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가 늘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은 슈퍼히어로처럼 대중에 자신을 즉시 알아볼 수 있도록 각인시키는 방법이다.” 책 <드레스 코드: 패션의 법칙이 역사를 만든 방법>의 저자이자 스탠포드 로스쿨 교수인 리처드 톰슨 포드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유명인이 동일한 패션을 선보이는 것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잡스처럼 늘 같은 패션 스타일을 고수하는 리더가 있다. 바로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대중 앞에 설 때 늘 가죽 재킷을 걸쳐 입는다. 지난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게이밍 그래픽카드 ‘지포스’의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에서도 검은색 가죽 재킷, 검은색 티셔츠, 블랙진 차림이었다.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운데)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GPU) ‘지포스’ 출시 25주년 행사에서 참가자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세계 최초 시총 5조 달러 기업 엔비디아를 이끄는 CEO지만 그의 스타일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각종 개발자 행사와 기업 컨퍼런스는 물론 2021년 타임지 ‘올해의 남성’으로 표지를 장식할 때도 검은색 가죽 재킷을 선택했다. 2016년 행사에선 자신을 “가죽 재킷을 입은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황 CEO의 대변인 발언을 인용, “그가 적어도 20년 동안 가죽 재킷 스타일을 유지했다”고 표현했다. 포드 교수는 NYT에 “같은 옷을 입으며 대중에 자신의 스타일을 각인시키는 전략”이라고 소개하며 “패션의 힘을 여전히 사용하면서 유행하는 기교에 대한 현실적인 거부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물론 같은 옷을 입는 전략으로 시간을 절약하고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검은색 터틀넥셔츠, 리바이스 청바지, 운동화 차림을 고수했다. 메타를 이끄는 마크 저커버그 CEO는 전통적인 ‘회색 티셔츠와 후드티’의 실용적인 스타일을 오랜 기간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억만장자 상남자’ 스타일을 추구하며 명품 브랜드를 휘감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SNS 갈무리.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저커버그는 미국 빅테크 분야에서 가장 밋밋한 사람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패션 경쟁에 뛰어들었다”면서 “머리숱은 더 풍성해졌고, 화려한 무늬 셔츠나 굵은 체인 목걸이를 착용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그의 변화된 모습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중년의 위기를 겪으면서 스타일을 바꾸었다” “모발 이식을 했다”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했다” 등의 의견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러한 스타일 변화는 전략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가 정장을 입고 미국 의회 청문회와 반독점 소송 재판 등에 참여하는 모습이 대중에겐 인간미가 부족하면서 지루한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가들의 이미지 브랜딩을 돕는 애쉬 존스는 가디언에 “사람들이 저커버그를 ‘외계인’이라고까지 부르자 메타의 고문들은 그러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2021년 페이스북을 메타로 리브랜딩 했듯이 ‘더 인간적이고 친근한’ 저커버그 2.0버전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회색 티셔츠를 즐겨 입었던 마크 저커버그. 로이터연합뉴스
황 CEO는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 경영자이지만, 저커버그처럼 스타일 변화를 택하지 않았다. 실리콘 밸리의 이미지 컨설턴트이자 스타일리스트인 조셉 로젠펠드는 NYT에 “그가 양복이나 폴로 셔츠 같은 의상을 입었다면 지루하고 전통적인 중간 관리자처럼 보였을 것”이라며 “검은 가죽 재킷은 그가 창의적인 유형이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입을 수 있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그의 의상은 아내와 딸이 직접 고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 CEO는 더운 여름에도 가죽 재킷을 입는데, 최근 습한 싱가포르를 방문할 때는 톰 포드 브랜드의 가죽재킷을 선택했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세라 머피는 BBC에 “가죽 재킷은 규칙을 깨고, 다르게 행동하고, 현재에 도전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면서 “여기에 더해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은 캐주얼하고 친근한 에너지를 준다”고 말했다.
같은 패션을 일관되게 입는 ‘스타일’은 기업가의 전략이기도 하다. 머피는 “사람들은 기업 지도자에게 일관성을 기대한다”며 “지도자가 유니폼처럼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하면 변동성이 크고 예측할 수 없는 시장에서 믿을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