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의 규슈 지방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 높은 여행지 중 한 곳이다. 특히 봄과 가을, 철쭉과 갈대숲이 장관을 이루는 구주산과 세계 최대의 칼데라를 자랑하는 아소산, 그리고 벳푸의 천연 온천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부산과 규슈를 잇는 배편이 저렴하고 편리해 이를 이용한 관광객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 볼거리가 많고 실속 있는 규슈의 3박 4일을 소개한다.
배로 가는 일본 여행, 그 느림의 미학
배를 타고 일본을 간다면, 10명 중 8명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비행기로 1~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을 배를 타고 13시간 동안 간다면, 오가는 길이 너무 고생스럽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크루즈를 타고 일본을 다녀오라고 권하고 싶다.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간다면 시간을 아낄 수 있긴 하지만, 항공기 여행은 공간을 이동한다는 것 외에는 큰 의미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13시간이 걸리는 크루즈는 배를 타는 순간부터 이미 여행이 시작된다. ‘느림의 미학’을 통해 비행기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여유와 자유’라는 여행의 본질을 깨닫게 해준다.
저녁 7시, 부관훼리 성희호에 탑승해 부산항을 출발하면, 다음날 아침 8시에 일본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한다. 대형 크루즈에는 관광객들을 위해 레스토랑, 노래방, 편의점, 사우나, 면세점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선내에서 나름의 여가를 즐길 수도 있다. 저녁식사 후에는 갑판 위에 모여 멀어지는 부산항을 보며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여기에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완벽한 선상 카페로 변신한다. 부산항의 야경이 홍콩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말이다. 이렇게 배에서 지내는 시간은 여행지에 대한 기대와 설렘 때문에 의외로 빨리 지나간다.
시모노세키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고, 관광버스로 옮겨 탄 후 첫 목적지인 구주산으로 향했다. 구주산(久住山·1,791m)은 일본의 100대 명산 중 하나로, 규슈 본토에서 가장 높고 철쭉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우리나라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시모노세키항에서 구주산으로 가는 데에는 버스로 2시간 30분~3시간 정도 걸린다. 이동 시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현지 가이드의 맛깔스러운 일본 문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다. 하지만 기자가 탄 차량은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때문에 시간이 더 지체됐다. 일본은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양방향 고속도로를 전면 통제한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로 1시간 정도 돌아서 갔지만, 일본의 교통안전 문화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구주산 산행은 해발 1,330m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일행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무렵인 오후 1시, 이미 일본 현지인들은 오전 산행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일본 등산객들의 특징은 우리나라 산악인들처럼 형형색색 등산복을 갖추어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 등산객들은 면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간소한 차림으로 등산을 했다.
일본 등산객들은 한국 관광객이 올라오면 옆으로 길을 비켜주면서 활기찬 목소리로 “곤니치와(안녕하세요)”를 외쳤다. 등산로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게 산행 중 매너라고 하지만, 한국 관광객 일행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옆길로 비켜서서 기다리는 모습에 친절함이 몸에 뱄다는 그들의 특성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5, 6월 봄 철쭉이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구주산. 도착하기 전날, 비가 많이 쏟아져서 철쭉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아름답게 만개한 키 작은 철쭉들이 마치 분홍색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여기저기서 “아름답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고, 이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아가려는 관광객들의 촬영이 시작됐다. 사랑하는 연인, 가족, 산악회, 친구 모임 등 삼삼오오 모여 철쭉 평원에서의 추억 만들기는 그렇게 한참 동안 계속됐다. 한편, 구주산 가을은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해발 1,330m 구주산 중턱에서 시작된 산행은 2시간 30분 만에 정상 1,791m에 올랐고, 다시 2시간 30분에 걸쳐 내려왔다. 구주산 트레킹은 코스에 따라 5~7시간 정도 소요된다. 하산 장소에는 천연 유황 온천으로 족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지친 발의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스머프 마을을 연상시키는 아소 팜
일본의 대표 명산인 구주산 트레킹을 마치고 숙소가 마련된 아소로 40분 정도 이동했다. 이날 숙소는 한국의 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한 아소 팜 빌리지(Aso Farm Village)였다.
아소 팜 빌리지는 마치 에스키모인들이 사는 이글루 같기도 하고, 혹은 화성인들이 살 것 같은 돔 모양의 독특한 곳이다. 한편으로는 동화에 나오는 난쟁이가 사는 마을 같기도 하다.
이곳을 처음 본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정말 예쁘다”며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빌리지의 규모는 생각보다 넓어 빌리지 내에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산책 삼아 빌리지를 돌아보려거든, 겉보기에 돔 모양이 모두 똑같이 생겼으므로 길을 잃어 버릴 수 있다. 보통 4인 1실이며, 석식과 조식은 뷔페로 제공된다.
아소 팜 빌리지 안에서 관광객들이 꼭 들러야 할 코스는 바로 천연 온천 노천탕이다. 하루 종일 산행으로 쌓인 몸의 피로를 온천에서 말끔히 풀 수 있는 것. 노천탕은 각종 테마별로 구분돼 있으며, 자신에게 맞는 탕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둘째 날에 활화산으로 세계 최대의 칼데라를 가진 아소산(阿蘇山·1,592m)을 찾았다. 아소산은 현재 살아 숨쉬는 화산으로, 언제 갑자기 화산 활동을 다시 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지 가이드가 “오늘 갑자기 화산이 터지면, 여러분은 역사와 함께하시게 될 것입니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하지만 아소산 관리사무소에서는 화산의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심상치 않으면, 입산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황가스가 입산하는 쪽으로 흐를 경우에도 입산이 통제된다. 다행히 이날은 날씨가 그리 맑지 않았음에도 바람이 입산 반대 방향으로 불어 분화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분화구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고, 30여 분을 천천히 걸어 올라갈 수도 있다. 올라가는 길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화산재로 덮인 다소 황량해 보이는 화산 지형도 감상할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칼데라를 볼 수 있다는 아소산. 둘레 4km, 깊이 100m의 거대한 분화구에서는 계속 유황가스가 솟아오르고 있으며, 코를 찌르는 듯 고약한 유황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러나 지독한 유황 냄새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은 에메랄드빛 칼데라를 보기 위해 코와 입을 막고 분화구 주위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분출되는 유황가스 때문에 에메랄드빛 칼데라는 쉽게 볼 수 없었다.
간혹 바람이 불어 유황가스가 걷히면, 겨우 5~10초가량 아름다운 옥색 칼데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수많은 관광객 중 이 아름다운 칼데라를 본 몇몇 사람은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환호하며 기분 좋게 산을 내려왔다. 아소산 근처에는 화산 폭발시를 대비해 콘크리트로 만든 대피소가 여러 군데 자리하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아소산 관광을 마치고 난 뒤, 일본의 전통 가옥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을 유후인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일본 전통 가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일본의 인사동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옛 가옥을 그대로 모텔로 활용하고 있는 곳도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길린코 호수. 이 호수는 바닥에서 온천과 맑은 물이 올라와 호수 면에 안개가 피어오르면서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후인을 떠나서, 40여 분 이동하면 온천의 명소로 잘 알려진 벳푸에 도착한다. 이 지역은 어느 곳이나 온천이 샘솟기 때문에 세계적인 온천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한국 관광객도 온천을 즐기기 위해 많이 오는 곳이다. 벳푸의 특징은 도시 여기저기에서 흰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이색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인데, 높은 지열 때문에 땅속에 구명을 뚫어 수증기를 빼주는 작업이라고 한다.
관광용으로 온천이 폭발하는 모습을 만들어놓은 벳푸의 ‘가마도 지옥’은 관광객들이 필수로 들르는 코스다. 온천물을 직접 맛볼 수도 있으며, 온천 수증기로 얼굴 마사지를 할 수도 있다. 펄펄 끓는 온천물에 넣어 5초 만에 익혔다는 달걀을 먹는 것도 빠뜨리지 말아야 할 재밋거리 중 하나다. ‘가마도지옥’에서는 직접 몸을 담그고 온천욕을 할 수는 없지만, 아쉬운 대로 족욕은 해볼 수 있다.
이렇게 구주산, 아소산, 유후인, 벳푸를 둘러보고, 다시 시모노세키항으로 이동해 부산으로 향하는 크루즈를 탔다. 출항은 오후 7시이며, 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음날 아침 8시에 부산항에 도착한다. 부산에 도착한 후에는, 부산의 명물인 자갈치 시장과 태종대를 돌아보는 것으로 3박 4일간 여행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일단 집을 떠나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된다. 낯섦과 동시에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매력.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향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크루즈로 즐기는 3박 4일간의 여행을 권하고 싶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제공&문의 / 기러기투어(1588-9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