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도차이나’에 등장한 아름다운 풍경 이상의 풍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왔다는 필자의 이야기에 어느 때보다 부러움이 크다. 베트남과 베트남인에 대한 필자의 각별한 관심과 더불어 16명의 원정대가 함께해 더욱 풍성한 읽을거리로 채워진 이재언의 베트남 이야기 그 첫 번째를 펼친다. (편집자 주)
베트남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다. 워낙 많은 기업들이 베트남에 진출해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드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베트남은 주로 호치민(구 사이공)이나 수도인 하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롱베이 등 몇 군데에 지나지 않는다. 또 베트남인들의 다양한 생활과 문화를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필자는 지난 1996년 처음 호치민시에 가본 적이 있지만 깊숙한 문화적 체험을 할 기회는 없었다.
하노이 공항에 도착해서 짐 찾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자전거 16대를 수하물로 싣고 내리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무더위도 견디기 쉽지 않은 상황에 숨쉬기마저 어려웠다. 북부 지역의 우기가 곧 시작되기에 하늘이 온통 뿌옇다. 기압이 낮아서인지 매연이 땅 위에 그대로 고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까닭에 하노이 시내나 외곽 어디서든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복잡한 하노이를 차량으로 빠져나와 90km 정도 남쪽에 있는 닌빈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쌀국수로 식사를 했다. 레몬즙 몇 방울을 떨어뜨려 먹는 쌀국수 국물의 시원한 맛이 일행들의 입맛에 잘 맞는 것 같았다. 이제 ‘땅의 하롱’으로 불리는 유명한 ‘탐콕’으로 가기 위한 장도에 나섰다. 비가 조금씩 오는 가운데 사방을 둘러보면 온통 초록색의 싱그러운 논들이 펼쳐져 있다. 논들 한가운데 죽순처럼 불뚝 솟아 있는 무수한 산봉우리들은 이방인에게 낯설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이렇게 산과 땅이 뚜렷이 구분되는 풍경이 여기서는 널려 있는 것이다.
1시간여를 달려 드디어 탐콕에 당도했다. 여기서 배를 타고 유람하는 순서가 양념처럼 삽입되어 있다. 여기서도 우리 팀의 도착은 단연 화제였다. 유원지의 온 동네 사람들이 다 구경을 오는 것이었다. 자전거를 보관소에 맡기고 2명 1개조로 보트에 탔다. 1백여 척의 보트들이 있었지만, 이른 시각이어선지 타는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몸집도 왜소한 사공이 힘겹게 노를 저어 가는 보트에 큰 몸집을 싣고 가는 유람이 왠지 미안하게 느껴졌다.
좁은 공간에서 베트남 사람과 가까이 상당 시간을 가져보기는 처음이었다. 서로 소통은 잘 안 되지만, 사공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영어로 말을 걸어오곤 했는데 그들의 표정에서 하나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왜소하면서도 양순한 표정을 띠고 있는데, 대화를 할 땐 언제나 진지하게 상대방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당당함이 넘쳐 다소 위압적이고 오만하게 보일 때도 있다. 비록 노를 저으며 사는 사공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역사적, 민족적 자긍심 같은 것이 읽혀진다. 세계의 초강대국들을 물리친 그들의 자긍심이 어디에서든 묻어나는 것이다. 특히 베트남 북부는 더욱 그런 것 같다. 간혹 과자 같은 것을 나누어주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받지 않는다. 얻어먹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물길을 따라 갈수록 경치는 신비로움을 더해갔다. 우리는 간혹 동양 산수화들 가운데 상상으로 그려낸 것 같은 산봉우리들을 보고서는 다분히 허구적인 그림이라 치부했는데, 이곳의 풍경을 보고서 그것이 허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봉우리들이 모양도 그렇지만 그 아래에는 동굴들이 나 있어 신비감과 스릴은 더해만 간다.
물길과 논들 사이엔 논둑 경계도 없는 것이 신기하다. 구글 어스를 통해 보면 닌빈 일대가 거의 늪지처럼 보인다. 실제 물길과 논의 구분이 모호하다. 물을 따로 가두어둘 필요가 없는 논이니 둑이 없는 것이리라. 이렇게 천혜의 자연조건을 물려받은 베트남은 머지않아 동남아의 강국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자연조건이 좋은 지역 사람들은 아무래도 게으르기 쉬운 법이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예외적으로 근면하다.
닌빈-쿡푸엉
이제 유람을 마치고 쿡푸엉 생태보존 국립공원을 향해 강행군을 해야 한다. 이희삼씨는 마치 자기 고향에라도 온 것처럼 이 마을 저 마을로 이어진 농로들을 따라 능숙하게 더듬어가며 인솔해간다. 오전에 비가 조금씩 오다가 오후가 되자 하늘이 서서히 맑아지기 시작하면서 열대의 태양을 등에 지고 우리는 북쪽으로 진군했다. 대원들은 누가 특별히 지시를 하지 않아도 오랜 그룹 라이딩을 통해 숙련된 간격과 대오를 유지하며 질서정연하게 달렸다. 특히 체력이 염려되었던 2명의 여성 대원은 언제나 선두를 도맡을 정도로 강한 체력을 과시했다.
가는 동안 어느 곳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영화 ‘인도차이나’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 이상의 풍경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소박한 베트남 농가는 마치 산봉우리를 하나씩 배필로 맞기라도 한 것처럼 집집마다 아름다운 봉우리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욱 매혹적이다. 라이딩을 하던 중 호아루의 어떤 마을에 당도해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한 군데를 찾았다. 그 식당 역시 멋진 산봉우리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비경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된 시골길 라이딩 때문인지 이제 베트남 음식을 먹는 데 주저함이 없다.
계속된 업힐과 다운힐을 반복하면서 해가 떨어질 무렵에야 쿡푸엉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국도를 마다하고 일부러 농로를 찾아다니다 보니 펑크가 나는 자전거, 앞 샥이 망가진 자전거들이 생겨 약간의 차질이 생기기도 했지만 둘째 날의 강행군은 무사히 마쳤다. 닌빈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지형들이 여기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쿡푸엉의 게스트하우스는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는 곳에 자리해 있는데, 계곡이라 더위보다는 오히려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쾌적한 휴양지 숙소였다.
손님에게 무척이나 친절한 베트남인
베트남인들은 손님들에게 대단히 친절하다. 마을 어디를 가도 낯선 외지인들을 향해 “헬로!”라고 인사하며 반가워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다. 한번은 길을 가다가 잠시 어떤 집 앞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집 주인이 자기네 집 안으로 들어오라 권했다. 마당까지만 들어가겠다는데도 굳이 거실까지 들어오라 하여, 정수기의 물도 마음껏 먹고, 또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여행 중에 물이 가장 아쉬운데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언어 소통은 원활하지 못한 편이지만 그들의 따뜻한 인정은 여행자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해준다. 불현듯 우리나라에 시집와 다문화 가정을 꾸리고 있는 베트남 여인들이 생각난다. 순수하고 인정이 넘치는 따뜻한 마음씨의 여인들이 우리 문화에 잘 적응하며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최소한 서러운 타국 생활이 되지 않도록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다.
1958년생. 강원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상명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선갤러리 아트디렉터 및 한국공예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1989년부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는 한편 2006년부터 인천-서울, 일산-서울 장거리 ‘자전거 출근’과 함께 자전거 문화와 미술을 접목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역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책세상)
■글 / 이재언(미술평론가) ■사진 / 이재언, 이희삼, 김관수 외 ■탐사 진행 / 이범석, 이범원, 이희삼 ■탐사 협조 / 울프 라운치(WOLF LAUN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