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이 벗겨진 법랑 냄비, 바로크 양식의 안락의자, 장식이 화려한 촛대. 유럽의 벼룩시장 풍경이 아니다. 이태원 앤티크 거리에 가면 여행 책자에서나 봤음직한 이국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들 사이사이, 발걸음을 이끄는 골동품들을 따라 이국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이태원 앤티크 거리의 시작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변변한 서양식 가구가 없었고 이 때문에 미8군에 근무하는 미군과 그 가족들은 한국에 들어올 때 가구까지 모두 가져와야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미국으로 돌아갈 때에는 가져온 가구들을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창고 세일’로 내놓았다. 이런 물건들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가게가 하나 둘 생겨난 것이 이태원 앤티크 가구점의 시작이다. 당시 10개가 채 안 되던 고가구점들은 현재 120여 개로 불어났고 파는 물품도 소파와 의자, 장식장, 화장대에서 거대한 대리석 조각과 샹들리에까지 종류가 다양해졌다. 외국인이 대부분이던 고객층도 우리나라 고객으로 넓어졌고 최근에는 신혼부부들과 20~30대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이태원 앤티크 거리의 매력은 화려하고 중후한 고가구들의 무게만큼 소박하고 정겨운 이웃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화려하게 장식된 가구점 테라스 너머 곰방대를 문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고 중후한 바로크 양식의 안락의자 위 앉은 고양이가 나른하게 졸고 있다. 조그만 길 따라 고가구의 향기에 취해가다 문득, 이곳이 어디인지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곳. 이태원 앤티크 거리다.
6호선 이태원역 3, 4번 출구로 나와 해밀턴 호텔 맞은편 보광동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조그마한 소품 파는 가게들로부터 앤티크 거리가 시작된다. 이태원1동 주민센터를 지나 바이더웨이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들어가 구석구석 구경해보자.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인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