못한 패배였다. 평창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준비한 빨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실패’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리랑TV 하트 투 하트’(Heart to Heart)의 진행자인 안정현의 일상도, 다시 꿈을 꾼다.


평창 동계올림픽 프레젠터 아나운서 안정현

평창 동계올림픽 프레젠터 아나운서 안정현

‘소치’, 그리고 눈물
“2003년 유치 때도 프레젠터로 나섰죠. 그때는 벤쿠버에 아깝게 져서 실패하자마자 IOC 위원들이 ‘너무 아쉬우니 다음에 다시 도전하라’고 했어요. 인생의 5년이 평창과 함께 갔는데, 허무하죠. 자고 일어나니 벌써 8월이에요(웃음).”

눈물이 흘렀다. 벽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뛰어넘을 자신이 있었다. 객관적인 평가도 앞섰다. 드라마틱했던 프레젠테이션 결과도 최고였다. 감동적인 영상은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하지만 절실했던 ‘평창의 꿈’은 벽에 부딪쳤다.
프레젠테이션은 소치의 그것과 확실히 차별화됐다. 평창의 프레젠테이션에는 정보 이상의 감동이 있었다.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의 파장이 눈(雪)을 몰고 전 세계로 퍼지면, 평창의 꿈에 세계가 하나가 된다는 주제였다.

한국의 전통 문화와 열대 지방의 아이들에게 동계 스포츠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는 평창의 ‘드림 프로젝트’도 IOC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산의 아픔을 안고 지난 2003년 돌아가신 고 이영희 할머니가 북녘 아들에게 남긴 머리카락과 마지막 편지의 사연이 공개될 때는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다. 이창동 감독이 감수한 영상은 세계의 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자극했다. 안정현의 깔끔한 프레젠테이션도 감동적인 영상과 맞물려 인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냈다.

“러시아의 ‘오일머니’를 앞세운 물량공세가 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우려도 있었지만 ‘설마 지지는 않겠지’ 생각했죠. 평창은 ‘객관적’으로 준비된 도시예요. 생각지도 못했던 패배는 황당했습니다.”

유력 외신들도 평창의 우세를 점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지난 2월 있었던 IOC 평가단의 평가도 평창이 우세했다. 소치는 7년 안에 11개 경기장을 완공해야 한다. 준비된 도시가 아니다. 스키장 건설 예정지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자리하고 있어 러시아 시민 사회의 반발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이주시키고 경기장을 짓겠다는 계획도 무리가 있다. 객관적인 ‘악조건’을 ‘돈’으로 눌렀다는 배경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한국의 이미지를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프레젠테이션은 모든 스태프가 지난 두 달 남짓 준비한 결과였다. 안정현은 모든 스케줄을 제쳐두고 프레젠테이션에만 매달렸다. 전체 45분 중 13분에 달하는 안정현의 분량은 처음에만 부담스러웠다. 나중에는 다른 프레젠터의 원고까지 줄줄 욀 정도였다. 원고와 영상은 마지막 순간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만성 근육통으로 목이 앞으로 숙여지지 않아 고생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소치의 승리를 위해 KGB를 동원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과테말라 현지 호텔에는 도청 차단 장치가 설치됐다. 프레젠테이션 이틀 전부터는 혼자서는 호텔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과테말라 현지에서는 호텔 구역 밖을 벗어나지도 못했어요. 눈 뜨면 연습하고, 자다 깨서도 다시 잠들 때까지 중얼중얼 연습했죠. 3일 전에 마지막 2분을 불어로 하자는 특명을 받고 나서는 영어 원고는 제쳐놓고 불어만 연습했어요. ‘올인’했죠. 다 쏟아 부었어요.”

처음에는 `어디 있는지 잘 알지도 못했던 도시 평창은 이제 특별한 도시가 됐다. 동계올림픽 유치가 ‘개인적인 미션’으로 여겨질 정도다. 스노보드를 좋아해 겨울이 되면 평소에도 일주일에 3일은 용평에서 보낸다는 안정현은 ‘이번에 유치 성공하면 군수님이 명예 군민증 준다고 하셨는데’라며 아쉬움을 보였다.


프리랜서 아나운서, 인터뷰어 안정현
프레젠테이션 이후 인터뷰 요청도 많았다.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네티즌은 그의 영상을 여기저기에 퍼다 날랐다. 갑작스러운 유명세를 탔지만, 그는 지난 1996년부터 아리랑TV의 기자 겸 앵커로 활동하다 지금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동(同) 방송국의 ‘하트 투 하트’(Heart to Heart)라는 인터뷰 프로그램을 5년째 진행하고 있는 베테랑 방송인이다.

“원래 아리랑TV 보도팀 시스템이 앵커 겸 기자였어요. 개국하면서부터 했으니 아리랑TV에서는 ‘가장 오래 나간 얼굴’일 거예요(웃음). 초반에는 보도국 인력이 15명뿐이어서 다양한 일을 했죠.”

평창 동계올림픽 프레젠터 아나운서 안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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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mm 카메라를 들고 나가서 취재와 기사 작성을 하기도 하고, 영상 편집도 도맡아 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는’ 채로 입사 원서를 냈지만 일은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벌써 10년. 자신은 ‘어영부영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하지만 ‘하트 투 하트’에 출연하거나, 방송을 본 사람들은 그의 매력을 입 모아 칭찬한다. 영어로 진행되는 인터뷰와 방송 출연에 부담을 느꼈던 출연자들도 안정현의 진행에 금세 마음을 열고 편안한 대화에 녹아든다. 녹화가 끝난 후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냐’고 말하는 인터뷰이들도 많았다.

“원래는 계속 공부를 할까 했어요. 그런데 주변에 언어학 하는 친구들과 교수님들을 보니, ‘저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생 글과 책 속에 묻혀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아버지(안청시·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의 권유로 아리랑TV에 원서를 내고 공채 시험 하루 전 날 귀국했다. ‘얼떨결에’ 방송일을 시작하고 한국에서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안정현의 어머니가 손봉숙 민주당 의원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다. ‘집안 분위기가 엄했을 것 같다’고 하자 ‘통금이 10시였다’며 웃는다.

“처음 입사했을 때 20대 중반의 사회 초년생이었는데, 일 마치면 술 마시고 어울려 놀고 싶잖아요. 방송국은 서초동이고 집은 일산인데, 10시가 통금이니 항상 저녁만 먹고 일어나야 했어요. 그래서 점점 대담해졌죠. 하하.”

집에서 ‘삐삐’가 와도 무시하고 마음대로 놀았다. 2시, 3시에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부모님은 ‘그렇게 할 거면 회사 다니지 말라’며 화를 내시기도 했다.

“그럼 저는 ‘진짜? 나 진짜 그만둔다~ 그만둔다~’ 그랬어요. 그랬더니 나중에는 ‘밝기 전에는 집에 들어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부모님도 훈련이 필요해요. 제가 많이 훈련시켰죠(웃음).”

안정현을 처음 보는 사람은 도도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차가워 보인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고 짐작하지만 그건 그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그는 스스로 ‘털털한 성격’이라며 웃었다. 곁에 강아지라도 있어야지 혼자 있으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사람을 좋아해 ‘사람 드글드글하고, 항상 술친구가 있는 게 좋다’고 한다.

“어머니가 사주를 보고 오시면 ‘장군 사주’라고 그래요. ‘남자 사주’래요. 성격도 남자 같고. 하지만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여성이라는 사실은 무기일 수도, 약점일 수도 있지만 저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너무 좋습니다.”

방송 10년 차인 안정현은 같은 여성들에게 ‘남자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조금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능력 있는 여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여성’이 갖는 사회적인 핸디캡을 장점으로 승화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후배들을 보면 ‘고생할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아요. 풍족한 시대를 살아서 그런지. 저 때만 해도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었거든요. 80년대에 유행했던 ‘나이키’ 운동화가 무척 신고 싶었는데 ‘운동화가 뭐 그렇게 비싸냐’는 알뜰한 어머니 때문에 참았죠.”

지금의 ‘사회 초년생’들은 주로 80년대생이다. 갖고 싶은 것은 웬만해선 가질 수 있었던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그들은 ‘고생’을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70년대와 이전 세대에 비하면 ‘풍족한’ 생활을 했다.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고, 갖고 싶어 하지만 고생하며 성취할 준비는 안 돼 있으니 끈기를 가지라’는 것이 후배들을 향한 안정현의 충고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사람들이 그래요, ‘와, 너 스타됐다~ 검색어 1위던데~’ 솔직히 듣기 싫어요. 잘돼서 받는 관심이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닌 데다, 저보다 열심히 하신 분들이 수두룩한데 ‘앞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받았으니까요. 부담스럽고 미안하죠.”

‘2014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위원회’에 있는 도청 소속 공무원들도 평창 유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특히 이병남 PT 평가 준비부장은 모든 내용을 눈 감고도 줄줄 욀 정도였다.

평창 동계올림픽 프레젠터 아나운서 안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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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선 강원도지사님과 권혁승 평창군수님이 유난히 애틋해요. 항상 같이 다녔고, 워낙 잘 챙겨주셨거든요. 잠도, 식사도 거르고 누구보다 열심히 뛰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소치’라는 결과 발표 직후 안정현은 울지 않았다. 의외의 결과에 맥이 빠져 멍한 상태였다. 터덜터덜 걸어 나가는데 김진선 강원도지사의 얼굴이 보였다. 김 지사의 실망한 얼굴을 보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지난 2월 실사 때 IOC 위원들을 환영 나온 강릉 시민들의 열기를 보고 ‘이거 유치 안 되면 동해 바다에 뛰어내려야겠다’고 농담할 정도로 열정을 쏟았던 김 지사였다.

“정말 목숨을 걸고 뛰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지금도 가슴이 아파요. 잘 지내고 계신지, 전화 한번 드려봐야겠어요.”

5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바바라 월터스나 다이앤 소여 같은 앵커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대답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다. ‘41세 생일날 아침은 어떨 것 같냐’고 묻자 “4년 후라면 아마 동계올림픽 유치 신청 파일을 내고 할 때인데’라고 운을 뗀다.

“모르겠어요, 다시 평창을 위해 일하고 있을지, 아니면 ‘하트 투 하트’가 장수하고 있을지도. 하하.”
평창 유치 실패를 말할 때의 안정현은 여전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평창의 재도전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언론은 평창의 실패 원인 분석에 열을 올렸다.

그들의 도전은 아름다웠지만 ‘아름답다’는 수사로 ‘평창의 좌절’을 미화하고픈 생각은 없다. 우디 앨런은, ‘가끔 실패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안이하게만 산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객관적인 우세 속에서도 ‘벽’에 부딪친 평창과 유치를 위해 아낌없는 열정을 쏟은 시민들에게, 그리고 안정현에게 ‘실패’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원상희 장소협찬 / 갤러리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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