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공통적인 원인은 ‘가정불화’에서 기인된 만큼
가족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 사망률 5년 연속 1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총 1만2천1백74명이다. 하루에 33명이 스스로 인생을 저버린다는 것. 자살공화국이라 불릴 지경이다. 햇수를 거듭할수록 계속 늘어가는 자살률, 과연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10년 동안 2배가 증가한 대한민국 자살률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 자살은 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에 이어 전체 사망자 중 4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환자는 1만2천1백74명이다. 지난 1997년에 자살하는 사람이 13명(인구 10만 명당)이었다면, 2007년에는 25명(인구 10만 명당)으로 10년 동안 거의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0, 30대 전체 사망률 중 자살이 사망 원인 1위
그렇다면 여자와 남자 중에 어느 쪽이 더 자살률이 높을까. 여자보다 훨씬 강할 것 같은 남자. 그러나 그들의 자살률이 여자보다 훨씬 높았다. 지난해 남성의 자살 사망자 수는 7천7백여 명, 여성의 자살 사망자 수는 4천4백여 명이다. 남성의 자살률이 거의 2배 가까이나 된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한창 인생을 꽃피워야 할 20, 30대의 전체 사망 원인 중 자살이 가장 높다는 사실이다.
자살 사망자는 20대부터 80대까지 나이가 들수록 꾸준히 증가한다. 우선 20대는 21명(인구 10만 명당, 이하 동일), 30대는 22명, 40대는 26명, 50대는 31명, 60대는 48명, 70대는 79명, 80대가 1백17명으로 나타나면서 고령층의 자살도 심각한 수준임을 드러냈다.
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 자살위기관리팀 전준희 팀장은 “자살 상담 전화의 대부분은 젊은 층”이라며 “30대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20대, 10대 순으로 자살 상담 전화가 많다”고 밝혔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도 연령대에 따라 모두 달라요. 10대는 학업, 20대는 이성 문제, 30대는 직장 문제가 가장 많아요. 40, 50대는 경제적인 문제, 60대는 외로움과 배우자의 사망 등으로 자살을 많이 하죠.”
앞으로 한창 아름다운 인생을 누려야 할 젊은 층들이 안타까운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준희 팀장은 그 이유로 ‘가정 불화’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우리나라 가족 동반 자살 심각한 수준
우리나라는 유난히 가족이나 친구 간의 동반 자살이 많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생활고로 추정되는 가족 동반 자살이 잇따랐다. 2월에는 사업 실패로 고민하던 40대 가장이 부인과 두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8월에는 서울 지하철 승강장에서 주부 홍 모씨(30)가 두 아이를 데리고 선로로 뛰어들기도 했다. 9월에는 대구에서 30대 주부가 두 아들과 극약을 먹고 숨졌고, 같은 달 전라남도에서 남편이 뇌졸중을 앓고 있는 부인을 둔기로 때려 중상을 입힌 뒤 아파트 13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가족 동반 자살의 가장 큰 이유를 ‘경제적인 문제’로 꼽았다. 생활고에 시달린 부모가 어린 자식들을 홀로 두고 죽는 것이 걱정되기 때문에, 자식을 먼저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 일부에서는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해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자살 상담 전문가인 부산 생명의 전화 오흥숙 원장은 “가족 동반 자살은 ‘살인 행위’나 마찬가지”며 “가족 동반 자살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죽으려고 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애들만 놓고 가는 것이 불안한 거죠. 자녀들을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겁니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 모두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동반 자살은 부모가 죽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자식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에 ‘살해’나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동반 자살’이라는 말로 미화시키지 말고, ‘자녀 살해’라는 말로 바꿔 불러야 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자식을 죽이지 못하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자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해 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가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15~65세 남녀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스트레스 위험요인과 상담에 관한 인식 조사’ 자료에 따르면, 자살에 대해서는 80% 내외가 “가까운 가족을 저버리는 행동이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다”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자살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동정적인 입장도 반수가 넘었다.
또 조사에 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살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라며 자살의 심각성에 대해서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자살은 상담이나 치료를 통해 예방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자살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인 요인으로는 ‘경제적인 문제’, 관계적 요인 중에서는 가까운 ‘가족 문제’, 심리적 요인 중에서는 ‘우울증’이 가장 높은 원인으로 나타났다.
오흥숙 원장은 “우울증 역시 자살을 일으키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며 “평소 죽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귀로 듣고 흘려서는 안 되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자살 부르는 베르테르 효과 우려
최진실이 죽고 난 뒤, 경기도 성남에서는 50대 남성이 ‘최진실 팬’이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또 얼마 뒤, 우울증을 앓던 여성 두 명이 잇따라 최진실과 같은 방법으로 숨졌다. 특히 트랜스젠더로 방송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장채원과 커밍아웃을 선언했던 모델 김지후가 잇달아 자살을 해서 충격을 줬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베르테르 효과’라고 부른다. 베르테르 효과란, 유럽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출판 이후 소설 주인공을 흉내 낸 자살이 급증한 데서 유래돼 유명인을 뒤쫓는 모방 자살을 뜻한다.
전준희 팀장은 “유명 연예인들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강하다”고 꼬집었다. “평소에 죽음을 고민하고 있던 사람들은 유명인의 죽음을 보면서 ‘죽는 게 별게 아니구나’, ‘저 사람도 죽는데, 나라고 못 죽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그들이 죽음을 택한 방법으로 따라 죽는 거죠.”
전 팀장은 “사회에 베르테르 효과가 확산되는 데에는 언론들이 자살 방법을 선정적으로 보도한 데 따른 책임도 있다”면서 “일반인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자살 방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죽고 싶다’는 주위 사람의 말 귀 기울여야
가족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큰 버팀목은 역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상담하는 사람이 없어도 ‘아버지와 어머니’, ‘형, 누나, 언니’, ‘삼촌’ 등이 마음의 의지가 될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철저한 개인주의로 가족 간의 대화가 거의 단절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집 안에 같이 살기는 하지만,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된 것이다.
전 팀장은 “자살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주위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끝까지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자살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뭔지 아세요? 바로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에요. 탤런트 고(故) 안재환도 자신의 부채를 부인에게조차 이야기하지 못했잖아요. 자신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만 있어도 자살 위험은 훨씬 줄어듭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극심한 ‘외로움’을 느끼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거예요.”
잇따른 연예인의 자살과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자살 바이러스. 혹시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도 한 귀로 듣고 무관심하게 흘려버리지는 않았는지, 주위를 한번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주석, 원상희 ■도움말 / 전준희 팀장(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 1577-0199), 오흥숙 원장(생명의 전화, 1588-9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