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신동’으로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킨 양지원이 정식 가수로 데뷔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트로트 가수로는 최연소이지만 무대 경력으로 치면 웬만한 가수 못지않다. 요즘 한창 바쁜 가수 양지원과 아들 뒷바라지에 전념하고 있는 아버지 양종일씨를 만났다.
얼굴에 마냥 장난끼가 묻어난다. “수학이 너무 어려워요” “시간 있으면 동생과 축구하고 싶어요” 종알종알 요즘 생활을 이야기하는 양지원은 아직 어린 열네 살. 이 어린 소년이 정식 가수로 데뷔했다. 장르는 다름 아닌 트로트. 이미 타이틀곡 ‘나의 아리랑’은 하리수 부부가 출연한 뮤직비디오를 통해 유명해진 상태다.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인 지원이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밖에 수업을 듣지 못한다. 더구나 학교가 고향인 부산에 있으니 스케줄이 있는 날에는 학교에 갈 수 없다.
“학교에 갈 때마다 친구들의 태도가 엄청 달라져요. 점점 잘해주죠.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이 몰려와 사인을 받고, 수업이 끝나면 저를 보려고 아이들이 복도에 서 있기도 해요. 그래서 학교에 가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요. 화장실은 수업 시간 중에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가야 하죠.”
갑자기 달라진 생활, 나날이 높아지는 인기.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니 으쓱해서 기분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질투할 친구들이 생길까 봐 걱정이란다. 이 정도 인기라면 여자친구도 생길 법한데.
“저는 아직까지 남자친구들 위주로 놀아요. 여자친구는 없어요. 지금 여자친구를 사귀면 나중에 커서까지 사귈 것도 아니고…(기자는 이 대목에서 우하하 크게 웃고 말았다) 어차피 헤어지게 되잖아요. 그리고 학생이 여자친구가 생기면 집중할 수 없듯이 노래할 때 방해가 될 것 같아요. 또 사귀는 사람이 생기면 팬이 떨어져나간다고도 하던데.”
너무도 당돌하고 귀여운 답변. 팬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프로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팬들은 대부분 10대이고, 20대도 있어요. 그리고 40대 분들도 많더라고요. 어제 행사를 갔는데, 어떤 아줌마 팬이 제가 편식한다는 방송을 보시고, 바나나와 잡곡을 갈아 만든 미숫가루, 마, 꿀, 빵, 음료수를 큰 가방에 담아 오셨어요. 편지에는 편식하는 걸 봤는데 이거라도 먹으면서 건강 챙기라고 써 있었죠. 그리고 제 얼굴 사진을 양면으로 코팅해서 갖고 오셔서 사인을 받아 가셨어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면 실시간으로 문자 메시지가 오는데, 그럴 때는 정말 신기해요.”
자신의 노래를 좋아하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하다.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라디오에 자신의 노래를 신청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영광이라고.
지원이는 트로트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마당을 쓸면서도 트로트를 틀어놓을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셨고 아코디언과 장구를 잘 다루어 여기저기서 초청을 받을 정도였다. 게다가 가요제 입상 경력이 있는 아버지 역시 가수가 꿈이었다고. 이런 환경 속에서 지원이는 말을 제대로 하기 전부터 트로트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원이는 트로트를 사랑하셨던 할아버지 덕분에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음악을 듣고 자랐어요. 할아버지가 아코디언을 치면서 노래를 시키고 장구도 가르치고 했거든요. 그래서인지 TV에서 나오는 트로트를 곧잘 따라 하곤 했죠. 다른 아기들이 ‘뽀뽀뽀’나 ‘TV 유치원’을 볼 때 지원이는 음악 프로그램 아니면 못 틀어놓게 했답니다.”
울다가도 트로트를 틀어주면 울음을 그칠 정도로 지원이의 트로트 사랑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무엇이 그렇게 어린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다른 음악은 리듬이 자유자재로 변형되는 데 트로트는 모두 쿵짝쿵짝 리듬이잖아요. 이 리듬이 귀에 익숙했어요. 트로트만 부르면 자유자재로 잘 꺾였고, 바이브레이션 같은 것도 좋았고요. 댄스곡이나 다른 음악을 들으면 다른 사람들과 비슷했는데, 트로트는 배운 게 없는데도 잘할 수 있었어요.”
경남권에서는 이미 유명인이었던 지원이는 2년 전 부산에서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콘서트를 열었다고 한다. 6백 석 좌석에 1천여 명이 모여들어 많은 이들이 서서 공연을 관람할 정도로 호응이 대단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트로트 가수가 꿈은 아니었다.
“어느 날 장윤정 누나의 ‘짠짜라’를 들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아코디언 소리가 좋았고 나도 저런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트로트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원이는 ‘남인수 가요제’에 출연해 최우수상을 받았고,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정의송의 눈에 띄어 가수 훈련을 받아 음반을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아들에게는 아빠가 있다!
아버지 양종일씨는 어려서부터 노래에 재능이 뛰어난 아들이 마냥 대견스러웠다. 노래를 잘한다고 방송국에서 아들을 찾는 것도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꼭 인사치레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양종일씨는 아들에게 올인하기 시작했다.
“내 생활을 포기하고 아들을 뒷바라지한 지 벌써 5년째예요. 이렇게 되기까지 애 엄마와 사니, 안 사니까지 했어요. 사실 지원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만 해도 공부로 학교에서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거든요. 가수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선생님 반대가 만만치 않았고 애 엄마도 아이를 평범하게 키우고 싶어 했어요. 그것 때문에 많이 싸우면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했는데, 2년 전부터는 풀어져서 이제 아이가 활동하는 걸 찬성하는 쪽이에요.”
“그동안 신동이다 해서, 여기저기서 신기하게 바라봤잖아요. 그런데 정식 가수로 데뷔하니 어리다고 봐주는 것도 아니고, 점수를 더 주는 것도 아니거든요.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고요. 어른들이 지원이를 가수로 인정해주고 진정한 가수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걱정을 놓을 수 없습니다.”
지원이 아빠가 걱정하는 건 이뿐이 아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듯, 연예 활동이 인성 교육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점은 그가 각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다.
“저는 항상 아들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남을 먼저 배려해라’ ‘거짓말하지 마라’ 이 세 가지를 강조해요. 특히 거짓말을 하면 따끔하게 혼을 내죠. 지원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기념으로 휴대폰을 사주었어요. 그때부터 모든 관심이 휴대폰에 쏠려 버리더군요. 사이버 머니를 사느라 거짓말도 했고요. 그 순간 휴대폰을 빼앗아서 박살을 냈어요. 당연히 아까웠죠. 당시 70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휴대폰이었는데. 그러나 그날 제 행동이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양종일씨는 속이려고 머리를 쓰고, 마음 졸였을 그 과정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제는 지원이가 공인이기 때문에 아이의 행동에 전보다 더 신경 쓰고 있다.
“활동을 하다 보면 안티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어요. 모든 가족이 사람들 시선의 대상이 되는 거잖아요. 나나 애 엄마는 당사자가 아니니까 괜찮지만 지원이는 당사자니까 직접 상처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한참 자랄 나이니 변성기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양종일씨는 이 문제에 대해 “그즈음에는 아마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해요. 실용음악 쪽으로 공부하고 돌아와 활동을 재개할 생각입니다”라고 답했다. 아들의 장래에 대해 몇 백 번도 더 생각해본 결론일 것이다. 역시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 지원이가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뒷바라지하는 아버지의 땀과 노력 덕분이었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민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