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집 「지금 너에게로」의 재즈 디바 말로(Malo)

4집 「지금 너에게로」의 재즈 디바 말로(Ma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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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아름다움을 느낄 준비가 돼 있어요.”


말로의 음악은 친근하고 아름답다. 소음에 지친 현대인에게 ‘마음의 쉼표’를 선물한다. 그의 일상도 다르지 않다. 작은 것의 소중함,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줄 아는 ‘생활인’ 말로를 만났다. 음악에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호방함과 털털함은 그의 새로운 매력이다.


4집 「지금 너에게로」의 재즈 디바 말로(Malo)

4집 「지금 너에게로」의 재즈 디바 말로(Malo)

4년 만의 신보, 「지금 너에게로」
시원한 목소리가 음악을 타고 춤을 춘다. 스캣은 거침이 없다. 담백한 한국어로 쓰인 가사는 소박하고 아름답다. 재즈 가수 말로(본명 정수월, 36)의 음악은 현대인의 지친 마음을, 그리고 추억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다.

유진 박과 함께 대학로 재즈클럽 ‘천년동안도’ 무대에 섰던 것이 10년 전이다. 짜여진 틀 없이 거침없는 솔로를 연주하는 유진 박의 바이올린이 말로를 자극했다. 미친 듯이 노래했다. 그 날의 무대를 본 사람들은 그에게 ‘미친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실로 미친 듯한 소리였고, 노래였다. ‘스캣의 여왕’ 엘라 피츠제럴드의 이름을 빌린 ‘한국의 엘라 피츠제럴드’라는 별명은 그때 생겼다. 그날의 공연 이후, ‘그녀는 이빠네마에서 온 소녀처럼 낯설고 아름다웠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경향신문 「매거진 X」의 10년 전 기사는 아직도 온라인을 떠다닌다. 하지만 정작 말로 자신은 수줍고 겸손하다.

“하나도 아름답지 않았거든요. 다들 미친 것 같았다고 그랬는데. ‘한국의 엘라 피츠제럴드’라는 별명도 기자들이 지어준 별명이죠. 제가 제 입으로 그랬겠습니까(웃음).”

지난 6월 12일 발매된 말로의 4집 「지금 너에게로」는 말로의 진일보한 음악세계를 들려준다. 첫 곡 ‘놀이터’는 온전히 그의 목소리로만 꾸며진 아카펠라 스캣 곡이다. 혼자 5성부를 쌓아올렸다. 그의 아들 윤재(생후 11개월)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마음대로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가벼운 느낌이 도드라진다. 복잡하고 꽉 찬 사운드로 쾌감을 주기보다는 비워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편곡에는 드럼 대신 퍼커션을 사용했다. 드럼의 상투성을 피하고자 했다. 피아노 대신 기타가 나섰다. 장르의 경계 없는 자유로움, 산뜻하고 새롭다. 기자 출신 작사가인 이주엽의 한국어 가사는 이번 앨범에서도 변함없이 빛난다. ‘가사를 씹어 먹을 듯 본’ 뒤 자연스럽게 멜로디가 떠오른다는 말로의 말처럼, 그의 가사가 말로의 음악에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3집 때는 한국어로 노래를 하는 것이 모험이었어요. 이건 비밀인데요 (갑자기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자신감도 없었죠. 저는 노래를 ‘하는’ 사람이지,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곡을 쓰면서도 긴가민가하면서 괴로워하고, 허접하지 않은가 고민했어요. 이주엽씨한테 노래를 들려줬더니 ‘너무 좋다’고 하시는데, ‘일반인’의 말이니 믿을 수가 있어야죠, 하하.”

하지만 평단의 평가는 압도적이었다. ‘드디어 한국도 제대로 된 한국어 재즈 음반을 갖게 됐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평단과 대중의 사랑은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그의 자신감은 4집의 새로운 스타일을 가능케 했다.

“3집만 해도 ‘내 음악이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4집은 ‘그냥 음악’이에요. 뭔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음악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냥 음악이 거기 있는 거죠.”

말로는 그의 음악에 장르를 구분짓는 것도, 어떤 통칭을 붙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게 음악은 일상이다. 지금 ‘너’에게로, 지금 ‘음악에게로’ 더 깊숙한 곳으로. 그 자연스러운 몰입의 결과물이 이번 4집 앨범이다.


한국어를 향한 욕심과 ‘반골 기질’
‘아름다운 한국어 가사’는 말로의 음악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수사다. 집착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그의 노랫말에는 담백한 우리말뿐이다. 혀가 반쯤은 풀린 것 같은 발음으로 랩(rap)을 하고, 듣기에도 민망한 영어 가사들이 판을 치는 요즘의 가요와는 확실하게 차별화된다.

“예전에 공연을 마치고 어떤 ‘유한마담’같은 분이 와서 저한테 말을 걸었어요. ‘말로씨 노래 너무 좋아요, ‘벌클리 칼리지 옵 뮤직’ 나오셨다면서요? ‘벌클리’ 거기 잘 알지…’ 너무 지나치게 굴리시더라고요. ‘나 외국물 먹었다’ 이거죠. 버클리(Berkely)는 ‘버.클.리.’라고 표기하는 대로 읽어야죠. 외국어도 한국말 체계 안에서 표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사람 들으라고 말하는데, 외국식으로 굴리는 것은 이상하잖아요.”

4집 「지금 너에게로」의 재즈 디바 말로(Malo)

4집 「지금 너에게로」의 재즈 디바 말로(Malo)

이태원 재즈클럽에서 노래할 때 느꼈던 낯섦도 그가 한국어에 애착을 갖는 계기가 됐다. 무대에서 유명한 외국곡을 부르고 나면 외국인들은 환호했다.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반면 객석에 앉아 있는 한국 손님들은 심드렁했다. 외국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을 익숙한 곡을 한국의 가수가 멋드러지게 부른들, 한국 사람이 느끼는 감동은 그들에 비해 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인 트렌드가 정신적으로 미국에 가 있는 것 같아요. 일본어도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고. 언어가 정신을 지배하잖아요. 그냥 ‘그렇구나’ 할 수도 있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게 ‘사대주의’가 되고 있는 게 아닌가… 미국이 기준인 양 맞춰가고, 그런 식으로 세계화되는 것은 싫어해요.”

한국의 대중문화는 지금의 미국, 몇 개월 전의 일본, 혹은 1년 전 영국의 트렌드와 다르지 않다. 도입과 소비가 빨라 문화도 그만큼 빠르게 소진된다. 깊이 있는 감상보다는, 가벼운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문화 소비가 일반적이다.

말로는 주류에 편승하지 않는다. 그 안에 있는 ‘아나키스트(Anarchist : 무정부주의자)’적인 감성도 그의 반골 기질에 한몫을 한다. 말로의 인터넷 아이디도 ‘아낙’이다. 아나키스트, 그리고 아낙네의 앞머리를 잘라 만들었다. 그의 일상도 일반적인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저는 신문도 안 보고, 집에 TV도 없고, 인터넷 할 시간도 없고, 잘 몰라요. 그래서 이번 앨범 반응이 어떤지도 몰라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선생님, 이번 앨범 너무 좋아요’하면 그냥 그런 줄 알죠. 하지만 그 아이들이 설마 선생님 음악 듣고 ‘별로’라고 하겠어요(웃음)?”

한국 대중음악 판에서 재즈는 주류가 아니다. 말로의 음악은 한국 재즈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재즈가 전에 비해 ‘대중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음악 장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정작 그의 머릿속에 ‘대중’이 차지하는 영역은 크지 않다.

“저는 (대중과) 관계없어요. 그들이 특정 음악을 선호한다고 해서 제가 그 음악을 할 것도 아니고, 별로 신경 안 써도 되는 분들이죠. 제가 성격으로 살아남는 뮤지션 아닙니까. 하하.”

아, 이런 말이 듣고 싶었다. 자신의 음악세계를 고집스럽게 고수하는 가수를 만나고 싶었다. “이번 앨범은 다양한 장르를 꼭꼭 눌러 알차게 담았어요~ 발라드도 있고요, 재즈도 있고요, 락도 있고요, 로맨틱 하우스 트렌드 믹스 힙합(?)이라는 새로운 장르도 담았어요~”라며 코맹맹이 소리로 “많이 사랑해주세요!”를 외치는 ‘아이들’의 음악에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지 않은가.


‘생활인’ 말로의 일상
‘재즈 보컬’이라는 말이 자극하는 이미지는 제한적이다. 어두운 재즈클럽의 매캐한 담배연기, 나른한 목소리의 보컬을 내리 비추는 조명. 직장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오후 산책. 한마디로, 여유 있는 예술가의 일상을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고정관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도 생활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과 식사를 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기 기저귀 갈아준다. 말로의 일상도 다르지 않다.

“사실 음악인으로서 인생에서 음악이 중요하긴 한데, 살다 보니까 음악이 제 24시간을 지배하지는 않아요. 잠을 자나 밥을 먹으나 항상 어떤 기재가 있어서 음악적인 감성이 발동하기는 하지만, 티가 나지는 않죠. 나머지 부분은 ‘생활’ 쪽에 많이 가 있어요.”

물론 ‘생활인’이라는 뉘앙스가 일반적인 경우와는 많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9시 출근 7시 퇴근, 그리고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는 야근, 회식과 같은 직장인의 ‘생활’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윤재 엄마’로서 말로의 일상은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집에서 빨래하고 요리하고 밥하고, 마당 쓸고 이유식 만들고 말이야(웃음). 그런 것이 상당히 크게 자리 잡고 있어요. 또 그런 일상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일상을 열심히 살아야 삶이 풍부해진다고 생각해요.”

4집 「지금 너에게로」의 재즈 디바 말로(Malo)

4집 「지금 너에게로」의 재즈 디바 말로(Malo)

주변에 있는 물건이나 행동 하나하나를 ‘음악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생활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생활인적’ 자세는 ‘환경’과 닿아 있다. 말로의 일상은 음악적이지 않으면 ‘자연친화적’이다. ‘생태보전시민연구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산에 간 적이 있어요. 서울에 박새가 참 많이 사는데, 박새들이 새끼를 깔 수 있게 검사도 해주고, 새집도 달아주고 했죠. 그래서 성공적으로 번식에 성공한 경우도 있고. 그런데 어느 날 새집을 열어보니까 새끼들이 먹이 달라고 입 벌리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여덟 마리나 죽어 있는 거예요.”

안타까운 모습의 박새 새끼들은 같은 날 두세 개의 새집에서 더 발견됐다. 차량이 통제됐던 곳에 다시 차들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소음과 공해 때문에 박새가 떠난 것이 원인이었다. 어미새는 소음과 공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새끼들을 버리고 떠났다. 새끼들은 부리를 벌린 채 말라 죽을 수밖에 없었다.

“소나 돼지들이 도살당하는 장면도 다 아시잖아요. 미국에서는 벨트를 타고 오는 소를 도살하는 데 딱 10초가 허용된대요. 만약 그때 소의 목숨이 끊어지지 않으면 산 채로 고리에 꿰어지고 가죽이 벗겨지는 거죠. 성공적으로(?) 죽은 소와 미처 죽지 못한 소는 딱 보면 알 수 있대요. 우리는 그런 고기를 소비하고 있는 거죠.”

음악도 사람의 마음을 보듬고 치유하지만, 말로는 생활 속에서 자연과 일상을 평화롭게 만들고자 한다. 작은 것들을 돌아보며 천천히 걷는 여유를 일상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어렸을 때는 길가에 핀 들꽃 이름도 궁금하고 그랬는데, 어른이 되면서는 발밑을 보지 않아요. 작은 아름다움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죠.”

환경에 관심을 갖는 것은, 주변에 있는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갖기 위함이다.

“살다 보면 가슴 아픈 일 많이 당하게 되니까요. 주변의 작은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고, 물질주의 말고요. 손해 보더라도 작은 것을 아끼고, 생명 하나라도 돌보고. 그렇게 하면 돈 많이 벌 필요도 없고, 현대적으로 살 필요도 없고. 작고 소중한 것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우리도 조금은 그렇게 살아보면 어떨까. 그런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하하.”


말로의 진심 어린 충고
뜬금없이 ‘행복하시냐’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을 표현하고 대중과 호흡하는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하고, 괜한 부러움 때문에 ‘행복하긴요. 너무 힘들어요. 사는 거 다 똑같죠 뭐’라는 대답을 듣고 싶은 괘씸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말로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대답은 확신에 찼다. 행복을 말하는 표정에는 빈틈이 없었다.
“아, 당연하죠. 제가 행복하지 않으면 누가 행복하겠습니까? 저는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낳았고요, 서로 무척 아끼고요, 아름다운 것들을 느낄 준비가 돼 있어요. 행복해요.”

말로와 한집에 살고 있는 남자는, 그의 말에 따르면 ‘무던한 엔지니어’다. 영화 촬영일을 하고 있는 연하의 남자다. 그는 연하이기 때문에 말도 잘 듣고, 그래서 ‘땡 잡았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돌아오는 9월에는 콘서트가 예정돼 있다. 아들을 돌보느라 재즈클럽 공연을 쉬고 있는 동안 그를 그리워했던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공연 연습으로, 대학에서 노래를 가르치느라 바쁜 일상이지만 음악적인 욕심에는 끝이 없다.

“전 곡을 아카펠라로 혼자서 하는 앨범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주엽씨가 또 가사를 도와주신다고 하면 한 단계 더 나아간 스타일의 우리말 음악도 하고 싶고. 스탠더드 재즈 앨범도 만들고 싶어요. 우리말을 사랑하지만, 귀에 익숙한 스탠더드 재즈 곡들도 좋아하거든요, 또 잘할 수 있고요.”

말로는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고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드문 재즈 보컬이다. 다섯 곳의 대학에서 재즈를 가르치고 있는 ‘교수님’이기도 하다. 그리고 ‘착한 연하 남편’의 아내이자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벌써부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생후 11개월 된 ‘윤재’의 엄마다. 그의 노래가 이주엽의 한국어 노랫말을 타고 날아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음악과 일상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노래를 타고 리스너의 마음을 보듬어 안는 것도, 당연하다. 언제나 진심이기 때문이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원상희 장소협찬 / 커피상점 클럽에스프레소(Club Espre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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