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폭력! 엄마들 가슴속에 쌓인 말 많다

아동 성폭력! 엄마들 가슴속에 쌓인 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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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나영이 사건’으로 불거진 아동 성폭력의 심각성,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우리 아이도 예외는 아니다. 슬프지만 꼭 알아야 할 진실이 존재한다. 아동 성폭력에 대한 딸을 둔 엄마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 그리고 실질적으로 알아보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대처법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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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 느끼는 아동 성폭력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일까? 실제 딸을 둔 엄마들의 모임을 주선했다. 불편한 주제인 만큼 나서기 꺼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오히려 엄마들은 그런 일이라면 적극 나서서 할 말은 해야겠다며 너도나도 자원했다. 그들이 말하는 아동 성폭력의 현주소를 들어봤다.

모두 6명의 학부형들이 모였다. 우선 우리는 아동 성폭력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나영이 사건(가칭)’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다.‘나영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자리에 모인 엄마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기 시작했다. 합당한 욕조차도 찾지 못했다며 여기저기서 분통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전향희 술을 마셨다고 심신미약으로 판정하고 감형됐다는 사실에 분노가 끓어요. 다른 나라는 가중처벌이 되면 됐지 이런 경우는 없다고 하더군요. 만약 판사 당신네 자식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해도 12년을 줬을까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형시켰겠죠.

오영자 도대체 무슨 근거로 판결을 내리는지 모르겠어요. 아동 성폭력 소송은 특히 공개 재판이나 배심원 제도가 필요하고 생각해요. 법문 따위로 가늠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잖아요.

이영희 그러니까 범인이 반성의 기미도 없이 항소를 몇 번이나 했겠지요. 도무지 사람이라고 믿을 수가 없어요. 심정적으로 말하자면 차라리 사형시켰으면 좋겠어요.

전선자 게다가 4천만원 보험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안산시가 생활보호대상에서 나영이네를 제외했다잖아요. 이걸 나영이 아버지가 재판부에 탄원하니 6백만원의 피해보상 지원금도 다시 회수하겠다고 통보하고 사람들이 비난하니 다시 주고 사과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요. 힘이 없으니까 당하는 거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오영자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나영이를 생각하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요. 제 남편은 자식이 그렇게 되면 자신도 살고 싶지 않을 거라며 같이 죽을 거라고 극단적으로 말하더군요. 나영이를 위해서 촛불 시위에 참여해야겠어요.

김선지 요즘 딸을 둔 엄마들은 직장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실정이에요. 일단 딸이 눈앞에서 안 보이면 불안함에 머리가 무거워지고 맘이 편치가 않아요. 나영이도 등굣길에 변을 당했다잖아요.

권영희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됐어요. 학교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를 예뻐해도 기분이 좋지 않으니 이걸 어쩌면 좋은지 모르겠어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됐어요.

학부모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나영이 사건’으로 아동 성폭력이 공론화되면서 경각심이 생겼지만 결국 이번 일이 전대미문인 사건은 아니다. 크든 작든 우리 주변에서 왕왕 일어났던 일이고 여러 사정으로 암묵적으로 숨기는 경우도 많았다. 학부모들이 실제 주변에서 일어난 사례들을 이야기했다.

김선지 우리 아이의 학교 앞에 나이가 꽤 든 아저씨가 문구사를 운영하고 있었대요. 그런데 남자 애들만 골라 성추행을 했다나봐요. 그것이 아이들 입을 통해 결국 학부모들까지 알게 된 거예요. 경찰에 신고를 해서 아저씨가 조사받거나 잡혀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결국 “노인네가 애들이 귀여우면 그럴 수 있다”고 하고 훈방조치를 시킨 거예요.

전선자 그런 인식이 있죠. 남자 아이들 성추행은 비교적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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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 두 번이나 신고했는데 경찰들이 수수방관하니까 학부형들이 모여서 학교 측에 항의하는 바람에 결국 그 아저씨가 동네에서 쫓겨난 모양이에요. 그러면 뭐 해요. 얼마 뒤에 다른 동네에서 또 문구사를 차렸다는 소문이 들리더라고요.

오영자 어머! 그렇게 문제가 있는 사람이면 또 그런 일을 벌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권영희 제가 들은 건 경비 아저씨에게 피해를 당한 경우였어요. 보호를 해줘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말이죠. 완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거죠. 피해를 당한 다섯 명의 엄마들이 모여 고발조치를 하자고 모였는데 두 집은 고발해봤자 아이들이 상처받는다고 다른 곳으로 조용히 이사를 갔대요.

전선자 안타깝네요. 아이들을 위해 그냥 덮어두는 그런 마음도 이해가 가요. 그만큼 우리가 법이나 경찰을 불신한다는 거죠. 아이들이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며 받아야 되는 상처들이 너무 크잖아요.

권영희 맞아요. 남은 세 집은 모여서 신고를 했대요. 아이들이 힘겨운 진술 과정도 감수했는데 결국 경비 아저씨는 집행유예로 풀리고 아무 성과도 없이 끝났다고 하더군요.

전향희 일부 문제 어른들의 일이긴 하지만 종종 멋모르는 아이들끼리 그런 경우도 있어요. 제가 들은 건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남자아이가 여자아이 성기를 자꾸 만지고 다니는 바람에 여자아이가 방광염에 걸린 거예요.
오영자 어머 세상에! 요즘 아이들이 ‘야동’에 너무 쉽게 노출돼 있어서 그래요. 성이 뭔지 올바른 인식이 생기기도 전에 왜곡된 동영상들을 보니까. 쯧쯧.

전향희 문제는 유치원 원장의 태도였어요. 아이에게 주의를 주고 심리치료든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유난스럽다. 아이들이 장난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더래요. 자신의 유치원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났다고 소문이 날까봐 두려웠던 거죠.

이영희 그건 유치원뿐만이 아니에요. 동네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져 언론에 보도되면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질까봐 쉬쉬하는 경향이 있어요.

전선자 그나마 나영이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나 이렇게 공론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가까운 과거에만 해도 ‘귀여워하는 것’과 ‘성추행’의 경계가 모호했잖아요.

오영자 밤길이 무서워 방범순찰을 돌아달라고 부탁을 해도 차로 돌면 소용이 없어요. 나쁜 일은 순식간에 당하는 일이잖아요. 제 주변에는 세상이 흉흉하다며 직장에 사표를 낸 엄마도 있어요. 진짜 엄마가 아이만 졸졸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건가요?

학원이면 학원, 학교면 학교.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뒤돌아서도 무섭다.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믿어선 안 된다. 딸을 둔 엄마들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근본적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가정에서는 성교육도 어떻게 시키고 있는지 물었다.

전향희 이젠 딸이라고 옷도 예쁘게 입히지 못해요. 항상 바지만 입혀요. 눈에 띄는 화려한 장신구도 되도록 피해요. 그렇지만 이렇게 한들 그저 심리적인 안정일 뿐이죠. 1%의 위험에도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인 것 같아요.

이영희 그리고 엄마들끼리 동네 어디서든 수상한 사람이 없나 서로 감시하자고 늘 이야기해요. 내 아이만 돌보지 않고 옆집 엄마가 혹여 사정이 있어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오지 못하면 대신 집까지 데려다주기도 하고요.

오영자 낯선 사람이 뭔가를 물어보면 아예 대답하지 말라고 가르쳐요. 얼굴을 아는 사람도 엄마 없이 따라가선 안 된다고 하고요. 어른의 말도 듣지 않는 인정 없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 서글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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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 맞아요. 너무 착해서 어른 말을 잘 듣는 아이는 쉽게 범죄 대상이 될 수 있으니까요. 범죄 수법도 파렴치하잖아요. 짐을 들어달라고 한다든지, 아이에게 일부러 지갑을 줍게 한 후에 잡혀간다고 협박해서 끌고 간다든지. 나쁜 놈들이 아이들의 취약점을 너무 잘 아는 거죠.

오영자 전 딸에게 지나가는 남자가 쳐다봐도 눈을 맞추지 말고 무조건 집으로 달려오라고 얘기해요.

전향희 저는 이웃집에 사는 분이 종합병원 간호사라 종종 그 집 아이들을 챙겨주곤 했거든요. 그날도 전화를 해서 “너희 배고프지 않니? 이모가 맛있는 거 사줄게 나와라”고 했는데 굳이 안 나오겠다는 거예요. “그럼 떡국 가져다줄까?”라고 했는데도 거절을 해요. 이상해서 나중에 그 집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막 웃는 거예요. 가족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따라가지 말라고 가르쳐서 그런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저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그게 맞는다고 얘기했어요.

이영희 저도 엄마가 없을 때는 아는 사람의 차도 타지 말라고 얘기해요.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하면 아이들이 헷갈려 하니까 예방을 위해서는 일관성이 필요하더군요.

김선지 요즘은 보디가드를 두는 것이 유행이라고 해요. 엄마들 4명이 돈을 모아 한 사람을 고용하는 거예요. 제 아이도 일곱 살인데 내년에 학교 들어가면 알아보려고 해요.

권영희 전 아들이 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들에게 더욱 올바른 성교육과 인성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들이 혹시 어디 가서 함부로 그럴까봐 더 걱정이 돼요. 집에 가끔 여자아이가 놀러오면 전 절대 외출하지 않아요. 아직 어리다고 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이런 얘기를 하면 남들은 저보고 너무 한다고 하는데 아들 가진 엄마가 먼저 조심해야죠.

엄마들은 딸을 맘 놓고 키울 수 없는 나라에서는 세금을 내는 것도 아깝다며 성토한다. 그래도 최근 아동 성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국회에서도 다양한 법안들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을 작은 위안으로 삼는다고 한다.

권영희 아동 성폭력범의 재범률이 높다는 통계가 무엇을 말해주나요. 그만큼 형량이 가볍고 짧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이런 범죄는 앞으로 절대 못하도록 본보기를 보여줘야 해요.

오영자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범죄자를 관리해서 예방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미국은 그 지역 사람들이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신상 공개를 다 하고 지역 경찰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잖아요. 정치인들은 이런 사안을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전선자 그래도 일단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치더라도 이 기회에 더 강한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술을 마셔서 감형이 된다면 음주운전 사고도 심신미약으로 감형시키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영희 성폭력을 당한 아이들에 대한 지원도 적극적으로 해줘야 해요. 우리 사회가 저지른 일이잖아요. 제도적으로 아이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은 없어야 돼요.

전향희 맞아요. 그 아이가 사회에 고립되지 않도록 정신적·육체적인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해요. 정부 차원에서 관련 기관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일반 병원에서 증거자료 채취를 의뢰했다가 거절당한 사례도 있었잖아요.

6인의 엄마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한 가지였다. 자신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곳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기본적인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그들은 절망했다. 아동 성폭력범에 대한 엄중한 처벌, 재범 방지를 위한 관리체계의 확립, 그리고 피해 아동들의 치료를 위한 아낌없는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는 정책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진정 우리의 미래,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 그 어떤 정책보다 우선돼야 할 정책이 아닐까.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경향신문 포토뱅크 ■도움말 / 김소향(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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