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딸과 함께 떠난 미술평론가 이재언의 남프랑스 기행 2탄은 아를에서 시작해 아비뇽에서 끝을 맺는다. 고흐는 아를에서 불과 생의 마지막 2년을 머물렀지만, 무려 2백여 점에 달하는 대표작을 이곳에서 그렸다. 고흐의 열성 팬들은 아를을 성지처럼 여긴다. 이재언 역시 그 중 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편집자 주)
2천 년 전 문학과 음악의 현장으로
광활한 엑상프로방스의 들판을 지나 도착한 아를(Arles). 고풍스럽고 아담한 도시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카이사르가 개척한 로마 속주들 가운데 원형 보존이 가장 잘 된 곳이다. 지척에 있는 님(Nimes), 아비뇽(Avignon)과 함께 론강 유역 고대 유적의 트라이앵글을 이루는 곳이다. 도시가 아담해 시내에 있는 유적을 둘러보는 첫날 일정에서는 도보가 알맞다. 니스로부터 300km 이상을 달려온 자동차에게 휴식을 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자전거 유람에 나섰다. 아내와 딸은 걷고 난 자전거를 탄다. 그들이 걸으면서 직선을 그리는 동안, 나는 자전거로 좌우 골목 깊숙이까지 둘러보면서 지그재그의 설상선(楔狀線)을 그리고 다녔다.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정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혼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도시의 골목 하나하나를 무심코 지나치기는 아깝다. 그런 곳에서 자전거야말로 내게 최고의 기동성을 제공한다.
드디어 고흐를 만나러 가다
다음날 일정은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혼이 서린 현장을 답사하는 것이다. 고독과 열망을 내연시켜 불후의 예술세계를 일군 고흐, 그를 만나러 나서는 것이다. 고흐는 타계하기 전 불과 2년 남짓 머물렀지만, 무려 200여 점의 주옥같은 대표작들을 대부분 이곳에서 그렸다. 아를 시에서는 도시 지도에 고흐의 명작과 관련된 장소들을 세세하게 표시해두어 아를 관광의 백미로 소개하고 있다.
고흐는 요양 목적으로 아를을 찾았지만, 그곳에서 육신의 피폐는 더해만 갔다. 친구 고갱과의 갈등은 단순한 우정의 단절 이상의 충격을 주었던 모양이다. 귀를 자른 사건 이후, 강제적인 요양소 수용에 이어 끝내는 아를 인근의 생레미 정신병원에 갇히기까지 그의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지만 그럴수록 그림에 집착했다. 육신이 피폐해질수록 그의 그림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아우라와 광채를 발했다.
도개교, 론강, 밤의 카페, 아레나 경기 모습, 요양소 정원, 해바라기 등의 풍경 소재들이 실제로 지금까지 흔하게 볼 수 있거나 혹은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다. ‘밤의 카페’가 그려진 실제 장소는 요양소에서 멀지않은 곳이다. 고흐를 이용하는 상혼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순례자들에겐 그 현장이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반가운 일이다. 어떤 면에서는 작품의 현장을 답사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지만 정작 고흐가 고뇌했던 예술적 핵심들에 대한 관심은 뒷전인 것 같아 씁쓸했다.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한 고흐의 꿈과 열정은 결국 고통스러운 분열 증세로 나타났다. 고흐의 그림은 내면의 방황과 고통을 통해 빚어진 것이다. 자학과 고통을 연소시켜 일구어낸 화폭들이었기에 그의 그림은 솔직하고 호소력이 넘쳤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내면세계의 에너지가 빚어낸 회오리와도 같은 필치에 전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했던 것일까. 고흐는 도시 곳곳, 들판, 꽃 한 송이, 들뜨고 흥겨운 카페 등의 모습을 격정적인 필치로 담아냈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세상을 담는 데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고흐가 없는 아를은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를 근교에서는 넓게 펼쳐진 라벤더 밭과 해바라기 밭을 자주 보게 된다. 남프랑스의 태양을 바라보면서 광채를 더해가는 해바라기처럼 남프랑스의 태양을 흠모한 고흐는 운명적으로 해바라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나도 해바라기가 더 좋아졌다.
고색창연한 중세 도시 아비뇽
다시 날이 밝자, 우리는 아비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비뇽은 론강 상류 방향으로 조금 북쪽에 있는 곳으로, 한때는 중세 역사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교황권 약화의 상징인 ‘아비뇽 유수(1309~1377)’로 유명한 곳이다. 아비뇽의 역사를 아는 것은 중세 유럽사의 한 축을 이해하는 것이다. 아비뇽에 도착했을 때가 7월 말로 ‘아비뇽 연극 축제’가 한창인 기간이다. 아를에도 음악 축제가 있기는 하지만 도시의 일부분 행사로 느껴지는 데 비해, 아비뇽은 도시 전체가 축제의 장으로 동원되는 느낌이다.
타고 온 자동차를 성 밖 공용주차장에 세워두고, 자전거를 꺼냈다. 아비뇽의 도시 구조는 성 안과 밖으로 구분된다. 성 내부는 구도심으로 관광, 축제, 종교 등의 기능을 하고, 외부는 교통, 행정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성 안에서만 주로 머물게 된다. 식구들과는 성곽 내에 있는 교황청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도시의 중심 역할을 하는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아비뇽 성은 5km 정도 되는 상당히 큰 규모의 성으로, 성의 북쪽이 론강에 연해 있으며 성곽이 언덕을 끼고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성 안으로 들어가면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고색창연한 도시가 펼쳐진다.
생미셸 문을 통과한 후 교황청으로 가는 레퓌블리크 거리는 축제를 보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방에서 연극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와 알림이들이 기발한 이벤트를 펼치고, 공연 대기 중인 배우들이 거리를 함께 거니는 가장행렬도 좋은 볼거리다. 교황청 광장 한쪽에서는 젊은이들이 젠댄스를 선보여 축제에 활력을 더한다.
아비뇽 교황청은 지금은 거의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명목뿐인 곳이다. 중세 한때 세속의 권력 투쟁에서 밀린 교황권의 쇠락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다. 바티칸의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에 비해 왜소해 보이는 데다 오랜 세월의 때를 머금은 윤기 없는 암회색의 외관이 비운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듯하다. 교황청을 지나 전망대 쪽으로 가면 론강을 낀 아름다운 삼각주 평야를 볼 수 있다.
론강 트라이앵글 가운데 님을 못 보고 떠나는 것이 안타깝다. 하긴 못 보고 지나치는 곳 가운데 안타깝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냐만 님을 못 본 것은 마음에 걸린다. 아를에서 불과 30km 떨어진 님은 평소 필자가 경기도 일산-종로 자전거 출근을 하는 거리보다 더 가까운 거리다. 자전거로 한 바퀴 돌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지도에 표기된 고흐의 작품 속 현장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아를이 아무리 작은 도시라지만 복잡한 골목길에서 헤매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동서남북조차 오락가락하게 되어 지도가 소용없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더위도 만만찮은 장애가 되었다. 게다가 차를 운전하며 자전거 주행을 케어하기로 한 아내가 오히려 내겐 자주 짐이 되곤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체 요인은 역시 기대 이상으로 생생한 고흐의 그림 속 현장이었다. 특히 ‘도개교’ 현장에서는 너무 오랫동안 머물렀다. 생각이 많아졌던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그는 내게 많은 숙제를 안겨주었다.
1958년생. 강원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상명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선갤러리 아트디렉터 및 한국공예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1989년부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는 한편 2006년부터 인천-서울, 일산-서울 장거리 ‘자전거 출근’과 함께 자전거 문화와 미술을 접목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역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책세상) |
■글&사진 / 이재언(미술평론가) ■취재 협조 / 울프 라운치(WOLF LAUNCH), 여행과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