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후하고 은근한 매력을 지닌 탤런트 홍요섭의 무욕의 삶

중후하고 은근한 매력을 지닌 탤런트 홍요섭의 무욕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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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서글한 눈매와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홍요섭. 최근 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에서 따뜻한 아버지, 다정다감한 남편으로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드라마 캐릭터뿐아니라 실제 삶도 매력적인 이 남자의 진짜 인생 이야기.


탤런트 홍요섭과의 만남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보아온 다정다감한 분위기와는 달리 만나고 싶다는 기자의 끈질긴 요구에도 그는 쉽게 응하지 않았다. 그와 연락한 첫달에는 마감 기한 내 시간을 낼 수 없다 했고, 두 번째 달에는 ‘만나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가족 이야기는 이미 몇 해 전 했고, 드라마에 대해서는 내가 할 말은 없는데…”라며 곤란해하는 그를, 기자는 설득 끝에 원고 마감 마지막 날에야 만날 수 있었다.


중후하고 은근한 매력을 지닌 탤런트 홍요섭의 무욕의 삶

중후하고 은근한 매력을 지닌 탤런트 홍요섭의 무욕의 삶

아웃사이더? 일을 재미있게 즐기고 싶을 뿐
“나 못됐다는 거 듣고 왔나요?”
기자를 만난 홍요섭이 처음 건넨 말이었다. 못됐다고? 그는 따뜻하고 온화한 사람이 아니던가. 조금 머뭇거리다 얼마 전 그의 인터뷰 기사에서 읽은 비슷한 내용으로 답했다. “…아웃사이더라는 말은 들어봤어요.” 그런데 그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아웃사이더?”라고 반문했다. 그는 조금 생각하는 듯싶더니 인정한다는 듯 크게 웃었다.

“연기하는 일은 재미있어요. 한 5, 6개월 하기에는 즐거운 일이죠. 사실 재미있어서 이 작업을 할 뿐이지 이 일로 성공하고 싶다거나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사실 내게는 탤런트 기질이 별로 없어요. 못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많죠. 방송국에서는 그런 저를 겉돈다고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웃사이더라는 이야기가 나왔겠죠.”

얼핏 보면 그는 연기 생활에 미련이 없어 보이는 아웃사이더로 비칠 듯하다. 그러나 그가 오랜 세월 연예계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이 직업에 깊이 빠져들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거든요. 일에 깊이 빠지다보면 내 생활이 없어지기 때문이에요. 보이는 것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 틈엔가 지치게 돼요. 그런데 적당히 하면 ‘정말 좋은 직업이구나’ 생각하거든요. 원한다면 쉬면서 하고 싶은 걸 하죠. 이 직업의 좋은 점이 그거예요. 1년을 안 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어요.”

그는 연기 생활 25년 동안 틈틈이 재충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활동을 해왔다. 그러니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할지라도 ‘몇 년 만의 컴백’ 같은 말은 그에게 새삼스러울 뿐이다.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좋은 조건의 일이 들어와도 하지 않아요. 겹치기 출연도 절대 안 하고요. 그러다 보니 놓치는 일이 많아요. 그래도 끝까지 나만의 방식을 고수해 왔죠.”

지금이야 연기자들이 방송 제작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만, 그가 활동했던 80, 90년대만 해도 전속이라는 명분 아래 특정 방송국에 소속되어 일방적으로 선택을 받는 쪽이었다. 일단 방송국에 전속이 되면 다른 곳에서 활동할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방송국이 전속 탤런트들을 책임지지도 않았다. 이러한 불합리한 점을 제기하고 개선시킨 것이 바로 그였다.

“지금은 연기자들 사정이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예전에는 선택받는 쪽이었거든요. 이러한 상황을 바꾼 것이 바로 저예요. ‘방송 자유 출연 선언’을 제가 주동했거든요. 이 일 때문에 미운털이 박혀서 2년간 방송 활동을 못하기도 했죠. 아웃사이더 맞죠?”

아내와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인기나 출연에 연연해하지 않아 보이는 홍요섭. 그는 스타를 꿈꾸는 다른 연기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방송일에 어떻게 뛰어들었나 싶을 정도다.

“처음부터 연기자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건 PD나 방송기술직 쪽에 관심이 있어서였죠. 그런데 군대를 갔다 오고 나서 소극장 공연을 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들의 자유롭고 거침없이 할 말 다 하는 분위기가 좋더라고요. 그래서 연극을 하게 되었죠.”

스타를 꿈꾸며 연기를 시작하는 다른 연기자들과는 마음가짐부터 다른 셈. 80년대 후반까지 연극판에 머물던 그는 85년부터 드라마에 진출하게 되면서 탤런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혹시 가지 않은 길, 즉 연출에 대한 동경이 남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노선을 바꾼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단다.

“연출은 안 하길 잘한 것 같아요. 한다면 영화를 했을 텐데, 내가 뭘 했을까 싶어요. 5공, 6공 때 한참 제약이 심했잖아요. 그래서 소재도 한정되어 있었고. 또 관료적이고 그런 분위기에서 못 견뎠을 것 같아요.”

홍요섭이 지금껏 맡아온 배역들을 하나 둘 떠올리다 보면 비슷한 이미지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배우의 변신이 그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비춰지는 상황에서 굳이 비슷한 이미지를 고수하는 나름의 소신이 있을 법하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목사셨어요. 처음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않으시고 대신 ‘부인과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게 해라’는 한 마디만 하셨죠. 그런데 80년대는 시나리오를 받으면 바지 입을 새가 없는 그런 영화가 많았어요.

중후하고 은근한 매력을 지닌 탤런트 홍요섭의 무욕의 삶

중후하고 은근한 매력을 지닌 탤런트 홍요섭의 무욕의 삶

그래서 영화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죠. 밤무대도 그렇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말씀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분명한 선을 그어주신 것 같아요.”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캐릭터를 맡다 보니 본의 아니게 비슷비슷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실제 자신과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됐다고.

“대하극이나 사극에서 캐릭터를 잘 살려서 몰입한다고 해도 하다 보면 자기 연기를 하고 있어요. ‘하늘만큼 땅만큼’과 같은 생활 드라마는 더 그래요. 오히려 생활 드라마에서는 연기는 잠깐 하는 거고 나머지는 그냥 저의 모습이라고 보시면 되죠. 그냥 몸에서 자신의 모습이 묻어 나오기 때문에 작가가 섭외부터 이런 사람이 맡아줬으면 하는 것 같아요.”

홍요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 모습이 지금의 홍요섭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며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당부하셨어요. 표시 나지 않게 잘 살다가 조용히 가길 원하셨죠. 특별한 유언도 없이 ‘니들 만나서 잘 살다 간다. 너희들도 잘 살고 오너라’는 말만 남기셨고요. 남에게 폐 끼치는 걸 무척 싫어하셔서 아이 돌잔치나 생신과 같은 행사도 치르지 않으셨어요. 바쁜 사람들을 왜 모이게 하느냐면서요.”
집에 변변한 가구 한 점 남기지 않고 떠나신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이보다 더 했다. 화장을 끝내고 뼛가루를 안고 있자, “갖다 버려라”라고 말씀 하실 정도로 세상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으셨다고.


아웃도어 사나이, 홍요섭
건강한 구릿빛 피부,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탄탄한 근육은 그의 또다른 매력. 실제 그는 어려서부터 스포츠를 두루 섭렵해왔고 급기야는 프로골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골프는 연기에만 매달리지 않고 노후를 건강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 선택한 운동이었다.

“50~60대를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골프를 배웠어요. 요즘 골프 선수들은 장비가 발달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거든요. 진지하게 선수 생활을 해보려는 생각으로 미국 골프 스쿨에 유학 가서 자격증을 땄죠. 시니어 프로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에 배우기 시작한 건데 정말 생겼죠. 제 계산이 맞은 셈이죠.”

현재 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경기에 나간다.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즐기는 동시에 또 다른 일로 할 수 있다는 점이 즐겁다. 특히 골프는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한 운동인데, 홍요섭은 욕심이 없으니 저절로 마인드 컨트롤이 된다. 여러모로 골프는 그와 궁합이 잘 맞는 운동.

운동뿐 아니라 그는 오지 탐험도 즐긴다. 그동안 네팔이나 인도 남부, 티베트 등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전시회도 열어봤고, 잡지에 글을 써서 기고하기도 했다. 오지 여행 가이드로 알려지지 않은 곳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왜 오지에 매력을 느끼는 걸까.

“요즘에는 한 번 갔다 돌아오면 며칠씩 앓곤 해요.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하고 다니죠. 그런데 왜 가느냐고요? 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으로 여행을 다니면 ‘잘 발달된 나라구나’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마음에 와닿는 건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오지를 찾아가면 욕심을 부려봐야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을 주로 만나기 때문에 저와 잘 통하는 것 같아요.”

처음 그가 오지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직접 나무를 문질러 불을 붙이고, 옷도 없이 다니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여행을 가기 전 될 수 있는 대로 옷과 라이터를 구해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편리는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불편을 깨닫게 만들었다.

“몰랐을 때는 행복했던 사람이 라이터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삶이 얼마나 불편한가를 알게 되죠. 그러면서 더 이상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어요. 옷도 없으면 그만이지만, 새옷을 입은 순간부터는 옷이 낡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고요. 그후로는 옷과 라이터를 나누어 주는 일은 하지 않아요.”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는 일도 이제는 하지 않는다. 20년 동안 들었던 카메라를 내려놓았더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더란다.

“카메라를 들면 여행이 안 돼요. 이젠 사진도 안 찍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어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도 보이고요. 카메라는 요물이에요. 이제는 글도 안 써요. 원고지 10장 정도 쓰려고 이틀 밤을 샜는데 역시 글은 전문가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체력이 한창이었던 10~20년 전과는 달라 그는 그만큼 자주 다니지는 못한다. 그러나 오지는 그에게 에너지의 원천인가. 언젠가는 아프리카를 가운데로 가로질러 가고 싶다며 눈을 반짝이는 데서 오히려 젊음이 느껴졌다.


자유로운 영혼, 지킬 건 지킨다
홍요섭은 교회 후배인 정미경씨와 연애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다. 이들 부부는 이제까지 살면서 큰 소리 한번 안 내고 살아온 금술 좋은 부부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물으니 “문제가 있더라도 서로 예의를 지켜가면서 싸운 것”이라고. 또한 미경씨가 그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한다는 점도 크다면 큰 부분일 것이다. 이들은 아이들 교육도 강요하거나 닦달하는 편이 아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인정하려고 한다.

“아들이 대안학교에 다녀요. 그곳에서 직접 빨래하고 돼지우리 청소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죠. 자기가 좋은 걸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자친구를 만나면 만나는 거고요. 중요한 건 인성이에요. 고만 할 때는 성적이 아니라 친구들하고 부대끼고 양보하고 싸우고 그런 일들이 중요하죠. 아이들 교육면에서는 아내와 생각이 같아요.”

무한 경쟁 시대에도 인성을 강조하며 아이들이 원하는 삶을 존중하는 멋진 아버지 홍요섭. 모든 면에 자유롭고 열려 있을 것 같지만 그에게 아닌 것은 아닌, 칼 같은 면도 있다.

“자유분방한 삶을 지향하면서도 지켜야 하는 부분은 굉장히 까다로워요. 이건 아니다 싶으면 가만히 있지를 못하죠. 제가 예전에 무척 싫어하는 말이 ‘아니면 그만’이라는 말이었어요. 세상에 ‘아니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어요? 당시 그 말이 대유행이었는데 그 말을 쓰면 후배든 선배든 쓰지 말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사과를 받을 일이 있으면 절대 자리를 뜨지 않을 정도로 고집이 세지만 그가 화를 내는 걸 본 사람은 많지 않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고,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 않는다.

“제 별명이 ‘어, 뜨거’예요. 누가 제 발에 뜨거운 물을 부었는데, 별로 놀라지 않고 ‘어~뜨거’라고 말해서 붙었죠. 다른 사람들 같으면 소리를 칠 상황이었는데도요. 제가 간이 커서 그런 것 같아요. 실제로 병원에서 선천적으로 간이 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대범하고 반응이 느려요. 방송국에서는 별명이 코알라예요. 운동이 아니라면 잘 뛰지를 않거든요. 급한 게 없죠.”

한 시간 남짓,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도를 터득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를 만났던 이들은 그를 ‘정말 괜찮은 사람’, ‘진정한 멋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전혀 모르는 듯하다. 자신을 멋있게 포장할 줄도, 어느 정도 숨길 줄도 모르는 사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자꾸 “들려줄 말이 없네…”라며 미안해하는 사람. 인터뷰를 마치고야 그에게 처음 전화로 들었던 ‘할 말이 없다’는 말의 뜻을 알 듯했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박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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