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雪國)을 가다 - 니가타

길 떠나는 길

설국(雪國)을 가다 - 니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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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타는 일본 북동부에 위치한 눈의 나라다. 겨울 레포츠 마니아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훌륭한 설질로 유명한 지역이다. 쌀과 물이 좋아 니가타 사케도 인기다. 눈, 온천, 술이 있는데 세상 그 무엇이 부러울쏘냐.

소설 「설국」의 탄생지, 니가타
‘국경의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진 듯했다’로 시작하는 노벨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무대는 홋카이도가 아니다. 니가타다. 한국 사람들은 눈 하면 홋카이도만 떠올리는데 니가타도 세계적인 대설 지역이다. 동해의 눈바람이 해발 2,000m가 넘는 에치고 산맥에 부딪히면서 겨울이면 엄청난 눈을 쏟아낸다. 매일 지겹게 눈이 내린다. 하룻밤에 1m가 넘게 눈이 쌓이는 때도 많다. 그래서 눈을 피하기 위해 처마가 있는 길을 만들기도 했다.

[길 떠나는 길]설국(雪國)을 가다 - 니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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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과 관서를 나누는 조에츠선 시미즈 터널을 넘으면 바로 ‘눈의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럼 왜 국경이라고 썼을까? 현이 생기기 전에는 현을 나라(國)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일본 스키의 발상지가 홋카이도가 아니라 니가타인 것도 이것 때문이다.

일본에 스키가 전래된 것은 1911년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심인 오스트리아는 일본이란 동양 나라에 대해 궁금증을 품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대국 러시아를 이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탐도 하고, 군사 교류도 할 겸 특사를 파견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레르히 소령이다. 눈은 많고 겨울에 할 일은 없던 레르히 소령은 일본 사람들에게 스키를 가르쳤다. 니가타 조에츠시의 가나야산 스키장에는 레르히의 동상과 스키박물관이 있다. 일본 스키인들은 해마다 이 니가타 스키장에서 일종의 감사 의례를 드린다.

니가타에서 먼저 봐야 할 곳은 료칸 ‘다카한’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곳에서 3년 동안 살면서 「설국」을 썼다. 료칸은 현대식으로 변했지만 과거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그러니까 야스나리가 묵으며 글을 쓰던 방을 재현해놨다. 문을 연 것은 800여년 전. 후손이 37대째 료칸을 운영하고 있다. 가업을 중시하는 일본이지만 참 놀랍고 한편으로는 무섭다.

[길 떠나는 길]설국(雪國)을 가다 - 니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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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질이 훌륭한 스키 명소
니가타 겨울 여행에서 스키를 타는 것은 필수다. 스키 코스는 유자와와 묘코고겐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유자와 지역은 일본인들에게도 이름난 스키 명소다. 신칸센에서 내리자마자 역사에서 곧바로 곤돌라를 타고 가는 스키장(갈라 유자와)도 있다. 연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이중 300만 명은 겨울 스키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다. 스키장은 17곳이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스키장은 나에바인데 건물 모습은 강원도의 한 스키리조트를 닮았다. 설질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훌륭하다. 나에바 스키장은 거대한 스키 단지다. 스키장의 크기도 크고 슬로프도 넓다.

나에바는 가구라, 미쓰마타, 다시로 3개 스키장과 5481m의 곤돌라로 이어진다. 곤돌라 타는 시간만 20분 이상 걸린다. 캐나다의 블랙콤과 휘슬러를 잇는 곤돌라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긴 곤돌라로 꼽힌다. 이 지역에는 곤돌라 3개, 고속 리프트 6개, 일반 리프트 10개 등이 있다. 큰 슬로프만 따져도 33개 정도다. 수준에 맞는 슬로프만 골라 타면 된다. 다시로 스키장에서는 바로 밑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도 볼 수 있다.

나에바는 해발 900m의 고원에 있다. 슬로프 정상은 1,789m. 일본에서는 드물게 야간 스키도 운영한다. 나스파 스키장도 훌륭하다. 대신 나스파에서는 스노보드는 탈 수 없다.

묘코고겐은 교통은 조금 불편하지만 더 호젓하고 시골풍의 스키장이라고 할 만하다. 묘코산(2,454m)은 일본의 100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힌다. 스키장은 모두 9곳이다. 이 중 3, 4곳에서는 슬로프 공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스기노 하라 스키장에서 가장 높은 슬로프는 해발 1,855m. 여기서 마을이 있는 731m 지점까지 내려온다. 표고 차가 1,124m나 된다. 슬로프 길이로 따지면 8.5km다. 그런데 어렵지는 않다. 초급자도 탈 수 있고, 중급자는 쉽게 내려올 수 있는 코스다.

니가타 스키를 파우더 스키라고 부른다. 습기가 적은 건설로 눈이 잘 뭉치지 않고 파우더처럼 흩어진다. 한국에서는 눈을 만들어 뿌리지만 니가타 스키장은 오전에 트랙터가 밤사이 쌓인 눈을 눌러준다. 눈이 너무 많으면 스키를 탈 수 없기 때문이다. 빙판에만 익숙한 한국인 스키어에겐 자연 설에서 스키를 타는 것이 어색하다. 속도감이 없다. 대신 넘어져도 아프지 않다.

단 주의해야 할 점은 플레이트가 벗겨져 눈 속에 파묻히면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플레이트는 이듬해 스키 시즌이 끝나고 눈이 다 녹을 때 발견된다고 한다.

스기노 하라는 스키장도 아름답다. 슬로프 한가운데 수령이 300년이 된 참피나무가 있는데 마치 마을 어귀에 있는 당산나무 같은 신목으로 보였다.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슬로프 양편에 펼쳐진 삼나무 숲도 통과하게 된다. 스기노 하라의 스기(杉)는 삼나무란 뜻. 묘코고겐에 가거든 꼭 한 번 타봐야 할 ‘강추’ 스키장이다.

아카쿠라 간코 스키장은 이 일대 스키장의 중심이다. 7개의 스키 리조트 중 한가운데 있다. 곤돌라에서 내리면 ‘스키장 외의 지역에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눈사태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은 스키 타기 좋은 계절을 3월로 꼽았다. 그때는 날씨도 청명하단다. 슬로프 역시 손색이 없었다. 스기노 하라보다 폭은 약간 좁았지만 좁은 곳도 20~30m는 돼 보여 초보자들이 타기에도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설질도 훌륭했다.

아카쿠라 스키장에서 바라본 풍경도 아름답다. 산 건너편에 우리의 백두대간처럼 우뚝 솟은 산맥들이 펼쳐진 산자락은 장관이었다. 해발 1,000m가 넘는 슬로프 중간에 1937년에 세워진 아카쿠라 간코 리조트가 있다. 아카쿠라나 스기노 하라 스키장의 장점은 슬로프에서 내려서면 곧바로 마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유럽의 스키장과 비슷하다.

조에츠 가나아산 스키장의 레르히 동상.

조에츠 가나아산 스키장의 레르히 동상.

온천과 사케에 취한 밤
스키가 서툰 사람은 설피 트레킹을 하면 된다. 영어로는 스노슈잉이다. 허리춤까지 빠지는 곳도 있는데 꽤 재밌다. 스노슈잉을 할 때 현지인들은 사케를 눈 속에 박아놓는다. 땀이 막 날 무렵 눈 속에 파묻은 사케를 찾아 마시는 기분은 끝내준다.

술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니가타에서 꼭 해봐야 할 것은 유키미자케다. 유키미자케란 술잔이 담긴 나무통을 온천수에 띄워놓고 눈을 보며 마시는 사케란 뜻이다. 술 한 잔 받고 상대편에게 바가지를 밀면서 술을 주고받는다. 눈 내리는 밤에 온천욕을 하면서 마시는 사케 맛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게다가 니가타 사케는 일본 최고 수준이다. 니가타가 사케의 본고장이다. 산이 높아서 물이 깨끗하다. 토지가 비옥해 쌀도 좋다. 쌀 좋고 물 좋으면 당연히 술맛도 좋다.

니가타에는 양조장이 96개로 일본의 현 가운데 가장 많다. 이 양조장들이 내놓는 사케 브랜드는 500여 개다. 해마다 열리는 일본 사케 대회에서 상을 받는 사케의 절반이 니가타 사케다. 사케 장인을 도지라고 하는데 일본 전역에서 니가타의 도지들을 모셔갔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 남자들은 사케를 만들었다. 잡균이 죽는 겨울이 술을 만들기에 좋다. 새 술이 나오면 집 앞에 ‘스기다마’란 삼나무 공을 걸어놓는다. 사케 소믈리에로 유자와에서 ‘하타고 이센’이란 료칸을 운영하는 도모히로 이구치 사장은 “일본 술은 차게도 마실 수 있고 따뜻하게도 마실 수 있다”며 온도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고 사케 자랑을 했다. 일본 술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가쿠레이’, ‘구보타’를 내놓았다. 구보타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술로 여성적이다. 반면 가쿠레이는 뒤끝이 깔끔한 남성적인 술이다. 차게 먹는 사케도 좋지만 38~41℃에 맞춘 따뜻한 사케도 좋다고 했다. 온천수에 사케 병을 담갔다 먹으면 된다.

사케를 사려면 유자와 기차역 내 폰슈칸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동전 하나를 넣으면 술이 한 잔 나오는 사케 자판기가 있어 술맛을 보고 사는 곳이다. 여기서 가장 인기 있는 술 1위는 구보타, 2위는 고시노 간바이, 3위는 간추바이, 4위 하카이산, 5위 고시노 우메슈다.

[길 떠나는 길]설국(雪國)을 가다 - 니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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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술은 정미율에 따라 다이긴조, 긴조, 혼조조로 나뉜다. 다이긴조는 정미율이 50%로 겉껍질 50%를 깎아버린 술이고, 긴조는 60%로 겉껍질 40%를 깎아버린 술이다. 혼조조는 정미율이70%(30%를 깎아버림)다. 여기에 쌀만 사용하느냐, 알코올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준마이냐, 아니냐로 나뉜다. 준마이는 쌀로만 만들었다는 뜻이다. 우리의 막걸리에 해당하는 니고리자케도 있고, 효모가 살아 있는 나마사케도 있다. 등급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술은 아니다. 등급보다는 맛과 향, 취향에 따라 골라야 한다.

니가타는 한국으로 치면 전라도다. 음식 천국이라는 말이다. 밥도 맛있다. 니가타산 고시히카리는 일본에서도 가장 품종이 좋은 쌀이다. 동해의 사도섬에서 잡은 방어와 헤기라고 불리는 메밀도 유명하다.

여행 길잡이
·도야마 공항에서 가깝다. 료칸이나 고급 호텔을 원할 경우 스기노 하라에서 가까운 ‘이치노 야도 겐’(http://yado-gen.com)이나 아카쿠라 스키장 중턱에 있는 ‘아카쿠라 간코 리조트’(www.akhjapan.com)가 좋다. ·유자와 지역은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역사 바로 앞에 옛 거리가 펼쳐지고 인근의 스키장은 무료 버스를 운행한다. ·나에바 스키장 바로 앞에는 프린스호텔(www.princehotels.co.jp/naeba)이 있다. ·유자와 그랜드호텔(www.yuzawagrandhotel.jp)은 시내 중심가에 있다. 니가타 한국사무소 홈페이지(www.niigata.or.kr)에서 스키장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다카한(www.takahan.co.jp)은 80년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묵으며 「설국」을 썼던 료칸이다. ·세키 온센 스키장은 일본 스노보더에게 인기가 높다. 압설을 하지 않아 1m 이상 쌓인 슬로프를 보드로 밀고 내려가는 재미 때문이다.

■글&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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