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한 장 들고 알프스를 느끼다- 스위스 사보닌

길 떠나는 길

지도 한 장 들고 알프스를 느끼다- 스위스 사보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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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알프스는 그림엽서를 보듯 멀찌감치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걷고, 자전거도 타며 그 안에 들어가 몸으로 부대껴보아야 제대로 즐겼다 할 수 있다. 지도 한 장이면 다른 것은 별달리 필요가 없다. 그대 품 안에 알프스를 안을 수 있다.

[길 떠나는 길]지도 한 장 들고 알프스를 느끼다- 스위스 사보닌

[길 떠나는 길]지도 한 장 들고 알프스를 느끼다- 스위스 사보닌

트레킹의 마을, 사보닌
혹시 스위스를 두 번째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눈으로만 스위스를 즐기지 말고 몸으로 느껴야 한다. 처음 가는 스위스 여행에선 알프스도 봐야 하고, 빙하도 구경해야겠지만 두 번째 여행에선 스위스의 진면목을 볼 필요가 있다. 스위스의 진면목은 바로 산을 이용한 레저다. 스위스는 산악 국가이고 세계에서 트레킹 코스가 가장 잘 발달된 나라이며 산악자전거 코스, 카트, 플라잉폭스 등 수많은 즐길거리로 넘쳐난다. 면적만 보면 41만㎢로 남한의 절반을 조금 웃돌지만 트레킹 코스를 모두 합하면 6만㎞가 넘는다. 지구를 한 바퀴 반 돌고도 남는 거리다. 융프라우요흐를 한 번 봤다고 스위스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번에는 남들 다 아는 융프라우, 알레치 빙하 대신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보자. 바로 그라우뷘덴주의 사보닌이다.

사보닌은 깊은 산마을이라고 보면 되겠다. 강원도 정선과 비교할 만하다. 사보닌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리 구불, 저리 구불거리는 기차를 타고 강을 건너고 터널을 지나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그 깊은 산골에 사보닌이란 마을이 있다.

사실 사보닌을 알게 된 것은 풍광이 가장 아름답다고 스위스 관광청에서 권했기 때문이다. 사보닌은 스키로 유명한 곳이다. 여기에 산악자전거 코스뿐 아니라 플라잉폭스 등 다양한 레저 시설을 설치했다. 스키를 탈 수 없는 여름에도 심심하지 않다는 뜻이다.

사보닌은 가는 길부터가 장관이다. 협곡을 따라 깊숙이 앉아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엔 산들이 불쑥 일어서 있고, 계곡물은 세차게 흐른다. 기차가 산굽이를 이리 돌고, 저리 돌았다. 계곡은 깊으나 햇살이 잘 비치는 해발 1,200m의 고원에 마을이 나타났다.

트레킹 코스는 얼마나 될까? 현지 관광청 책임자 마쿠스는 전후좌우가 다 산이고 골짝마다 길이 있다고 했다. 코스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은 우문이나 다름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얼마나, 어떤 길을 걷고 달리고 싶으냐만 결정하면 된다. 마음만 먹으면 산장에서 쉬어가며 며칠씩 걸을 수도 있다.

[길 떠나는 길]지도 한 장 들고 알프스를 느끼다- 스위스 사보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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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도전에선 어렵지 않은 쉬운 코스를 골랐다. 트레킹 출발점은 1,900m 고지의 알프플릭스. 오른쪽으로 마테호른을 닮은 피츠블라터 산(3,332m)이 보이는 코스였다. 산길은 평지에 가까웠다. 고원은 푸르렀고, 빙산을 스치고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했지만 햇빛은 찬란했다. 길은 산꼭대기 마을 옆으로 개울처럼 구불구불 흘렀다.

사보닌 트레킹 코스의 백미는 해발 2,000m 안팎의 능선 위에 드러난 3개의 호수. 2,000m면 한라산의 백록담보다 더 높다. 이런 곳에 큼지막한 호수가 3개나 있다고 생각해보라. 걷는 것 자체가 즐겁다.

잔잔한 호수에 비친 알프스
가장 아름다운 호수는 ‘라이 네어’이다. 로망슈어로 검은 연못이란 뜻이라고 했다. 독자들은 로망슈어가 조금 생소할 것이다. 로망슈어는 영어, 독어와 함께 스위스의 4개 공식 언어 중 하나다. 물론 쓰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주로 산마을에 남아 있다. 로망슈어란 로마시대의 언어란 뜻이다. 아니, 어떻게 스위스에 로마시대의 언어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사보닌은 이탈리아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다. 산이 높아 과거에는 다른 지역과 왕래가 잦지 않았다. 먼 옛날 이 땅에 스며든 로마의 언어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라이 네어는 아름다웠다. 산들이 호수에 담겨 있었다. 거울같이 맑은 물이란 말을 명경지수라고 하는데 맑은 물속엔 알프스가 보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산책」에서 말한 것처럼 ‘새들의 쉼터이자 걷는 짐승의 피난처일 뿐 아니라 땅조차도 호수를 향해 마음을 열고 있는’ 그런 호수였다. 소로의 표현대로 ‘호수는 자연의 가슴에 달린 거울’ 같았고, ‘숲의 심장부’처럼 보였다.

라이 네어는 취사는 할 수 없고 트레킹만 가능한 자연보호구역으로 주변은 편백나무와 삼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야생화도 많았다. 관광청 직원은 “이 지역의 야생화 종류만 수백 종으로 알프스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많다”고 했다.

하이킹은 3시간 걸렸다. 알프플릭스의 산장까지 돌아오는 6.5~7㎞로 마지막에 오르막길이 있었으나 60, 70대도 걸을 만한 길이었다.
[길 떠나는 길]지도 한 장 들고 알프스를 느끼다- 스위스 사보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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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자전거도 타볼 만하다. 사보닌의 산악자전거 코스는 240㎞나 된다. 트레킹을 막 끝낸 후라 사보닌 마을까지 가볍게 다운힐만 하기로 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온 스포츠 전문지 기자들은 30분(오르막길은 2시간 30분)에 주파했지만 경치를 감상하느라 1시간 정도 걸렸다.

지도 한 장이면 가질 수 있는 절경들
비포장길 중간에 탁 트인 절벽이 나타났다. 초원마다 뾰족 지붕을 한 전통 가옥이 서 있다. 산들이 커서 마을은 작아 보였고, 아늑해 보였다. 고작 20~30채의 집들이 2,000~3,000m나 되는 봉우리를 두어 개씩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마을마다 등 뒤로 영화사 파라마운트 로고를 연상시키는 설봉들을 끼고 있는 셈이다. 자전거 코스엔 노란 표지판이 붙어 있다. 지도 한 장만 들고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물망처럼 이리저리 연계된 도로가 부러울 정도다.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을 위해 배설물을 치워달라는 뜻으로 비닐봉지도 배치해놨다.

[길 떠나는 길]지도 한 장 들고 알프스를 느끼다- 스위스 사보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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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힐은 힘들지 않았다. 햇살도 적당했고, 눈을 인 봉우리는 햇살을 튕겨내 눈부셨다. 잘생긴 나무들이 병사들처럼 쭉쭉 뻗어 있는 길옆으로는 가끔 벼랑도 나타나고, 물 맑은 계곡도 나타났다. 스키장의 삼나무 숲에서는 나무 기둥에 줄을 매어 도르래를 타고 즐기는 플라잉폭스와 카트 경주도 할 수 있다. 마운틴 카트는 빈 슬로프에서 타는 세발자전거다. 자전거 바퀴의 크기가 ATV만큼 크고 굵다. 시속 40㎞나 된다.

[길 떠나는 길]지도 한 장 들고 알프스를 느끼다- 스위스 사보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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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도 아름답다. 마을마다 분수대가 하나씩 있고, 분수대를 주변으로 작은 펍과 여관들이 몰려 있다. 나무로 만든 전통 가옥의 발코니는 여행자들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다. 빌딩형 호텔보다는 이런 호텔이 더 운치가 있다. 장작을 땐 벽난로가 타박타박 타오르는 난롯가에서 치즈를 불판에 구워 먹거나, 퐁듀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리아 상을 중간에 만들어놓은 돌다리도 볼거리고, 푸른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 떼들의 모습도 목가적이다.

흔히 스위스 하면 융프라우만 떠올린다. 하지만 스위스는 골짝마다 아름다운 곳이 많다. 또 눈으로 본 스위스와 몸으로 느낀 스위스는 다르다. 알프스를 몸으로 밟고 달려보면 스위스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여행 길잡이
* 유로 대신 스위스프랑을 쓴다. 대한항공이 취리히에 취항한다. 사보닌은 열차 편으로 코어에서 들어간 뒤 포스트버스로 갈아탄다. 코어에서 티펜카스텔까지는 버스로 50분, 사보닌까지는 15분 걸린다. 레일유럽 홈페이지(www.raileurope-korea.com)에 들어가보면 유레일패스 판매 여행사 연락처가 나와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사각형의 큐브호텔은 스포츠맨들을 위해 만든 호텔이다. 현관에는 스키나 자전거 거치대가 따로 마련돼 있다. 2, 3층에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갈 수 있도록 경사로가 놓여 있다. 모든 스포츠 용품도 빌릴 수 있다. 문의는 스위스 관광청, www.myswitzerland.co.kr.


■글&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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