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 명이 넘게 본 영화 ‘국가대표’. 아마 천만 명을 넘은 ‘해운대’와 맞붙지만 않았더라도 더 많은 관람객을 동원했을지도 모른다. ‘국가대표’로 인해 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이번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캐나다다. 2010년 2월 12일부터 18일까지 휘슬러와 밴쿠버 등지에서 열린다. 두 곳 모두 한국인들에겐 무척 익숙한 곳이다. 밴쿠버는 캐나다 관광의 출발점이며, 휘슬러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스키장이다. 휘슬러를 스키만 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지에서 즐길 수 있는 레포츠는 무궁무진하다.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캐나다를 다녀왔다. 눈으로 본 캐나다도 아름답지만 몸으로 느껴본 캐나다는 더 아름답다.
흔히 캐나다 밴쿠버와 휘슬러를 잇는 도로를 ‘씨 투 스카이(Sea to Sky)’라고 한다. 바다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뜻으로, 자연경관이 무척 아름다워 이런 이름이 붙었다. 기차여행도 만만치 않게 좋다. 코스는 비슷하다. 그런데 철로가 도로보다 더 호수와 절벽 쪽으로 놓여 있다. 당연히 더 스릴 있고 아름답다. 록키마운티니어는 노스 밴쿠버 역에서 출발한다. 혹시 스위스에서 글래시어 익스프레스나 베르니나 익스프레스를 타보셨는지? 바로 그런 열차와 비슷하다. 천장의 양쪽 귀퉁이까지 유리창을 끼워 전망이 더 좋다. 게다가 가운데에는 헤리티지 열차 하나를 따로 끼웠다. 헤리티지란 바로 옛날에 다니던, 개척시대의 열차를 뜻한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유리창이 없다. 그래서 바람은 쌩쌩 들어오지만 사진 찍기 좋다. 고개 내밀고 사진 찍는 즐거움, 이것도 큰 재미다(호주 멜버른 외곽 단데농 퍼핑빌리처럼 발을 내밀고 타는 재미에는 못 미치지만).
기차 안에서는 밥도 준다(등급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전통 복장을 한 역무원들이 서빙을 한다. 음식을 먹고, 맥주도 한 잔 하면서 스쳐가는 차창 밖 풍경을 즐기는 재미가 꽤 좋다. 열차는 호수에서 숲으로 파고들었고, 이어 다시 폭포가 있는 협곡을 끼고 돌아간다. 바다와 협곡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열차는 드물다. 그렇게 3시간 정도면 휘슬러에 닿는다.
경비행기와 집트렉으로 보는 풍경
휘슬러를 스키 리조트라고만 알고 있다면 오산이다. 휘슬러는 블랙콤과 묶으면 물론 슬로프가 2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큰 스키장이지만 그 밖에 다른 레저도 즐길 수 있다. 복합 리조트다.
일단 여기가 어떤 곳일까 알고 싶다면 경비행기 투어를 해보자. 그냥 비행기가 아니라 수상비행기다. 그린레이크에서 출발하는데 골프장을 끼고 있는 이곳의 풍경도 아름답다. 여기서 비행기를 타면 푸른 초원과 빙하까지 한눈에 보인다. 수상비행기 조종사는 승객들에게 헤드셋을 하나씩 나눠준다. 헤드셋을 통해 지역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경비행기가 푸른 물살을 가르고 하늘로 솟아오르자 지상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휘슬러를 땅에서만 보면 어떤 곳인지를 잘 모른다. 하늘에서 보면 휘슬러가 얼마나 장관인지를 알 수 있다. 기기묘묘한 봉우리들도 많고 로스트레이크 등 아름다운 호수도 있다. 록키마운티니어도 볼 수 있다. 푸른 숲 사이로 놓인 철로도 장관이다. 이 경비행기의 장점은 가격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럽이나 남태평양의 헬기 투어, 터키나 아프리카의 열기구 투어는 대개 우리 돈 30만~50만원을 받는데, 경비행기 투어는 135달러부터다. 이 정도면 비싼 편은 아니다.
장엄한 대자연과의 조우
휘슬러 산자락은 ‘더글러스 헛’이란 나무가 밀도 높은 숲을 이루고 있다. 우리의 전나무 숲을 닮았다고 보면 된다. 이 숲이 생긴 것은 아마도 빙하기 이후일 게 분명하다. 캐나다 북부 지역은 빙하기 때엔 얼음 속에 있었을 것이다. 1만2천 년 전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이 일대에 이런 숲이 생겼을 것이고, 유럽인들이 캐나다에 들어오기 전까지 남벌 같은 환경 파괴도 없었을 것이다.
숲에는 흑곰(Black Bear)이 살고 있다. 사실 캐나다에는 곰들이 많다. 마니토바의 북극곰(Polar Bear)이 있고, 그리즐리 베어(Grizzly Bear)도 있다. 이 두 곰은 성격이 거친 편이다. 육식도 한다. 하지만 블랙베어는 ‘순둥이’다. 채식만 한다. 이 블랙베어가 우리의 반달곰과 같은 종류다. 한국의 반달곰은 아시안베어, 만추리안(만주)베어라고 부른다. 운이 좋게도 집트렉을 하다 곰 한 마리를 봤다. 현지인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휘슬러 지역에는 모두 81마리의 흑곰이 살고 있다고 한다. 가이드는 녀석의 이름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 동네에선 곰이 친근하다. 곰이 공격하지는 않느냐고? 대부분 곰이 먼저 도망간다.
팸버튼 지역의 승마도 괜찮다. 휘슬러 리조트에서 차로 50분 정도 가면 목장들이 있는 팸버튼 지역이다. 이 지역은 평지지만 주변의 산들이 에워싸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참가자의 체중에 맞춰 말을 골라주고 목장을 벗어나 들판을 걷거나 달려본다. 말들이 워낙 순해서 초보자들도 쉽게 할 수 있다.
이번 승마 투어에선 뉴질랜드에서 온 카우걸이 안내했다. 어려서부터 승마를 했단다. 조금 익숙해지면 가볍게 달리는 트로팅도 해보는데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다. 말에서 본 경관은 다르다. 눈높이가 1m 정도 높아졌을 뿐인데도 산들이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카우걸은 가끔 숲에서 흑곰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휘슬러까지 갔다면 피크투피크 곤돌라를 한 번 타봐야 한다. 피크투피크란 휘슬러 산 정상과 블랙콤 산 정상을 곤돌라로 연결했다는 뜻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을 위해 만들었다. 길이 4.4㎞의 곤돌라인데 지난해 말 완공됐다. 4개의 타워만으로 곤돌라 케이블을 연결하는 신기술을 적용했다. 28대의 곤돌라 중 2대는 바닥이 강화유리로 돼 있다. 숲 바로 위를 마치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다.
밴쿠버는 무척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꼭 가볼 곳을 꼽는다면 스탠리파크, 그라우스 마운틴, 캐필리아노 브리지 등을 들 수 있다. 스탠리파크는 도심 공원으로 밴쿠버 시민들의 휴식처다. 바다를 끼고 있는데다 풍광이 아름다워 수많은 여행자와 시민들이 찾는 곳이다. 캐필리아노에는 우리로 치면 출렁다리가 있다. 여기서는 캐나다 개척의 역사를 알 수 있다. 그라우스 마운틴은 스키 리조트이기도 하며 밴쿠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라고 볼 수 있다. 도끼로 찍으며 나무에 올라가기 등 팀버링에 관한 이벤트도 많이 연다.
여기 정보 또 하나, 9월 말 밴쿠버 공항에서 밴쿠버 시내까지 이어지는 전철도 완공됐다. 동계올림픽 이전까지는 값도 대폭 할인해준다.
여행 길잡이
* 직항편으로는 대한항공과 에어캐나다가 있다. *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도심까지 26분 만에 연결하는 모노레일 캐나다 라인이 9월 운행에 들어갔다. 공항에서 캐나다 플레이스가 위치한 밴쿠버의 중심지 워터프론트역까지 약 26분, 요금은 어른 1인 편도 기준으로 3.75캐나다달러. 오후 6시 30분 이후와 주말에는 2.50캐나다달러에 이용할 수 있다. 동계올림픽 이후 요금이 인상되며 보통 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요금과 시간표는 www.translink.ca 참조. * 집트렉은 연중 운영되며 이용 요금은 90달러부터다. www.ziptrek.com 참조. * 피크투피크는 여름에는 40달러, 겨울 성수기에는 80달러다. 휘슬러 블랙콤 스키와 스노보드는 2일 리프트권이 120달러다.
www.whistlerblackcomb.com 참조. * 밴쿠버에서 휘슬러까지 기차여행은 안타깝게도 10월까지만 운영한다. 등급에 따라 값이 달라지지만 보통 100달러부터다. 휘슬러 외에 1박 2일 일정으로 레이크루이스까지 들어가는 열차도 있다.
www.whistlermountaineer.com 참조. * 수상비행기 투어는 휘슬러 리조트에서 3㎞ 떨어진 그린레이크에서 출발한다. 호텔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www.whistler.com www.whistlerair.ca 참조. * 승마 체험도 재밌다. 팸버튼 지역에 목장들이 많은데 보통 79달러부터다. www.whistler.com/horseback_tours/ 참조.
■글&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