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세한 블랙 레이스 시스루 원피스 64만5천원, 오브제. 크리스털 귀고리 10만3천원, 사만타윌스 by 옵티칼W.
윤진서가 여성지에 등장하는 건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12월에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에 표지 촬영과 인터뷰를 제안하면서도 솔직히 그녀를 만날 것이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물론 진심을 담아 섭외 절차를 밟았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거니까. 그런데 덜컥, 그녀를 만나게 됐다. 왜 응했냐는 질문에 윤진서는 “친해지고 싶었다”고 했다.
“책을 낸 뒤에 팬 층이 두터워졌다고 할까요? 30, 40대에게 팬레터가 많이 왔어요. 그런데 그들에게서 무언가 갈급함이 느껴졌죠. ‘자유롭게 살아온’ 동생으로서 제 또래들이 무엇을 느끼면서 살아가는지, 어떤 문화를 갖고 있는지 인생 선배인 이들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보여준다기보다는 친해지고 싶다는 표현이 맞아요.”
사실 12월호 표지의 주인공으로 윤진서를 떠올린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주연을 맡은 영화 개봉 일정과 맞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캐릭터를 닮은 매혹적인 분위기의 화보를 상상하면서. 그런데 공교롭게도 영화의 개봉 일정은 알려진 것처럼 12월이 아닌 내년으로 연기됐다. 윤진서는 김태식 감독의 감성 누아르 영화 ‘태양을 쏴라’에서 재즈 싱어 사라로 분했다. 여러 기사엔 신비롭고 매혹적인 재즈 싱어라고 소개됐지만, 윤진서는 영화 속 캐릭터에 대해 “밑바닥 여자예요. 현실을 도피하려고 애쓰면서도 순수함을 잃어버리지 않는…”이라고 간결하게 설명했다.

레이스 튜브 톱 드레스 가격미정, 케이수. 핑크 퍼 재킷 3백10만원, 베드니. 체인 목걸이 가격미정, H.R 주얼리.
윤진서는 지난해 여름 「비브르 사 비(Vivre Sa Vie)」라는 산문집을 발간했다. 고다르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비브르 사 비’는 ‘자신의 인생을 살다’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윤진서는 이 책에 배우가 아닌 자연인으로서 오롯이 그녀의 인생을 살아가는 ‘비브르 사 비’의 모습을 담담히 담아냈다. 사랑, 여행, 영화 등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직접 찍은 사진도 함께 실었다.
영화 촬영이 없는 요즘 윤진서는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배우와는 별개로 작가도 그녀의 꿈 중 하나다. 배우가 되기 위해 영화를 많이 보는 것처럼 작가의 꿈을 위해 늘 책을 많이 읽으며 글 쓰는 연습을 한다.
“연기가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자신을 찾아가는 작업이라면 글을 쓰는 건 오로지 혼자서, 스스로도 모르는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에요.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는 작업이죠. 헤밍웨이는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썼다고 해요. 그날의 분량이 채워지면 좋은 생각이 떠올라도 글쓰기를 내일로 미루기도 했대요. 그처럼 하지는 못해도 매일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있어요. 낚시하는 기분으로요.”
작가로서 윤진서는 지금 두 번째 책을 탈고한 상태다. 첫 번째 책보다 조금은 호흡이 길다는 두 번째 책은 경험만으로는 글의 소재가 부족하단 생각에 경험에 상상을 곁들인 형식으로 완성했다. 책 제목은 아직 미정이지만 내년 봄쯤엔 서점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모던한 실루엣의 블랙 슬리브리스 톱 36만원대, 캐롤리나 헤레라. 네이비 더블 버튼 코트 49만9천원·블랙 하이웨이스트 와이드 팬츠 39만9천원, 커밍스텝. 골드 뱅글·실버 뱅글 가격미정, 더에어리스. 파이톤 힐 27만3천원, 지니킴.
윤진서는 시에 대해 “구차한 말 없이 가슴을 후벼 파는 매력이 있다”고 표현했다. 시처럼 빠르고 강렬하게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 또 있을까. 윤희상 시인의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을 접한 이후 매일 눈 뜨자마자 시집을 읽으며 아침을 시작한다는 그녀. 그 감성을 음미하고 싶어 아주 천천히 조금씩 읽어나가는 중이다.
채워가는 인생을 살다
사람들이 보통 거실로 쓰는 공간을 윤진서는 서재로 만들었다. 수많은 책들에 둘러싸여 글을 쓰고 시를 읽는 모습은 분명, 흔히 생각하는 여배우의 화려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읽고 싶은 책과 도자기를 만들 때 쓸 흙을 사는 데만 돈을 쓴다니, 과연 범상치 않은 배우다. 사실 윤진서를 만나기 전 주변인들에게 그녀에 대한 인상을 물었을 때 “4차원 아니야?”, “특이할 것 같아”와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 “배우가 4차원인 게 이상할 것이 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
배우 윤진서는 신비로울 것 같고 뭔가 다를 것 같은 이미지를 가졌다. 그리고 실제 만나본 그녀는 정말 그랬다. 윤진서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항상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며 담고 싶은 장면을 촬영한다. 시장 구경을 좋아하고, 서핑에 빠져 올해에만 벌써 몇 차례나 발리를 다녀왔으며,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서 요가 하는 사진을 SNS에 올려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여행 마니아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흔히 작품이 끝나고 휴식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과 달리 그녀는 오히려 힘이 남아 있을 때 여행을 간다. 친구를 만나러, 요가를 배우러 가는 여행이기에 체력은 필수다. 쇼핑이나 럭셔리 풀빌라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수수한 것이 좋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좋은 그녀인 것을. ‘신비로운 재즈 싱어’라는 표현만 보고 매혹적인 모습을 포착하겠다며 이런 화보 촬영을 준비한 것이 참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것은 촬영을 마치고 그녀와 한참 대화를 나눈 뒤였다. 윤진서 스스로도 “오늘 촬영한 사진 속의 모습은 내가 아니다”라고 하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루스한 베이지 청키 니트 톱 16만원, 루키버드. 골드 스팽글 팬츠 5만9천원, H&M. 스터드 장식 앵클부츠 49만8천원, 세라.
“한 대륙별로 공부하는 데 두 달씩 걸려요. 아프리카나 페루 같은 곳을 공부하려면 1년 반도 부족할 것 같긴 해요. 현지 시장에서 뭘 좀 팔아보는 게 생계 수단 중 하나고, 돌아올 날을 정하지 않고 가는 여행인 만큼 다녀와서의 계획도 없어요. 그때는 소속사와 계약도 끝나는데다 뭐 먹고살지도 생각해야 할 정도죠. 그렇다고 이런 게 두려워서 떠나지 못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가서 보지 않고는 채울 수 없는 것에 대한 욕구가 더 크니까요.”
계획 없이 떠난다는 계획을 듣고는 그저 부러웠다. 흔하디흔한 것 같아 다른 표현을 좀 찾아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아, 참 멋진 여자다, 윤진서.
■진행 / 이은선 기자 ■사진 / 박재찬 ■제품 협찬 / 더에어리스(02-512-1463), 루키버드·지니킴(070-4870-0229), 베드니(02-3448-0805), 사만타윌스
by옵티칼W·커밍스텝(02-6911-0733), 세라(02-512-4329), 오브제(02-3444-1730), 캐롤리나 헤레라(02-788-7301), H&M(070-8885-0201) ■장소 협찬 / 보리스튜디오(02-3142-8001) ■헤어 / 유다 ■메이크업 / 김지현 ■모델 / 윤진서 ■스타일리스트 / 서정은, 최지영·임정현(어시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