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문화와 레포츠의 도시로 거듭난 강원도 양구

자전거로 찾아가는 문화기행

①문화와 레포츠의 도시로 거듭난 강원도 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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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토의 배꼽에 해당되는 국토 정중앙에 위치한 강원도 양구를 문화도시라 손꼽는 것은 1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연과 문화, 축제가 잘 조화되어 기쁨을 주는 곳, 양구의 숨은 매력을 자전거와 함께했다.


[자전거로 찾아가는 문화기행]①문화와 레포츠의 도시로 거듭난 강원도 양구

[자전거로 찾아가는 문화기행]①문화와 레포츠의 도시로 거듭난 강원도 양구

양구를 향해
춘천을 거쳐 양구로 가려면 46번 국도를 따라 오봉산 고개를 넘어야 한다. 자전거를 실은 자동차가 힘겹게 고개의 정상을 향해 갈 때 3명의 자전거 라이더가 힘차게 페달링 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 저들도 양구로 가고 있는 일행인 듯한데, 저들의 파워가 부럽다. 자동차도 힘겨워하는 고개를 자전거로 넘다니….

핑계 같지만 나는 극기를 요구하는 라이딩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경기도 일산에서 서울 종로까지 자전거 출퇴근 거리만도 왕복 72km다. 날마다 극기를 체험하고 있는 터에 더 이상은 무리다. 자전거의 장점이 뭐겠는가. 좌우를 살피기가 자동차보다 좋다는 거 아닌가. 물론 장기간 장거리 라이딩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자전거에 패니어를 달고 다니면서 전 세계를 주유하는 꿈이 내겐 아직 남아 있다.

양구읍에 도착한 것이 오전 10시, 서울서 자동차로 2시간 남짓 걸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거의 하룻 길이었던 곳이다. 양구 읍내의 모습은 군사기지의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아담하고 깔끔한 휴양지같이 넉넉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옛날, 그러니까 1980년대 초 펀치볼 고지로 유명한 해안분지에 있는 친구 면회를 위해 양구를 들렀을 때와는 너무나 다르다. 소양호 배터에서 내리자마자 해안까지 다녀오는 동안 몇 번의 삼엄한 검문 과정은 그 아름답고도 장엄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휴양지에 온 느낌이다. 그야말로 평온하고 아름다운 전원의 휴양도시로 변모했다. 양구가 문화와 레포츠의 도시로 거듭난 것도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란다. 민통선 가까이 다가갔을 때, 드문드문 산기슭에 리조트나 수도원 같은 건물들이 보이곤 했는데, 그것들도 다 군부대란다. 분단의 상처 같은 것은 이제 많이 아문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자전거로 찾아가는 문화기행]①문화와 레포츠의 도시로 거듭난 강원도 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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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전적문화제
읍내는 군악대가 도열해 연주를 하고 있어 축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도솔산 전적문화제 기간이다. 축제 이름치고는 좀 낯설지만, 그 유명한 도솔산 전투를 기념한 것이다. 적 2개 사단이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어 미 해병의 엄청난 희생이 속출하던 것을 국군 해병대 1개 연대가 가공할 전투력으로 제압해 탈환했다는 전투로 유명하다. 바다가 아닌 산악지대에서 해병대 깃발을 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 신화가 된 전사를 기리며 문화로 승화시켜 진해의 군항제에 필적할 축제가 되게 한 것이 도솔산 전적문화제이다. 군이나 전역자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민간인들이 함께 참여해 즐기는 잔치다. 과거 군은 지역 주민과는 별개의 사람들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같은 주민으로서 연대감 같은 것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축제의 성과로 보인다.


DMZ 트레킹
도솔산 전적문화제의 백미는 역시 DMZ 트레킹 행사다. 50여 명의 일행들 가운데는 DMZ 생태 연구가, 언론인, 문인, 회사원, 제대 군인과 그 가족들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다들 말은 않지만 흥분과 긴장이 교차되고 있었다.

[자전거로 찾아가는 문화기행]①문화와 레포츠의 도시로 거듭난 강원도 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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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운리 검문소에서부터 도보로 가야 할 목적지는 민통선을 넘어 북으로 1시간 반쯤을 가야 나오는 두타연이다. DMZ 트레킹이라 했지만, 엄밀히 말해 철책까지 가는 것은 아니고, 민간인 출입 통제 지역 내 트레킹이다. 그렇다고 긴장이 덜한 것은 아니다. 트레킹 코스 내내 길 양 옆으로 지뢰를 경고하는 철조망이 쳐져 있어 걸음조차 조심스럽다. 두타연까지 가는 길은 비포장 황톳길이다. 포근한 흙길이 그나마 긴장을 덜어준다.

[자전거로 찾아가는 문화기행]①문화와 레포츠의 도시로 거듭난 강원도 양구

[자전거로 찾아가는 문화기행]①문화와 레포츠의 도시로 거듭난 강원도 양구

금강산으로 통하는 31번 국도를 따라가다 이목정 부대 삼거리에 당도하면 고색창연한 다리가 하나 나오며, 바로 그 다리 밑으로 수입천과 비아천이 만난다. 수많은 전투를 목격했을 저 다리, 하지만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여행자의 발길을 포근하게 맞아준다. 긴 숲길을 따라오다 갑자기 드넓게 펼쳐지는 장관에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발길을 멈추고 탄성을 지른다. 감춰졌던 비경이 갑자기 영화처럼 등장한 것이다.

굽이굽이 맑은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가 하면, 흐르다 지친 물은 다시 푸르고 깊은 못에 고여 쉬었다 간다. 두타연도 장관이지만 이 다리에서 바라본 경치야말로 금강의 자태와 비견된다. 이로부터 30분을 갔을까,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골짜기에 당도한다. 바로 두타연이다. 높이는 높지 않지만 굽이진 바위틈을 비집고 터져 나가는 폭포 그리고 여인의 가슴처럼 폭포의 열정을 다 받아주는 깊고 푸르고 신비스러운 용소가 천하의 절경이다. 폭포가 남성미를 느끼게 한다면 용소는 여성미를 느끼게 한다고나 할까.


방산 자기박물관
두타연을 뒤로하고 방산 자기박물관에 당도했다. DMZ 인근에 박물관이라니 좀 어울리지 않지만, 민통선 내에서의 긴장과 흥분을 가라앉히기에는 이만한 것도 없어 보인다. 사실 양구가 백자의 주산지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고려 말부터 양구는 백토 광산으로 유명했으며, 도요지로서 명성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한다. 이성계가 소원(아마도 왕이 되고자 하는)을 적어 넣은 백자발(국립중앙박물관 소장)도 바로 방산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소원이 또렷이 적혀 있음을 보여주는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측의 말로는 과거에 북한강 수로를 통해 광주나 이천 등의 관요로 흙이 수출됐다 한다. 광산에서의 채토와 수비(정제), 토련, 제작 소성까지 모두 한 군데서 이루어지는 곳으로는 국내 유일하다. 모든 과정을 한눈에 보며 실습하는 체험과 역사 유물 전시 등 모든 것을 위해 재작년 설립된 것이 바로 방산 자기박물관이다. 10여 년 동안 기초 조사와 청사진을 준비해 빛을 본 것으로 우리 미술사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의 백자가 청아한 백색이면서도 무언가 숨겨져 있는 것 같은 소박미의 한 전형으로 통하게 된 것도 바로 철분이 함유된 방산의 백토에 기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백자가 퇴보하고 있는 이유도 흙의 고갈 때문이란다. 분단과 대치의 역사가 종식되어 이 지역의 도자기 광업이 활발해지는 날 우리의 백자도 다시 부흥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

박수근 미술관
양구는 우리만의 고졸한 소박미의 양식을 일굼으로써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가 된 박수근을 배출한 곳이다. 지금 ‘양구’ 하면 박수근으로 통한다. 그만큼 박수근의 고향으로서 양구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박수근 미술관은 문화도시의 야심을 품은 양구의 출발점이다. 양구에 와본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에서 표출된 미의식과 양구의 자연환경이 불가분의 것임을 금방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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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미술관은 건물 외관부터가 건축적 의미로 시선을 끈다. 마치 무슨 요새나 성곽 같은 외관이 여느 미술관과는 다르다. 왜 하필 이토록 투박하게 온통 돌을 씌웠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문득 깨달음이 스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박수근의 화면에서 느낄 수 있는 투박한 마티에르다. 박수근 부부의 묘소가 있는 동산 아래 그림 그리는 모습의 박수근 동상이 있다. 미술관 현관에 들어선 사람은 마치 동상의 시선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미술관 별관에는 기획 전시장과 레지던스 스튜디오가 있다. 소정의 선정을 거쳐 입주한 젊은 작가 2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박수근의 진지한 예술혼을 호흡하면서 미래의 거장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선택받은 행복한 작가들이다.

epilogue
우리 국토의 배꼽에 해당하는 국토 정중앙 양구를 문화도시라 손꼽는 것은 1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연과 문화, 축제가 잘 조화되어 기쁨을 주는 곳이다. 1박을 했다면 들르고 싶었던 곳이 있다. 국토정중앙 천문대이다. 그곳에서 밤하늘의 별자리와 대기를 수놓는 반딧불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반딧불이 건재할 정도로 양구는 청정 지역이라는데 말이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해안(펀치볼) 분지를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언제고 다시 찾겠다고 다짐했지만 오늘도 일정에 쫓겨 가질 못했다. 방산에서 조금 동북쪽으로 가면 될 일이었는데 말이다. 대학 졸업 후 중부전선에서 정훈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해안에서 근무하던 동기생 면회 갔다가 본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특이한 지형의 별천지다. 어떤 종군기자가 주름진 화채 그릇을 닮았다 하여 붙인 이름 ‘펀치볼(Punch Bowl)’만큼 잘 설명해주는 이름도 없다. 해안 분지 서쪽으로 가칠봉이 있다.

금강산 일만이천 봉이라지만 사실은 봉우리 일곱 개가 모자란단다. 가칠봉까지 셈을 해야 한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가칠봉과 펀치볼 분지를 뺀 금강은 온전한 금강이 아닐 것이다. 돌아가는 길, 소양호 아래에서 먹었던 막국수의 맛도 잊을 수 없다. 소양호로 배를 타고 갈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뱃길이 중단된 상태다. 배를 타고 양구를 간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육지 속의 절해고도를 찾아가는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낭만을 누릴 길이 없다. 다시 양구를 찾는 그날은 배를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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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서 만난 작가 정현우
박수근 미술관 최형순 관장의 안내로 작가 정현우를 만났다. 양구에서 춘천으로 내려가다 수인터널 앞에서 구도로를 따라가면 암자 같은 집이 보이는데, 바로 정현우가 작업을 하는 곳이다. 동화 일러스트 작가로도 명성이 자자하며, 대마초의 합법화를 외치는 책까지 낼 정도로 반골 기질이 강한 저술가이자 시인이다. 서울서 보기엔 춘천이 한적한 곳 같은데 그는 이마저도 피해 소양호의 물을 바라보는 벼랑 끝에 집을 짓고 작업한다. 소양호의 맑은 물만큼이나 순수하고 진지한 작가다.

“인간이 문명 대신 감각과 영혼을 진화시켰다면 자동차 대신 축지법을 이용했을 것이고, 휴대폰 대신 텔레파시 같은 초능력을 통해 정보를 교환했을지도 모르겠다” (정현우 작 ‘그리움 따윈 건너뛰겠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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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재언은
1958년생. 강원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상명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선갤러리 아트디렉터 및 한국공예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1989년부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는 한편 2006년부터 인천-서울, 일산-서울 장거리 ‘자전거 출근’을 해오면서 자전거 문화와 미술을 접목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역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책세상)

글 / 이재언(미술평론가) 사진 / 이성훈, 양구읍 제공 협찬 / 세븐 싸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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