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도쿄 마니아 배두나. 30번 남짓 도쿄행 비행기를 탔고, 그곳에서 영화를 찍었으며 정신없이 맛있는 먹을거리나 골목골목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 사진과 글이 담긴 포토 에세이 「두나’s 도쿄놀이」를 펴냈다. 당장이라도 도쿄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행복한 사진들이 가득하다.
배두나와 도쿄의 인연은 1998년, 고등학교 졸업 전 마지막 방학 때 시작됐다. 그녀는 특차로 대학에 합격한 뒤 처음으로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지를 도쿄로 정한 것은 일본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당시 그녀의 남자 친구 부모님이 일본 나고야에서 근무하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둘만의 여행이 아닌, 그녀의 친오빠가 따라가야 하는 조건이 붙은 여행이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도쿄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비는 계속 오고, 날도 춥고, 멋없는 건물만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사람은 많고, 이것저것 너무 복잡했다. 돈은 별로 없는데 물가는 심하게 비쌌고, 볼 것도 별로 없는 듯했다. 결정적으로 실망한 건 우리가 사는 서울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도쿄는 참 희한한 곳이다. 그때는 도쿄 여행을 고생만 했던 재미없는 여행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돌아와서 문득문득 생각나고 또 가고 싶어졌다.”
배두나는 일본과 점점 관련이 깊어갔다. 그녀는 일본어를 독학으로 배웠고, 급기야는 일본 영화 ‘린다 린다 린다’에 출영하게 되면서 몇 달 동안 도쿄에서 지내게 된다. 그동안 그녀에게는 일본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그들을 통해 알게 된 도쿄는 더 흥미로웠다.
# 2 시부야 거리에 남아 있는 사랑의 추억
시부야는 배두나에게 소중한 크리스마스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다. 2년 전 그녀는 어느 잡지 칼럼을 위해 도쿄에 있었다. 출국하기 전날 남자친구와 심하게 다투고 이별한 뒤이기도 했다. 그런데 도쿄에 도착한 날, 이메일을 열어보니 그에게 메일이 와 있었다. 내일 도쿄로 오겠다는 편지였다. 그녀는 “아, 이것이야말로 말로만 듣던 서프라이즈 이벤트!” 그가 온다니 너무도 설레고 기뻤지만 촬영 스케줄이 빡빡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겨우 그와 데이트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녀는 만날 장소에 나와 있는 그에게 달려가 안겼다.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는 그 거리에서 마치 영화 마지막 장면처럼. 둘은 만난 지 반년 만에 시부야 이곳저곳을 손을 꼭 잡고 거닐었고, 요요기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도 하고 카메라로 사진도 찍으면서 하룻동안 평범한 연인처럼 데이트를 즐겼다. 그가 돌아갈 시간이 되어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태워 보냈는데, 택시 안에서도 계속 뒤돌아보는 그를 보며 ‘그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구나. 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 정말 행복해하는 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배두나는 지난해 포토 에세이집 「두나’s 런던놀이」를 냈다. 반응은 과히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책을 내는 건 자신의 분야가 아니라 생각했단다. 그렇기 때문에 ‘도쿄놀이’는 좀 더 감격스러운 행보였다.
“이번 책은 굉장히 욕심을 낸 프로젝트예요. 일본에는 친구도 많고 추억이 많은 도시여서 기분이 남달랐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추억을 되새기듯이 좋아하는 곳들, 좋아하는 음식점들을 짚어왔던 여행이에요.”
‘런던놀이’가 잘 모르고 한 놀이였다면, 도쿄는 워낙 잘 아는 곳이기 때문에 친절하게 소개해주는 입장이 됐다.
사진 찍기는 그녀의 즐거움이었지만 글은 어려움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런던놀이가 글이 적다는 의견을 수렴해 이번에는 그녀 개인적인 감상이 담긴 글을 더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글을 쓰는 건 부끄러워요. 배우 입장에서 어떤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걱정되고 감추고 싶은 부분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내가 쓴 그대로 책에 실었어요. ‘부족하지만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내보내주세요’라고 출판사 측에 말했죠. 날것 그대로를 내보내고 싶었어요. 그게 저의 솔직한 모습, 저다운 모습, 정성을 보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도쿄에 가면 이것만은 꼭!
배두나의 여행 친구는 10년 지기 모델 세미다. 그녀는 이번 도쿄놀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아주었다. 그녀의 사진을 찍어주었으며, 초판에 한해 증정될 비하인드 동영상 CD를 제작했다.
“여행을 가면 친구와 잘 안 맞는 경우가 많잖아요. 특히 저는 우울한 날도 있고, 한없이 늘어져서 아무것도 안 하는 날도 있기 때문에 친구와 호흡을 맞추기가 힘들거든요. 그런데 세미는 나와 호흡이 잘 맞는 친구예요. 일본에서 유학을 했던 친구라 일본을 구석구석 잘 알고 있기도 하죠.”
책에는 여행 사진 말고도 배두나 본인 사진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셀프카메라거나 그렇지 않다면 세미의 작품일 것이다.
여행을 즐기는 그녀는 역시 연기자답게 영화를 보면서 여행을 준비한다고.
“그 지역에 관한 책을 읽고 지도를 꼼꼼히 봐요. 또 그 지역에 관한 영화를 꼭 보고 여행을 떠나요. 그러면 영화 속에 나오는 곳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꼭 가봐야 할 곳이 생기는 거죠. 이번 여행 전에는 영화 ‘카페 뤼미에르’를 보고 여행지에 대한 영감을 받았어요.”
그렇다면 그녀는 도쿄 어느 곳을 가보라고 추천할까? 너무 많이 공개하면 책이 안 팔릴 거라며 두 가지만 슬쩍 이야기해주었다.
“도쿄에 가면 꼭 단 음식을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슈크림은 정말 환상적이에요. 일본은 제과제빵이 꽤 발달되어 있어 맛있는 빵이 많아요. 동네는 시모기터자와가 가장 인상 깊어요. 굉장히 포토제닉한 곳이거든요. 원색적이고요. 작은 골목들이 빈티지스럽게 연결돼 있어요. 언덕에 가게도 많고, 오래된 건물도 많고요. 지나가는 행인들도 빼놓을 수 없어요. 예술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 사람이 많아요.”
두나와 사진
이제 두 권의 포토 에세이를 낸 어엿한 작가, 취미 사진가(그녀의 말에 따르면) 배두나. 그녀가 사진에 이토록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연기보다는 사진? 그녀는 사진은 어디까지나 취미라고 못 박는다.
“사진을 좋아하는 배우라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연기자들은 사진 찍을 기회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카메라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요.”
그녀의 특별한 놀이는 어디로 이어지게 될 것인가. 그녀는 예상외의 답을 내놓았다. 그 다음 여행지는 ‘서울’일 거라는.
“다음에는 서울놀이를 하고 싶어요. 그런데 런던이나 도쿄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세계 어디를 가나 서울이 가장 좋거든요. 갈 만한 곳도 많고. 그래서 저는 ‘서울이 제일 예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죠.”
그녀의 놀이터가 어디든, 그곳은 그녀만의 색깔로 ‘두나스러워’질 것 같다. 서울이 그녀의 피사체가 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두나' 도쿄놀이」·이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